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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라

날짜 : 2014.08.3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강하고 담대하라
성경본문 : 여호수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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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가 암투병을 한 후 더 많은 글을 쓰면서 당신의 인생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던 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김수환 추기경이 이해인 수녀가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하여 입원한 바로 옆방에 입원하였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귀찮게 해드리지 않기 위하여 일부러 피해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추기경님이 먼저 만나고 싶다고 해서 수녀가 추기경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수녀를 보고 추기경님이 물으셨다고 합니다.
“수녀도 그럼 항암이라는 걸 하나?”
“항암만 합니까, 방사선도 하는데.”
추기경님은 혼자 뭔가 생각을 하는데 곧 ‘주님을 위해서 고통을 참아라’ 말씀하실듯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하십니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이 한 마디가 수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추기경님은 소천하셨지만 그 후 이 말은 이해인 수녀의 삶에 남아서 수녀님은 지금도 열심히 주어진 삶에서 최고의 인생 작품을 만들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 대단하다.”

우리도 누군가 와서 이런 말을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연한 일을 하는데 “대단하다” 말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추기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종종 이런 말씀을 해주고 계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안 들어서 그렇지. 그러면 하나님은 특별히 언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실까요?
“그래? 대단하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40년의 광야 생활이 저물어 갑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광야 생활에 적응이 되었을 것입니다.광야 생활에서 좋았던 것은 끼니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맛나와 메추라기가 내려왔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의 삶을 뒤로 하고 가나안 땅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민족의 영도자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40년간 안주했던 광야를 떠나라.”
광야를 떠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떠난다는 것은 맛나와 메추라기를 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음을 이스라엘 민족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마 하나님께 많은 것을 묻고 싶었을줄 압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요?” “만나와 메추라기는 더 이상 맛볼수 없나요?”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등등….
이런 저런 궁금한 생각을 갖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것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발바닥으로 밟는 것은 모두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발바닥으로 밟지 않는 곳은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곧 땅을 차지하려면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라는 멧세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어떤 부자 땅 주인이 이 자리에 나타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여러분이 밟는 땅은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일제히 자리를 떠나서 밖으로 나가 땅을 밟기 시작하지 않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밟으려고…. 4절 말씀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할 땅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있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땅문서를 그냥 내주시지 않으십니다. 땅문서는 떠남과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땅문서만으로는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땅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떠남의 시간 가운데서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왜 이런 약속을 하실까요?
이유야 간단합니다. 아무리 떠남이 땅문서를 보장한다고 해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자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나는 순간 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함께하심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떠남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나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대단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이 말씀을 듣고 떠난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래? 대단하다.”

요즘 미국 뉴우스를 잘 보시는 분들은 아실줄 압니다. 현재 해외 및 국내 뉴우스가 늘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해외 뉴우스는 이랔과 시리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분쟁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옵니다. 해외가 불안정할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는 멕시코 국경을 넘어 오는 이민자들, 특히 요즘에는 어린 소년 소녀들의 뉴우스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멕시코 등에서 비자 없이 많은 청장년들이 국경을 넘어 오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뉴우스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얼마나 가난하면 넘어 올까, 우리가 잘 해 줘야지’ 생각이 드십니까? 어느 방송을 보니 미국인들의 과반수가 이렇게 인간애가 넘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미국인들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국경을 건너 오는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고 있을까요? 한 마디로 이들은 American dream을 찾아 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American dream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이들은 절실한 마음을 안고 건너 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건너오고 있습니다. 자칫 하다가는 재산도 잃고 목숨도 잃는다고 합니다.
전 재산을 팔아 국경을 건널 때마다 돈을 건네 주고 또 안내인을 coyote라고 하는데 안내인들에게 수천불씩 주어야 합니다. 때로는 가짜 안내인을 만나기도 합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안내인 없이 무리를 지어 건너 옵니다. 뜨거운 햇볕에서 길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누가 이런 위험한 길을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 올까요? 물론 이들은 배고프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배고프고 직장이 없으면 모두 이처럼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올까요?
저는 이들에 대한 통계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들의 98%가 기독교인들입니다. 정확히는 25%가 개신교인들이고 73%가 천주교인들입니다. 곧 비자 없이 국경을 넘는 자들의 100 %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질문할지 모릅니다.
“중남미는 모두 기독교인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통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통계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요? 이들의 교회 출석 통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7%의 사람들은 매주 여러번 교회에 출석합니다. 한편 40% 사람들이 매주 1회 교회를 출석합니다. 27%와 40%, 곧 70% 가까운 사람들이 매주 1회 이상 교회를 가고 그 중 거의 30% 사람들은 주중 여러차례 교회 출석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짜 교인들입니다. 진짜 교인들이 국경을 넘어서 미국으로 건너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물론 그것은 아니죠. 그들은 직장을 찾아서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국경을 건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신실한 크리스챤들일까요? 이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힘이 아니고는 이 험한 국경을 넘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신앙인들만 이 모험을 감수할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 보기에는 비자 없이 국경을 넘어 오는 범죄자들로 보입니다. 미국법에 의하면 범죄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국법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여정에 함께 하시느냐 입니다. 그러기에 학자들은 종종 국경을 넘는 자들을 순례자로 부릅니다.
이들은 많은 경우 이 순례의 길을 시작해도 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하나님께 싸인을 구하곤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싸인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마리아라는 멕시코 여인이 있습니다. 독실한 신자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어쩔수 없이 미국으로 건너 와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 딸만 데리고 어린 자녀들은 이모에게 맡기고 혼자 험한 길을 건너 온다는 것은 도저히 두려워서 엄두도 못내고 있었습니다. 독실한 신자인 그녀는 몇 달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싸인을 구합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는데 확신이 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싸인이다 믿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 1:9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야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나님의 싸인으로 믿고 험한 순례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딸은 대학을 다니게 되고 본인은 한 달의 $3000 봉급을 받으며 일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면서 나날을 보냅니다.
이렇게 건너 온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서 미국을 위해서 그리고 고국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난주 출장을 떠나면서 비행기에서 국경을 넘어오는 순례자들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현대판 순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들이 떠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 제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감히 저 나름대로 미래를 예측해 보게 되었습니다.
멕시코 국경을 건너 온 이 사람들이 미국을 살리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American dream을 이루기 위해 온 사람들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 오기 전에 많은 기도를 하였고 또 그 험한 아리조나 사막 가운데서 죽음을 맛보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또 정착해서는 조국을 생각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아 기도하면서 조국으로 송금하는 사람들입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사람들이 붙인 스티그마 말고는 정말로 신실한 순례자요 떠나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떠나는 자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떠나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대단하다.”

