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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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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15.05.03
예배명 : 어린이 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성경본문 : 사 11:6-9

자녀 교육을 위한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접해 보았습니다. 사오정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요즘 같이 취업이 힘들었던 IMF시절 사오정은 아무리 입사원서를 넣어도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필기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어울리던 손오공은 회사에 지원하는 대로 합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오정이가 오공이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오공이 형, 어떻게 하면 면접에 잘 통과할 수 있어?”
그러자 손오공이 “그게 맨입으로 되냐?” 하면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정이는 온갖 선물 공세와 아부를 한 끝에 면접의 비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오공과 같이 입사원서를 내고 손오공이 먼저 면접을 볼 때 뒤에서 잘 보고 있다가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면접날이 되었습니다. 면접관이 묻습니다.
“손오공씨, 좋아하는 축구선수가 있습니까?”
“예, 전에는 안정환이었지만 지금은 박주영입니다.”
“네, 그럼 운동에 대해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지겠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등 넘 버는 몇 번입니까?”
“네, 61번입니다.”
“운동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럼 좀 황당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UFO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아직 과학적으로 검정이 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오정은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내가 저렇게 쉬운 것을 못해 여태껏 취업이 안 되다니. 이번엔 무조건 된다.’ 각오를 하고 앉았습니다. 면접관이 묻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네, 전에는 안정환이었지만 지금은 박주영입니다.”
“네, 뭐라구요? 장난합니까? 이름이 어떻게 달라요. 이름이 뭐예요?”
“네, 전에는 안정환이었지만 지금은 박주영입니다.”
“이 사람 황당하네. 그렇다 치고 당신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네, 61입니다.”
“뭐라구요? 이런 정신 나간 사람이 있나? 도대체 당신의 귀는 잘 들립니까?”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자녀교육에 관한 책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는 아무런 목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세상을 풍자한 것입니다. 요즘 자녀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적 거인이 되게 하기 보다는 무조건 세상을 따라하는 아이들로 키우고 있음을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요즘 어린이들은 현대판 사오정이 되어 가고 있다는 멧세지입니다.
사실 요즘 영재 교육이니 뭐니 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공부 가르치는데 많은 분들이 혈안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가 무엇이겠습니까? 남들을 따라가는 것이고 한 마디로 사오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영적 거인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소원을 안고 키워야 할까요? 첫 세 절을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립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어린 아이의 손에 끌리어 암소와 곰이 함께 먹습니다.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을 마음의 소원으로 삼고 살지 않습니까?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사오정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동물원에 데리고 가 무서운 동물들과 함께 살게 해야 하나요?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당연히 글자 그대로 어린 아이에게 독사의 굴에 손을 넣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절을 보면 독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아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실 오늘의 말씀은 앞으로 올 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젠가 온 세상에서는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시절이 다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으니 이리가 어린 양을 해할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들이 아이들에게 이끌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이 올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한 가지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영재교육과 함께 앞으로 올 세상을 가르쳐주면 어떨까요? 보스톤에 사는 아이들은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제 보기에는 거의 모두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전제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곧 세상 공부와 함께 언제가 도래할 어린 아이들이 짐승을 이끄는 세상을 보여준다면 말입니다.
저는 의과대학을 나왔는데 학교 다닐 때 보면 이미 두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봅니다. 한 그룹은 돈 잘 버는 안정된 직업으로 택해서 온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다수가 그렇습니다. 또 한 그룹은 의사는 되지만 뭔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온 학생들이 있습니다.
후자의 학생들은 전자의 학생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면서 공부를 합니다.
우리들의 자녀 교육도 매한 가지가 아닐까요? 영어 수학 과학등 여러 과목들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방향 감각이 없이 공부를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인류 역사 가운데 한 어린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어린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예수라는 어린이였습니다. 이 예수 어린이는 자신이 가는 길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신학자들 사이에 늘 오고가는 주제가 하나 있는데 ‘언제 어린이 예수님이 당신이 메시야인 것을 인식했을까?’라는 주제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마리아 뱃속에서부터 ‘나는 메시야다’ 생각했다고 상상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언젠가 예수님은 스스로 메시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줄 압니다만 그 시간이 언제인지 우리는 전혀 알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알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메시야로 인식하신 후 당신이 이루어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는 분명히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이 예수는 이사야서를 알고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특히 어린이 예수는 오늘 본문 말씀과 그 전 귀절을 너무도 잘 알았을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예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귀절들을 통해 자기로 인해 이루워질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도 잘 아셨습니다. 4, 5절 말씀입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곧 당신의 수고로 이루어질 세상은 정의가 넘쳐 흐르는 세상임을 아셨습니다. 이 당신의 수고로 인해 이루어질 세상을 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곧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펼치시는 공의로운 사역의 완성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공의가 완성되었을 때 그 세상에는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짐승을 이끄는 세상이 될 것임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 세상을 향하여 어린이 예수는 올인을 하신 것입니다. 곧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에게도 예수님이 읽고 감명 받은 이 아름다운 시적인 광경을 가르쳐주고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돈과 사치와 학벌로 가득찬 세계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감이 잡힙니다. 영재교육은 어쩔수 없습니다. Brookline의 공립학교 교육과 가까운 Rhode Island의 교육은 많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곧 보스톤 근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이미 영재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재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는 시적인 세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곧 정의의 세계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세계는 정의가 가득찬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의로 완성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삼세대 목회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우주의 윤리적 포물선은 길지만 그 방향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습니다.”
저는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우주의 역사의 포물선은 길지만 그 방향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도 영원한 정의의 나라를 완성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 역사는 길어 보이지만, 긴 포물선에 종종 여러 혼탁한 사건들이 역사를 망가뜨리는 것 같지만 그 포물선은 정의 쪽으로 굽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살게 되길 원하십니까? 어떤 공부를 해도 어떤 전공을 해도 관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 예수가 읽고 묵상했던 이 아름다운 시적인 세계를 정의의 세계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한국에 한동안 재미있는 광고(CF)가 있었다고 합니다.
청소년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나는 누구예요?”
“나도 몰러.”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에 시달리던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생활을 하니 자기가 누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은 것입니다. 아버지도 아들을 남들 아이와 똑같이 키웠으니 아들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도 몰러.”

