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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람들

날짜 : 2014.11.0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기적의 사람들
성경본문 : 열왕기상 17: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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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한국에 교사로 와서 수고한 윌리엄 길모어(William Gilmore)씨가 ‘서울을 걷다 1894’라는 책을 썼습니다. 1894년도 그러니까 아직 조선이 일본에 합방이 되기 전에 한국인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서 한국을 방문한 것입니다. 이에 서방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하여 책을 쓴 것이 바로 ‘서울을 걷다 1894’라는 책입니다. 그책을 보면 그 당시 한국의 모습을 선명하게 느낄수 있습니다.
그 중 ‘관리 선발 이야기’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실텐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왕은 밤에 변장을 하고 백성들이 사는 마을로 가 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깨진 창문 사이로 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 집 안은 그야말로 극심한 가난을 느낄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방 안에서 노인은 울고 있었고, 여인은 노래하고 있었고 젊은 남자는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범상치 않아서 왕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날이 저문 후 나그네 행세를 하며 대화를 나눈 뒤, 자신이 본 광경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특이한 행위를 한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춤을 추던 젊은 주인은 변장한 왕에게 자신이 울고 있던 노인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노인이 전에는 부유했으나 관리들의 탐욕과 억압 때문에 재산을 모두 빼았겼다고 말합니다. 노인이 아주 우울해해서, 저녁이 되면 아들과 며느리가 노인의 고통스런 마음을 바꿔 보려고 노래와 춤추기를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왕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국가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젊은 주인장이 특출한 학식과 분별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즐겁게 하려는 노력에 잘 나타나 있는 효성까지 더하여 젊은이는 왕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왕은 주인장이 다음 날 있을 과거시험에 응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과거시험이 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있다네.” 왕이 대답합니다.
주인장은 시험이 있다면 꼭 응시를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왕은 갑작스런 방문에 대해 사과하고 그 자리를 떠난 뒤 궁궐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날 과거가 치러진다는 포고문을 붙이도록 명령합니다. 수도의 시민들은 그때까지 시험 계획이 없었기에 놀랐지만 소식이 퍼져 나가 수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시험 주제는 이러했습니다. “눈물 짓는 노인, 노래하는 여인, 춤추는 젊은이.” 한 사람을 제외한 수험자들은 모두 기겁합니다. 그런 주제는 고전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갖고 어떻게 답을 작성해야 할지 의아해 합니다.
왕을 대접했던 젊은이 또한 의아해합니다. 어떻게 주제를 다뤄야 할지에 대해서 보다는 주제와 자신의 일상 사이의 일치 때문에 의아해했습니다. 여하튼 그는 주제가 친숙했기에 능숙하고 솜씨 좋게 답을 작성합니다.
물론 질문에 대한 젊은이의 답안이 유일하게 주제에 맞았고, 그는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 관리가 되었고 다음 날 입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입궐을 하였고 그 호기심 많던 나그네를 왕좌에서 보고 깜짝 놀랍니다. 왕은 그를 기쁘게 맞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책에 임명합니다.
젊은이는 아버님께 대한 효로 시작을 했지만 나그네로 가장한 왕의 말에 귀를 기울인 끝에 왕의 성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길모아씨는 자신의 책에 넣어서 한국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길모아씨도 이 이야기가 아주 인상에 깊게 박혀 있었나 봅니다. 하기야 이런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 한국 사람에게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데 길모아씨도 아주 깊은 느낌을 받았을줄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저자 열왕기상하의 저자도 아마도 비슷한 체험을 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래 전 들은 엘리야와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 너무도 깊은 도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에 대해서 소개하는 책에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와 공통점이 꽤 있습니다.

엘리야가 어느 과부를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방문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심한 가뭄이 시작된 때입니다. 본문 전 귀절들을 보면, 아합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가뭄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뭄이 왔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시냇가에 숨습니다. 까마귀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가뭄으로 인해 시냇가도 물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여인에게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엘리야가 사르밧이라는 지역에 사는 과부를 찾아 갑니다.
그 곳에 이르니 마침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곧 과부를 알아 본 것 같습니다. 과부에게 말합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사실 가뭄으로 인해 물이 금과 같은 때였는데, 물을 구한다는 것은 엄청난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과부는 난색을 표명할까요? 과부는 나그네인 엘리야가 불쌍해 보였는지 금방 물을 가지러 갑니다.
과부는 난색을 표명하지 않고 금방 물을 가지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뻔뻔한 엘리야는 물을 가지러 가는 과부에게 떡도 가져오라고 합니다. 아마 과부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나그네라고 봐주려고는 하지만 너무 뻔뻔스러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답하죠? 12절 말씀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실 과부가 나뭇가지를 주우려고 나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쌀가루 한 움큼과 기름을 가지고 음식을 해 먹고 그 다음에는 굶어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한 나그네가 나타나서 물을 가져 와 달라고 하니 그 청을 마지막으로 들어 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끼니를 만들어야 하는 쌀가루를 가지고 떡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너무나 엄청난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게 된 엘리야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13, 14절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과부는 큰 모험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남은 쌀가루로 아들과 함께 먹고 굶어 죽느냐? 아니면 쌀가루로 일단 나그네를 먹이느냐? 15절 앞의 구절을 보면…,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그네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합니다. 계속 15, 16절 말씀입니다.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그네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했더니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과부가 왜 순종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불쌍한 나그네로 보여서 순종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라고 처음부터 생각해서 순종했는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순종의 이유에 있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과부는 엘리야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이처럼 놀라운 기적을 낫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아니 우리 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할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니다.삶의 기적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멀리 있지 않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하십시다.

