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날짜 : 2011.12.04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성경본문 : 요한계시록 22장 1-7, 12, 20 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video_master/Sermon_20111204.wmv

중국 춘추 전국시대 위나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하 한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신하는 왕에게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올렸습니다.
“소인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시면 폐하께서 가장 아끼는 말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치겠나이다. 1년이 지나도 날지 못하면 그때는 엄벌을 달게 받겠나이다.”
왕은 손해 날게 없다고 생각하고 탄원을 받아드립니다. 이 탄원이 받아들여지자 동료 죄수들이 그를 비웃었습니다.
“설마 말이 하늘을 날 수 있겠어?”
이에 그 신하는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1년 안에 왕이 죽거나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그 말이 죽을지도 모른다. 1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1년이 지나면 정말 말이 날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1년 안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왕이 죽었는지 신하가 죽었는지 아니면 정말 말이 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는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1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1년을 아주 뜻깊게 보냈을줄 압니다.

오늘 대강절 두 번째 주일로 지킵니다. 통상 두 번째 주일은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작년도에도 대강절 두 번째 주일에 구름타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1년간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으셨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 주님을 기다리며 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본 교회에 부임한 이래 첫 해에서부터 대강절을 지켜왔습니다. 올해가 제가 본 교회에 온 후 17번째 지키는 대강절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설교를 16번 하였고 올 해 17번째 드리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한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내년에도 대강절을 지키게 될까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쉽고도 어려운 대답일줄 압니다.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정답은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1년 안에 주님이 오실지 안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들의 뇌리에 남겨두고 싶은 말씀을 하시고 계심은 틀림 없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사실 22장에서 두 번 더 이 말씀을 하십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또한 20절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오늘 본문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을 기록한 계시록 22장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장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내가 속히 오리라”입니다. 이 주제가 얼마나 엄청났으면 요한은 세 차례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저는 좀 성격이 급해서 그런지 드라마를 잘 보지 못합니다. 보는데 신경질이 납니다. 이유는 그저 빨리 결론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극작가들은 드라마에서 너무 빨리 결론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걸 보여주면 다 끝이니까. 차리리 저에게는 영화가 낫습니다. 한 두 시간이면 결론까지 보게 되니까. 그것도 Fast Forward 하면 더 빨리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의 드라마를 아주 천천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도 느린 드라마 작가이십니다. 영화를 제작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이 완성되기 까지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대충 1500년 걸렸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모세가 주전 1500년 전 사람이니 모세오경을 모세가 지었다고 생각하면 신약성경까지 성경 전체가 완성되는데 약 1500년 이상이 걸린 셈입니다.
그런데 1500년씩이나 걸려서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의 드라마의 마지막 휘날레가 우리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신약시대에 태어난 것이 무척 다행입니다. 신약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언제나 그 장면을 마음껏 연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역사의 첫 장면이 무엇이죠? 창세기 1:1절이 어떻게 시작하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얼마나 위엄찬 말씀입니까? 이렇게 시작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휘날레는 드디어 우리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내가 속히 오리라.”

기독교 신앙의 두 가지 기둥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주님께서 속히 오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너무도 잘 믿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과학의 발전을 중요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요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보호하자는 운동도 기독교계에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이 일에 적극 앞장서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 두 가지 ECC가 있습니다. 하나는 잘 아시는 Education Community Center 또 하나는 Earth Care Congregation입니다. 이 두 번째 ECC운동을 통해서 저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를 돌보는데 앞장서려고 합니다. 계속 이 일을 추진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비해 너무 뒤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오직 과학의 발전에만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어야 합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신앙생활은 바로 이 두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삶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잘 못하다가는 이 둘 사이에 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하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이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1, 2절 말씀입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지금 하나님은 요한에게 완성된 창조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완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에덴동산의 모습을 살펴보면 됩니다. 창2:10절 말씀만 봉독합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또한 9절 말씀을 보면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에 보여준 에덴동산이 드디어 계시록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한편 천지창조에 사람이 주인공이듯이 창조의 완성에도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3, 4절 말씀입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도 사람 없이는 이루어지지 아니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얼굴을 봅니다. 아울러 주님의 이름이 사람들의 이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이들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이름이 각자 이마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완성작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과 계시록 22장은 계속되는 하나의 드라마인 것입니다.

한편 이 드라마의 완성을 최초로 누가 보고 있다고요? 요한이 보고 있습니다. 요한은 언젠가 자기의 이마에 주님의 이름이 새겨질 것을 생각하면서 감격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의 장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창조의 완성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 때 요한은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물론 성경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요한은 밧모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당연히 소리쳤을 것입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이니이까? 어느 때 창조가 완성됩니까?”
이에 주님은 답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한번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두번 세번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왜 두 번 세 번 말씀하셨겠습니까? 이유는 “내가 속히 올테니 남은 시간 최고의 삶을 살아라” 하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지 최고의 삶을 사는 것일까요? 사실 7절 말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봉독해 드리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한국전쟁 당시 한강 인도교가 끊기자 피난민들은 너나 없이 나룻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제 남은 나룻배는 한 척밖에 없었습니다. 사공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배에 탄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정원이 초과되어 도저히 노를 저을 수가 없군요. 이대로 가다간 한강변에 닿기도 전에 가라앉을 겁니다. 두 사람 정도는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도 선뜻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피난민 대열에서 빠진다는 건, 어쩌면 죽음이 길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등에 짐을 진 뚱뚱한 남자가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저는 몸도 뚱뚱하고 또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으니 제가 내리면 두 사람까지 내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남자는 배에서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이분은 바로 완성된 창조의 세계를 보신 분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여 스스로 희생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극작가 주태익 선생이라고 합니다. 평양신학교를 나와 백합원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평생 창작과 봉사활동으로 일관했던 선생은 해방 이후 KBS, 기독교 방송 등에서 활동하셨습니다. 그는 1976년도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완성된 세계에서 왕노릇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의 다시 오시는 모습을 상상하는 자들은 바로 이러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교우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된 하나님의 종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왕노릇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이에 요한은 화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말씀을 거둡니다. 얼마 전 어느 분의 재미있는 표현을 접해 본적이 있습니다.
“시간은 흐른다고 이야기하는가? 천만에. 아 슬프다, 시간은 머물고 우리는 간다.”
우리가 늘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흐른다고 심파조로 표현을 하곤 합니다만, 우리들의 이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아주 멋진 표현인 것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아니 시간은 늙지 않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의 흐름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1년이라는 시간도 변함이 없습니다. 1초 1분이라는 시간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지 2000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시간은 늙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늙고 있습니다. 눈은 안 보이기 시작하고요. 기억력은 가물가물해지고요. 지붕은 벗겨지고요….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비가 내려서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은 강물이 되고 강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바다로 흘러들어간 물은 다시 구름이 되어서 비가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시간도 돌고 돕니다. 시간은 절대로 늙지 않습니다. 시간이라는 강물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늙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강물은 사람을 넓은 바다에 떨어뜨리고는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을 태웁니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은 강물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갑니다.
교우 여러분, 어디로 흘러가길 원하십니까? 완성된 창조의 세계 속으로 흘러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 곳에서 왕노릇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대한 창조의 세계로 초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완성된 창조의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함께 화답하십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말씀따라 사십시다. 주님은 앞으로 1년 안에 오실지 1년 후에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주님은 속히 오십니다. 남은 대강절 기간 주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십시다.
“내가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