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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즐거움에…

날짜 : 2014.12.28
예배명 : 송년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주인의 즐거움에…
성경본문 : 마 25:14-3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1228.wmv

오늘 저는 강대상에 찬송가를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찬송가 사이에 끼여 있는 노란 종이를 보여드리려고 가져 왔습니다. 주일예배시 저의 찬송가에는 세 장의 노란 종이가 끼여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노란 post-it입니다. 왜 세 장이겠습니까? 주일 예배시 세번 찬송을 부릅니다. 물론 1장 송영까지 하면 네번이지만…. 예배시 부를 찬송 장수에 노란 포스트잇을 붙여 놓습니다.
다음 주일이 되면 새 포스트잇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늘 사용했던 포스트잇으로 다음 주일에 부를 찬송가 장수에 붙여 놓습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아주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공식적으로 포스트잇을 만든 사람은 두 사람으로 되어 있습니다. Spencer Silver와 Art Fry라는 3M 회사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Spencer Silver가 더 큰 공헌을 했다고 봅니다.
Silver박사가 1968년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전에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가 엉뚱한 접착제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post-it의 시작입니다. 잘 못 만들어진 접착제가 상품성이 있는가 타진하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번번히 회사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실패한 물품을 만든지 6년후입니다. 어느날 Silver박사의 세미나에 동료인 Fry씨가 참석합니다. 이 분은 박사가 아닌 평범한 연구원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어느 교회 찬양대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찬양 연습을 하는데 앞뒤로 장수를 옮기는데 불편을 느낍니다. 순간 Silver박사의 접착제가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종이 한 쪽에 실패한 접착제를 붙여 놓으면 언제나 필요할 때 붙이고 띄고 할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곧바로 Silver박사의 접착제를 사용하여서 실험을 해 봅니다. 너무나 딱 맞는 용도의 접착제임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포스트잇의 시작입니다. 이제는 전세계 100개 이상의 나라에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화학박사인 Silver박사와 찬양대원인 Fry씨가 결국 포스트잇의 공동발명가가 된 셈입니다. 이 두 분의 덕에 의해서 저는 주일예배마다 편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버 박사는 좀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밤새면서 연구하여 발명한 반면, Fry박사는 찬양연습하다가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어서 아이디어를 낸 것 뿐인데 결과적으로는 공동 작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포스트잇은 우리에게 많은 당혹감을 주지만 한편 희망도 주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요즘도 열심히 연구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당혹감을 줄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찬양대원들에게는….

오늘의 말씀인 달란트 비유도 우리에게 많은 당혹감을 주지만 아울러 놀라운 희망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송년예배를 드리면서 1년간 지니고 있던 당혹감을 새삼 확인하시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달란트 비유가 주는 첫번째 당혹감은 왜 하나님께서는 세 사람에게 똑 같이 주시지 다르게 주셨는지 마음을 늘 불편하게 합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이에 대한 당혹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큰 당혹감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열심히 일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 다 똑 같이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릅니다. 자본이 많은 사람이 더 쉽게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가 아닙니까?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당혹케 하는 것은…, 마지막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의 것은 어디로 가죠? 28, 29절 말씀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아니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똑 같이 열심히 일해서 두 배가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이 수고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4달란트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 달란트가 누구에게 가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인은 열 달란트를 소유하고 있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정말로 이해가 안 갑니다.

사실 이 비유가 주는 두 가지 당혹하게 하는 면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올해 한 해를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한 가지 큰 당혹감이 남아 있을줄 압니다. 저에게도 큰 당혹감이 아직 하나 남아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세 사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그러나 두 사람을 소개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섯 달랄트를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한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결론적으로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세 종이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두 그룹입니다. 한 그룹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또 한 그룹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인생에 이 두 그룹만 있나요? 오늘 송년예배를 드리는데 이 두 그룹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시 계시지 않을까요?
분명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삶의 모습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실패한 사람입니다.
저를 당혹케 하는 것은 이 비유에는 실패한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을 사시고 공생애에 들어 오셔서 아직 인생을 모르시고 계셔서 이렇게 한 그룹을 생각하지 못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실 실패한 적이 없어 보입니다. 최소한 공생애에서는 아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기사를 통해서는 한번도 실패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빼셨을까요? 그럴리는 없겠죠.

