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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일, 하늘의 일(요한복음 3:1-15) 01/15/2017

 

최근 University of Chicago에서는 흥미로운 상금을 학생들에게 내 놓았습니다. 학생들에게 시카고 도시를 새롭게 느낄수 있는 최고의 tour program을 만들면 소정의 상금을 주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유는 자기들 학교에 좋은 학생들을 오게 해야 하는데 최근에 시카고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나빠져서 시카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신선한 여행 가이드 프로그램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작년도 통계에 의하면 작년 한 해 동안 살인 사건이 762건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두 건 씩 발생한 셈입니다. 이는 지난 20년 동안 최고치에 달하고 있고 시카고 보다 더 큰 도시인 뉴욕과 LA의 살인 사건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작년도 선거에서 시카고의 현 주소가 자주 매스콤에 언급되어서 급기야 시카고 대학에서는 이런 제안을 학생들에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뉴우스를 접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 수상하게 될까…? 사실 저도 오래전 시카고를 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Sears Tower이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안 되어서 한번 인터넷으로 시카고의 관광지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알게 된 것은 Sears Tower는 이름이 Willis Tower로 바뀌었지만 더 이상 10대 명물에는 들어가 있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면 새로이 여러 관광지가 생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Art Museum, Millennium Park, 전통적인 야구장인 Wrigley Park….

그러나 그 관광명소를 보면서 생각이 든 것은 분명 대학교에서는 이런 관광명소만 가지고 guide를 만든 학생에게 상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쉽게 들었습니다. 그럼 어떤 학생이 상을 받을까요? 사실 많은 분들이 시카고를 잘 모르실줄 압니다. 저도 한두번 가 봐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바꿔 보았습니다.

자, 보스톤이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런데 이 보스톤을 아름답게 인식시키려면 보스톤의 어디를 보여 드려야 할까요?

Fenway Park? 그 유명한 야구장을 보여드리면 사람들이 보스톤을 안전한 도시로 인식하게 될까요? 좀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질문을 염두에 두시고 우선 본문 말씀을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재미 있는 사실은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언제 찾아 왔다구요? 밤에…. 많은 분들이 추측하기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이기에 낮에 예수를 찾아 올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당연하다고 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정식 종교인이 아닌 예수님을 낮에 찾아 오겠습니까? 당연히 밤에 찾아 올수밖에요….

그런데 저는 두 가지 밤을 니고데모가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번째로는 시간적인 밤 깜깜한 밤에 찾아 온 것입니다. 또 다른 밤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밤을 니고데모는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이 밤이 더 무서웠습니다. 이 밤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온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대화를 보면 니고데모가 경험하고 있는 밤을 쉽게 느낄수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표적을 행하고 있음을 믿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말씀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주님은 영적인 밤에 니고데모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아울러 니고데모가 스스로 자기 입으로 증명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래서 주님은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 니고데모는 또 질세라 말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이에 주님은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자, 주님은 니고데모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는 땅의 일도 보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의 일은 더 말할 나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니고데모는 과연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13절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스스로 하늘에서 땅으로 섬기기 위해 내려 온 자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인자’라고 표현할 때는 바로 ‘섬기는 사람’의 의미가 깊게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섬기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 온 자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이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2절 말씀에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보고 있는 모습이 나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니이다.”

니고데모의 표현은 얼뜻 들으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통치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아니라…. 반면 예수님은 스스로 어떻게 표현하셨다구요? “하늘에서 내려 온 자 곧 인자 외에는….”

니고데모는 주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로 말하지만 주님은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 온 자’로 말씀합니다.

 

비슷한 것 같지만 비슷하게 아는 것이 더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르게 알고 있으면 도리어 고쳐 주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어정쩡하게 알고 있으면서 자기도 다 안다고 생각할 때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슷하게 알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주님은 더 화가 나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 니고데모는 생전 처음 치욕적인 말을 듣습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어떤 분들은 궁금해 하실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섬기는 자가 되어서 하늘에서 내려 오신 것이 어떻게 땅의 일과 관계되냐고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저희 교회에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Scientist들이죠. Science말의 어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찾아 보았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안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과학자는 알기 전에는 말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아는 것이 과학이겠습니까? 저 보고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이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자연 세계가 어떻게 서로 서로 섬기고 있는지를 알아 가는 학문이다.”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이제는 서재 어느 곳에 쳐 박혀 있는지 눈에 안 띈지는 오래 됩니다만 그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든 자연 세계는 섬김의 법칙으로 운행되고 있다. 겨울에 눈이 내려 땅을 보호한다. 그리고 낙옆이 땅을 기름지게 하고 또 나무는 공기를 맑게 하고….”

