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다시 쌓는 기초

날짜 : 2013.03.0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다시 쌓는 기초
성경본문 : 이사야서 58:6-12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30303.wmv

1500년도, 독일 어느 수도원에서 보수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수녀들이 기도실로 사용하던 방의 마루를 뜯어내니 그 밑에 여러 가지 물품들이 나왔습니다. 안경, 재봉에 사용하는 물건(thimble), 옷 만드는데 사용되는 물건(spindle), 순례자들의 배지 등 여러 가지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띈 것은 그 당시로부터 500년 전에 수녀들이 사용하던 기도서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는 약 1000년 전의 기도서겠죠. 그들은 500년 전의 수녀들의 기도를 나누게 되었고, 지금은 그 기도서를 통하여 1000년 전의 수녀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시간을 초월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이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기도서가 1000년이 넘는 시간적 거리에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1000년 전의 사람들과 기도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스스로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저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결코 그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쉬운 예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신약성경은 2000년 전 사람들과 함께 읽는 것이고 구약성경은 3000년 전 사람들과 함께 읽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현재 전 지구에 살았던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깊은 감격의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이사야서를 함께 읽었는데 약 2,500년 전 사람들과 우리는 같은 글을 읽은 것입니다.

오늘 여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전국 여선교회 임원으로 수고하시는 교우님이 저에게 올해 전 PCUSA 교회 여선교회 헌신예배 순서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시면서 저에게 순서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순서지에 이미 성경본문과 설교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성경분문은 이사야이고요, 설교제목은 주보에 기록된 대로 ‘다시 쌓는 기초’. 이 본문과 제목으로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본문과 설교제목이 주어졌으니 설교내용전문은 아니더라도 가이드라인 정도는 있겠지 하고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순서지를 주신 분에게 이메일을 다시 보냈습니다. “내용은 안 주십니까?” 그 분의 대답은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어진 본문과 설교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불평이 아니고…, 사실 저희 교단에 한인 교회가 400교회가 있습니다. 평균 100명이 출석을 한다고 생각하면 40,000명이 함께 본문을 읽고 같은 제목으로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동참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멋있습니까. 내용보다는 먼저 이 사실에 함께 감동하시기 바랍니다. 가끔 성가를 부르시는 분들이 노래보다는 가사에 은혜를 받으시라고 하시면서 성가를 부르시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게다가 4만 명 중에 여성 교우님들은 반이 넘을 테니, 곧 2만 명가량의 여선교회 교우님들이 하나가 되어 기초를 다시 쌓는 결단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 어느 때보다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리라 믿어집니다.

그러면 2만 명이 넘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다시 쌓아야 하는 기초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여선교회 회원들이 다시 쌓는 기초가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사야서 58장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후의 일이 기록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돌아 왔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다. 바벨론이 잘 정돈이 되어 있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 갈 때보다 더 황폐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기초를 먼저 쌓아야겠죠. 그러나 이런 곳에 기초를 다시 쌓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길은 있을 줄 압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갑자기 금식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금식과 기초를 쌓는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요?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금식을 하라는 말씀인가요? 사실 오늘 본문은 1절부터 삼았어야 합니다. 1절에서 5절까지를 보면 왜 금식에 대해서 언급하는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초를 쌓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금식이었습니다. 아니 금식과 함께 모든 절기와 예식을 철저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예배와 함께 모든 집회를 다시 회복시켜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비롯하여 모든 집회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잘 한 것이 아닙니까? 요즘 우리가 사순절을 지키고 있습니다만 사순절이나 대강절을 잘 지키기 시작한 것과 별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절기를 잘 지키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한 마디로 금식에 대해서 별로 좋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첫 단추가 잘 못 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황폐된 곳에서 절기를 잘 지킴으로 새롭게 기초를 다질 것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와 금식과 절기 지킴을 역겨워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들의 금식을 받지 않으셨을까요? 7절 말씀입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기들은 할 일을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들은 금식까지 하는데 하나님은 외면하신다고 불평합니다. 이처럼 불평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린 자와 나그네와 헐벗은 자, 그리고 골육을 피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사순절 새벽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저는 기도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자주 말씀드리곤 합니다. “개인기도도 소중하지만 이웃을 위한 기도를 잊지 마세요.” 말씀드립니다. 특별히 B40 Brookline주민들을 위한 기도를 빼 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그 때 우리들의 기도는 하나님께 더 잘 상달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8, 9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엄청난 약속입니다. 금식 등 절기를 지키는 것과 아울러 이웃을 돌 볼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빛이 새벽 같이 비칠 뿐 아니라 병든 자들은 치유의 축복을 누립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영락교회 대학생회를 다녔는데 아직도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강변을 거니는데 한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환자가 강에 뛰어 들어 그 사람을 건져내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도 모르게 정신 질환이 나았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와 있죠?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그 이외에도 엄청난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10, 11절 말씀입니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주린 자’가 또 나옵니다. 주린 자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쏟고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하니 쉽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샘이 되어 갔습니다. 우리도 이웃을 위한 샘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처럼 주린 자를 돌아보는 자들에게는 자신을 위한 축복과 이웃을 위한 엄청난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욕심이 많으신 하나님은 더 주시기 원하십니다. 1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네게서 날 자들이’ 했으니 자녀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축복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들의 자녀들이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을 약속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앞으로 자녀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다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는 놀라운 일에 참여케 하십니다. 단 이웃을 주린 자들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앞에 열거한 축복 보다 더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돌보는 자들의 자녀들을 세워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볼까요?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자녀들은 황폐된 곳을 다시 세우고 부모는 파괴된 기초를 쌓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렇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무너진 집들을 다시 세우는 것이고 부모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성벽을 먼저 지어야 할까요? 집을 먼저 세워야 할까요? 성벽이 더 먼저입니다. 성벽이 잘 쌓여진 후에 자녀들이 집을 잘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성벽을 아니 기초를 자녀는 집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곧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삶의 터전을 일구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세대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곧 3세대가 함께 국가와 민족을 세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교우 여러분, 부모가 기초를 잘 닦으면 자녀들은 그 위에 집을 잘 짓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은 거저먹기입니다. 반면 부모가 기초를 잘 닦지 않으면 자녀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많은 경우 부모가 기초도 안 쌓아 놓고는 자녀들이 집을 안 짓는다고 핀잔을 주지 않습니까? 사실 기초가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초는 부모들이 닦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자녀들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들을 걱정할 때입니다. 우리가 기초를 잘 닦을 때 자녀들도 잘 되고 국가와 민족이 다시 살아납니다.

