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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VIII: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2001년 4월 5일 서울 잠실야구장에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시구를 하기 위해서 한 아이가 등장했습니다. 관중들이 보는 가운데 마운드에 올라선 아이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애덤 킹으로 미국에 입양된 고아였습니다. 애덤은 허벅지 아래의 다리가 태어날 때부터 기형이라 티타늄 철제로 만들어진 인조다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바지 차림의 애덤은 마치 로봇처럼 성큼 성큼 걸어와서 투수석 마운드에 올라서서 시구를 던졌습니다.
이 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김홍덕 목사님은 ‘애덤 킹! 희망을 던져라’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 때 관중석에는 400여명의 장애인들이 함께 참석했다고 합니다. 애덤은 장애인들뿐 아니라 그날 참석한 모든 관중들을 위해서 희망을 던지는 위대한 업적을 세운 것입니다.

오늘 주기도문 설교를 마감하는 날인데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드리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 희망을 던지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오늘 함께 나눌 마지막 기도 내용 때문입니다. 주님은 일곱 가지 기도제목을 올린 후 우리에게 송영을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저희가 주일 예배시 대표기도를 마치면 반주자가 송영을 연주합니다. 물론 반주자마다 조금 다르지만 대표기도후 반주자는 바로 이 송영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송영의 기본 내용은 바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마지막에 왜 송영을 넣으셨겠나요? 그리고 이 송영과 함께 어떻게 주기도문은 희망을 던지는 기도가 되었을까요?
송영과 더불어 주기도문이 희망을 던지는 기도가 될수 있는 것은 송영의 유래에서 찾을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송영의 유래를 다윗의 송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못 다이룬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손으로 성전을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렸다고 피흘린 손으로 짓는 성전을 받기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대신 다윗은 자기가 짓지는 못해도 솔로몬을 위해서 모든 준비를 완료합니다. 건축물자뿐 아니라 많은 금 은 그릇을 만들어 놓습니다. 성전 건축 준비를 다 마치고는 이 것만으로도 다윗은 무척 기뻐합니다. 역대하 29: 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성전 완공도 아닙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 특히 마음의 준비를 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송영을 올립니다. 역대상 29: 11-13,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사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후에 성전을 축복하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서 송영이 유래된 것이 아닙니다. 송영은 다윗이 마음의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솔로몬과 후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한 후 올리는 간절한 기도 후에 올려진 것입니다. 이 다윗의 송영을 주님은 몸소 우리들에게 가르치시고 계신 것입니다.

곧 송영은 이미 이루어졌기에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올리는 것입니다. 곧 송영은 바로 올려진 7개의 기도의 제목들이 언젠가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질 것을 믿는 마음으로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송영을 올리는 순간 모든 기도의 제목은 당사자를 넘어 오고 가는 온 세대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곧 삼세대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그럴수 밖에 송영의 가사를 보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오고 가는 모든 세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아 영원한 시간 안에서 이루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통해서 자기의 기도 제목들이 후손들에게 영원한 축복으로 임하게 될 것을 확신하면서 송영을 올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7가지 기도제목을 가르치신 후 송영으로 마무리 지으신 것입니다. 물론 기도는 우선 한 당대에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해서 놀라운 일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송영으로 인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오고 가는 세대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은 삼세대를 위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삼세대를 위한 기도라고 생각하고 7개의 창문을 함께 열어 가 볼까요?

첫번째 창문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두번째 창문은, “나라가 임하시오며.”
세번째 창문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상 세 창문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위한 기도입니다.
네번째 창문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늘 나려 주시는 양식을 통해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곧 일용할 양식은 기도의 응답인 동시에 우리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창문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여섯번째 창문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그리고 일곱번째 창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이 기도를 드리고 송영으로 마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일단 오늘 우리들의 기도이지만 이 기도는 또한 후손들을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도 죄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하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이 담겨져 있고 이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안고 기도를 마무리 짓는 것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제 마지막 주기도문을 마치려 하니 눈에 하나 띄는 것이 있네요. 주기도문은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버지로 마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주기도문을 드리는 자들은 온전한 자들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기도문을 드리는 자들의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만이 드릴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 기도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을 드리는 자들은 삶이 온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덤 처럼 다리가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일곱개의 창문 앞에 서는 것입니다.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는 송영을 드리는 것입니다. 희망의 공을 후손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던지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올해는 6명의 유아세례와 1명의 성인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베풀 때 모든 분들이 서서 함께 동참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송영을 부르는 마음으로 서서 동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인세례자는 물론이거니와 6명의 아이들은 여러분께서 서 계신 모습을 모두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송영을 모두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희망의 공을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함께 서서 동참하신 이유는 앞으로도 믿음의 자녀들에게 계속 희망의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아니 여러분은 이미 고백하셨습니다. 이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시겠다고 고백하신 것은 여러분은 계속 희망의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 스스로 피를 흘린 다윗과 같이 부족한 모습이 많을지라도….
그리고 자녀들은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제2, 제3의 다윗이 되어 갈 것입니다.

지난주 오후에는 공원에서 열리는 구역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저도 일찍 가게 되었는데 이미 구역장님은 일찍 오셔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구역에는 어린 자녀들이 많은 구역인데 저는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알게 모르게 구역장님의 땀 흘리는 모습을 보겠구나…. 구역장님은 구역식구들을 위해서 특히 자녀들을 위해서 희망의 공을 던지고 계셨습니다. 그의 모습 자체가 바로 다윗의 송영이었습니다.

팬데믹 기간 우리는 화면을 통해서 간접적인 송영을 들어 왔습니다. 한편 많은 섬기는 분들이 어떻게 하던 직접 듣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제 다시 다윗의 송영으로 교회당을 가득 메워질 날을 그려 봅니다.

백신의 효과도 있고 해서 포스트 팬데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예측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나 신학자도 확실한 전망을 내 놓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를 부르며 7개의 기도의 창문앞에 서십시다.
아울러 다 함께 송영에 동참하십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희망의 공을 던지십시다. 자녀들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자신들을 위하여….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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