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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회중

날짜 : 2012.01.0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감사하는 회중
성경본문 : 에베소서 5장 15-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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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손가락이 각각 자기 자랑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번째 손가락이 말합니다.
“내가 최고야. 내가 엄지니까.”
둘째 손가락이 이에 질세라 자랑합니다.
“무언가를 가리킬 때 내가 제일 많이 사용된다. 나 없이는 얼마나 불편할까.”
셋째 손가락은 다른 손가락들을 쳐다보며 으시댑니다.
“그렇지만 나란히 놓고 키를 재 봐. 내가 우리 중에 제일 크다.”
넷째 손가락은 잘난 체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약혼이나 결혼 같은 귀중한 사랑을 서약할 때 내 손가락이 사용되는거 알지?”
손가락들은 모두 다 자기 자랑을 한 가지씩 내놓았지만, 마지막 남은 다섯째 손가락은 내놓을 자랑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손가락이 당당히 나와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너희들 나 없으면 병신이다.”

우리들의 삶도 이 다섯 가지 요소가 함께 엮어져서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엄지라고 하면 자기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일줄 압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문의 자랑 내지 전통일줄 압니다.
얼마 전에 토요 아침 기도회에서 제가 뭐니뭐니해도 한국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씨니까. 기도회를 마치고 친교하는 시간에 김 모교우님께서 말하기를, 뭐니뭐니해도 한국 역사에 가장 중요한 인물은 김유신 장군이라고 자랑을 했습니다. 이처럼 모두 우리들에게는 자기만의 자랑거리 엄지가 있습니다.
두 번째 손가락은 무엇일까요? 각자가 소유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지난 일년을 보람되게 지날 수 있었던 것은 각자 나름대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손가락은 나만의 독특한 경험일줄 압니다. 내가 맞이한 경험은 나밖에 아무도 쌓은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나로 자라게 한 경험이 바로 세번째 손가락이지 않을까요? 새해에도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쌓아 갑니다. 이 경험이 우리를 우리 되게 할 것입니다.
네 번째 손가락은 약속을 상징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약속으로 엮어져 있지 않습니까? 새해도 하나님과의 약속과 이웃과의 약속이 원활하신 분들의 삶은 활짝 필수 밖에 없습니다.
이 네 가지 요소만 있으면 우리들의 삶은 완벽해 보이지 않습니까? 자존감의 엄지, 비젼의 검지, 쌓은 공력의 중지, 약속의 약지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손가락이 있습니다.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삶에서 다섯 번째 손가락은 무엇일까요? 보기에는 없어도 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없으면 나머지 삶의 기능을 마비시키게 하는 이 손가락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입니다. 감사가 우리들의 삶을 완성시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에베소서는 서신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책입니다. 짧지만 모든 요소가 함축성 있게 조화를 이루어서 멋진 편지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이 에베소서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아주 잘 표현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 관계로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지만 에베소서에는 신앙의 자존감, 비죤, 쌓은 공력, 약속에 대한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순신과 김유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자존감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1:23절 말씀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여기에는 교회의 비젼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것이 모든 교회의 비젼입니다. 세 번째로는 2:10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선한 일의 중요함을 말씀합니다. 신앙의 중지입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해진 우리는 선한 일을 쌓아가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5절 말씀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신앙의 약지입니다. 삶의 놀라운 축복은 이미 약속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네 가지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처럼 사도바울은 소중한 신앙의 네 가지 요소를 잘 설명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최고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사도바울은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가 없을 때 신앙의 자존감도 비젼도 공력도 약속에 대한 믿음도 모두 미완성이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football을 좋아하시는줄 압니다만, New England Patriots이 잘 하기 때문에 제가 예화로 종종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로서 regular season은 끝나고 다음주부터 playoff가 시작됩니다. Playoff 경기가 시작되면 신문지상에는 온통 당일 게임하는 두 팀을 비교하는 기사들로 가득찹니다. 몇 가지로 나누어서 비교하곤 합니다.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비교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쿼터백을 비교합니다. 그리고는 전반적인 공격팀, 다음으로는 전반적인 수비팀, 네 번째로는 코치를 비교합니다. 그런데 항상 제일 마지막에 한 가지는 애매모호한 것을 남겨 둡니다. 영어로는 intangible이라고 하는데,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항목을 남겨 둡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위의 네 항목에 강세를 보였어도 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약하면 질 찬스가 많다는 식으로 평가를 하곤 합니다. 반대로 위의 네 항목에 약세를 보였어도 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강하면 이길 찬스가 많다고 평가를 하곤 합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는 이 intangible은 바로 감사였습니다. 감사가 없으면 자존감도 비죤도 노력도 약속도 다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하면 요즘 늘 저의 머리를 맴도는 말이 있습니다.
“벼룩이로 인해서 감사하라.”
지난 감사절 주간에 열린 쉐마의 밤때 말씀드렸었죠. 삶의 벼룩이로 인해서도 감사하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면, 코리텐붐이 감방에서 벼룩이로 인해서 불평을 하자 언니가 벼룩이로 인해서도 감사드려야 한다고 충고를 주었습니다. 언니의 충고를 받고 벼룩이로 인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감방에서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감방에서 성경공부를 하면 즉시로 총살을 당하게 되어 있는데 총살당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감방에 벼룩이 때문에 감시병들이 그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사히 살아서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벼룩이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에게 오는 축복입니다. 코리텐붐의 감사의 새끼 손가락으로 인해서 그의 네 손가락이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한 감사면 충분할까요? 사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두 가지 감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여,”
반면 4절 말씀을 보면,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여기서 감사는 서로 서로 하는 감사의 말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곧 다섯번째 손가락은 두 손가락이 있습니다. 왼손, 오른손 각기의 손가락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이 두 소지가 다 소중합니다. 어느 하나 소홀히 여길수가 없습니다. 각자 편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른쪽 소지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상징한다면 왼손의 소지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를 상징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이 두 가지 감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한 쪽 감사만 있으면 두 손 중에 하나는 새끼 손가락이 없는 것입니다.

