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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날짜 : 2012.08.1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성경본문 : 예레미야 30: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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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리멘(Rachel Remen) 이라는 분이 ‘나의 할아버지의 축복’ 이라는 책을 지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인삿말을 시작합니다.
4살 때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할아버지에게 작은 종이컵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레이첼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면서 컵 안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흙이었습니다. 어린 레이첼은 실망합니다. 한편 할아버지는 이 흙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대신 손녀의 손을 잡고 부엌으로 함께 가더니 컵에다 물을 부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만일 네가 매일 이 컵에다가 물을 주기로 약속한다면 언젠가 놀라운 일이 생길거야.”
손녀는 이상하듯 할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전혀 말도 안되는 일을 할아버지가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Yes”할 것을 격려합니다. 어쩔 수 없이 손녀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몹시 궁금해 합니다. 약속대로 매일 물을 줍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물을 주는 일도 자꾸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일이 안 생깁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이제 그만 주어도 돼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매일, 레이첼.”
두 번째 주는 더 힘들었습니다. 손녀는 약속한 것을 후회하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는 손녀는 컵을 그냥 가져가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매일, 레이첼.”
세번째주가 되었습니다. 컵에 물을 주는 일을 자주 잊어버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물을 주고 다시 자곤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입니다. 그 전날 없었던 새파란 두 잎이 흙 위에 보였습니다.
손녀는 너무 놀랬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도 자기처럼 놀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할아버지는 놀라는 표정을 안 짓습니다. 할아버지는 도리어 손녀에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곳곳에 생명이 숨겨져 있단다. 언젠가 돋아나길 기다리고 있지.” 이에 손녀가 묻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물을 필요로 하나요?” 할아버지는 답변합니다.
“아니. 모든 것은 너의 성실함(faithfulness)을 필요로 하지.”
멋진 할아버지의 대답입니다. 사실 할아버지는 유대교 학자였습니다. 레이첼은 네 살 때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로 인해서 놀라운 삶의 교훈을 받습니다. 성실한 믿음과 행함의 삶의 소중함을 어릴적에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레이첼은 남다른 지혜를 안고 하루 하루 축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레이첼이라는 최고의 축복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 할아버지는 당신의 손녀가 최고의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귀한 교훈을 4살 때에 가르친 것입니다. 매일 매일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축복의 날임을 4살 때 경험케 한 것입니다. 만일 약속을 믿고 성실한 삶을 산다면 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모든 사람이, 모든 민족이 최고의 축복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모든 민족이 최고의 삶을 누리도록 가르치시나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포로로 잡혀 가 있을 때인 것 같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정확히 언제 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분명한 것은 포로기 초기에 이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포로기 초기에 이미 앞으로 올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벌도 제대로 받지도 않았는데 너무 이르지 않은가요? 하여튼 계속해서 예레미야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 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너무도 급하십니다. 벌의 쓴 맛도 맛보지 않은 그들에게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매를 들자마자 벌써 하나님의 입에서는 미래에 나려주실 축복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택한 받은 민족의 위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잡아 온 바로 그 민족을 벌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하신 후 최소한 5-60년은 포로 생활을 하게 합니다.
그러면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70년간 벌을 주실 거면 거의 70년이 끝날 즈음에 가서 이런 축복의 말씀을 하시지 왜 미리 김치국부터 마시게 하시는지 좀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Rachel은 삼 주를 힘겹게 기다렸는데 어떻게 5-60년을 기다리란 말입니까? 그 이유를 2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물론 ‘그 영도자’ ‘그 통치자’를 넓게는 신학적으로는 메시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습니다. 보아야 합니다.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말씀하셨는데, 이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닮은 자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곧 담대한 마음으로 삶의 주인공이 되어서,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 안에 메시야가 탄생할뿐 아니라 메시야를 닮은 많은 역사의 주인공들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곧 21절이 의미하는 바는 70년의 포로 생활을 통해 위대한 민족의 영웅들이 탄생될 것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의 영웅들이 탄생되기 위해서 5-60년의 기다림이 필요함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민족의 영웅들이 탄생됨과 아울러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2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민족의 영웅들의 탄생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서 우뚝 선, 세계를 이끄는 민족이 될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8/15광복절 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을 예언하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우리 한 민족을 일제 36년의 시간을 보내게 하신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들려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몸소 들려주시기 위해서 36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요?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성실하게 믿음을 잘 지켰기에 오늘의 우리 한민족이 세상 가운데 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많은 영웅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고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삶에 임했습니다. 이와 같은 분들로 인해서 오늘의 한국이 세워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생각 보다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잠시 부끄러운 한국 교회 역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1939년 9월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합니다. 1910년 합방이 되었는데 1940년이 다 되서 신사참배를 결정한 것입니다. 해방이 언제 되었죠? 약 5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 교회적으로 신사참배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30년을 잘 이겨냈었는데…
그뿐 아니라 교회가 전투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라고 쇠붙이가 될 만한 놋그릇 젓가락 세숫대야 심지어 요강까지 거두어 갔으며 교회 종까지 자진 헌납하였습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일본군에게 위문 편지 위문품까지 보냈습니다.
