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

날짜 : 2014.12.14
예배명 : 대강절 셋째 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
성경본문 : 이사야 62:6-12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41214.wmv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때 어느 재판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판사는 크리스마스 기분으로 즐거운 무드였습니다. 판사가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죄를 저질렀나요?” 죄수는 대답합니다.
“크리스마스 쇼핑을 너무 일찍 한 죄입니다.”
“그것은 죄가 아닌데, 얼마나 일찍 쇼핑을 했는데요?”
“상점이 열리기 전에 쇼핑을 했습니다.”
그 후 판사는 어떻게 판결을 내렸는지 알수 없습니다.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재미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크리스마스는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계절이지만 여유가 없는 분들에게는 우울한 계절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아니 최소한 도둑질은 안 할지라도 마음 속으로 죄를 지을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로 인해 가장 가슴 아프신 분은 아마 아기 예수님일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가난하고 헐벗은 자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이제 당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는 어느덧 부유한 자들의 절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 대강절 세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대강절 wreath에 세번째 촛불까지 켜졌습니다. 점점 대강절의 촛불은 밝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대강절의 촛불은 부유한 자들을 위해 밝아지고 있을까요? 대강절은 누구를 위하여 있는지 오늘 본문 말씀 마지막 12절에서 잘 명시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하나님은 지금 시온성 곧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12절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에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원래 버림받은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찾은 바 되었다고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아니 죄인들에서 거룩한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 거하는 죄인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대박을 맞은 것 같습니다.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갑자기 구원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은 그냥 구원이 아닙니다.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구원입니다.
잘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갑자기 상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과 같겠습니까? 처음 이야기와 비교를 해 보면, 재판관이 물건을 훔친 피고에게 이렇게 선고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대는 아주 잘했도다. 상점이 문 열기도 전에 물건 청소를 하였으니 청소한 물건의 10배를 상급으로 주노라.”
잡아 온 경찰도 놀래고 상점 주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제일 크게 놀라는 사람은 바로 죄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주님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시려고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로 인해서 버림받아야 할 죄인들에게 놀라운 상급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세주는 정말로 알수 없는 분이십니다.
이 놀라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어찌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우리는 다음 주 성탄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나야 합니다. 1주일이 지나야 우리는 마지막 초를 킬수 있습니다. 1주일 후 우리는 진정한 축하를 드릴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주일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6, 7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 성벽 위에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이 파수꾼들은 주야로 잠잠하지 않게 소리를 지릅니다. 한편 파수꾼들에게 주어진 진짜 사명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쉬지 못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두 기다림의 사람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2:25)
안나 선지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2:37)
시므온과 안나 선지자가 바로 예루살렘의 파숫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좀 쉬시고 싶어도 이들로 인해서 쉬지 못하셨습니다. 쉬지도 못하니 아예 빨리 해결하자 생각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되셔서….
그러니 우리는 이번 1주일은 바로 이들의 기다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러한 기다림의 사람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 기다림의 사람은 골방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주일 동안 골방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서 종종 기다림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얼마전 저는 일본에 있는 기다림의 공동체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카쿠레키리시탄’ 곧 ‘숨은 크리스천’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은 일찍이 1500년경 천주교를 받습니다. 한 때는 30만의 천주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약 100년 후 천주교 금지령이 생기고 박해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들은 산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숨었기에 숨은 크리스천, 카쿠레키리시탄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숨어서 자그마치 7대를 지냅니다. 곧 250년을 숨어서 지냅니다. 이제 점점 종교의 자유 물결이 일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박해가 무서워 계속 숨어서 지낸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산속에서 나왔는데 눈앞에 성당이 보이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상을 보았습니다.
이 성당은 프랑스 선교회에서 지은 성당이었습니다. 이 때 이들은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들의 믿음과 신부님의 믿음이 일치함을 온 몸으로 고백합니다. 250년간 숨어서 기다리던 이들은 드디어 기다림의 열매를 맛 보게 된 것입니다. 이 날이 1865년 3월 17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7대에 걸쳐서 250년간 그들은 산속에서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역사를 기다렸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기다림의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세계 역사 가운데 진정한 기다림의 사람들을 곳곳에 숨겨 놓으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위해서 당신을 진정 기다리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편 이 기다림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아마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8, 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오른 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
자세히 주석할 시간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기다리는 자들은 본인이든 아니면 위해서 기도를 해주는 사람에게든 놀라운 축복을 보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확증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그동안 기다림의 사람들 곧 파숫꾼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성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 기다림의 사람들에게 어디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까?
