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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의 기다림

날짜 : 2013.12.0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시므온의 기다림
성경본문 : 누가복음 2:22-33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1201.wmv

Paula D’Arcy라는 분이 대강절 묵상집을 펴냈습니다. 서론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친구와 함께 텍사스 어느 산골에 휴가를 갔습니다. 저녁을 먹은 후 산에 올라가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면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기로 했습니다. 해 뜨는 것을 보러 가는 사람은 많은데 달뜨는 것을 보러 가는 사람은 저도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하여튼 전 날 달이 뜨는 모습을 미리 보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충 어디에서 뜰 것인지를 계산하고 다음 날 산에 올라갔습니다. 손전등을 준비하고 옷도 엑스트라로 가져가고 snack도 물론 챙겼습니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산에 오릅니다. 강변 벼랑에 우뚝 선 멋진 바위를 찾아냈습니다. 바위에 앉아서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잠잠히 기다립니다.

달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계산이 틀렸습니다. 달은 전혀 엉뚱한 데서 뜨기 시작합니다. 밤을 새워가면서 강물에 비치는 멋진 달을 보려고 했지만 다 틀렸습니다. 강물에 비치는 달을 보면서 친구와 회포를 풀기로 했던 것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실망한 채 숙소로 돌아옵니다.

오솔길을 들어서는데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손전등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빛으로 인해서 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길뿐 아니라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사슴의 모습도 또렷하게 보입니다. 달빛에 비치는 나무들의 모양은 낮에 느낄 수 없는 정취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바위도 더욱 신비감이 넘쳐 있어 보였습니다. 강물에 비치는 달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달빛을 통해 한 밤중 숲속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자마자 저의 가슴에 콱 박혔습니다. 대강절의 신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빛을 기다립니다. 그런데 빛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뜨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실망합니다. 하지만 잠시 후 어느덧 우리는 우리가 기다렸던 빛의 도움으로 우리가 사는 삶이 얼마나 놀랍고 축복된 삶인지를 보게 됩니다. 매 순간 순간 아름다움의 절정을 체험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강절의 신비가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이번 대강절 기간 이 대강절의 신비를 마음껏 누리십시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기다림의 절정의 사람 시므온의 이야기가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주석가들은 정결예식의 날이 찼다는 것은 아기가 태어난 지 40일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곧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40일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40일이 되었으니 아직 갓난아기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누가복음 기자는 시므온의 특징을 먼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의롭고 경건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을 줄 압니다. 교우 여러분들은 ‘의롭고 경건하다’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십니까? 기도 많이 하고 좋은 일 많이 하고 죄와는 거리가 멀고…,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줄 압니다. 물론 이것도 다 의롭고 경건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의롭고 경건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이를 달리 표현하면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제 아무리 종교적으로 보여도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털어 가난한 이웃에게 주어도 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의로운 자는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기에 자선을 베푸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시므온의 모습입니다.

한편 누가복음 기자는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이 의로운 자들임을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못을 박습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은 이미 와 계십니다. 곧 성령은 기다리는 자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도 메시야의 오심을 고대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시므온과 함께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는 매 순간 성령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처럼 우리들의 기다림 속에 성령도 함께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은 어떤 기다림 속에도 함께 하실까요? 기다림이라고 다 같은 기다림일까요?

기다림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난주 Thanksgiving day 때 turkey를 요리하신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Turkey를 oven에 넣고 몇 시간 기다리지 않습니까? 대개 4 시간쯤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4 시간 기다리는 것 쉽지는 않죠. 그러나 그리 어렵지도 않습니다. 4 시간 동안 다른 일을 하면 됩니다. 4시간 timer를 켜 놓고서 마음껏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timer가 울리면 turkey가 완전히 요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온전한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기다림 곧 영어로 wait이라기 보다는 영어로 spend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네 시간을 소비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냥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소비만 하면 일석이조가 됩니다. 진정한 기다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말로는 ‘시간의 지나감’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Time is money’라는 말이 있죠. 의사나 변호사도 시간 당 pay를 받습니다. 거의 모든 직업이 시간 당 pay를 받습니다. 그래서 결국 ‘time is money’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곧 ‘time is money’라는 외침은 시간은 spend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시간을 잘 소비할 때 좋은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을 합니다. 시간을 잘 소비하면 건강해지기도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성령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언제 함께 하실까요? 시간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창조하셨는데 이제 세상을 내려다보며 심히 마음이 아프실 줄 압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서, ‘time is money.’ 사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시간을 창조하셨는데 옆에 있는 천사들은 아마도 다른 노래를 불렀을 줄 압니다.

