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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다 일마다

날짜 : 2012.12.30
예배명 : 송년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때마다 일마다
성경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16-18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21230.wmv

Pablo Casals이라는 유명한 첼로 연주가가 있습니다. 87세에 작고하신 분이십니다. Norman Cousins이라는 작가가 파블로가 작고하시기 전에 집으로 방문을 하여 그가 사는 하루를 지켜 보았습니다. 그는 말년에 류마치스와 폐질환등 여러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침 8시에 아내의 도움을 받아 일어납니다.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거실로 들어갑니다. 몸은 많이 굽어 있고, 호흡이 고루지 못합니다. 손은 부어 있고 손가락은 잘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아침 식사전에 그는 피아노에 가 앉습니다. 사실 이 분의 전공은 첼로입니다. 하여튼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몸을 가눕니다. 부어 있고 움켜진 손가락을 피아노 건반 위에 놓습니다. 갑자기 굽었던 등은 펴지면서 숨을 몰아 쉬기 시작합니다. 바하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류마치스로 인한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진 듯합니다. 모든 몸의 고통은 음악의 힘에 압도 당한듯합니다. 곡을 마친 후 손을 가슴에 얹습니다. 바하가 바로 자기 가슴에 대고 말하고 있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이어서 브라함스의 곡을 연주합니다. 더 이상 손가락은 굽어 있지 않습니다. 또 다시 멋진 연주를 펼칩니다. 연주를 마친 후, 혼자 일어 섭니다. 방에 들어 올 때보다 훨씬 큰 키에 웅장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식당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훨씬 활기찬 모습이 되어서 바닷가로 산책을 나갑니다.
집에 들어 온 후 편지등을 쳌하고는 점심을 들고 낮잠을 잡니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아침에 일어났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굽은 허리에 퉁퉁 부운 손, 그리고 거친 숨소리.
그는 이번에는 자기의 전공인 첼로를 움켜 쥡니다. 다시 허리는 곧아지고 손가락은 펴집니다. 손가락과 손 그리고 팔이 멋진 조화를 이루면서 기가막힌 음악을 만들어 갑니다.
방문자인 Norman은 두번의 기적을 하루동안 체험합니다. 폐질환 그리고 류마치스로 인한 어떤 장애도 그 안에 있는 창조적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루에 두번씩 이러한 기적의 선률은 새로이 창조되곤 하였습니다.
많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육신의 장애가 도리어 음악의 세계를 이길수 없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더 시간이 가기 전에 몸이 더 굳어지기 전에 음악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Pablo처럼 음악의 경지에 아무나 다다를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편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인생의 장애는 육신적 장애뿐 아니라 여러가지 장애가 있습니다. 정신적 사회적 장애들이 늘 우리 앞에 널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를 뚫고 승리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님들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축복의 선언을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영적으로 혼잡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특히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아주 혼미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여러가지 말들이 많이 나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2012, 12, 21일이 마야 달력으로는 세상의 마지막이라는 말들을 많이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사실 아무도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이 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재미로 이야기를 나눈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심각했습니다. 재림에 대한 소문이 교회에 큰 불안감을 조성시켰습니다. 이들에게 사도바울은 여러가지로 권면을 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가르침을 권면을 굳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아울러 종말이 가까왔으니 일 안하고 먹기만 하려는 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일하면서 자기의 양식을 먹으라는 권면의 말씀을 합니다. 이 모든 권면을 마치면서 사도바울은 축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축복의 기도를 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큰 깨달음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아주 놀라운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 뜬 소문만 듣고 마음이 늘 붕 떠 있는 교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데만 보고 있지마세요. 평강은 이미 여러분의 것입니다. 평강의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평강을 먼저 체험하세요. 여러분과 함께 계신 평강의 주님을 먼저 체험하세요. 그런 후에나 하늘을 바라 보세요.”

이는 마치 Pablo나 음악인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에게도 비슷한 멧세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Pablo를 부러워하지마세요. 파블로처럼 되지 못해 안타까워 하지마세요. 이미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는 더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평강. 때마다 일마다 주님은 평강을 주십니다. 이 평강은 모든 장애를 이기고도 남게 합니다. ”
교우 여러분, 여러분 삶에 많은 장애들을 느끼지 않습니까? 이런 장애들을 이기는 길이 바로 ‘평강’이 아닐까요?

