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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기쁨

날짜 : 2015.04.26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안식의 기쁨
성경본문 :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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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rueggemann이라는 유명한 구약학자가 있습니다. 최근에 안식일에 대한 책을 펴 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Brueggemann박사의 아버님은 미주리주 어느 시골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교회에 ‘Mr. G.’라는 분이 다니셨는데 그 마을에서 grocery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매 주일 예배를 꼬박꼬박 출석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아니 앞 줄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곤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마치기 전 Mr. G는 아내와 함께 가운데 복도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곤 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있는 루터란 교회는 부르그만 박사님의 아버님이 시무하는 장로교회 보다 더 일찍 끝났습니다. 본 교회 예배를 다 마치고 가게문을 열면 루터란 교회 교우들에게 물건을 팔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도중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예배당 가운데 복도를 두 부부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고 합니다.
부르그만 박사는 어린 나이에도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종종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예배 시간에 이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시간을 재곤 했던 그들의 모습,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생각조차 그들은 왜 하지 못할까’

왜 Mr. G부부는 이럴수 밖에 없었을까요? 저는 그들은 참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참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해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의아한 생각이 드시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십계명이고 그 중 제 4계명 곧 안식일에 대한 말씀인데 어떻게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만날수 있을까 의문이 가실줄 압니다. 사실 주님도 스스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심을 통해 제4계명을 확 무시하신 것을 잘 아실 줄 압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안식일의 계명을 주신 이유는 참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안식일의 계명만을 율법적으로 지켰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참 안식일의 축복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 봄으로 참 하나님의 모습을 새롭게 만나게 되시길 바랍니다.

잘 아시는대로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첫 세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입니다.
스크린을 보시면 십계명을 요약해 놓은 도표가 나옵니다. 도표를 만든 분은 제4계명까지를 하나님과 관련된 계명으로 구분하고 있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과 관련된 계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 세 계명은 당연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계명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컷지 말라.”
그리고 마지막 여섯 계명은 대인관계의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그러면 제 4계명은…?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릴까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저는 제4계명은 가운데에 위치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저는 제 4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계명도 인간을 향한 계명도 아니고 시간과의 관계의 계명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안식일이라는 시간을 기억하고 그 시간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4계명은 하나님을 향한 세 계명과 이웃을 향한 여섯 계명을 묶는 접착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스크린을 보시면 이를 더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오른쪽은 신약시대의 법입니다.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십계명을 요약한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런데 제 4계명은 온데 간데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가운데 접착제가 된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접착제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그 날 아무일도 하지 않을 때 사랑의 접착제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희 목회자들에게는 주일에 제일 많은 일을 하는 날이지만 평신도분들은 주일에 세상 일을 쉬는 날입니다. 편이상 주일을 안식일을 대체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인과 이 말씀을 받는데 많은 차이가 있을줄 압니다.
십계명을 제일 먼저 접한 이스라엘인들은 방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풀려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루도 쉬지 못하고 종살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종살이는 더욱 고통이 더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동족을 해방시켜 달라고 조르자 바로는 도리어 그동안 제공해 주던 짚을 제공하지 않겠다면서 전처럼 똑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니 그 후는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겠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인들은 쉼이 없이 산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주일에 하루 쉬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첫번째로 애굽에서의 해방이 놀라운 선물이었고, 두번째로는 안식일이 그에 못지 않은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십계명으로 인해서 일주일에 하루를 일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이유가 11절 말씀에 나옵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일곱째 날 곧 안식일에 쉬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는 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쉼을 창조하셨으니 그 쉼을 누려야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도 일을 하셨는데 곧 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복을 어떻게 누릴까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24시간을 특별히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곧 그 날을 거룩하게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생각하면서 쉼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저희 가정은 30년전 워싱톤DC에서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와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주일에는 모든 백화점의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물론 간혹 문을 여는 가게가 있었는데 가게를 열면 매번 $1000의 벌금을 내었다고 합니다. 30년전 $1000이니 지금은 그 보다 훨씬 큰 액수가 되겠죠…. 그런데 그것을 감수하고 여는 가게가 가끔 있었습니다. 아주 적은 숫자의 가게만 그것을 감수했기에 주일에 Shopping Mall은 한산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그 때분들이 신앙이 좋아서 그랬던지 주일 저녁 예배가 있었고 꾀 많은 교우들이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한참 젊은 때였고 교회 청년들을 책임 맡은 집사였는데, 주일 예배가 마치면 늘 농구를 하면서 한 나절을 보냈고 저녁에는 저녁예배에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이처럼 30년전만해도 주일지키는 것이 쉬었습니다. 물론 주일을 구약의 안식일과 같게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되었나요? 주일에 상점들이 제일 돈을 많이 법니다. 시간을 더 이상 거룩하게 생각하는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결과 적으로 시간은 물질의 종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안식일의 거룩함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도 시간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물질의 종이 되었는데 안식일도 함께 묻혀진 것입니다.
Mr. G가 예배 시간에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물질을 거룩하게 구별하였습니다. 거룩한 물질을 섬기기 위해서 뚜벅 뚜벅 걸어나간 것입니다. 물질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면서 안식일도 그 우상을 섬기는 도구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을 거룩하게 여기는 자들은 결국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수가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Time is money’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아시고 하나님을 향한 계명을 말씀하신 후 곧 바로 안식일의 계명을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안식일의 계명의 요약은 한 마디로,
‘Time is Holy’가 아니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물질과 구별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6일간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한 시간에 따라서 보수를 받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쩔수 없이 우리들의 뇌리에 박히는 생각이 있습니다.
‘Time is money.’
이 생각에 젖어서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물질을 섬기게 되고 보이지 않게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시간과 물질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새로운 축제에 참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Time is Holy.’

