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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자랑할까?

날짜 : 2014.09.14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무엇을 자랑할까?
성경본문 : 야고보서 1:9-11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914.wmv

이스라엘 시골 어느 마을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몸이 너무 야위어 가끔씩 힘이 들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으로 출입하는 것 조차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랍비가 꿈에 나타나 말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자로 재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cm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실망한 나머지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동안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 때 랍비가 찾아와 그의 곁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갖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에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 한 적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야. 자,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의 모습을 보렴.”
그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사람은 예전의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변한 다른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소중한 깨달음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짐’으로 느껴졌던 바위가 어느 순간 건강을 회복시켜 준 ‘도구’로 다가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참 신기한 걸. 그러고 보니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멎었네. 매일 아침 기분이 상쾌했고 잠도 편안하게 잔 것 같은데…”

랍비의 지혜에 모두 탄복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병약했던 사람이 꿈에 나타난 랍비의 권유로 집 앞에 있는 바위를 밀다 보니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위는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건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건강해 진 사람은 이제 전에 하고 싶었던 다른 많은 일들까지 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 때마다 랍비에게 감사했을줄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랍비 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정확히는 야고보에게 주신 지혜이죠. 다시 한번 야고보의 지혜를 봉독해 드립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짧은 말씀 안에 깊은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전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야고보임을 알수 있습니다. 특히 야고보의 물질관이 담겨져 있습니다. 야고보의 이 물질관의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부한자는 그 부로 인해 쇠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가 꽤 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부’도 별개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로 인해 더 빨리 사람이 쇠잔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부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나 없었던 사람이나 부를 원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갖고 있던 사람들은 부로 인해 빨리 쇠잔한 것을 알기에 원망하고 없었던 사람은 늘 부가 자기를 피해 다녔기에 원망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물질은 더 큰 문제를 만듭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부는 사람들을 갈라 놓습니다. 야고보는 정확히 낮은 자와 부한 자로 갈라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낮은 자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한편 늘 세상을 갈라 놓습니다. 특히 물질이 없는 자를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갖다 놓습니다.
그러면 이런 물질을 없애면 어떨까요? 그런데 물질이 없으면 인간사가 돌아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애물단지입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물질관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물질관이 여기까지라면 성경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줄 압니다.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애물단지인 물질에게 사명이 주어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의 물질관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말씀이니 다시 한번 봉독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제부터 조금 전에 소개해 드린 랍비에 지혜를 빌어서 야고보의 지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두 가지 바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낮음’이라는 바위입니다. 또 다른 바위는 ‘부함’이라는 바위입니다. 낮음이라는 표현 안에 낮은 자와 가난한 자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반면 ‘부함’에는 높은 자와 부한 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좋을듯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때로는 낮은 데 처합니다. 때로는 부한데 처하기도 합니다. 이 두 바위가 늘 우리를 좇아 옵니다. 아니 우리 집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왜 이 두 바위를 만나게 하시나요?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게 하기 위함일줄 압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자랑하라고 합니다. 거꾸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왜 자랑하라고 할까요? 이 때 놀라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사실 처음 말씀드린 이야기의 랍비는 바위를 밀라고 하였는데 그것보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을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낮아져 있을 때는 높아질 것을 자랑하고 부할 때는 낮아질 것을 자랑하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될줄 압니다. 어느새 최고의 작품이 되어진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는 야고보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큰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왜 애물단지 물질을 우리 주변에 늘 놓아두시는지…. 가난과 부함이라는 애물단지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최고의 작품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난이 필요할 때는 가난을 주십니다. 부함이 필요할 때는 부를 주십니다. 우리에게 그때 그때마다 원하시는 것은 하나입니다.
‘자랑.’ ‘거꾸로 자랑.’

어떤 분은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부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으니 자랑거리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 분은 부한 자에 속한 것입니다. 자랑거리가 있습니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어떤 분은 또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애들처럼 자랑만 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뉴우스를 보세요. 자랑할 때입니까?”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조국에서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고 지금까지 해결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민들에게 중동지방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이슬람 테러 국가(ISIS)에 대한 대책을 TV를 통해 발표했습니다. 아프리카는 한 때 AIDS가 창궐하더니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고 있는데 Ebola라는 희귀한 virus가 대륙을 휩쓸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한 때 기독교의 요람이었던 유롭은 가장 불신자가 많은 대륙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정말 자랑할 때가 아님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새로운 질문이 또 생깁니다.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려나? 말을 좀 바꾸면, 누구를 통해 이런 엄청난 일들을 해결하시려나?

교우 여러분, 요즘만 이런 엄청난 일들이 산재해 있었을까요? 모든 세대에는 그 나름대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저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었는데 그 당시에도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이 엄청난 일들을 위해서 헌신할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습니까?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자랑, 자랑할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것도 거꾸로 자랑할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죠?
“인생의 가장 쉬운 문제는 돈과 관계된 문제야.”
야고보는 지금 인생의 가장 쉬운 문제를 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통과된 사람들을 하나님은 당신의 동역자로 삼으셔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에 동참시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논산 훈련소를 잘 아실줄 압니다. 군대에 입대하는 모든 청년들은 일단 논산 훈련소에서 일반 훈련을 똑 같이 받습니다. 그 훈련을 통과한 사람들은 각기 주특기 대로 후에 교육을 다시 받습니다.
미국에도 논산 훈련소와 같은 훈련소가 Colombia Georgia에 있다고 작년에 수양회 강사로 오신 이상현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초훈련을 통과한 군인들에게 한 단계 높은 훈련을 시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맡깁니다.
야고보는 지금 신앙의 논산훈련소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논산 훈련소를 잘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한 마디로 자랑할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거꾸로 자랑할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훈련소를 통과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산적한 일들을 하나 하나 지혜롭게 처리해 나가고 계십니다.

오늘 제직 임직 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임직 받으시는 제직 여러분, 온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과제가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더불어 세상을 바꾸어 놓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거꾸로 자랑하시는 제직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물질관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더 귀한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가난할 때 언젠가 우리를 높이실 하나님을 자랑하십시다. 부할 때도 역시 자랑하십시다. 우리들의 부는 하나님에게는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우주를 뒤흔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이 이루워질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말씀을 거둡니다.
아틀란타에 저의 친구 목사님이 계신데 얼마 전까지 은퇴하신 한 미국 목사님께서 목회를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영어권 사역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후에 한국계 젊은 영어권 목회자를 모셨기에 그 목사님은 다른 미국 교회들을 또 섬기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너무도 겸손하셔서 어떻게 이렇게 겸손하실수 있나 친구 목사님은 생각하곤 하셨다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예배에 목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조객들이 오셔서 교회당을 꽉 메웠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이름도 유명한 Jonathan Edwards 목사님의 손자였던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의 손자이지만 한번도 자신의 할아버지에 대해 언급을 안 하셨던 것입니다. 높은 자이지만 낮아짐을 자랑하신 분이십니다.
이 분은 아마 가난할 때도 자랑하시는 분이셨을줄 압니다. 부할 때도 거꾸로 자랑하시는 분이셨을줄 압니다. 거꾸로 자랑할 줄 아셨던 이 분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세계를 아름답게 바꾸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거꾸로 자랑하는 자들이 되십시다. 어느덧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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