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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날짜 : 2013.09.29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성경본문 : 에베소서 5:20-21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929.wmv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문에 도착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천국이 너무 붐벼서 점수를 계산해서 100점 이상을 얻은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자가 이야기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구제활동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3점을 기록했습니다. 그 사람이 다시 말합니다.
“저는 십일조를 열심히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다시 1점을 추가했습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은 후 말합니다.
“저는 남을 비방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베드로 사도는 0.5점을 추가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거의 포기상태가 되었습니다. 결국 탄식하며 말합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결코 천국에 갈 수 없겠는 걸. 오 주님 은혜 베푸소서.”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이야기합니다.
“이제 됐네. 들어오게.”

자기의 행함으로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오 주님 은혜 베푸소서” 외칠 때 곧 주님을 의지하는 자만이 들어 올수 있다는 깊은 진리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쉽습니다. 왜냐하면 의지하면 됩니다. 믿으면 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처럼 믿음으로 천국은 맡아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천국 가기 전에 이곳에서의 삶입니다. 이곳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천국을 준비하는 최고의 삶일까요?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사실 그 어느 성경보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에베소서는 천국의 소망이 가득 넘치는 가운데 쓴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1:4, 5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미 창세전에 천국이 보장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에베소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천국은 보장되어 있으니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가가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간단히 잘 정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곧 천국 가기 전 이 땅에서 행하여야 할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항상 감사드려야죠. 놀라운 구원을 허락해 주셨는데…. 우리는 100점 만점에 5점이나 겨우 맞을까요? 그런데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우리는 당연히 감사를 항상 드려야 합니다.

얼마 전 토요아침기도회를 위해서 집에서 나오는데 선글라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에 나와 봐도 없고 집안을 찾아 봐도 없습니다. 한 번 말씀드렸듯이 안과 의사가 백내장이 시작되었다고 선글라스를 항상 쓰고 다니라고 해서 그 후로는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찾을 수는 없습니다. 혹시 저보다 일찍 교우님이 오시면 밖에서 기다릴 것 같으니 오래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교회로 향했습니다. 기도회 시간 약 30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어느 교우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선글라스를 찾느라고 10여분 더 늦었던 것입니다.

교회 일 다 마치고 집으로 가서 천천히 찾아보았더니 까만 소파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새로 선물 받은 것도 아닌데 얼마나 좋던 지요.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효과는 하루만 가더라고요.

천국에 대한 감사도 그렇지 않습니까? 조금은 더 가겠죠. 여러분은 천국에 초대받은 초대장을 받은 후 얼마 동안 마음이 뿌듯하고 감사가 넘쳤습니까? 글쎄 1주일, 아니면 한 달…?

천국에 대한 감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그 감격을 되찾는 길은 먼저 항상 감사드리는 삶입니다. 무슨 일이던 말입니다.

다음의 글이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래 전 ‘오해’라는 글을 접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심으로
나를 더욱 더 주님의 형상과 닮게 하시기 위해
나의 모난 부분을 깎으실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하심으로
나를 아버지의 나라에 인도하시기 위해
낮은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은혜’라 부르시지만
나는 그것을 ‘연단 혹은 시험’이라고 부릅니다.

사탄이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질투하여
나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하여
나에게 물질의 부함과 세상의 즐거움을 풍족하게
불어 넣어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시험’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매사에 이렇게 오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우리는 고난이라고 부르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연단으로 종종 생각하고 도리어 시험을 우리는 축복으로 생각하는 정말로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인간을 homo sapience 지혜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인간은 오해의 동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늘 오해합니다. 그래서 늘 이 땅 위에서의 삶이 힘듭니다.

그러나 이 오해에서 해방되는 길이 있습니다. 매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난으로 생각되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연단으로 생각되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축복으로 생각되지만 항상 감사합니다.”

앞에는 틀려도 뒤는 항상 맞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감사한다면 말입니다. 이 때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해의 동물이 아니라 감사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오해하지 않습니다. 더 크게는 이웃과의 관계에도 오해 투성이 입니다. 하나님과의 오해를 푸는 길은 감사인데 이웃과의 오해를 푸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과연 복종함으로 오해가 풀릴까요? 우리들의 지혜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또 다시 지혜의 동물 됨을 포기해야 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니 분명히 이것이 해답일줄 믿으십시다.

먼저 지혜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왜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 가지 사건을 두 사람이 보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객관적으로 그 사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본 것이 서로 일치할까요?

