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3.10.2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Like Dew, Your Youth
성경본문 : Psalm 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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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
본문: 시편 110: 1-3
세계적인 영성가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이 있습니다. 물론 작고하신지 이젠 꽤 되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돈과 명예를 좇아 세상과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켄터키 주에 있는 수도원에서 수도사로 살기로 방향을 바꿉니다. 수많은 지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함께 사업을 하던 친구들은 머튼의 돌연한 결정을 놓고 구구한 억측들을 내놓았습니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너나없이 침묵과 고행을 감내하면서 처절하게 참회의 나날을 보내는 머튼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13년이 지난 뒤, 한 친구가 머튼을 찾아보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좀 더 나이가 든 것처럼 보였지만 함께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특별히 달라진 점을 찾을 수가 없었지. 불쑥 웃음이 나왔어. 그 바람에 옛 추억을 더듬던 머튼의 말이 끊어졌어. 그래서 얼른 까닭을 설명했지. ”여보게 자넨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 ”왜 변해야 하는데? 여기서 하는 일은 자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좀 더 자신다워지는 거야.“”
머튼으로 인해서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영성학이 한번 큰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놀라운 지식으로 영성학을 발전시킨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자신다워짐을 통해서 세계의 영성학계에 위대한 공헌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자신다워지는 제일 좋은 시간이 언제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찾아가 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이 시를 통해 그리스도를 높이십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원수들을 발판이 되게 하실 텐데 그 동안 오른쪽에 앉아 계시라고 예수님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른편은 권능의 자리를 말합니다. 다윗은 정말로 위대한 장면을 성령의 도움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장면을 본 다윗은 어떻게 할까요?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권능의 규를 내보내신다는 것은 왕의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입니다. 곧 다윗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왕권을 주시는 것을…, 이에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께 청원을 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을 다스려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을 대신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금방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주의 권능의 날은 바로 주님께서 왕권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 온 날을 의미합니다. 곧 다윗은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주의 권능의 날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권능으로 임하실 때 이 땅 위에서 되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고 있고 그 중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헌신하는데 그 중에 더 눈에 확 띄는 헌신자들이 보인 것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었습니다.
1년에 여러 부서가 헌신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은 청년부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모든 부서의 헌신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보면 청년부 헌신예배는 남달리 특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특별한 것을 보고 있습니다. 다윗은 많은 헌신자들 중에 청년들을 따로 칭하고 있습니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왜 이렇게 차별 대우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청년들이 주님의 구원사역에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일 줄 압니다.
몇 분만 예를 들까요? 한국의 선교사 언더우드는 26살에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도 대학생 시절에 선교사가 될 것을 결단합니다. 쟝 칼뱅은 23살에 종교개혁자의 소명을 받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청년의 때가 하나님께 헌신하는데 남달리 소중한 때인 것입니다. 이 점은 누구나 다 공감하실 줄 압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안 풀립니다. ‘왜 하필 ‘새벽이슬’이라고 표현하셨을까?’ 입니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은 누구일까요? 모든 청년을 다 한 묶음으로 새벽이슬 같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주석 책을 몇 권 찾아보았습니다.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합니다. 청년들 모두를 두고 지칭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떤 특정한 청년들을 두고 표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은 바로 자신이 더 자신다워진 청년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신이 더 자신다워질 때 새벽이슬의 아름다움이 환히 세상을 비추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꽃은 자신이 자신다워진 청년들입니다. 자신의 참 모습을 찾은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들입니다. 나이가 청년이라고 모두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이라고 보는 것도 좋지만, 참 새벽이슬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그 자신이 되어가는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 바로 진정한 청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제부터 저희 교회 형제 교회인 영생장로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첫 날 예배에 참석하였었는데, 강사 목사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성악과 출신이신데 신학대학원에 진학 후 학비를 위해서 성악 레슨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까지는 좋은데 착각 중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늘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다 보니 자신이 파바로티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바로 도밍고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 파바로티는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고 한 사람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것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것은 버리고 남의 것을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이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점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목사님도 헌신은 뒤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을 찾는 것임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이었던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 누구이겠습니까? 오늘 시편의 저자 다윗입니다. 다윗은 어릴 때 아버지의 양을 키우다가 사자와 싸우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떨 때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 장군을 죽입니다. 그 후 사울이 죽이려고 해서 젊은 시절을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닙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요나단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원수 사울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을 통해 참 삶의 아름다움을 배웁니다.
그의 청년 시절은 자신을 발견하는 시절이었습니다. 더욱 자신다워지는 시절이었습니다.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 시절을 마치고 다윗은 왕이 됩니다. 사무엘상 5:4, 5절에 보면 다윗은 서른 살에 왕이 됩니다.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시절에 왕이 됩니다. 그 후 40년을 통치합니다. 다윗이 자신다워지는 청년 시절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그 위대한 다윗 왕이 되었을까요?
