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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자가 되리라

날짜 : 2015.01.04
예배명 : 신년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내 제자가 되리라
성경본문 : 요 13:31-35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50104.wmv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에 대해서 잘 아실줄 압니다. 사실 운명 교향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 전에는 세계 2차대전 후에는 ‘승리’ 교향곡으로 먼저 불리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 ‘운명’ 교향곡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하는데 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베토벤은 남달리 고통스런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만성 성병 환자에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폐결핵을 앓고 있는 극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17세에 어머니를 잃고 22세에 아버지를 잃습니다. 28세부터는 음악도에게는 치명적인 청각장애를 앓기 시작합니다. 32세에 그는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인생의 고뇌에 빠져 집 근처 오솔길을 걷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 인생의 문을 노크하는 운명의 문소리를 듣습니다. 그 순간 그는 이런 거친 인생의 운명을 차라리 사랑하고 노래하며 살아갈 것을 결심합니다. “다다다 다~’. 이 짧은 음 세 개와 긴 음 하나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교향곡 제5번 ‘운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새 소리로 인하여 운명 교향곡이 창작되었고 무엇보다도 베토벤의 운명이 바뀌어진 것입니다.

오늘 신년 예배로 드립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저에게는 두 가지 바램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하나입니다. 하나는 오늘의 신년 예배가 올해 우리들의 삶에 더 없이 소중한 예배가 되었으면 합니다. 곧 오늘의 멧세지가 올해를 위한 하나의 새소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하나는 올해 일년간의 여러분의 신앙 생활이 여러분의 일생에 더 없이 소중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곧 올 해 시시때때로 여기저기서 여러분의 삶에 더 없이 소중한 새 소리들을 듣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새 소리를 들을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들어야 할 새 소리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가 나간 후에”로 오늘 본문 말씀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바로 전 귀절을 봐야 합니다. 30절 말씀을 보면,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아셨고 이에 가롯 유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마음에 있는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롯 유다가 떡을 갖고 방을 떠납니다. 유다가 방을 나간 후 주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허전했겠습니까? 그 마음을 안고 주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31절 말씀입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참 이상합니다. 지금 유다가 당신을 배반하고 방을 떠났는데 바로 그 순간이 영광을 받은 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의 배신이 당신을 영광스러운 운명에 초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만 영광을 받게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도 함께 받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같은 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32절 말씀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은 또 다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실 것을 확신하고 계십니다. 유다의 배신을 통해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게 되어 있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멧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새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유다의 배신이 도리어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이어서 하나님도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유다의 배신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깨뜨릴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배신이 더욱 예수님과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드높이게 된 것입니다. 온 우주에 알리게 된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수록 예수님과 하나님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여 있음이 온 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롯 유다가 방을 떠나자 마자 선언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교우 여러분,
올해 한번도 배신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배신을 당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유다의 배신이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온 우주에 밝히 드러나게 한 것처럼 우리가 받는 배신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온 우주에 밝히 드러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시카고의 어느 목사님이 계십니다. 어느날 보니 건강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풍을 맞으셨습니다. 알고 보니 아끼던 후배 목사에게 배신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분을 생각할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 때 도리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고 계시다는 새 소리를 들으셨다면 어떠했을까….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닐줄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올해 우리가 배신을 당할 때 아니 삶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 되뇌이어야 할 새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배신당할 것을 대비하라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물론 배신당할 때 도움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배신을 당하건 안 당하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길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본질을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로 표현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두 분의 사랑의 관계로 보여주는 사랑의 본질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서로가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서로가 속해 있음을 통해서 서로의 영광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사랑의 본질은 서로가 속해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서로가 서로의 영광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본질이 유다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들어난게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이것이 전개될 것을 원하시나요? 33절 말씀입니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곧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랑의 본질을 온 세상에 전할 책임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까지 말씀하십니다. 34, 35절 말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실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학자들 사이에는 많은 토론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구약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오는 새 계명의 의미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염두에 둘 때만 쉽게 이해가 된다고 봅니다. 곧 서로가 속해 있는 관계 안에서의 사랑, 서로의 영광을 위한 관계 안에서의 사랑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적 사랑을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보여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해 저희 교회 표어가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말씀 바로 다음 장인 14장에 나옵니다. 주님은 가롯 유다에게 배신을 당할 것을 아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일들보다 더 큰 일들을 제자들이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먼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그 후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말씀하셨겠습니까?
서로 사랑할 때 그보다 큰 일도 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올해 표어를 “내 제자인줄 알리라”로 정했습니다. 원래는 35절을 전부 표어로 만들어야 하는데 너무 길어서 짧게 줄인 것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서로 속해 있을 때 우리는 그보다 큰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 안에서 그 보다 큰 일을 하실 주님을 의지하면서 서로 사랑하십시다.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다.