Walter Raleigh경은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 최고의 모험가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대역죄에 몰려 런던타워에 수감되었습니다. 옥중에서 그는 전 세계의 역사를 집대성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세계사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롤리 경은 창 밖에서 벌어지는 큰 싸움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싸움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는 자신이 관찰한 것과 전혀 다르게 싸움 상황을 묘사하는 다른 목격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순간 롤리는 세계사를 기술하겠다는 야심 찬 꿈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방금 본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과 볼 수 있는 것만 기록할 뿐입니다. 결국 원래 십 수권으로 계획했던 세계사의 제 1권만 쓰고는 집필을 중단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 자기라는 세계 안에서 한 사건을 본 후 새로운 세계를 멋지게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묘하게 만들어진 인간의 신비스러운 모습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시편 139: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인간은 같은 사건을 보고도 다르게 해석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항상 다르게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오해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묘하게 만드셨기에 우리는 한 사건도 다르게 봅니다. 그러니 오해할 수밖에….

오래 전 저희 교회를 다닌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 결혼도 하고 멀리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두 청년이 두 장의 종이를 가지고 저에게 왔습니다.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이 두 청년은 재미있는 실험을 한 것입니다.
저의 설교를 듣고 자기 나름대로 설교의 요약을 다시 글로 써 보기로 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느낀 점을 쓴 것이 아니라 설교의 요약을 자기가 좋아하는 표현으로 적은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설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서로가 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서로가 본 것을 인정할 때 정말로 큰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피차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하나도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복종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과 어긋나지 않은 영역에서 우리가 이웃에게 순종한다면 우리는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될 줄 압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마음에는 안 내켜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피차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피차 복종할 때 우리는 주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서로가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음의 이야기가 잘 나타내줍니다. 덴마크의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Tycho Brahe)는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29년에 걸쳐 천체를 관찰한 끝에 당대 천문학자들보다 훨씬 정확한 행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론연구 방면에는 소질이 없어서 놀랍도록 정확한 관찰수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잘못된 결론을 내고 말았습니다. 이는 튀코가 오직 자기주관에만 기댄 연구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자신의 한계를 실감한 튀코는 독일의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rler)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케플러는 관찰력에서는 튀코를 따를 수 없었지만 이론 연구 방면에서는 누구보다 탁월했습니다. 케플러는 튀코가 정리한 천체 기록 자료를 분석하여 ‘화성을 포함한 모든 행성은 태양을 하나의 초점으로 타원운동을 한다.’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가설을 제시합니다. 튀코의 정확한 관찰력과 케플러의 깊이 있는 연구능역의 조합으로 그 유명한 ‘행성운동의 3 법칙’이 탄생되었습니다.

저희 교회 과학자들이 많으니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까요? 새교우반에서 늘 말씀드리는 내용입니다. 요즘 DNA가 과학 분야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너무 잘 사용되고 있습니다. DNA를 발견한 사람이 Crick과 Watson 인데 이 두 과학자가 그런 세상을 뒤흔들게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이들은 함께 연구를 시작하면서 약속을 하였습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은 거르지 않고 무조건 말하기로 하였습니다.
보통 우리는 머릿속에 생각난 것 중에 걸러서 말하지 않습니까? 체면 때문에 그러나 이들은 모든 것을 말하기로 하였고 어떤 말도 주위 깊게 듣기로 한 것입니다. 그 결과 DNA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과학의 세계에만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피차 복종할 때 놀라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만 고집하고 그것만 맞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나’라는 세계에만 살게 됩니다. 반면 이웃의 생각을 인정하고 이웃의 생각에 복종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세계를 살게 됩니다. 이 두 세계를 오고 갈 때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복종할 때 천국을 이곳에서 이미 맛보게 되지 않을까요?

이웃과 생각이 다를 때 종종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말씀과는 관계가 없는 영역이니 한번 따라 해 보지.”

교우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많은 경우 오해입니다. 그러나 감사한다면 우리의 오해는 더욱 빛날 것입니다. 이웃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항상 틀립니다. 그러나 못 마땅하다고 느껴지는 이웃의 생각에 순종한다면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십시다. 항상 이웃에게 복종하십시다. 천국은 이미 이곳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님이 계십니다. 장 교수님은 당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 ‘바너비 스토리’의 저자 타일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책의 주제는 한 여인이 세상에서 낙오자가 된 남자에게 천사가 되는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 교수님은 저자에게 천사를 만나 본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내심 그것은 어디까지는 소설 속 상황뿐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문이 어디 있느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면서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아 물론이지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천사를 만났습니다. 당신은 나의 천사이고, 나 역시 당신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천사가 될 수 있어요.”

교우 여러분, 이웃에게 복종할 때 우리는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천국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늘 감사하십시다. 아울러 함께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서로에게 복종하십시다. 이 땅에서 천사의 삶을 맛보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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