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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에베소서 4장 11-16절) 09/18/2016

 

오래전 캘리포니아에 지진이 났을 때입니다. 다섯 살 난 조니가 지진이 있고 나서 집으로 뛰어들어옵니다. 엄마가 걱정스럽게 말합니다.

“조니, 어디 있었니?”

조니가 대답합니다.

“정말이예요, 엄마. 제가 안 그랬어요.”

 

장난꾸러기 조니였나 봅니다. 그래서 항상 일을 저질렀고 그래서 야단만 맞았나 봅니다. 지진마저도 자기가 잘 못한 양 꾸지람을 받을까 어리둥절 하고 있는 조니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조니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 갔을까요?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는 문제를 피해가려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쁜 사람이 되어 갔을 것입니다. 가장 나쁜 것은 어떻게 해서든 남의 책임으로 돌리려고 기를 쓰는 사람이 되어 갔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아니 교회는 어떤 사람이든 환영하는 곳입니다. 조니와 같은 부정적인 사람도 대환영이고 반대로 긍정적인 사람도 대환영입니다. 아니 어쩌면 부정적인 사람들이 더 환영받아야 하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는 먼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곳입니다. 물론 교회는 봉사의 일을 잘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봉사의 일을 잘 하는 사람을 광고를 내서 모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의 일을 잘 하도록 온전하게 하는 곳입니다.

곧 교회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람이던 어떤 사람이던 불러 모아서 온전하게 하는 곳입니다. 그 결과 언젠가 봉사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집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나요? 13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것은 언제나 ing,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봉사의 일을 합니다. 봉사는 보이게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보이지 않는 어떤 새로운 일들이 배후에 이루어집니다. 곧 배후에서 이루어지는 한 놀라운 과정에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집사회에서 상록회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봉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식사와 더불어 즐거운 시간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요?

아니 그 때가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과정으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어서 이러한 과정 가운데 있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특징들을 설명합니다. 먼저 14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과정 가운데 있기에 때로는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쉽게 받습니다. 조니가 항상 유혹을 합니다. 너의 본성은 장난꾸러기 말썽꾸러기라고 속삭입니다. 종종 이 소리에 져서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한 후 광야 생활을 할 때 늘 밤에는 불기둥이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밤낮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그들은 가장 큰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 유혹은 바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종살이가 가장 맞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니의 유혹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십시다. 왜 종살이로 돌아가자는 유혹을 느낍니까? 그것은 지금 과정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과정 가운데 있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왜 유혹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광야에 살지만 자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종살이를 하는 자들에게는 유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유혹 가운데 있으니 말입니다. 유혹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온전해 지는 과정 가운데 있는 자유인이라는 증거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유혹을 받을 때 아직 내가, 우리 공동체가 이 정도까지 밖에 되지 않았나 좌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온전해지는 자유함 가운데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의 가장 thrill만점인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쳐 주면 어느 순간 ‘아하’ 하면서 글자의 개념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가르쳐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알파벳을 놓고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이렇게 하는 순간 어느 순간에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면서 비로서 글자가 들어 오고 문장이 들어 오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해 지는 과정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사랑 안에서 이런 일 저런 일 저런 일 이런 일을 하는 중에 언젠가 ‘아하’ 하는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신비스러운 그리스도를 체험을 합니다. 이는 자유인들만의 함성인 것입니다. 이런 자유 가운데 함성을 터트리며 살다 보면 어느새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게 하기 위하여 주셨습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아무도 막을수 없습니다.

 

성 프란시스가 관할하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안젤라라는 수도원장이 악명 높은 3인조 강도를 꾸짖어 돌려 보냈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안젤로 원장을 꾸짖으면서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거룩한 순명의 이름으로 명하니, 즉시 내가 구걸해 온 이 빵 주머니와 포도주 병을 가지고 산을 넘고 어디든지 그들을 만날 때까지 빨리 쫓아가서 내 이름으로 이 빵과 포도주를 그들에게 전부 주십시오. 그 다음에 그들 앞에 무릎을 꿇어 형제의 냉정함을 겸손히 사과하십시오.”

안젤로는 이 말에 순종했고 결국은 그들을 형제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젤로는 사랑 가운데서 순종하여 강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결국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아하’ 하면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봉사는 이웃 앞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는 더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16절 말씀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정말로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떨어져 있던 각 마디 마디가 연결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이식수술입니다. 남의 장기를 마음대로 이식받을수가 없습니다. 몸이 거부를 합니다. 그런데 봉사의 일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곧 봉사는 영적 이식수술입니다. 전혀 거부반응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국 봉사의 일을 하게 되면 두 가지 신비스러운 일들이 생기는데 하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위대한 형상에 가까와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인들이 서로 연결이 되면서 그리스도의 놀라운 몸이 되어 갑니다.

특히 16절 마지막 표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봉사의 일에 참여하는 있는 자유인들을 통해서 주님의 몸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특히 안수 및 임직 받으시는 제직 분들을 이 축복된 과정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아멘’으로 이 초대에 응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그 당시 영락교회 담임 목사님이신 임영수 목사님께서 저에게 책을 하나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목이 늘 저의 가슴을 울립니다. ‘목사 되어가기.’ 목사가 된후 22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스스로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 느낄 때면 이 책이 저에게 큰 힘을 주곤 합니다.

오늘 안수를 받으시는 제직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은 장로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권사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안수집사가 되어가는 과정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자유인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자유롭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까지 자라게 될 것입니다. 신비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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