제가 갖고 있는 책 중에 이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해답은 밖에 있다.’ 경찰들이 수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때로 밖에 해답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찰들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모든 세상만사에서 종종 해답은 밖에 있을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비유도 해답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살펴 봐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직관을 사용해서 해답은 밖에 있을수 있음을 생각해 봐야 할줄 압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 중에 한 사람은 열심히 살았지만 실패한 사람이 아닐까?
일단 그렇다고 가정을 한다면, 저는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가 실패한 사람일까?
아시다시피 저희 가정에 아들 한명만 하나님께서 자녀로 주셨습니다. 저는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두 아들이 있고 둘 다 열심히 살아 갑니다. 그런데 한 아들은 세상적으로 성공을 했고 한 아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누구를 더 사랑하게 될까요? 그리고 누구를 더 도우려고 할까요? 열심히 했지만 실패한 아들이 아닐까요?
하나님도 아마 비슷하지 않으실까요? 열심히 생활을 했지만 잘 되지 못한 자녀의 작품을 더 인정하시고 도리어 그 실패작을 가지고 더 놀라운 작품을 만드시지 않으실까요?

스펜서 박사는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려다 실패를 해서 약한 접착제가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회사 동료의 아이디어로 최고의 창작품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도움으로 실패작이 최고의 창작품이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작을 가지고 놀라운 작품을 만드시고도 남지 않으실까요?
실패한 마음을 크게 위로하시기 위해서 게으른 한 달란트를 소유한 사람의 것까지도 주시기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비유는 여러 가지 각도로 살펴 볼수 있습니다. 여러가지의 관점이 쌓여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비유입니다.
오늘 저는 송년예배를 맞이하여 열심히 일한 실패자의 관점에서 이 비유를 살펴 보고 싶습니다. 아마 그들이 바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가장 축복된 한 해를 보낸 것이 아닐까요?

김영환씨라고 정치인이자 치과의사이신 분이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책을 썼습니다. ‘최초에 도전하라.’ 그는 한옥에 치과 병원을 세우는가 하면 창고를 개조해서 치과 병원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국회의원으로 정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치과의사라 그런지 손의 중요성을 아주 강조합니다. 손으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즐거움 가운데 사는 분인 것을 금방 알수 있었습니다. 그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저의 눈에 깊게 들어 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아! 기다려라. 우리 창조의 손이 나아간다.”
얼뜻 들으면 이 분은 항상 성공만 한 사람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에 낙선하고 빈털털이가 되어서 다시 치과의사로 돌아간 분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실패도 그를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의 가슴에서는 더 큰 함성이 울려 퍼진 것입니다.
“우리 창조의 손이 나아간다.”

김영환씨가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최초에 도전하면서 살았는데 우리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실패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시지 않으실까요?
“실패한 사람들아! 기다려라. 창조의 손이 나아간다.”
결국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 사람들은 두 달란트의 소유자들이고 실패한 사람들은 결국 다섯 달란트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두 달란트 받은 자들의 작품, 즉, 큰 성공을 한 사람들의 작품은 우리 눈에 잘 보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의 작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실패작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으시고 온 세상을 위하여 놀라운 업적으로 바꾸시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그렇다면 진정 실패한 삶은 게으름으로 보낸 시간뿐입니다. 열심히 산 시간들은 결코 실패한 시간들이 아닙니다. 열심히 산 삶의 열매는 두 달란트의 축복 아니면 다섯 달란트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송년 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창조의 손이 우리의 삶의 작품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놀라운 작품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일년을 게으름 가운데 보낸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30절 말씀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그런데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 이 말씀을 듣고 계시다면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직 이를 갈고 있지 않으니 희방이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요?

중세기 Carpus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어느 사람이 갖 크리스챤이 된 사람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했습니다. 카푸스 감독은 너무나 화가 나서 하나님의 진노가 두 사람에게 임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하늘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늘에는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천사들이 수종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래를 보니 땅이 열려 있는데 두 죄 지은 자들이 절벽에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절벽 아래는 수많은 독사들이 두 죄인이 떨어질 것을 기다리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무척 화가 나 있는 카푸스 감독은 어서 두 죄인이 절벽에서 떨어져 독사의 밥이 될 것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런데 자기의 힘으로는 두 죄인을 떨어뜨릴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다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카푸스 감독의 정의에 대한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주님은 부드럽게 카푸스 감독에게 말씀하십니다.
“카푸스, 너의 분노를 나에게 쏟아 부어. 나는 이 두 사람을 위해서 다시 고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 이것이 나의 기쁨이야.”

교우 여러분,
아직 우리 중 아무도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올해 열심히 살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아직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없습니다. 새 해에는 우리 모두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입니다. 우리가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어떤 것은 잘 되었고 또 어떤 것은 잘 안 되었다고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의 수고를 가지고 주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 위에 계실 때 하신 일보다 더 크게 만드실 것입니다.
아마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두 달란트의 축복을 부어주시고, 잘 안 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다섯 달란트의 축복을 부어주시지 않으실까요?
이러한 기대를 안고 또 다시 새 해 안으로 힘차게 뛰어 들어 가십시다. 주님의 음성이 메아리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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