‘평강’ 하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 먼저 찾아 보면 다윗이 주는 이미지가 시편 23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이 주는 이미지는 풀밭과 물 가입니다. 사실 호숫가가 평강의 이미지를 제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도 ‘평강’하면 생각나는 곳이 있습니다. 약 10여년전에 다녀온 백두산 천지입니다.
다윗이 생각하는 물가가 호숫가인지 아니면 강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백두산 천지를 생각하면 신비스런 평강을 체험합니다. 사진으로 한번 볼까요?
(스크린-백두산 사진들)
얼마나 평화스럽습니까?
그런데 그 높은 곳에 있는데 왜 물이 모인 곳은 언제 어디서나 평강을 느끼게 할까요? 물은 늘 낮은데로 향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낮은 곳으로 흐리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높아지려는 사람 옆에서 평강을 느끼십니까? 아니면 낮아지려는 사람에게서 평강을 느끼십니까?
사도바울은 주님을 ‘평강의 주’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주님도 늘 낮아지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주일에는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탄주일을 지켰습니다. 말구유에 태어나신 아기예수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평강을 체험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낮아지심 그 자체이셨기 때문입니다. 말구유로 낮아지셨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늘 평강이 넘쳐 났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도 가장 낮은 곳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낮은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늘 낮은 곳을 찾아다니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가면 늘 평강을 체험합니다. 왜냐하면 낮은 곳을 좋아하시는 평강의 주님께서 그곳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찾은 평강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승리하게 합니다.

John Pierpont라는 분이 1800년도 말에 살았었습니다. 그의 삶은 좋게 말해서 낮아짐의 연속이었고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덕분에 예일대학을 졸업합니다. 할아버지가 예일대 창설을 도운 분중에 한 사람입니다. 대학 재학시절 교육학을 전공합니다.
졸업 후 선생으로서 실패합니다. 학생들에게 너무 쉽게 대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법조계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로서도 실패합니다. 너무 고객들에게 잘 해주었고, 무리한 요구까지 들어주려 하였고, 정의 편에 늘 섰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비지니스맨이 됩니다. 또 실패합니다. 마음이 약해서 이익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 후 시를 써 봅니다. 그러나 royalty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인으로도 실패합니다. 여러 가지 사회 경험을 쌓았으니 목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하바드 신학대학에 입학합니다. 그 당시 hot issue인 노예해방을 주장하다가 쫓겨나갑니다. 목사로도 실패합니다. 정치판에 뛰어 듭니다. 노예해방을 주장하면서 주지사에 도전하지만 역시 고배를 마십니다. 정치인으로도 실패합니다.
결국 남북전쟁시 북군의 군목으로 자청합니다. 그런데 건강이 안 좋아 군목일도 감당치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워싱톤 정부 안에서 사무직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일도 재미를 못 봅니다. 몇 년 후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인, 목사, 철학자, 박애주의자’. 묘비만을 통해서 보면 John Pierpont는 결코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묘비가 아니라 그가 인생의 실패자가 아닌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한 노래입니다. 12월에 가장 많이 불리워지는 노래를 이 분이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Pierpont는 펜을 들고 가족을 위해서 친구들을 위해서 교우님들을 위해서 작곡 작사하기 시작합니다. 그 선물이 바로, Jingle Bell.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그에게서 인생의 실패는 아름다운 흰 눈이었습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그는 폭소를 터뜨리며 달린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평강.
평강의 사람은 이처럼 자신의 가장 낮은 곳을 감사한 마음으로 내려갑니다. 자신의 가장 낮은 곳에서 평강을 찾습니다.

오늘 송년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각자의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가봅시다. 사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감사하는 회중’이었습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한 해를 돌아 보며 감사하십시다. 특히 감사한 마음으로 각자의 가장 낮은 곳을 찾아 가십시다. 우리는 평강을 체험할 것입니다. ‘징글벨’과 같은 작품이 창조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참 평강을 소유한 자들은 자신의 삶에만 관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삶에도 관용을 베풉니다. 그 때 진정한 평강을 누립니다.

‘관포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시대에 관중과 포숙이라는 두 친구들의 우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관중의 말을 들으면 이들의 우정을 알수가 있습니다.
“나는 포숙과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탓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그는 나를 비열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벼슬길에 나갔다가 물러나곤 했었지만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포숙은 평강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중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곤 했기에 관중을 끝까지 사랑할수 있었습니다. 포숙의 평강은 관중에게도 축복이 된 것입니다. 포숙은 이웃에게 관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송년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각자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감사의 마음을 안고 내려가 보십시다. 이웃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보십시다. 우리 각자에게 관용하십시다. 이웃에게 관용하십시다.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평강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강의 선물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님만이 주실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평강의 선물을 안고 새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다. 어떠한 장애도 이기고도 남는 한 해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황종렬 신부님이 멋진 글을 썼습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는 데 있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질 줄 모르면, 그것들이 아무리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아예 살아 있는 꽃이 아닌 것이지요.”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흙을 그리워하고 흙으로 향해 떨어질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신부님은 표현합니다. 바로 평강을 향하여 가는 꽃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물이 고여 평화로운 호수가 되듯이 꽃들도 아래로 떨어질 것을 기다리기에 평화로운 꽃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추운 겨울을 이기고 새로운 꽃을 피어 오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2012라는 꽃이 겸손히 지고 있습니다. 평강의 한 해로 마감하십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평강을 안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십시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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