지난 주일에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제4계명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물론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으니 주일을 계명을 지키듯이 율법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일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린 예수님이 보고 느꼈던 이 아름다운 정의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 할 때 우리 자녀들이 하는 수많은 과외활동은 결국 자녀들로 하여금 사오정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어린이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정의로운 삶을 보여주십시다. 가르쳐 주십시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갈 것입니다.

한국 자녀들에게 조사했다고 합니다. 질문은 “아버지를 존경하는가?” 청소년 중 62%가 대답합니다. “아니요.”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는데 ‘아버지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자?’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없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공의의 삶을 함께 살고 가르쳐 준다면 이런 많은 자녀들이 이렇게 답할까요?
정의로운 삶이라고 해서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얼마 전 ‘지구의 날’을 전 세계가 지켰습니다. 그런 날을 잘 지키는 것도 쉽게 정의로운 삶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에 즐겨 보기 시작한 Good News Network이라는 인터넷 신문이 있습니다. 이 신문은 좋은 소식만 기사로 내는 특이한 신문입니다. 일반 신문에는 나쁜 소식이 너무 많이 보도되는데 그런 소식이 정신건강에 안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소식만 내는 신문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신문에서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11개의 쉬운 일들을 소개합니다. 다섯 개만 소개해 드립니다.

이멜을 보내던지 전화를 친구에게 걸어서 “Happy Earth Day”라고 말하고 숲 길을 산책한다.
한 바케스의 해바라기 씨를 사서 아이에게 선물로 줘서 씨를 뿌리게 한다.
가능한 한 전기를 켜지 않는다.
길거리에 널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길 가에 여러 가지 꽃씨를 뿌린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자녀들과 함께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정의의 씨앗이 그들 가슴에 심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싹이 피어 날 것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우주 역사의 포물선은 정의 쪽으로 굽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말씀드린 GoodNews Network에 소개된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국 금융계에 Dave Fishwick이란 분이 있습니다. 원래 이 분은 금융인이 아니었습니다. Minibus를 만드는 회사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융계에 어려움이 닥치면서 큰 은행들이 자기 회사 고객들에게 융자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큰 은행들은 재벌들과만 금융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본으로 작은 은행을 만들어 자기 고객들에게 융자를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걸림돌들이 많이 있었지만 끝내 성공합니다.
사실 규정상 ‘은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Bank of Dave’로 해서 bank를 고유명사로 사용하여 문을 연 것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소규모 기업인들이 융자를 받았고 그의 회사도 다시 잘 되기 시작합니다.
그뿐 아니라 큰 은행은 연말 보너스로 이미 큰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들끼리 나눠 갖지만, 이 은행은 모든 이익의 전액을 코뮤니티로 다시 환원합니다.

이처럼 정의로운 일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12, 3세때 친구들에게 불이익을 많이 당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 때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법을 습득했다고 합니다. 결국 가난한 사업가들을 위한 기업인이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 이미 이 세상 역사는 정의 쪽으로 굽어져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어떤 전공을 택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어떤 곡선을 그리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인류 역사는 정의 쪽으로 굽어져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자녀들과 더불어 정의로운 삶을 함께 시작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아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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