다윗의 젊은 시절의 특징을 보면, 좋은 것을 반복 반복 또 반복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용서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했습니다. 아울러 믿음으로 사자들을 이기고 이기고 또 이기었습니다.
‘습관의 힘’이라는 아주 좋은 책이 있습니다. 찰스 두히그 Charles Duhigg이라는 분이 지은 책입니다. 책 제목이 말하듯이 습관이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역설하는 책입니다. 이런 간단한 예를 소개합니다.
운동을 습관적으로 하는 자들에 대해서 10년 동안 연구를 했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예상되는 것들이지만….
운동과 관계없는 삶의 다른 부분들까지 바뀌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식습관이 좋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고 동료들과 가족들에 대한 인내심도 깊어집니다. 재미있는 것은 신용 카드도 한층 절제해서 사용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또 다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습관을 지닌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숙제 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성적도 좋고, 감정 조절도 잘하고 자신감이 넘친다고 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매일 아침 자신의 손으로 침대를 정리하는 습관은 생산성 행복지수, 예산을 통제하는 절제력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작은 변화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다른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자극한다고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수영의 천재 마이클 펠프스를 소개하였습니다. 이 시간 자세히 소개를 드리지 못합니다만, 코치는 펠프스가 아침에 일어나면서 또 잠자리를 들면서 비디오를 꼭 보게 했다고 합니다. 그 비디오는 혼자 생각의 비디오였습니다. 혼자서 수영하는 장면을 잠들면서 아침에 깨면서 보고 또 보게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안경 안에 물이 들어가서 전혀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는 잠들기 전 아침에 깨서 늘 습관처럼 스스로의 비디오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코치가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아예 불을 다 끄고 훈련을 시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곧 반복적으로 어두운 가운데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그는 눈 감고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수영이 습관이 된 선수였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사람들은 모두 좋은 습관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습관은 언제 형성됩니까? 청년시절까지 형성됩니다. 그 이후로는 잘 형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청년시절 만들어 놓은 습관을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모두 좋은 습관의 소유자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영적인 사람들도 매한가지입니다. 다윗도 좋은 습관, 거룩한 습관의 사람이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있는 청년 여러분, 새벽이슬과 같은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습관의 소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독특한 거룩한 습관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드릴까요?
운동을 일주일에 한번만 정기적으로 해도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 금요 청년 모임에 참석하는 것 좋은 습관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외에 스스로 QT시간을 매일 갖는 것도 아주 좋은 거룩한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토요일 아침에 노숙자를 돕는 것도 좋은 습관입니다. 이런 것 이외에 여러분 자신만이 갖는 특유한 습관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드릴까요? 여러분들 걱정거리 많죠? 아서 랭크 Arthur Lank라는 사업가가 있는데 늘 사업과 관련해서 항상 걱정하면서 늘 초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걱정에 늘 매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 가지 결단을 합니다. 일주일 내내 고민거리에 잠겨 있기 보다는 하루를 아예 택하여 그날 집중적으로 고민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수요일을 고민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이 아닌 다른 날 근심거리가 떠오르면 즉시 근심거리 내용과 그 날짜를 적어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면 상자를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종이들을 꺼내 읽으면서 집중적으로 고민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상자 속에 걱정거리들을 써넣을 때는 분명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써넣은 것들인데, 정작 수요일에 꺼내어 읽어보면 대다수가 걱정거리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습관입니까?
그런다고 모두 이 사람의 본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걱정을 해결하는 습관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거룩한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습관을 통해서 자기다운 자기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새벽이슬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습관의 소유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청년 교우 여러분, 청년시절에 거룩한 습관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주에는 B40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한국문화축제의 가장 큰 목적은 언젠가 Brookline주민들이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저희 교회 Catch-phrase YPK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Y는 윤동주의 Y입니다. P는 사도바울의 P입니다. K는 마틴 루터 킹의 K입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이민교회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이민교회를 통해서 새벽이슬이 된 사람들입니다. 저희 교회 청년들도 YPK와 같은 새벽이슬이 될 것이라고 믿고 기도드립니다.
그러기 위해 한 가지만 제안합니다. Lank 씨는 수요일을 고민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좋습니다. 제가 드리는 제안은 1주일에 하루는 본인에 대한 고민 대신,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인류를 위해 고민하는 날로 정하고 실천하시면 어떨까요? 진정한 새벽이슬이 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참 자신의 모습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참 자신의 모습을 찾은 청년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새벽이슬과 같은 자들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저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습관은 청년시절 생긴 것입니다. 40넘어 생긴 습관은 쉽게 사라집니다. 아니면 겨우 유지해 나갑니다. 물론 40이 넘어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북한 주민들의 아버지였던 조만식 장로님은 42살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42세 이후는 그는 영원한 청년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예수 믿기 전에도 많은 훌륭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기 전 청년 시절에 이미 좋은 습관의 소유자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거룩한 습관을 몸에 베게 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유한 습관을 소유하십시오. 여러분 자신다운 사람이 되십시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