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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여 감사할지어다

날짜 : 2014.11.23
예배명 : 추수감사주일/창립61주년 기념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의인이여 감사할지어다
성경본문 : 시편 97:1-12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1123.wmv

구두쇠로 소문난 농부의 집에 한 가난한 사람이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후 주인 농부가 품삯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품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 농부에게 품삯을 요구했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주겠네.”
그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 내일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는 농부를 찾아가 다시 품삯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일 준다고 했을 때 자네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는가? 지금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일세. 내일 다시 오게나.”

잠시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실화는 아니죠. 말도 안되는 우화 같지만 깊은 멧세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라는 멧세지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우화가 생겨났겠습니까? 내일로 미루기를 좋아하는 습관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줄 압니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것은 미루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는데 이멜이나 편지를 쓴 후 저는 금방 보내지 않습니다. 전에 한번 금방 보낸적이 있다가 상대방의 오해를 푸느라고 오랜 시간이 걸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멜일 경우 언제나 임시보관함에 넣어 놓고 하루 이틀 지나서 다시 읽고 보냅니다. 많은 경우 임시보관함에 잠겨 있게 되는 것을 경험해 봅니다.
그렇지만 전혀 미룰수 없는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미루는 순간 영영 사라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무엇일까요?
감사.

오늘 추수감사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사실 감사는 미룰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루는 순간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도 조금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절에 감사를 몰아서 1년에 한 번 크게 드릴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분들은 안 계실줄 압니다만….
요즘 신조어가 많은데 저도 신조어를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조금 우습게 들리겠지만 몰아서 감사를 드리니, ‘몰감’. 일년치를 몰아서 드리니 몰감이 감사 중에는 가장 큰 감사가 될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왕 신조어를 만들었으니 하나 더 만들어 보았습니다. 매일 매순간 드리는 감사는…? ‘매감.’ 별로 운치는 없습니다만…. 자 ‘매감’과 ‘몰감’ 어느 감사가 더 크게 하나님께 다다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97편의 저자는 매감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 제일 마지막에 이런 표현을 할수 없습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매감을 매일 매순간 드리는 자이기에 이런 표현으로 시를 마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매일 매순간 감사를 드리기에 그가 받은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이런 위대한 시를 쓸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은 하늘과 땅을 포함한 전 우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을 보고 있는듯 합니다. 먼저 누구 보다도 자연과 가깝게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오늘 시편을 세 문단으로 나눌수 있는데, 1절에서 6절 말씀에서 시인은 자연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히는 자연을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웅장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땅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사실 이 말씀을 상고하면서 저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의 풍성함을 더 느끼곤 하는데 그래서 보스톤의 사시사철의 소중함을 전보다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나무를 오고가는 새를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이 시인과 같은 고백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시인이 보스톤에 살았다면 그는 매일 정신을 잃고 나무를 버티고 있는 땅을 향하여 외쳤을 것입니다.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그런데 시인은 땅에게만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
하늘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아울러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제가 두 주 전 희망의 싸인이라는 제목으로 설교 말씀을 드릴 때, 온 세상은 희망 그 자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인도 비슷한 맥락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의’ 그 자체입니다. 이를 하늘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어둠의 구름이 짖게 덮였어도 맑은 하늘은 변함 없이 찾아 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래서 늘 그는 하늘에 매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이러한 것을 볼수 있을까요? 감사하는 자들에게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까요? 매감의 주인공들이 누리는 특권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감사는 자연의 세계를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문단인 7-9절 말씀을 통하여 시인은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하나님이 최고의 신 곧 유일신임을 높이고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온 땅 위에 지존하시고 모든 신들보다 위에 계시니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드높으심을 누구 보다더 강하게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 보다도 하나님의 높으심을 느끼며 살았던 사람으로 Oswald Chambers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유명한 책이 ‘My utmost for His Highest’ 한국어로는 ‘주님은 나의 최고봉’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만, 정확히는 ‘하나님의 드높으심에 나의 최고의 것을 바칩니다’일줄 압니다.
그 책에서 재미있는 비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파도가 수영 초보자들에게는 두려움을 일으키지만, 파도타기 선수들에게는 가장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드높으심을 체험하는 자들에게는 이 땅의 어떤 파도도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파도를 타면 탈수록 더욱 하나님의 드높으심을 체험하게 될줄로 압니다. 또한 하나님의 드높으심을 체험하면 할수록 세상의 파도타기는 더욱 재미있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하나님을 높이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이처럼 하나님을 드높이게 될까요? 파도로 인해서도 하나님께 매일 매순간 감사를 드리는 자들이 아닐까요? 곧 매감의 주인공들만이 하나님을 드높이게 됩니다.