그것까지도 참을만합니다. 여성지도자들은 근로정신대(위안부)를 모집하여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5년을 못 기다려서….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환난의 시간은 때로는 이러한 비겁한 사람들을 배출해 냅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가롯 유다는 어디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가 영웅을 탄생시키는 것을 멈추게는 하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영도자들을 만드는데 일조를 담당한다고나 할까요?
대표적인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너무나 잘 아시는 안중근 의사입니다. 이 시간 잘 알려진 이야기는 생략하고 안중근에 의해 피격당한 한 사람의 고백을 소개해 드립니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을 죽이려 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도 총에 맞았습니다. 그 때 덩달아 피격을 당한 다나카씨라는 분에게 어느 일본 사람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선배님이 지금까지 만난 세계의 명사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물은 누굽니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안중근일세.”
“선배님은 바로 그의 총에 맞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정말 유감스럽게도….”
“훌륭한 사람은 순간의 짧은 만남으로도 알 수 있네. 인간의 깊이란 긴 세월이 흘러도 잘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순간적으로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지. 그 사람의 행위가 순간적으로 이해될 때도 있다네. 안중근이 이토를 향해 던진 눈길에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청량감이 깃들어 있었지. 순간 나는 ‘이 자는 여느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네. 묘한 얘기지만 나는 총에 맞은 아픔보다도 안중근의 눈망울에 정신이 팔려 있었네.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은 겨우 2분에 불과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안중근이라는 비범한 인물됨에 완전히 감복하고 말았다네. 이것은 바로 인스피레이션, 즉 영감이라는 거겠지.”

물론 안중근 의사는 일제 36년의 고통을 맛 본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사형 당한 후 조선은 공식적으로 일본에 합병됩니다. 그는 천국에서 일제 36년을 보냅니다. 그러나 안중근이 있었기에 3/1운동이 있었고 유관순과 조만식, 이승훈, 김구와 같은 분들이 줄줄이 민족의 영웅으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요? 결국 일제 36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 한 민족은 우리의 이야기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 한 민족의 영도자를 찾은 것입니다.

제가 그동안 재미있게 보던 한국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인데 저의 대학교 시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기에 아주 좋아했습니다. 얼마 전 배우 중 몇 명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조연으로 나온 두 배우가 솔직한 고백을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둘이서는 시간만 나면 늘 자기들의 고민을 나누었는데, 자기네는 한 씬이 나오던 두 씬이 나오던…, 자기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자기네들이 맡은 역은 남의 이야기를 위해서 나오는 그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둘이서 자주 그 서러움을 나눌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곧 자기들은 이야기가 없는 사람의 역을 맡고 있다는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자못 놀란게,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만 하고, 그것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extra든, 돈만 받으면 되고 그것으로 만족해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실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드라마 안에 나오는 배역의 이야기라도 자기의 이야기가 있는 배역을 맡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죠. 주인공이 되어야죠.
자기가 맡은 배역의 이야기가 없을 때 배우가 보람을 못 느끼는데, 하물며 우리들의 인생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각기 자기의 이야기가 있는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드시기 원하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서 살 수 있을까요? 또 다시 일제36년과 같은 시간이 오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다시 한번 21절을 봉독해 드립니다.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 드린대로 유일한 영도자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일제 36년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많은 영도자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안중근 의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며 아울러 우리 민족의 영도자들의 교훈을 따르며 살 때 진정 우리도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 때 우리는 안중근 의사처럼 되진 못해도 우리 나름대로 최고의 삶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요? 매일매일 성실하게 주어진 삶에 충실한다면 말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컵에 물을 성실하게 뿌린다면 말입니다.
분명히 지금도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꼭 본받아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이등박문을 저격한 사람으로만 아는 것은 빙산의 일각만을 아는 것입니다.
그가 오늘도 한민족의 영도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한 민족만을 사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천주교인인데, 그의 영세명이 토마스입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토마스가 나중에 인도까지 와서 선교하다가 순교합니다. 그는 도마처럼 아시아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세명을 토마스로 삼은 것입니다. 아시아의 평화 곧 세계 평화가 그의 염원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한국인이 아니었습니다. 동양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사형받기 전까지 썼습니다.
그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매일 매일을 소중하게 살았습니다. 자기를 감시하는 일본인 간수들에게까지 많은 감명을 주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일본인들의 악은 미워했지만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몹시도 사랑했습니다. 그는 실로 사랑의 주인공으로 살았습니다.
총과 사랑, 어울리는 것 같지 않죠. 그러나 안중근의 삶 속에서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어울릴 수 없는 것이 그 분 안에서 어울리게 되는 특별한 삶을 그 분은 사셨습니다. 아울러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한편 민족의 영웅들이 열어 놓은 길을 가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최고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제는 저희 교회에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Oasis café music Night에 일본 가수들을 초청해서 멋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7명의 가수들이 멋진 연주를 해 주었습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에서 시작해서 일본식 전통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요일에는 올림픽 한일전을 관람하면서 한국을 응원하였고 어제는 일본 음악가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환호했습니다. 언제 한국이 일본을 이겼었냐는 듯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참 자유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만일 안중근 의사가 지금 이곳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면 그도 마음껏 일본인을 사랑하지 않을까요? 아니 전세계인을 사랑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실히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이 축복이 이뤄집니다. 참 자유인이 됩니다.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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