L.A(Los Angeles) 대법원에서 판사로 일하는 존 크래릭(John Kralik)이라는 판사가 있습니다. 이 분이 ‘365일 감사’(365 Thank Yous)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실 이 분은 2009년도에 L.A 대법원 판사가 되었는데, 1년 전인 2007년도 말에는 인생의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바닥에서 1-2년 만에 L.A 대법원 판사가 된 것입니다.
2007년도에 가정은 파탄되었고, 운영하던 변호사 사무실은 직원들 월급도 못주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2008년 1월1일을 맞이했습니다. 삶의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L.A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위에 홀로 괴로움 가운데 앉아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릴 때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기억이 납니다. 5살 때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silver dollar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1960년도의 1달라는 상당히 큰 돈이었습니다. 특히 어린이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는 이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랐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만일 감사편지를 쓰면 또 다른 silver dollar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린 크래릭판사는 감사편지를 썼고 할아버지는 약속대로 또 다른 silver dollar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길 또 감사편지를 쓰면 또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린 크래릭은 two dollar에 만족하였습니다. 더 이상 감사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사실 할아버지는 감사편지의 위력을 알게 하시려고 시도한 것이지만 어린 크래릭은 그만 거기에 멈추었던 것입니다.
이 일 후, 약 50년이 지난 2008년 1월1일 파탄 가운데 있을 때 Los Angeles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산위에서 홀로 앉아 있을 때, 갑자기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Thank you 편지를 한번밖에 쓰지 못해 삶의 온갖 축복을 잃었던 자기 자신의 어리석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는 결단을 내립니다. ‘매일 감사편지를 한통씩 쓰리라.’ 새해의 결심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1월3일 첫 번째 감사편지를 씁니다. 비록 힘든 2007년도이었지만 그래도 몇개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이 있어서 선물을 보낸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사실 미국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에는 감사편지를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래릭 판사는 쓰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자기를 알아서 coffee machine을 선물한 아들에게 감사편지를 썼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는데 두툼한 봉투를 꺼냅니다. 100불짜리가 40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전에 아버지에게 빌렸던 돈의 일부라고 가져 온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었다고 생각한 돈이었는데, 아들이 무슨 연고인지 갚겠다고 해서 가져 온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주 절실한 돈이었습니다. 그 후 크래릭 판사는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신이 나서 매일 감사 편지를 씁니다. 하루 생활 중에 가장 큰 관심이 ‘오늘은 누구에게 감사편지를 쓸까’가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감사의 편지를 쓰려고 마음 먹고 사는 삶은 어떻게 되어 갔겠습니까? 제가 처음 크래릭판사를 이렇게 소개하지 않았습니까? 2009년에 LA대법원판사가 되었다고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판사가 감사편지를 쓰기 시작한 첫날은 2008년 1월3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래릭 판사는 본인이 대법원판사가 된 것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축복은 자기가 감사편지를 쓴 이후 누리고 있는 축복의 작은 일부분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 전체가 바뀌어진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크래릭 판사는 감사편지의 위력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새끼 손가락을 되찾은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새끼 손가락이 있습니다. 하나는 벼룩이로 인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손가락입니다. 또 하나는 주위분들에게 감사하는 손가락입니다. 이 두 손가락을 온전히 소유한 채 새해를 시작하십니다.
올 해 저희 교회 표어를 ‘감사하는 회중’으로 정했습니다. 올 해 저희 교회는 59주년을 맞이합니다. 지난 59년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뛰었습니다. 첫 희년을 향하여 열심히 뛰었고 이제는 제2의 희년을 향하여 열심히 뛰어 왔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ECC도 완공하였습니다. 해외선교도 두 지역으로 단기 선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국내선교도 새로이 열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교육 프로그램도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부뿐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소그룹 성경공부반까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달리다 보면 가장 잊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소지, 다섯째 손가락을 잊기 쉽습니다.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없어도 될 것 같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간 낭비인 것 같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지어진 건물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끝내 하나님께 더이상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올 한 해 감사하는 회중이 되십시다. 어디서나 감사의 제목이 오가는 한 해가 되게 하십시다. 감사의 편지가 쏟아지는 한 해가 되게 하십시다. 감사가 우리 교회 전통이 되게 하십시다. 감사가 있는 곳에 인간의 모든 실수와 실패는 가려집니다. 더욱 멋진 2013년도가 우리를 향하여 벌써 웃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사도바울과 성 어거스틴 이후 기독교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저는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로 꼽고 싶습니다. 마틴 루터가 혼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루터는 자신의 신앙의 기초를 이룬 가장 중요한 것을 성도들과의 대화였다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여러 성도들과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자리에서 오고 갔던 대화가 그를 대 종교개혁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감사의 고백이 그로하여금 최고의 신학자요 개혁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소그룹 성경공부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함께 모여 벼룩이로 인하여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또 서로에게 감사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마틴루터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올 해 우리들의 두 새끼 손가락을 소중히 여기십시다. 벼룩이로 인해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서로가 감사편지를 나누십시다. 감사하는 회중이 되십시다.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놀랍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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