지난해 감사절 주간에 청년들을 위한 집회인 리뉴가 열렸었습니다. 저는 목회자 모임에만 참석하였었는데 리뉴를 주관하는 어느 목사님이 리뉴에서 열린 한 패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패널 강사들에게 같은 질문이 주어지고 한 사람씩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는 순서였다고 합니다. 어느 청년이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교회는 다녀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다녀야 한다고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앞에 패널리스트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교회에 왜 다녀야 하는지 자기의 의견을 말씀들 하셨습니다. 어느 분 차례가 돌아 왔습니다.
“교회는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속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 한 마디 말을 통해서 이 분은 정말로 교회의 본질을 잘 이해할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속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이야기를 듣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이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저희 교회 출신인 것을 아시기에 저에게 전해 주신 것입니다.
1995년에서 2003년까지 8년간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던 서명구 집사님입니다. 서 집사님은 저희 교회 안수집사님이셨는데 청년회와 부청을 비롯 성가대에서 많은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분입니다.
Boston College에서 학위를 마치고 지금은 매릴랜드 주립대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는 Business as Mission이라는 개념으로 ‘사업은 곧 하나님의 선교이다’라는 주제를 학문적으로 펼쳐가고 계십니다.
서 집사님의 삶의 철학이자 신앙생활의 본질은 바로 이 표현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회는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속해야 하는 곳입니다.

제가 오늘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두 가지 바램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세번째 바램이 있다면, 모든 교우님들이 교회에 속하는 축복을 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속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서로가 도와가면서 이 놀라운 축복을 함께 누리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에 속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교회에 속할 때 우리들의 운명을 바꾸는 새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요?

새해를 맞이해서 어느 친구가 저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제목은 ‘따뜻한 인연’입니다.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주는 인연이고,
그 다음부터는 ‘인간’이 만들어 가는 인연입니다.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인생은 아름답지요.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고….”

새해를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준 사람들과 좋은 관계의 인연을 가지라는 멧세지로 받았습니다.
올해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남 후에는 관계로 이어져 가야 합니다. 그 때 따뜻한 인연이 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 서로 속해 있을 때 따뜻한 인연의 주인공들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의 영광을 밝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성탄절기에 저희 집 문앞을 장식하는 것은 크리스마스 츄리가 아니라 빨간 자기 집 위에 누워 있는 snoopy입니다. 몇 년째 성탄절기가 되면 빨간 집 위에 누워 있는 하얀 강아지 snoopy가 등장합니다. 이제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하얀 snoopy를 밝히는 전기불이 들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전깃불을 또 달아서 원래 불보다는 못하지만 대신 밝혀줍니다.
그런데 올 겨울은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 않았습니까? 비만 오면 원래 전깃불이 켜집니다. 비만 오면 snoopy가 자기의 영광스런 모습을 십분 발휘합니다. 저는 비를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 비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Snoopy를 밝혀주니 말입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비가 snoopy를 사랑하네.”
사랑이란 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서로에게 주어진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비가 되어 snoopy를 밝히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신 분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서로의 영광을 밝히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서로 서로 속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의 영광을 밝히는 자들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진정 그보다 큰 일들을 더 많이 우리 가운데 하시는 주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일년 내내 아름다운 새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새 해 더 멋지게 사랑하십시다. 주님의 사랑을 본받으십시다.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따뜻한 인연의 사람으로 잘 알려진 이해인 수녀의 ‘작은 새가 되고 싶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그가 왜 따뜻한 인연의 사람이 될수 있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잠시 네 가슴에 내려 앉아 하늘 냄새를 파닥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 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는 고운 새가 되고 싶다. 모든 이를 다 불러 모을 넓은 집은 내게 없어도 문득 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시 짓는 나의 집은, 부서져도 행복할 것 같은 자유의 빈 집이다.”

친구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집은 부서져도 좋은 집이라고 외치는 수녀의 사랑의 모습은 정녕 주님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친구를 위하여 새 소리를 들려주는 자들이 아닐까요?
2015년도 서로를 위한 새 소리가 되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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