“Time is to wait.”

시간은 spend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wait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Spend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가야 무엇인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야 졸업을 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시간은 spend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시간은 spend의 도구로 쓰이기 전에 wait의 도구로 쓰여야 합니다. Wait의 도구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시므온입니다. 26절 말씀입니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시므온에게는 시간은 주님을 바라보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다림입니다. 시므온은 시간을 주님을 바라보는 도구로 삼았기에 그는 성령의 임재를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시므온은 매일 신비한 축복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시간의 지남을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리어 매일 매일 흥분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합니다. 시간을 spend의 도구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도구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이 아닐까 라는 기대를 갖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매일 매일 기다림의 신비를 체험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27, 28절 말씀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시므온은 어느 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금방 아기를 알아 본 것입니다.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30-32절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는 기다림의 아픔에서 해방됩니다. 평안히 하나님 품 안에 안기게 됩니다. 더 이상 기다릴 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기다리는 도구인 시간이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올해 뜻밖에 Boston Red Sox가 World Series Champion이 되었습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고 합니다. 챔피언이 된 후 선수들을 인터뷰했는데 저는 그 인터뷰를 들으면서 이들이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봄에 선수들이 처음 모여서 연습 경기를 Florida에서 치르곤 합니다. 매일 아침 선수들끼리 주고받은 인사가 있다고 합니다.
“One day closer to the parade.”
우승한 후 parade를 하지 않습니까? 우승할 거라는 확신 가운데 그들은 연습을 하였고 또 경기에 임했습니다. 결국 우승을 기다리는 자들이기에 매 경기를 기대하면서 치렀고 자주 자주 기적에 가까운 경기를 치렀고 끝내 우승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One day closer to the parade.”

Boston Red Sox가 대강절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주는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물론 대강절 개념과 맞지 않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 외에는 아주 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줍니다. 한 가지 맞지 않는 것은 이들은 world series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지 시즌 시작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강절의 끝을 모르고 기다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반면 많은 같은 점이 있습니다.
올해 Red Sox선수들은 한 게임 한 게임 치룰 때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one game closer to the parade.’ 그 날 게임에서 이기건 지건 상관이 없습니다. 10:0으로 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몇 게임을 연속해서 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한 게임이 끝나면 한 게임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그들은 우승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spend한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안에서 우승을 바라 본 것입니다. 그들은 우승을 기다린 것입니다.
우승하기 위해 하루하루 spend한 팀들은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승을 기다린 Red Sox 팀은 우승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당시에도 메시야가 오도록 시간을 spend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메시야가 오도록 의를 행하고 노력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자기들의 의로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자들은 메시야가 임하셨을 때 메시야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반면 메시야를 시간 안에서 기다린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그는 아기 예수의 신비를 체험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의 품 안에 안긴 분은 메시야이기 전에 아기입니다. 아기가 되셔서 오셨습니다. 시므온은 또 다른 기다림의 바통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아기를 키우는 것은 또 다른 기다림이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은 또 다른 숙제를 후배들에게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의 품에 안긴 분은 아기입니다. Spend의 정신으로는 아기를 키울 수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다임입니다. 시므온의 후배들은 아기가 자라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 아기는 장성하여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를 기다렸고, 시므온의 후배들은 아기가 자라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곧 모든 세대에는 각기 다른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구름 타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축복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축복에 우리 함께 동참하십시다.

시므온은 기다림의 삶을 살았고 또 같은 기다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남기고 그는 하나님 품에 안긴 것입니다. 그래서 늘 성령이 그 분 위에 함께 계셨으며 자기와 같은 삶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다림의 삶이 최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Time is to wait.”

교우 여러분, 주님 안에서 마감 시간이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기다림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기다림의 절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신비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의로운 것입니다. 기다림은 경건한 것입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 기다림의 신비를 회복하십시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Albert Camus 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겨울 한복판에서 나는 도리어 내 안에 있는 뜨거운 여름을 느낀다.”
“In the midst of winter, I found there was within me, an invincible summer.”

겨울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슴에는 새로운 여름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아기예수를 사모한다면 말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린다면 말입니다. 우리 삶 주변에는 신비한 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가슴에는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이번 대강절 기간 진정한 기다림의 사람들이 되어 가십시다. 기다림의 신비를 체험하십시다. 오늘 첫 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한 주 한 주 촛불이 더 켜짐과 아울러 우리들의 가슴을 기다림의 불꽃으로 태우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겅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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