제가 지난주 휴가이기에 주일에 새로 오신 분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중에 지난주에 오신 새교우 명단을 이멜로 받아 보았습니다. 여러 분의 새 교우님들이 지난주일에 오셨습니다. 이에 어느 교인위원회에서 수고하시는 집사님이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새가족 파일 잘 받았습니다. 학기 시작으로 평소보다 새가족 등록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난 주 등록하신 분들은 멕시코 국경을 넘는 사람들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같은 것이 있습니다. 모두 국경을 넘으신 분들이고 떠나신 분들입니다. 새로운 땅을 향해 온갖 위험과 도전을 무릅쓰고 떠나신 분들이십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위대한 분들이십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분들은 떠남의 위대한 경험을 하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떠남으로 인해 생긴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 때 그랬듯이….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도 한 때 떠나온 사람들이니 우리 모두도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우리가 우리의 위대함을 이어 갈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떠나 온 위대한 분들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계속 위대함의 행렬에 속해 있게 될 것입니다. 곧 떠나온 자나 맞이한 자나 모두 위대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새 학기를 맞이하여 우리 모두 함께 위대해지는 지혜로운 삶을 누리십시다. 떠나온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맞이하십시다. 따뜻한 한 마디 말과 더불어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지혜로운 삶의 시간을 가지십시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오는 교우님들에게 따뜻한 한 마디 말을 전하십시다.
“대단합니다.”
아니 새로오신 분들께뿐 아니라 서로를 향하여도 종종 따뜻한 한 마디 말을 나누십시다. 우리도 모두 떠나온 자들이니 말입니다.
“그래? 대단합니다.”
이러한 고백을 주고 받을 때 우리는 우리의 최후의 떠남의 사건을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언젠가 주님이 계신 하늘 나라로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고백하십시다.
“대단하십니다.”
사실 하늘 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우리 주님도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나라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33년간 정들었던 이 땅의 삶을 떠나셨습니다. 떠남의 주인공이신 주님이 이 시간에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대단하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번 원주민 순례학교를 다녀 왔는데 그 때 저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순례학교 마지막 날 안맹호 선교사님은 저희를 원주민들의 옛 유적지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Montezuma Castle이라는 유적지인데, 서기 1100-1420년도에 원주민들이 5층건물을 벽에 만들어 살던 곳이었습니다.
스크린을 보시면 이 당시 얼마나 놀라운 건축이었는지 상상이 갑니다. 그런데 이 건축이 저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고 더 놀라운 사실을 알수 있었습니다.
Hopi 원주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떠나는 것은 성스러운 행위입니다. 우리는 공동체가 윤리적으로 부패할 때 떠납니다.”
그들은 이처럼 훌륭한 건축물도 놓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것은 성스러운 것인데, 윤리적으로 부패하면 떠나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성스러운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은 요즘식으로 하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떠나는 사람들은 성스러운 사람들입니다.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Hopi원주민들처럼 대단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떠나 온 사람들이니 주님 보시기엔 우리들 모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대신 하여 함께 인사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이러한 인사를 나눌 때마다 우리들 모두에게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주위를 늘 메아리 칠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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