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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마태복음 5:1-12 (02/27/2022)

대학교 교수님들은 강의 첫 시간에 syllabus라고 해서 한 학기 강의 내용이 담긴 일종의 안내서를 학생들에게 내어 줍니다. Syllabus에 기록된 지침을 잘 따를 때 좋은 성적도 받게 됨은 당연지사입니다.

테네시 대학교 음악과 윌슨 교수님은 요즘 학생들이 안내서를 제대로 읽지 않는 것을 눈치를 채고 안내서를 끝까지 잘 읽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테스트를 시도했습니다. 안내서를 끝까지 읽은 학생이라면 현찰 50불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안내서에 학교 라커룸에 현찰 50불을 숨겨 놓은 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기가 끝날 때까지 라커룸에 현찰 50불은 그대로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물건을 주문해서 집에서 조립할 경우 안내서는 대충 보고 느낌대로 시작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곤 한 경험이 자주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부터 이번 사순절 기간 주님의 팔복에 대한 말씀을 한주씩 나누고자 합니다. 팔복은 유명한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씀인데 어떻게 보면 주님께서 처음 공개적으로 하신 첫 강의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줄 압니다. 주석가들은 산상수훈에는 제자도가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1절 말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이때는 아직 12제자가 다 뽑혔을 때는 아닙니다. 그러니 여기에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그리고 주님께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첫 강의를 하시고 계십니다. 첫 강의의 제목은 8복입니다.

 

그러면 오늘 특히 남선교회 헌신예배를 맞이해서 주님께서 주시는 제자들을 향한 syllabus의 첫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입을 여시고 가르치시기 시작하십니다. 모든 무리와 특히 제자들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이 말씀은 아마 주님의 제자도를 가르치는 지침서 중에 가장 중요한 지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에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원어 보다는 멧세지가 많이 약해진 번역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말씀은 ‘복이 있도다’입니다. 영어 번역이 원어와 같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NRSV번역을 보면,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로 시작하는데 헬라어로는 ‘makarioi’입니다. 곧 시작은 이렇게 번역해야 맞습니다.

“복이 있도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주님의 제자도의 안내서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복’입니다. 그리고 8복 모두 이 단어로 시작합니다.

‘makarioi!’

 

어떻게 보면 제자들은 예상 외의 단어를 들었을지 모릅니다. 당연히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지내면서 여러 죄책감 가운데 살고 있었으니 늘 자기들은 야단 맞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일단 야단을 맞고 이제 다시 잘 해 보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Blessed!”

깜짝 놀란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계속 귀를 기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여.”

순간 헷갈려 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무슨 의미일까?”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없이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다시 NRSV를 보면,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한글 번역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것이다, 천국은….’입니다. 천국 보다 ‘그들의 것’ 곧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천국 보다 더 소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원어에 보면 ‘복’을 강조하고 있고 또 ‘그들의 것이다’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리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자도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시작은 복입니다. 물론 제자도를 생각하면 ‘훈련’, ‘희생’ ‘십자가’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를줄 압니다. 그러나 제자도의 본질은 ‘복’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산상수훈 첫 말씀으로 복을 언급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중 첫번째 주시는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복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이 최고의 복은 바로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질문을 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어떤 자들인가?’

저는 다음 문장에서 실마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들의 것이다, 천국은….”

 

마태는 사복음서기자들 중에 가장 천국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13장에는 비유를 가지고 천국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3장에는 7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잘 아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비롯해서 겨자씨 비유, 누룩의 비유, 밀과 가라지의 비유,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장사,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비유 등 7가지가 나옵니다.

 

이 비유의 나오는 주인공들의 특징을 보면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중산층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진주 장사 비유가 하나 있지만 평범한 사업가로 생각해도 좋을줄 압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 일상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의 삶의 일상 생활 안에 천국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팔복 중 첫번째 복 팔복 중에서 가장 중요한 복임을 마태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의 구석 구석이 천국의 씨앗이 뿌려지는 농장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천국은 세상에서 1등이 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천국의 농장으로 맡기는 자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다면 하나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기의 삶이 바로 천국의 씨앗이 뿌려지는 곳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St. John of the Cross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For the poor in spirit are happier and more constant in the midst of want because they have placed their all in nothingness, and in all things they thus find freedom of heart.”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궁핍할 때 더 행복하고 더 한결 같아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 놓았고 모든 것 안에서 마음의 자유를 누리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되어지는 것은 단지 천국의 씨앗이 뿌려지는 밭이기 때문에 밭이 예쁘고 멋지게 치장되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밭은 누추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면 그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천국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것을 깨달았을까요? 산상수훈의 말씀을 깨달았을까요? 이를 제일 잘 보여주는 두 제자가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 주님께 구합니다. 마태복음 20:21,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이는 당연히 주님께서 로마제국을 무찌르고 왕이 될 것을 생각하며 주님께 부탁드린 것입니다.