말씀을 살펴보니 정말로 전국 여선교회에서 본문과 제목을 너무도 잘 선택하셨습니다. 지금은 다시 기초를 잘 쌓을 때입니다. 우리가 기초를 잘 쌓으면 자녀들은 저절로 그 위에 집을 잘 짓게 되어 있습니다.
여선교회 회원 여러분, 기초를 잘 쌓으시기 바랍니다. 기초를 쌓는 삶은 절기를 잘 지킴과 아울러 주린 자와 나그네와 이웃을 돌보는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들을 통해서 나라가 번성케 될 것입니다.

오늘 여선교회 회원들은 이러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위하여 헌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헌신예배를 드리는 회원들에게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선포하십니다. 본문 제일 마지막 구절입니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말씀을 거둡니다. 몇 주 전 오스틴에서 모인 집필자 모임에서 애틀랜타 베다니 교회 최병호 목사님이 선교지에서 만난 세 과부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작년 여름에 코스타리카 치라섬에 단기선교를 가셨습니다. 치라섬은 코스타리카 서부 태평양 해변에 있는 섬이라고 합니다. 단기 선교를 갔는데 숲 속 깊은 곳에 멋진 호텔이 있고 세 여인이 주인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위험한 곳에 어떻게 세 여인이 호텔을 운영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물론 이들은 다 크리스천들입니다.

이곳 섬사람들은 배로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돈 벌어 술 마시고, 도박하고, 마약에 빠져 처자식들을 버리고 떠나버려서 섬에는 많은 과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부들 중에 10명의 크리스천들이 같이 모여 합심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편도 없이 돈도 없이 자녀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의 지혜를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배를 만들어서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라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기도응답으로 알고 정글에서 나무를 잘라서 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과부들 중에 7명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기도를 중단하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3명의 과부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세 명의 힘으로 어려우니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돈도 없고, 나무도 없고, 톱도 없고, 기술도 없어서 배를 건축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돈 있는 사람, 기술 있는 사람, 돕는 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 3과부는 배를 타고 산호세 도시로 나와서 큰 교회를 방문하며 담임목사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은 목사님들이 자기 교회에 간증을 시켜주었습니다. 간증을 들은 교인들 중에 돈 있는 부자들과 건축기술자들이 감동을 받고 헌신하기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배를 만들려면 나무를 잘라야 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섬의 관공서에 찾아가 정글에서 나무를 자르게 해달라고 간청했더니 과부들의 딱한 사정에 감동받은 관리들이 나무를 자르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불가능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잘라 20명이 탈수 있는 큰 배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보호를 위해 정부에서 여름철 6월-7월 두 달간은 물고기를 못 잡게 했습니다. 그래서 어떡합니까? 또 다시 여름철에 생계를 유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호텔을 지어서 여름철 관광객의 숙박을 통해 수입을 얻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관공서에 가서 정글의 정부 땅을 달라고 간청했더니 관리가 감동하여 땅을 주었습니다. 그 땅에 건축을 하여 호텔 2채를 지어서 여름철 관광객들의 숙박으로 많은 수입을 올려서 그 마을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단기선교팀 중에 치과의사가 동네 사람들의 치아를 보더니 미국의 한인들 보다 치아가 더 좋다고, 치아 치료가 너무도 잘 되었다고 다 놀랐습니다.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이 세 과부가 돈을 동네에 기증하여 동네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매달 의사들을 초청하여 무료로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번 돈으로 마을학교 건축에 후원하고, 학생들의 유니폼을 기증하고, 학교 이사장으로 학원사역에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절기만 잘 지키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주린 자와 나그네와 이웃을 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쌓은 기초 위에 자녀들은 멋지게 도시를 건설할 것입니다.

이처럼 무너져 가고 있는 오늘의 사회가 PCUSA 여선교회원들을 통해서 다시 기초가 세워질 것입니다. 자녀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질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