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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날짜 : 2013.09.0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성경본문 : 출애굽기 20:8, 민수기 14:1-8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908.wmv

유대인들은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안식일의 시작이 금요일 일몰입니다. 안식일 시작과 함께 가족 예배를 드립니다. 제일 먼저는 두개의 촛불을 킵니다. 정확히는 일몰 시간 18분전까지 두개의 촛불을 킵니다. 두개의 촛불을 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셨는데, 두개의 초가 두 가지 동사 ‘기억하라’와 ‘지키라’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곧 두개의 초를 키면서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삶의 전통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가정이 두개 촛불 말고도 더 킨다고 합니다. 자녀의 수에 따라 촛불을 킨다고 합니다. 의미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녀로 인해 가정이 밝아졌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녀로 인해서 세상이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곧 자녀들에게 그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촛불을 킨다고 합니다.

한편 관심을 끄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가 촛불을 킵니다. 자녀 교육을 이끄는 분은 어머니라는 것을 상징하지 않나 다시금 생각게 합니다.
하여튼 역사상 유대인처럼 큰 업적을 남긴 민족이 없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 이유가 많은 분들이 그들의 선민사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죠. 저는 이 안식일 예식에 대한 글을 읽고 그게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민사상보다 더 소중한 것을 이들의 안식일 예식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금요일 저녁마다 어머니가 키는 촛불을 보면서 유대인 자녀들은 자기가 이 가정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아울러 전 세계에 얼마나 귀한 빛을 발해야 하는 존재인지 가슴 속 깊이 되새기곤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멀리 나가서 혼자 살게 되면 여자건 남자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촛불을 키고 안식일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자녀들은 혼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되새기면서 먼 타향에서도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희는 9월 두 번째 주일 진급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오늘부터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들은 한 학년 씩 진급하며 새로운 교사 분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저희 교회 자녀들 숫자대로 촛불을 켜고 예배를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언젠가 그러한 기회가 주어질 줄 압니다. 오늘은 대신 슬라이드로 우리들의 자녀들의 촛불을 비쳐 보겠습니다.

(슬라이드)

유대인 예식과 비슷합니다. 두 개의 촛불을 키고 자녀수대로 촛불을 킨다고 했는데, 큰 두 개의 촛불이 눈에 뜨입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기억하고’ ‘지키라’의 두 촛불입니다. 오늘 진급주일을 맞아 두 개의 안식일의 촛불과 함께 자녀들의 촛불을 키고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느닷없이 주일에 안식일의 촛불을 키고 예배드리자고 하니 좀 어색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기독교에서는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정확히는 안식일이 시작되기 바로 전 금요일 오후에 목숨을 거두셨습니다. 사흘 만에 곧 지금 저희들이 지키는 주일에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에 자녀들과 더불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바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고 이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유대인들의 전통을 떠나서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교우 여러분, 이는 우리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자녀들과 더불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십시다. 이 때 우리 자녀들은 가정 안에서 빛이 됩니다. 사회를 밝히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와서 시간을 채우면 되는 건가요? 말씀드린 대로 촛불이 두개이죠. 하나는 지킴의 촛불 또 하나는 기억의 촛불. 안식일은 그냥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면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신학적으로 긴 설명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한 마디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합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반복적으로 기억하고 그리해서 뇌리에 깊게 깊게 넣어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억’과 ‘지킴’을 상징하는 두 개의 촛불을 키는 것입니다. 두 개의 촛불을 매 주일 보고 자라는 자녀들은 빛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이를 보지 않고 자라는 자녀와는 큰 차이가 있을 줄 압니다.

두 번째 오늘 본문 말씀인 민수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였기에 빛의 자녀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12정탐꾼에 속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나머지 열 명과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10명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수기 13: 32, 33절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외칩니다. 본문 말씀 7, 8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저희들의 자녀들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 두 명은 나머지 열 명과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저는 큰 차이를 오늘 본문 말씀 8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봉독해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특히 이 고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들이 가나안 땅을 보는 이 고백이 이들로 하여금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땅으로 가자고 외치게 합니다.
그러면 나머지 열 명은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 몰랐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13: 27, 28절에 보면 10명이 모세에게 보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분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10명도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직접 들어가 목격했습니다. 곧 두 그룹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두 그룹은 같은 사실을 아는 것 같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그룹은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한 그룹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렇다면 똑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확신 가운데 선포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열 사람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두 그룹 모두 가나안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그룹은 확신 가운데 말합니다. 또 한 그룹은 주저주저 하면서 말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긍정적인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열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그룹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났을까요? 반복 반복 반복에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10명은 가나안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의 지식으로 머리에 넣어 놓았습니다.

한 기자가 빌 게이츠에게 세계적인 부자가 된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였을까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두 가지 말을 반복합니다. 그 하나는 ‘왠지 오늘은 나에게 큰 행운이 생길 것 같다’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빌게이츠가 세계적인 부호가 된 것은 다름 아닌 반복의 중요성을 삶에서 실천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빌 게이츠의 반복적 고백이 그 안에 있는 천재성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빌 게이츠의 이야기가 반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머리에 넣어 놓은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반복 반복 반복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처음 안 사람은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사이에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8절 말씀입니다.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모세는 당연히 자기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곧 모든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이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세에게 들은 말씀을 반복 반복 반복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열 사람은 머릿속 한 구석에 넣어만 두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누가 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머릿속에 넣어 둔 자녀들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반복하며 고백하는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의 반복적인 고백이 자녀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꽃피게 해 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자녀들이 왜 그렇게 사회에 큰 공헌을 했다고요? 반복적으로 그들은 촛불을 키고 또 키고 또 키었습니다. 계속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짐없이….

교우 여러분, 저희 자녀들도 앞으로 어떤 어려운 역경에 처할지 모릅니다. 인생의 벽을 종종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뇌리에 하나님의 약속이 자리 잡고 있다면, 아니 하나님의 약속을 시시때때로 고백한다면 그들은 인생의 역경의 벽을 넘어 세상에서 큰 공헌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위하여 촛불을 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그 때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주신 말씀이 강하게 울리지 않을까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지 않을 때 온 세상은 문제투성이의 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때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반복하여 고백할 때 온 세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입니다.

아니 남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곳곳에 젖과 꿀을 찾는 신기한 마술사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들은….

교우 여러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가을부터는 자녀들과 함께 주일을 잘 지키십시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함께 듣고 또 듣고 또 들으십시다. 아니 듣기만 하지 말고 함께 외치십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진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온 세계가 가득 차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입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나아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앞으로 인생을 살아 갈 때 많은 벽을 만나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도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자녀들이 벽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담쟁이가 되어 그 벽을 넘게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들의 자녀들이 벽을 넘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자녀들을 위하여 촛불을 밝히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우리들의 자녀들은 놀라운 고백을 하면서 벽을 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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