한편 매감의 주인공인 시인은 마지막 10, 11절에서는 사람과 대화를 나눕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시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늘 보호받는 체험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체험은 특별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하나님께서 뿌리는 빛을 체험하였고 또 기쁨을 체험하였습니다. 시인은 감사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놀라운 삶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감히 이웃을 향하여 말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교우 여러분 시인의 이런 삶 살고 싶지 않습니까? 자연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이웃과 대화를 하는 삶.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요? 12절 말씀입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시인보다 더 귀한 감사를 드릴수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이름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구주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까지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 주신 주님을 생각할 때 어찌 감사가 절로 나오지 않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주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해서 다 매감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감사의 행위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진정 그리스도의 이름에 감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연과 이웃과 하나님과 놀라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감사의 삶을 살지 못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에 겨운 나머지 병원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박용철 박사님이 ‘감정은 습관이다’라는 좋은 책을 지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합니다.
환자 중에 한 달에 한번 오는 분, 1주일에 한번 오는 분, 2, 3일에 한번 오는 분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주 오시는 분일수록 아주 힘들게 살고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는 모든 환자에게 병원에 올 때마다 첫 번째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한 달에 한 번 오는 분은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울한 분이라면, “그냥 우울했다, 좋은 일이 별로 없었다”라고만 말한다고 합니다. 반면 일주일이나 2~3일에 한번 씩 오는 분들은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좋은 일이 별로 없다고 하다가도 천천히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해 낸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분이 이야기할 거리가 훨씬 많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주 오는 분일수록 작은 즐거움을 찾아보라고 했을 때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 박사님은 병원에 오지 않는 날도 하루가 끝날 때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 좋았던 일과 감사할 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갖도록 교육한다고 합니다. 사실 박 박사님은 하루 세번 정확히는 아침 점심 저녁을 들 때 꼭 감사할 일을 생각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미국에서 연구한 실험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그룹에서는 조사자가 하루가 끝날 무렵 그날의 기분이 어땠는지 한 차례 물어보았습니다. 또 다른 그룹에게는 수시로 전화해서 그때 그때 기분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이렇게 며칠 지난 뒤, 두 그룹 사람들에게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행복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두 그룹 간에 생활의 차이나 발생한 일의 차이가 없음에도, 자주 자기 기분을 돌아보고 이야기한 그룹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곧 3~4 시간 마다 자신의 삶을 살피면서 감사할 때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보다도 1시간 마다 자신의 삶을 살피면서 감사할 때 더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1시간 보다 더 자주 자신의 삶을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놀라운 삶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몰감이 아니라 매감 곧 매일 매 순간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수요여성공부를 하면서 제가 먼저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날은 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생각되었는데 아주 은혜로운 성경공부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되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합니다.
잘 되었다고 생각이 된 날은 마음에서 감사가 절로 나옵니다. 기분 좋게 집으로 갑니다. 언젠가 잘 안 되었다고 생각된 날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박 박사님의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곧 바로 그 날에 있었던 성경공부 시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이런 말씀을 하셨고 누가 이런 간증을 하셨고….”
뒤늦게 아주 은혜로운 성경공부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서야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은근히 다음 공부시간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매감의 소중함을 느껴 보았습니다. 성경공부나 예배시간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하루에도 몇 차례 삶을 뒤돌아 보면서 감사하십시다. 온 세상이 달라 보일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시인의 고백이 바로 매감의 삶의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말씀을 거둡니다.
로버트 기요사키라는 분이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내일’이라는 단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불행하고 실패한다. 오늘은 승자의 단어이고, 내일은 패자의 단어이다. 당신의 일생을 바꾸는 말은 ‘오늘’이다.”

물론 내일이라는 단어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삶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감사는 오늘의 사건입니다. 아니 지금의 사건입니다. 지금 감사함으로 최고의 삶을 누리십시다.
우리에게 최고의 삶을 허락하시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박혔던 땅위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매 순간 감사하십시다.
매순간 매일 감사함을 통하여 자연세계와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의 드높으심을 체험가고 하나님의 빛을 맛보십시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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