“성문으로 나아가라.” 성벽에서 성문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끝이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성문으로 나아가기 전 성벽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의 분량이 찼을 때 주님은 명령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당신의 음성을 듣고 성문으로 나아가는 기다림의 사람을 통해 주님은 오늘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세우시고 계십니다. 12절 말씀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이 기다림의 사람들로 인해서 주님은 버림 당한 성읍들이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 되어 가게 하십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카쿠레키리시탄들의 기다림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셨는지 궁금한 생각이듭니다. 사실 우리는 알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십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으로 수많은 버림 받은 성읍을 찾으셨을줄 압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버림 받은 사람들을 택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이 카쿠레키시탄의 기다림으로 인해서 오늘 우리가 대강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너무 우리들과는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거리가 멀어 보이나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오늘 이처럼 주님의 전에 나와 대강절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누군가의 기다림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는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한국교회와 카쿠레키리시탄을 연결시키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천주교는 1800년도초에 개신교는 1800년도말경에 한국에 들어 옵니다. 그런데 카쿠레키리시탄은 250년간 숨어 기다리다가 1865년에 성문으로 나아 옵니다. 바깥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1800년도가 일치됩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물론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해졌습니다. 카쿠레키리시탄이던 그 누구던 우리를 위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다림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기다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으실까요?
우리의 기다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보스톤 지역 한인들을 위해서 부르클라인 주민들을 위해서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아직도 버림받은 성읍에 사는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대강절을 맞아 성벽에 올라가 기다리십시다. 파숫군이 되십시다. 우리들의 기다림이 찼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 올 것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사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이웃을 기다립니다. 이웃이 변하기를, 가족이 변하기를, 교우들이 변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대강절은 이웃이 변하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절기입니다.
도리어 성벽에 올라가서 이웃을 위한 파숫군이 되는 절기입니다. 버림받은 성읍에 사는 이웃을 위해서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 성읍이 버림 받지 않은 성읍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찼을 때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말씀을 거둡니다.
카쿠레키리시탄과 한국 교회와 연관을 맺게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드리겠습니다. 몇 개월전 토모짱이라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일본 아이에 대해 소개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과 그 부모들이야 말로 평생 기다림의 삶을 사는 분들임을 잘 아실줄 압니다.
부모님과 함께 토모짱이 크루즈를 떠났습니다. 마침 한국 여행객들과 함께 탄 배였습니다. 토모짱 가족은 어느 한국인 부부를 알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분위기가 상당히 어색하고 멋쩍은 분위기였습니다. 알고 보니 공부를 많이 한 인텔리 부부였습니다.
잠시 항구에 내려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토모짱이 어딘가 뛰어 갑니다. 토모짱은 한국인 그룹이 앉아 있는 한 식탁으로 돌진하듯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부인의 무릎에 올라앉자마자 부인을 껴안고 뺨을 맞댔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토모짱은 그대로 꼼짝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도 엉겁결에 토모짱을 껴안고 토모짱의 뺨에 자기 뺨을 맞대고 가만 있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토모짱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껑충껑충 뛰면서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부인이 식당 입구 쪽에 서 있던 토모짱 부모 곁을 지나 종종걸음으로 바다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부인의 뺨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크루즈 마지막 날 모두 둘러 앉아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국인 부인이 말을 시작했습니다. 내용은 이번 크루즈를 마지막으로 남편과 헤어질 것을 결심했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 점심때 식당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토모짱이 제 곁으로 다가와 그 작은 몸을 제게 맞대며 가냘픈 두 팔로 저를 안아 주었습니다. 토모짱의 몸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제게 전해 왔습니다. 토모짱의 따뜻한 체온, 뺨에서 전해 오는 그 온기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어 멍하게 앉아 있는 제 몸 전체로 전해 왔습니다. 그 따뜻함은 점점 더 제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드디어는 제 마음의 심지에까지 다다랐습니다. 차가웠던 제 마음의 심지를 조용히 조용히 녹여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처음으로 남편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아아, 이 사람이야말로 나와 생애를 함께할 사람이구나!’ 하며, 남편에 대한 뜨거운 생각이 우러 나왔습니다.”
이어서 남편도 말합니다. 자신이 아내보다 더 나빴다고 말하면서 실상 부모가 일본군의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목격했음을 고백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토모짱을 바라보는 그 사이에 떠오른, 그 잔혹한 장면이 일순간 선명하게, 마치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처럼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부모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투명하고 밝은 빛에 저희 부모님이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곤 눈앞에서 저희 부모님이 조용히 일어나 생긋 웃으시며 나란히 서서 저를 아주 꽉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네 살로 돌아가 있던 저는 놀라 부모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얼굴에는 자애와 고요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에 치유되었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이야기인데 늘 저희 뇌리에 의문과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을까? 토모짱이 장애인이라서일까?”
확실히는 알수 없습니다. 저나름대로 이렇게 상상해 보았습니다.
토모짱은 바로 아기 예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기 예수의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것입니다. 어떻게? 카쿠레키리스탄의 기다림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기다림의 능력이 토모짱에게까지 전해졌고 이에 토모짱의 타치를 받은 부부의 마음이 치유된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향한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버림 받은 성읍을 버림 받지 않은 성읍으로 변화시킵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십시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십시다.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