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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매료될까…?

날짜 : 2014.10.1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무엇에 매료될까…?
성경본문 : 시편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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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한 신비가가 제자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인숙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쉬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숙 주인이 와서 아침식사와 함께 차를 대접했습니다. 그들이 차를 마시고 있을 때 갑자기 여인숙 주인이 황홀경에 빠져 그 신비가의 발아래 엎드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이 사람이 스승을 알아볼 수 있을까 저마다 의아해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비밀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되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발설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스승이 말합니다.
“당황해 하지 말아라. 이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아라. 아무도 그에게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여인숙 주인에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침식사와 차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손님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분처럼 깊은 사랑을 가지고 찻잔을 바라보는 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볼 수밖에요. 한갖 찻잔에 매료되어 있는 모습,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찻잔에 매료되어 있을 정도면 사람들을 보는 눈은 과연 어떠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어느 시인의 사람을 보는 눈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사람에게 매료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도리어 시인은 악한 사람들을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아니 주변에 말이 험한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갈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는듯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면 이 세상은 악한 자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보는 악한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요? 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악한 자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에 있습니다. 거짓과 아첨의 말을 밥먹듯합니다. 악한 자는 사납게 생기거나 등치가 큰 사람들이 아닙니다. 말의 폭력을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말의 폭력을 즐겨 사용하나요? 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자기들의 혀와 입술에서 나오는 말에 대한 무서운 확신이 있습니다. 악한 말을 이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핵폭탄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악한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사람들이라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인도 핵폭탄에 여러번 폭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그런데 놀라운 일을 체험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금방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말로 인하여 눌리고 궁핍한 삶을 사는 자들을 위해서 일어나셔서 그들을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고 말씀십니다.
악한 말을 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말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아니고 그 때마다 곧 핵폭탄이 터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손수 일어나셔서 피해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위해 놀라운 승리의 삶을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핵폭탄보다 더 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료됩니다. 시인은 놀라운 확신을 갖습니다. 아니 악한 자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놀라운 확신이 생겨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할뿐 아니라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음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매료된 시인은 두번째 기도를 드립니다. 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악한 말을 할줄 모르는 자들을 악한 말을 하는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해 달라고 기도드립니다.
시인은 체험했습니다. 악한 자들의 악한 말들이 날 뛰면 날 뛸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순결하게 자기에게 다가옴을 체험했습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과 같이 변함없는 빛을 발함을 체험하였습니다. 핵폭탄을 맞으면 맞을수록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료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체험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코리 텐 붐이죠. 독일 나치 감옥에 오래 고생하고 나온 후, 어느 날 강연을 마쳤는데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은 코리 텐 붐이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늘 괴롭혔던 독일 군인이었습니다. 순간 정죄의 마음이 괴롭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 그를 용서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매료되어 있음을 온 세상에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지난번에 한국 방문시 두 총회를 방문했습니다. 한 총회에서는 훌륭한 대접을 받았지만 다른 총회로부터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담당한 직원에게 언제 보스톤에 오면 lobster를 잘 대접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잠시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이웃의 행동이 저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사는 특권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바로 우리가 이 세대를 위한 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비방과 악한 말 가운데서 의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심취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황홀경에 잠기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더 큰 영광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놀라운 체험을 하려면 항상 악한 사람들의 악한 말이 필요한 것인가? 다른 방법으로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할수는 없을까?’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7절 말씀을 다시 보면,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시인은 악한 세대를 일컫고 있지만 조금 넓게 세대간의 차이를 생각치 않을수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도 좋은 사람들밖에 없어서 악한 말을 가물에 콩나듯이 듣는 분들을 위해서 새로운 은혜의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기다리지 않는다면 최소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악한 자의 가면을 쓰고 찾아옵니다. 곧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오묘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저희 교회가 크게 세 예배로 나뉘어서 드립니다. 주일학교 어린이 예배, 중고등부 예배, 그리고 1, 2부로 드리는 어른 예배, 이렇게 세 예배로 드립니다. 그런데 어른 예배에만 네 세대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네 세대가 될수 있느냐고요?
Lynne Lancaster라는 사회학자는 이렇게 네 세대로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세대에 속하시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1946년 이전에 출생하신 분들을 전통세대라고 부릅니다. 2차대전이 끝나기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이십니다. 2차대전 후 베이비 붐 시대가 오죠. 1946-1964년에 태어나신 분들입니다. 물론 제가 여기에 속합니다. 정확히 50-68세까지입니다. 그리고는 X세대가 오는데 X세대는 1965-1981년대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현재로는 33세까지네요. 그리고 오는 세대가 M세대입니다. 32세 이하는 모두 M세대입니다.
왜 사회학자들이 이처럼 4 세대로 나뉘어 놓았겠습니까? 심심해서…? 뭔가 세대별로 다르니까 구분해 놓았겠죠.
대충 특징을 말씀드리면 전통세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을 해야만 했던 세대입니다. 먹고 살기 바쁜 세대였단 말씀입니다. 취미고 뭐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는 그래도 전통세대 덕분에 안정된 사회에서 살게 됩니다. 안정된 사회에서 무언인가 성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알고 살아 갑니다. 그래서 이들도 기회만 있으면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무척 안정권에 돌입합니다.
그 다음으로 X세대는 안정된 사회가 흔들리는 시대에 사회에 진입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안정된 삶을 위해 신경을 씁니다. 아울러 직장 외 생활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이 당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M 세대는 자녀들 수가 적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부모들이 자녀들을 공주와 왕자로 키우기 시작합니다. 어릴 때부터 각자의 콤퓨터를 소유하게 됨은 물론 어릴 때부터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운전기사가 되어서 자녀들이 가야 할 곳을 혼신의 힘을 다해 섬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주려 애씁니다. 그동안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독특한 그룹이 등장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전통세대에서 베이비붐 세대로 그리고 X세대까지는 점진적으로 변천되어 왔는데 M 세대에 와서는 급진적으로 변천되었음을 사회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전통세대나 베이비 붐 세대 그리고 X세대가 제일 어려워하는 세대로 등장합니다.
사실 저희 아들 준석이도 M 세대입니다. 재미있는 예를 하나 말씀드리면, 요즘 집에서 학교에 차를 타고 다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자동차 정비는 잘 하고 다니나…? 내가 한번 봐 줘야겠네.”
그리고 그 다음 날 저녁에 귀가한 후에 차를 보니 fluid하나가 좀 부족해 보였습니다. 준석이는 집에 있었는데 제가 차를 타고 상점에 가서 fluid를 사고 집으로 오고 있는데 생각이 난 것입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이 정도는 준석이가 학교에서 오는 길에 충분히 할수 있는데….”
한 마디로 부모들의 과잉보호가 M 세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쩔수 없는 사회현상입니다. 얼마 후에는 또 다른 세대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럴 때면 저희 교회 어른예배는 다섯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른 예배도 다섯 예배로 나누어야 할까요?