사실 이 면에 대해서는 저도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제가 20년째 본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목회 초창기에 매주 설교 준비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시간도 많이 들고 힘들었습니다. 주로 목요일에 설교 초안을 작성하곤 했는데 아침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설교초안이 작성되면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설교 초안이 일찍 끝나면 집사람과 외식을 한다든지 좋은 엔터테인먼트 시간을 갖곤 하였습니다. 성취를 스스로 축하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5년 10년이 지나게 되니 처음처럼 어쩔줄 모르게 좋아하는 마음은 차차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갈수록 덤덤해 집니다. 왜냐하면 다음 주에 또 설교 준비를 해야 하는 제 모습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점점 교회 일이 많아지고 또 화요일 낮에 이 지역 목회자들이 함께 공부하는 모임도 생기면서 주중에 설교준비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에 별 일이 없으면 집에서, 요즘 이멜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교회 일도 하게 되고 성경공부 준비도 미리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중에 쉼의 시간을 마련하면 되지”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10월 정기검진 결과에서 혈당이 높아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매일 매일이 주님의 날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아무 때나 시간이 될 때 쉬면 되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안식일의 계명은 효력이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몸은 시계입니다. 정확히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면 몸이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월요일을 철저히 저의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로 꼭 해야 할 일 말고는 이멜도 안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쉬어도 그냥 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월요일이라는 시간은 저에게는 안식일 곧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 오는 축제의 날이라는 생각을 갖고 쉽니다. 인간인지라 월요일 저녁이 되면 다음 날부터 읽어야 할 책 해야할 일들이 자꾸 생각이 나곤 합니다. 그 때마다 저는 유대교 학자인 Abraham Heshel의 말을 생각합니다.
“안식일은 시간 안의 궁전이다.” 저에게는 월요일은 시간 안에 궁전입니다. 시계가 밤 10시를 가르켜도 저는 생각합니다.
“아직 나는 시간 안에 궁전에 있지 즐거워 하자.”
월요일은 저의 삶의 절정입니다. 여러분은…? 일 주일에 하루를 절정으로 여길 때 나머지 6일도 절정이 되어가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기독교인들은 요즘도 주일을 안식일로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안식일을 맞이합니다. 안식일 전야에 자주 사용되는 가정예배 기도문입니다.

“자, 기쁨과 평안으로 안식일을 맞이하자!
신부처럼 맑고 기쁜 얼굴로 안식일이 오는도다.
우리의 마음에 축복을 주는도다.
일상의 생각과 근심이 그치는도다.
안식일의 밝은 촛불은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우리 가정에 거하심을 말하는도다.
그 빛 가운데 우리의 모든 축복이 풍성해지며,
우리의 모든 슬픔과 고통이 사라지는도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을 잘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수 있습니다. 이웃을 온전히 사랑할수 있습니다. 제4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한편 이 제4계명은 21세기에 사는 현대인들의 십자가가 아닐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한 무리의 포장마차가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오레곤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일행은 모두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주일 곧 안식일에는 이동을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에 일부 사람들은 폭설이 내리기 전에 목적지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몇몇 사람들이 안식일에도 이동을 멈추지 말고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마침내 일행을 둘로 나누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원하는 사람들과 안식일에도 계속 이동하자는 사람들로 나누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첫 주에는 두 그룹이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되자 한 그룹은 여행을 계속했고 다른 그룹은 여행을 중단하고 쉬었습니다.
어느 그룹이 오레곤에 먼저 도착했겠습니까? 안식일을 지킨 사람들이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사람과 말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충분히 쉬었기에 나머지 엿새 동안 훨씬 더 활기차고 효과적으로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단지 주일에 쉬기만 했을까요? 축제를 하였을 것입니다. 지난6일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새 주간을 창조하실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들은 매주 월요일이 되면 1주일만 생각하고 걷기 시작합니다. 주일 곧 안식의 날을 향하여 걷습니다. 그날은 1주일에 한번씩 찾아 오는 축제의 날인 것입니다.
반면 다른 그룹은 어떠했겠습니까? 오레곤에 도착할 먼 훗날을 생각하면서 힘들게 걸을 수 밖에 없엇습니다. 당연히 늦게 도착할 수밖에….
교우 여러분,
축제의 날인 주일 곧 안식일을 생각하면서 일 주일도 부활의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십시다. 우리는 어느덧 창조주 하나님과 더불어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 주일에 하루는 쉼의 축제를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십시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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