주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어도 끝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주님께 부탁드린 것이 세상적인 권세를 구한 것입니다.

 

곧 처음 소개해 드린 이야기에서 학생들이 syllabus를 읽지 않아서 50불을 아무도 얻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바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내내 주님을 쫓아다녔지만 참 복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의정 좌의정이 되는 것이 복인줄 알았던 것입니다.

 

얼마전 롱테일 법칙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롱테일, 꼬리가 길다는 의미로 파레토 법칙과 대조되는 법칙이 새로이 각광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롱테일 곧 전에는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작은 개미들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내포된 법칙입니다.

파레토 법칙은 잘 아는 20:80법칙으로 20%가 나머지 80%가 차지하는 것들을 다 메꾼다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상위 20%가 80%의 물건을 산다는 것입니다. 20%의 운전자가 전체 교통위반의 80%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동안 인정해 오고 있는 법칙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쇼핑이 많아지면서 전에는 20%에 속한 물건이 80%의 매상을 올렸는데 이제는 꼬리가 길어졌다는 것입니다. 일반 시장에는 20%에 해당하는 물건만 진열되었지만 이제는 온라인 쇼핑이 생기면서 전에는 감히 상점에 진열되지 못했던 80%에 속한 물건들이 훨씬 많이 팔리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롱테일 법칙이 인터넷 시대에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2000년전에 롱테일 법칙을 말씀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떤 씨앗도 뿌려지면 열매를 맺게 되는 천국에 대해서 이미 설파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이미 2000년전부터 롱테일 법칙을 믿었던 것입니다.

자기라는 초라한 삶에 천국의 씨앗이 뿌려지면 어느 하나도 빠짐 없이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러면 그냥 롱테일 법칙만 믿으면 될까요? 봄이 다 오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래도 따뜻한 봄 기운을 겨울이 이겨내지는 못할줄 압니다. 봄이 되면 늘 기다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제가 심은 나팔꽃이 올해는 어떻게 잘 자랄까 기대하는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이번 눈만 녹으면 아마 종종 뒷마당에 나가 보게 될줄 압니다. 그냥 발이 절로 향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거름을 자주 주곤 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저의 기다리는 마음을 거름인양 주고 있다고 할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롱테일 법칙을 그냥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마음 속으로 늘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혼자서…. 자기의 밭에 피어나는 천국의 씨앗을….

 

이를 삶에서 직접 체험한 사람 중 한 사람이 평생 수도원에서 요리사로 궂은 일을 하며 지냈던 로렌스 형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가장 뛰어난 영성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이런 영성가가 되게 한 아주 평범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겨울에 잎사귀들이 벗겨진 한 나무를 보았다. 나무를 보며 조금 있으면 잎사귀들이 다시 생겨나고 그 다음에는 꽃들과 열매가 맺힐 것을 상상 속에 그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에 대한 강렬한 체험을 했다.”

 

이 강렬한 체험이 바로 로렌스의 삶의 거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이런 강렬한 체험이라는 거름이 있습니다.

 

오늘 남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리는데 천국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성공과 실패에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밭이라고 여기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맡기고 기다릴 때 천국은 싹이 트는 것입니다. 끝내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강렬한 체험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내 모습 이대로 우리는 천국의 씨앗을 위한 위대한 밭입니다. 올해도 남선교회원들의 밭에 위대한 천국의 씨앗이 심겨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복음송가 중에 Give Thanks with Grateful Heart라는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Don Moen이라는 유명한 가수가 불렀는데 처음에는 작곡 작사자 미상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사자를 찾게 되었습니다. 헨리 스미스라는 분이었는데 1978년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회지를 못 찾고 있었고 육신적으로도 불치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겠습니까.

어느 날 어느 목사님께서 고후8:9절 말씀으로 설교하시는 것을 듣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후 8: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부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 자신을 가난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가사와 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가사는,

And now let the weak say, I am strong

Let the poor say, I am rich

Because of what the Lord has done for us

“약한 자들은 강하다고 노래하고

가난한 자들은 부하다고 노래하자.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셨으니….”

 

심령이 가난한 자의 노래가 아닐까요?

 

이 찬양으로 인해 요즘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삶에 천국은 이미 싻트고 있습니다.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온 우주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주님의 참 제자가 되십시다. 천국의 주인공의 삶을 사십시다. 주님의 복을 누리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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