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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으로 가자

날짜 : 2012.12.2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베들레헴으로 가자
성경본문 : 누가복음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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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현재 수도인 텔아비브에 한 대형 산부인과 병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형 산부인과 병원이 그곳에 서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병원이 있는 교차로를 지나는 두 거리 이름 때문입니다. 십브라 거리와 부아 거리입니다.
십브라와 부아. 성경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애굽왕 바로가 십브라와 부아를 부릅니다. 이들은 히브리인 산파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나거든 다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애굽왕의 말을 안 듣고 살려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계속 강성하게 되고 두 산파의 집도 더 흥왕해졌습니다.
곧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텔아비브에 두 거리 이름을 정했고 두 거리가 교차하는 사거리에 대형 산부인과가 서게 된 것입니다.
요즘도 많은 어머니들이 이 병원을 찾는 것 같습니다. 자기 민족을 부강하게 했던 두 산파의 믿음을 이어 받아 계속 자기 민족과 자기 자녀들이 복을 받기를 원해서 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 교회에서 6명의 자녀들이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혹시 다음에 자녀를 낳으시면 텔아비브의 이 병원을 선택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러나 아무도 거기까지 가서 자녀를 낳으실 분은 없을 줄 압니다. 왜냐하면 어느 병원에서 낳았다는 것이 자녀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태어난 상황부터 아주 중요한 분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그 분의 탄생을 축하하며 그 분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온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요셉과 마리아도 호적 하러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미 마리아는 만삭이 되었을 때입니다. 한편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천사들로부터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성모 마리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 황제의 명령대로 베들레헴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웬걸 모든 여관은 꽉 차 있었습니다. 아마도 먼저 온 사람들이 여관을 다 차지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서둘러 온다고 했지만 뱃속의 아이 때문에 생각보다는 더 오래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여관방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구간이라도 묶게 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태어나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목자들에게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의 메시지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11, 12절 말씀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곧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구주가 나셨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바로 그 표적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구간에서 구세주를 태어나게 하셨고 그 아기를 구유에 누이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바로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는 표적이고 결심인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곧 아기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하셨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모든 인간들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키워졌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난 것부터 중요합니다. 어떻게 태어나신 것을 통하여 그는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자임을 선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를 천사들이 몸소 찬양으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말구유에 가장 낮게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천군 천사들이 밤하늘을 밝히면서 찬양으로 도리어 축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하늘을 밝히는 천군천사들의 찬양을 들은 목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15절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아기 예수의 탄생하신 곳을 목자들은 찾아가 봅니다. 당연히 천사들의 메시지와 하늘을 울리는 찬송을 듣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목자들은 어둔 밤 베들레헴으로 향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말한 그 표적을 보기 위해서….

사실 목자들이 양을 치던 곳과 베들레헴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좀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목자들은 양들을 놓고 베들레헴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목자들이 서로 말하고 간 것을 봐서 그냥 양을 놓아두고 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니면 세 목자가 있었더라면 한 목자만 남겨 두었을까요? 하여튼 한 목자를 남겨 놓고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목자들은 이제 양을 두고 베들레헴으로 걸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으로 걸어가면서 목자들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들이 남겨 놓은 양들을 생각했을까요? “말구유에 구주가 태어나셨다는데 과연 어떤 분이실까?” 두말할 나위 없이 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베들레헴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Robert Fulghum이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분이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인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유치원 때 배웠습니다’의 저자입니다.

“나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는다. 신화는 역사보다 강력하고, 꿈은 사실보다 강하며, 희망은 경험보다 한 수 위이며, 웃음이 슬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묘약이며,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

특히 첫번째 문장이 지식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나는 상상력이 지식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는다.”

목자들에게는 이 상상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상력을 안고 베들레헴으로 향하였습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의 장면을 상상하느라 두고 온 양들도 까맣게 잊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 상상한 축복의 세계를 선물로 안고 아기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아기 예수는 처음으로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을 밤새 상상하며 걸어 온 목자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들 말고 또 누구를 아기예수는 말구유에서 만나죠?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동방박사들을 만납니다. 이들은 몇 달을 아기 예수를 상상하면서 동방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아기 예수는 당신을 상상하며 걸어 온 자들에게만 말구유에 누워있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종종 시간만 나면 교회 주변을 돌곤 합니다. 어떤 날은 Pierce School과 Town hall 주변을 돌곤 합니다. 물론 그 동안 파킹랏을 위해서 돌곤 하였습니다. 저의 기도가 오늘 부터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한 코스입니다. 이 코스만 하는 것은 좀 죄송하니 또 다른 코스가 있습니다. 또 한 코스는 옛날 농장식품을 지나 지하철역을 거쳐서 삥 돌아 천주교 성당 앞으로 해서 교회로 걸어오곤 합니다.