한편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여기까지 보면 처음에 말씀드린 과거시험을 보는 젊은이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사르밧 과부가 받은 축복은 왕도 줄수 있습니다. 물론 통에 쌀과 병의 기름이 매일 기적처럼 채워지는 기적을 왕은 행하지 못하지만, 왕의 권위로 매일 신하를 시켜서 쌀통과 병을 채울수 있습니다.
곧 이러한 일을 이 당시 가뭄을 가져오게 한 장본인인 아합왕도 능히 할수 있습니다. 매일 과부에게 쌀과 기름을 공궤해줄수 있습니다. 곧 세상 왕에게 순종하면 이런 축복은 언제나 받을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왕에게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그래서 요즘 점점 서구사회에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면 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왕에게 순종하는 것에 차이가 없을까요? 오늘 본문의 나오는 다음 장면을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17, 18절 말씀입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제 쌀과 기름이 늘 차고 넘치게 되어서 아들과 함께 매일 매일 즐겁게 살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는데 이것도 잠시입니다. 갑자기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에게 불만을 털어 놓습니다. 아들과 함께 남은 쌀로 밥을 해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기적을 일으켜 주는듯 하더니 결과적으로는 아들도 죽고야 만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죽을 생각을 했기에 결과는 같았더라도 엘리야에게 전 재산을 가지고 대접한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 것이 억울했고, 더우기 기적으로 인해 잠시 즐거워했던 모든 것이 도리어 더 큰 아픔으로 찾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더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어떻게 합니까? 21, 22절 말씀입니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결과적으로 여인이 고백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과부가 엘리야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고백하게 된 때는 먹고 마실 것을 해결해 주었을 때가 아닙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완전한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보았을 때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때에야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곧 왕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의 큰 차이를 알수 있습니다. 왕의 말은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할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통의 쌀가루를 넘치게 하고 병의 기름을 넘치게 하는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더 귀를 기울이시겠습니까?

오늘 청지기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청지기의 삶은 바로 기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는 삶입니다.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생명의 기적을 매일 체험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는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부도 창조하시고 생명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와 함께 창조하시나요?
우리와 함께…. 청지기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부와 생명을 창조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말씀에 순종하여 사용함으로 부와 생명을 하나님과 더불어 창조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놀라운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30:15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청지기의 삶은 바로 생명과 복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사망과 화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건을 숨겼기에 생명과 복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 사르밧 여인은 생명과 복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사르밧 여인처럼 생명과 복을 선택하십시다. 사르밧과 삽비라 이름은 비슷합니다. 삽비라를 본 받지 말고 우리 모두 사르밧 여인을 본받으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제가 지난 주간은 루이빌에 있는 교단 총회 본부에 가서 NCKPC한인 총회 소속 대표자들이 모이는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첫날 저녁은 개회 예배를 드렸고 제가 총회장이기에 개회설교를 하였습니다. 둘째날은 본격적으로 총회 채플에서 오전 중에 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PCUSA 교단뿐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한인사회와 한인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루이빌까지 가려면 거의 모든 분들이 사는 곳에서 직항이 없습니다. 한번쯤 다른 공항을 들려서 갈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불편한데도 부득불 루이빌에서 모인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첫번째로는 총회 본부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사실 어디에서 모여도 총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회를 가질수도 있습니다. 더 중요한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총회 채플이 저희 교회 ECC채플처럼 상을 받았습니다. 아주 잘 지어졌습니다. 상을 받았기 때문에도 물론 아닙니다. 먼저 사진으로 좀 볼까요?

아주 예쁘죠. 그곳에서 한인총회 기도회를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20여년전에 루이빌로 총회 본부를 옮기면서 창고를 개조해서 사무실로 바꾸었습니다. 우선 사무실을 다 만들고 나니 기금이 다 떨어졌습니다. 급한대로 본부를 옮겼습니다. 채플이 들어갈 공간은 마련되어 있었지만 채플은 손도 못댄채 사무실만 옮긴 것입니다.
한국의 예장 총회 대표자들이 총회본부를 방문한 후 마음이 아파했습니다. 물론 저희 한인총회 대표자들은 이루 말할수 없고…. 결국 한국 총회 대표자들과 미국 한인 총회 대표자들이 기금 모금을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와 개인이 헌금을 해서 20여년전에 25만불을 모금했습니다. 건축 예산이 50만불이었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20여년전에 Walmart가족이 장로교인이었는데, 그 가족이 matching fund를 해 주어서 50만불이 된 것입니다. Walmart가족의 도움을 받았지만 실상은 한인교우들이 뜻을 모았기에 이루어진 채플이 된 것입니다. 채플 문 옆에 기념plaque이 있습니다. 다시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제일 위에 위원장으로 조영일 장로님 이름이 새겨 있고 그 옆에는 Paul Chun (천방욱) 목사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도회 제일 마지막 날 폐회예배시 교단을 대표하는 분이 와서 한인 교회에 감사한다는 말씀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저희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이 채플 봉헌을 위해서 섬기신 분들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섬김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사실 위원장이셨던 조영일 장로님은 소천받으셨고 다른 분들도 소천받으셨던지 아니면 더 이상 교단 일을 보지 않는 분들이십니다. 무엇보다도 헌금하신 분들은 모두 현재 채플에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헌신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교단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도리어 채플은 큰 희망이 되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바로 우리 한인 교회였던 것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그 채플에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다면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예배를 드린다면 저희 교단은 다시 발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앞장 서도록 우리 한인들을 불러서 미국에서 살게 하셨다고 믿습니다. 청지기의 사명이 헤이해지는 미국 교단에 새로운 청지기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미국을 위한 기적의 사람들이 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 한인교회들로 인하여 생명과 복의 축제가 다시금 벌어질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교우 여러분,
생명과 복을 택하십시다. 말씀에 순종하십시다. 기적의 사람들이 되십시다. 사르밧 여인을 본받으십시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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