사실 지난주에도 잠깐 PBS TV를 보는데 자연 세계에 대한 프로그램인데 어느 작은 동물이 겨울에 무엇을 먹고 사는 지를 소개해 주고 있었습니다. 눈 때문에 도리어 따뜻한 환경이 주어져서 풀이 싱싱하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은 서로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과학자는 무엇을 알아가는 사람들입니까? 자연세계가 어떻게 서로를 섬기고 있는지를 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연세계뿐 아닙니다. 모든 인간 세계도 매한 가지 입니다. 아니 모든 땅의 일이 매한 가지 입니다. 땅의 일을 알아 간다는 것은 섬김의 법칙을 알아 가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세계는 위대합니다. 이유는 섬김의 법칙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한 섬김의 법칙에 일찍 눈이 뜨인 사람들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사회적 정치적 폭풍이 계속 몰아 닥치고 있습니다. 큰 폭풍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작은 한반도도 그렇고 큰 미대륙도 그렇고 자연세계는 변함 없이 잘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 세계야 어떻든 자연세계는 아직도 섬김의 법칙이 온 땅을 굳게 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세계에서 섬김의 법칙을 쏙 빼는 순간 한반도는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한반도 뿐입니까? 이 거대한 미국 땅도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이것이 땅의 일을 주관하는 섬김의 법칙의 위대함입니다.

 

그런데 땅의 일이 이처럼 위대한 섬김의 법칙으로 운영이 된다면 하늘의 일은 어떨까요? 14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 민수기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길이 험하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서 백성들을 물게 합니다. 이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잘 못 했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놋뱀으로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 놓으라고 합니다. 그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보는 순간 낫게 하십니다.

사실 병원 싸인도 그렇고 의료진 싸인에 뱀이 많이 나옵니다. 바로 이 사건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바로 놋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놋뱀을 보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위대한 섬김의 법칙으로 운영이 되고 있는 땅으로 내려 오신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셔서 섬김의 법칙으로 가득찬 피조물 세계로 들어 오신 것입니다. 아니 내려 오신 것입니다. 섬김의 법칙도 위대한 법칙인데 섬김의 법칙으로 운영되는 땅의 세계로 주님께서 내려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땅의 일을 뛰어 넘는 위대한 하늘의 일인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공부도 많이 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들을 섬김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자연세계를 만끽하지 못했고 또 하늘의 위대한 일을 볼수 없었습니다.

 

설교 서두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시카고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tour guide응모전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학생이 1등을 할까요? 섬김의 눈을 가진 학생이 아닐까요? 여러 가지로 사람들은 제일 위험한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있는 위대한 섬김의 모습들을 발굴해 내는 학생이 1등을 하지 않을까요?

 

이젠 관점을 장소에서 시간으로 바꿔 보겠습니다. 올해 세번째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2017년도의 위대함을 누가 만끽할까요? 좋은 일들을 많이 만나는 사람들일까요? 섬김의 눈을 가지고 한 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위대한 섬김의 법칙으로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아울러 위대한 섬김의 법칙으로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많은 기대를 안고 새해를 시작했지만 금방 세상 돌아 가는 일을 보면서 실망하시지 모릅니다. 그 때 땅의 일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오늘도 땅 위에 살수 있는 이유는 온 땅은 섬김의 법칙으로 서로를 돕고 있기 때문임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큰 위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추운 1월 달에 교회에 와서 따뜻하게 예배를 드릴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예배당이 섬김의 법칙에 의해서 지어졌고 또 서로 서로 섬김의 법칙으로 지금까지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기 때문입니다.

땅의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하물며 하늘의 일이야 어떻겠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려고 내려 오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올 한 해를 멋지게 엮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땅의 일은 구체적으로 알겠는데 하늘의 일에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동참할수 있을까요? 놋뱀 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각자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멋진 한 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저희 교우님이 연재하는 보스톤 코리아 어느 컬럼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연초에 보았습니다. 김 훈 작가의 글을 인용하였는데 저도 그 글이 좋아 소개해 드립니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되풀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김 훈 작가가 이런 고백을 할수 있는 것은 아마도 위대한 섬김의 법칙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음을 느껴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우리는 땅을 밟을 때마다 섬김의 위대한 법칙을 느끼게 되고 하늘을 볼 때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내려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되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교우 여러분,

2017년도 매일 매일 땅을 내려다 보십시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 보십시다. 땅은 서로를 섬기는 자연의 신비로 가득차 있고 하늘은 주님의 십자가의 신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바라보며 우리도 위대한 섬김의 주인공으로 살아 가십시다. 영생의 삶을 누리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섬김의 주인공이 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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