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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로 데려 오니

날짜 : 2014.07.2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예수께로 데려 오니
성경본문 : 마가복음 1:29-34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0720.wmv

유명한 만화가 Charles Schulz의 Peanuts라는 만화 씨리즈가 있습니다. 그 중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입니다. 챨리 브라운이 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루시에게 말합니다.
“내 손은 언젠가 위대한 것을 이루고 말거야. 언젠가 놀라운 일을 해낼 손이라구. 위대한 다리를 건설하거나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홈런을 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나의 손은 언젠가 운명의 행로를 바꾸게 할 거야!”
이 때 루시가 그의 손을 바라보면서 한마디 합니다.
“손에 젤리 묻었어.”

이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뭔가 스스로 큰 인물이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주위 사람들이 찬 물을 끼얹습니다.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해서 이 이야기가 가슴에 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만화의 저자 Charles Schultz 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어릴 때 천재성이 발견이 되었는지 초등학교를 2.5학년 월반합니다. 나이 많은 형들 사이에서 늘 찬 밥이 됩니다. 그의 그림 실력도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졸업할 때 졸업 앨범(yearbook)에 슐츠의 그림이 실리지 않습니다. 반면 그 후 60년만에 만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snoopy 동상이 학교에 세워집니다.
그가 얼마나 유명해졌냐 하면, 3억5천5백만 사람들이 그의 만화를 보았고 2000개 이상의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마 끝내 슐츠가 이렇게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는 손에 젤리 묻었다는 조롱을 받긴 했어도 결코 굽히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챨리 브라운 아니 챨스 슐츠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외침을 들어 볼까요?
“내 손은 언젠가 위대한 것을 이루고 말거야. 언젠가 놀라운 일을 해낼 손이라구. 위대한 다리를 건설하거나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홈런을 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나의 손은 언젠가 운명의 행로를 바꾸게 할 거야!”
특히 두 대목이 눈에 들어 옵니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오늘 도미니카 공화국 단기 선교 파송예배로 드립니다. 이 단기 선교단은 의료 교육 선교단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단기 선교단이 오래 전에 슐츠가 한 이런 고백을 가슴에 안고 선교지로 가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리 선교단원들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안고 선교지로 향할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는 주님께서 막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주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 가셨습니다. 얼마 전에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제자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의 가정을 심방하신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베드로의 가정부터 시작합니다.
들어가 보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손에 있는 권능을 잘 아셨습니다. 아마 주위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주님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이에 주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그 후 장모가 예수님과 그 일행을 섬기게 됩니다.
자 생각해 보십시다. 이미 베드로는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베드로는 급한 김에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부인에게는 아직 이야기는 안 했을 겁니다. 했더라도 심적 지원은 아직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심방 오신 후 장모님을 고쳐 주시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장모님은 물론이거니와 부인도 적극적으로 남편을 support할 뿐 아니라 주님의 사역에 올인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결국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가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병고침의 파워가 아닐까요?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꼭 필요했던 것은 병고침의 능력이었습니다.
주님의 병고침의 능력은 바로 주님이 주님임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병고침을 통해서 당신이 메시야임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아울러 병고침을 통해서 말씀 전파의 대로를 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교회가 매 해 의료선교단을 파송하는 것은 너무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의료선교단을 원하는 이유가 병고침의 놀라운 능력 때문입니다. 병고침의 능력은 복음 전파의 길을 넓게 열어 놓습니다. 얼마나 병고침의 능력이 파워풀한지 32, 33절 말씀을 보면,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사람들이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집 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모이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병고침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아직도 저에게는 안타까운 기억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처음에는 페루 단기 선교단을 3년 파송했었습니다. 3년 째 저도 함께 참여했었습니다.
저희가 두 교회를 의료 교육 선교를 하였는데 두 번째 교회에서는 그 마을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들어 도중에 의료를 그만두고 모두 돌려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가끔 그 생각이 나면 가슴이 아파 옵니다.
사실 그 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스스로 위로하려고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우리 선교단을 찾아 오실줄 압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예수님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기선교단을 보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쉽게 알수 있습니다. 루시와 정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교단원들에게 루시와 반대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선교단원들의 손은 예수님의 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껏 말할수 있습니다.
“당신의 손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물론 종종 루시와 같은 사람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예수님에게도 늘 루시와 같은 존재가 따라 다녔습니다. 3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귀신들이 늘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귀신들이 어떤 식으로 괴롭혔는지 본문을 통해서 자세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 자였겠습니까? 그럴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적마다 귀신은 옆에서 놀렸을 것입니다.
“손에 젤리 묻었어.”
사실 주님은 주님이시니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의 음성을 무찌를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니 서로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선교단원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의 손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방금 전에 선교단원들을 찾아 오는 자들은 바로 예수님을 찾아 오는 분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선교단원들을 찾아 오는 분들은 단지 예수님을 찾아 오는 분들일뿐 아니라 우리를 보스톤 한인 교회 교인들을 찾아 오는 분들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
올해도 많은 분들이 우리 선교단을 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다. 그들은 바로 주님을 찾아 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우리를 찾아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교단원들만 말씀과 기도와 회개로 삶을 정결케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과 기도와 회개로 삶을 정결케 해야만 합니다. 더욱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전부를 찾아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우리들의 삶을 정결케 하는 자들의 고백을 통해서 선교단원들은 큰 위로와 힘을 얻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선교단원들에게 마음의 편지를 보내십시다.
“당신의 손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그런데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느새 이 말은 선교단원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로 들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이루어진 집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남들에게 선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선한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챨리 브라운의 생각은 선교단원만 가져야 하는 생각이 아닙니다. 선교단을 보내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가져야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의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내 손은 언젠가 위대한 것을 이루고 말거야. 언젠가 놀라운 일을 해낼 손이라구. 위대한 다리를 건설하거나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홈런을 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나의 손은 언젠가 운명의 행로를 바꾸게 할 거야!”

오늘 도미니카 공화국 단기선교단 파송예배로 드리지만 사실 내일부터는 아리조나 원주민 비젼츄립이 시작됩니다. 비젼츄립은 내일부터 시작하여 금요일에 마치고 그 다음 날인 토요일에 단기 선교단이 떠나서 그 다음주 토요일에 돌아 옵니다. 곧 내일부터 다음주 토요일까지 실질적으로 두 주간 저희 교회는 선교팀을 보내는 것입니다. 곧 두 주간 많은 분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집을 떠나 있습니다.
우리 선교단원들은 여러분과 함께 선교지로 떠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뿐 아니라 여러분의 삶의 결단과 자세를 등에 업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선교는 바로 여러분의 선교입니다. 여러분들이 위대한 생각을 한다면 선교지에서 위대한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을 울리기를 원한다면 영혼을 울리는 일들이 생겨 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웃의 운명의 행로를 바꿀 것을 기도드린다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할 인물을 키울 것을 바라신다면 그러한 인물을 우리 선교단은 만나고 돌아 올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찾아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함께 외치십시다.
“우리의 손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거나, 영혼을 울리는 소설을 쓰게 될 거야!”

말씀을 거둡니다.
요한 웨슬레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다.”
저희 교우님들에게 이렇게까지 바라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최소한 보스톤을 제외한 몇개의 교구가 있습니다. 물론 올해도 저희가 단기선교단을 파송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여러지역도 있습니다만 단기 선교단을 보내는 곳만 오늘 생각한다면, 멀리는 프랑스와 도미니카 공화국 미국내에서는 아리조나.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삶이 바로 이 교구들에 놀라운 영향을 미칩니다. 함께 위대한 일에 동참하십시다. 이들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러 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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