며칠 전 두 번째 코스로 산책을 하였습니다. 천주교 성당을 지나오는데 예수님의 탄생하신 장면인 Nativity scene을 세워 놓은 것을 멀리서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올해도 이것을 또 세워 놓았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Nativity scene을 뒤로하고 몇 발자국 걸어가는데 제 뇌리를 확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너는 대강절 기간인데 잠시 멈춰서 아기 예수를 보지도 않고 가냐? 그렇게 바쁘냐?”

그 생각이 제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다시 몇 걸음 물러서서 nativity scene앞에 섰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장면입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판에 박힌 듯이 그대로 실물화가 되어서 서 있는 것뿐임을 다시 한 번 느껴 봅니다. 어디를 가도 이 장면은 너무도 쉽게 대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냥 스쳐 지나간 것입니다. 저는 목자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목자의 상상력이 있었더라면 잠시 목자가 되어서 아기예수를 비롯하여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물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요?

개인의 창의력에 대한 조사 결과를 어느 책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5세의 창의력은 90%라고 합니다. 17세의 창의력은 10% 40세의 창의력은 2% 다행히 그 이상은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nativity scene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는 통계입니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하나로 생각한다면 17세만 지나면 상상력은 10%로 떨어집니다. 더 이상 상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목자들의 나이가 몇 살이었을까요? 밤중에 양을 지키는 목자들이었으니 목동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17세 이상은 다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해 듣고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남아 있던 10% 상상력이 되살아났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의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들은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랜만에 창의력이 가득 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목자들은 각자 자기가 상상한 세계를 아기예수께 선물로 드린 것입니다. 아기예수는 미소로 선물에 대한 응답을 합니다. 목자들은 첫 번째로 아기 예수를 볼 수 있는 선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위한 절기이기보다는 성인들을 위한 절기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쉽게 펴고 아기예수를 쉽게 만납니다.

우리는 대강절 기간 특히 성탄절을 맞이하며 아기예수의 탄생의 장면을 깊게 상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가 임하지 않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베들레헴을 향하여 걸어가면서 아기 예수를 상상하는 축복을 누리십시다. 혼자서 조용히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마구간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특정 목적지를 마구간이라 정해 놓고 산책하면서 마구간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신 분들은 그림을 그리셔도 좋을 줄 압니다. 처음 상상할 때는 별 의미가 없는 듯 느낄지 모릅니다. 상상한 시간이 긴만큼 삶에 신비스러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예수를 상상한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많은 축복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서른 살에 이미 세계적인 화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교황으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실 시스티나 성당은 말이 성당이지 작은 기도실이었습니다. 당대 예술가들은 미켈란젤로가 교황의 부탁을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라한 기도실 천장에 고생하면서 그릴 것이라고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립니다. 얼마나 열심히 작업했는지 건강이 많이 상했습니다. 4년 동안 친구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늙어 버렸습니다.
한 친구가 질문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곳인데 왜 그렇게 수고를 하는가? 미켈란젤로가 대답합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다니!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길 원하는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상상의 세계는 지금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상상의 세계는 미켈란젤로처럼 세계적인 작품을 창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우리 개인의 삶에 우리 가정에 이 사회에 남겨지지 않을까요?

목자가 되십시다. 성탄절은 우리 모두가 상상력이 풍부한 목자가 되는 절기입니다. 아니 상상력이 1%만 남아 있으면 어떻습니까? 0.1%만 남아 있으면 어떻습니까? 더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상상의 세계를 통해 아기 예수를 만나는 사건은 길이길이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창조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미켈란젤로 못지않은 위대한 화가들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오래 전 제가 본 교회에 오자마자 저의 사무실이 현재 미국 교회 목사님이 사용하시는 사무실이었는데 그 사무실에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겟세마네의 주님을 그리기 위해서 많은 상상을 한 흔적이 역력했던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의 작가에 대해서 들었는데, 암이 걸린 후 그 그림을 그리셨다고 합니다. 암에서 치유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겟세마네의 주님을 상상할 때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를 상상함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는 절기입니다. 이 축복을 마음껏 누리십니다. 육신적인 축복뿐 아니라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축복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목자와 같이 아기예수를 보러 베들레헴으로 가십시다.

천사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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