최근에 Barna Research에서 M 세대를 위해서 중요한 사역 몇 가지를 발표했습니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관계형성이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M세대 중에 신앙 생활을 잘하는 청년들은 거의 모두 멘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 세대들 사이의 관계형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중장년들과의 의미있는 관계형성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어른들과 멘토링 관계에 있는 젊은이들이 교회의 사역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한 교회에 여러 세대가 모여 있는 이유는 말씀에 매료된 자들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말씀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 말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가 자꾸 나타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멘토관계를 잘한다면 그때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에 매료되는 자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악한 말들로 인해서 말씀은 더욱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한편 다른 세대 사이에서도 말씀은 더욱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말씀은 우리들의 말의 벽을 뛰어 넘어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 수 많은 세대간의 벽을 뛰어 넘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벽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악한 말까지도 우리를 말씀에 매료된 자가 되게 합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스라엘 도처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한 높은 벽들이 쌓여 있습니다. 기자가 어느 팔레스타인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장벽을 세우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응답자는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우리 더러 날아 보라고!”

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얼뜻 생각난 장면이 있습니다. 장대 높이 뛰기 경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높은 벽도 장대를 의지해서 훌쩍 뛰어넘는 선수들을 보면 얼마나 멋집니까? 우리는 모두 말씀을 의지한 장대 높이뛰기 선수들이 아닐까요?
말씀에 매료된 자들은 어떠한 벽도 날아 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화적 벽이든 어떤 악한 말이든….
교우 여러분,
어떠한 벽도 말씀에 의지하여 훌쩍 훌쩍 날아 넘어가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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