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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

날짜 : 2011.11.2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에벤에셀
성경본문 : 사무엘상 7장 3-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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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계의 전설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 아놀드 파머(Arnold Palmer)입니다. 파머는 팬들로부터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친구이자 경쟁자인 또 다른 전설적인 인물이 바로 잭 니콜러스(Jack Nicklaus)인데 그는 파머의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파머의 집을 방문해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거실에 들어선 그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화려한 우승컵이 즐비한 자기 집 거실과는 달리 낡고 오래된 우승컵 하나만이 쓸쓸히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 많은 우승컵은 어디 두고 이 컵 하나만 진열되어 있나?”
“내가 가진 우승컵은 이게 전부라네.”
니클라스는 파머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이 없어 하는 친구에게 파머가 말합니다.
“이 우승컵은 프로 선수가 되어 처음 받은 것이네. 그 뒤에 받은 우승컵들은 의미가 없어 굳이 진열하지 않았지. 이 컵에는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는 글귀가 적혀 있어.”

‘만약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면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삶의 전쟁터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도 늘 이길 수 없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늘 믿는 사람이다.’

파머는 평생 PGA tour에서 62번 우승컵을 획득했습니다. 그 중 파머는 7 차례 메이져 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메이져 대회는 일 년에 네 번 열리지 않습니까? 잭 니클라우스가 언제 쯤 파머의 집을 방문했는지 몰라도 최소한 두 세번 메이져는 이기고 일반 우승은 스무번 이상했을 때인줄 압니다. 그런데 그 집에 진열된 우승컵은 제일 먼저 획득한 우승컵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획득한 컵이 1955년 캐나디안 컵(Canadian cup)입니다. 분명히 이 대회는 일 년에 4번 열리는 메이져대회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초라한 컵이었을 것입니다. 후에 쟁취한 컵들과 비교하면…. 그러나 그는 그 초라한 컵만 거실에 진열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컵에 써 있는 글귀는….
“만약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면 패배한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늘 믿는 사람이다.”
이런 글귀를 가슴에 담고 경기에 임한 그는 골프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간 것 같습니다.

파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의 거실에는 무슨 글씨가 쓰여진 컵이 진열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잠시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거실에는 어떤 글귀가 적힌 컵이 진열되어 있습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어떤 컵이 거실에 놓여져 있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한 개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입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내지 나라의 거실에 진열되어 있는 컵이 본문 말씀에 소개되어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 제일 마지막 절인 7: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 당시는 컵 대신에 돌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컵에 아니 돌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벤에셀(도움의 돌).’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 된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들의 거실에 아주 멋진 돌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왕정을 시작하게 한 선지자인데 그가 사울을 초대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이 돌을 왕정을 시작하게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물로 증정한 셈입니다.
그러면 이 돌을 ‘언제’ ‘왜’ ‘어떻게’ 장만하게 되었는지 본문 이야기를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7:3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이 장성하여 선지자가 되었을 때 이미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20년 동안 압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먼저 회개할 것을 명령합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미스바에 모이게 합니다. 블레셋 압제에서 벗어나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7:5, 6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이를 알고 블레셋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습니다. 까분다고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치러 쫓아 왔습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20년 만에 승리했습니다. 승리했으니 컵을 쟁취한 것이죠. 스스로 컵을 장만합니다. 그리고는 7: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운 후 그곳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명합니다.

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승리를 했으면 당연히 어디에다가 돌을 세워야 합니까? 미스바에서 싸웠으니 미스바에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왜 미스바가 아니고 미스바와 센 사이일까요? 이곳이 역사적으로 어떤 곳이기에 이름도 없는 이곳에 기념돌을 세웠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어렵지 않습니다.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그곳은 20년전에 블레셋에서 참패를 당한 곳입니다. 4:1절에 처음으로 에벤에셀이라는 지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그러면 이미 에벤에셀이라는 곳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곳은 무명의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이 무명의 땅에 사무엘이 승리 후 돌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 이 지명이 에벤에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무엘이 이 곳에 돌을 세웠느냐라는 질문이 뒤따릅니다. 4:10, 11절 말씀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지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귀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어린 사무엘은 엘리 선지자가 죽는 것 선지자의 두 아들이 죽는 것 무엇보다도 언약궤가 빼앗기는 것을 모두 보았습니다. 어린 가슴에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곳이 무명의 곳이었지만 바로 이스라엘의 치욕의 장소가 되는 것을 너무도 뼈져리게 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시간은 흘러 사무엘은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가슴에는 어린 시절 두 눈으로 본 그 장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스바에서 회개의 집회를 연 후 쫓아오는 블레셋 사람들을 무찔렀습니다. 20년 전에 겪었던 패배의 고통이 물 씻은듯 사라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에 미스바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돌을 만들었습니다. 돌의 이름은 ‘에벤에셀’, 그리고 이 돌을 어디다 세웁니까? 미스바에? 아닙니다. 치욕의 땅에다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정합니다. 이곳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의 거실이 됩니다. 그 거실 한복판에 우승컵을 장만해 놓습니다. ‘에벤에셀.’
사무엘의 이 지혜로운 선택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인생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국가를 운영하는 슬기를 배우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잘 한 곳에 우승컵을 전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수치스러운 곳에 우승컵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패했던 곳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래서 진정 승리의 민족임을 알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영원토록 실패가 없음을 패배가 없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미스바의 경험이 이스라엘 전국을 승리의 나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사실 그 후에도 이스라엘은 많은 실패와 패배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오뚜기처럼 불쑥 불쑥 다시 일어납니다. 사무엘의 지혜를 가진 지도자들은 그 때 그 때마다 우승컵을 가지고 찾아 갑니다. 실패의 자리에 자랑스런 우승컵을 내려 놓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되뇌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 그리고 새로운 승리를 위해서 다시 일어서곤 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국가뿐이 아니라 교회나 가정, 개인의 삶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이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저의 삶도 뒤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저 개인의 미스바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정말로 자랑스러운 미스바입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 영락교회 대학부를 다녔는데, 한번은 대학부 수련회를 영락기도원에서 가졌었습니다.
친구 몇이서 깜깜한 밤 중에 뒷 산에 기도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각기 나무 하나씩을 정하고 그곳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갑자기 온 몸에 고통이 찾아오는데, 물론 주님의 고통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저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고 또 한편으로는 좀 더 고통에 동참하고 싶고 두 마음이 오갔습니다. 끝내 도저히 참기 어려워 그 자리를 일어섰습니다. 얼마 동안인지 모르지만…. 이 경험이 저에게는 미스바의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저의 에벤에셀이라는 돌을 이곳에 놓고 지내었습니다. 바로 이곳이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승리의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종종 이 곳 생각을 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소명을 새롭게 다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에벤에셀의 돌을 놓아야 할 곳은 이 기도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실패한 곳 죄를 지은 곳 저의 부족함이 드러난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의 삶 전체가 우승컵이 놓여져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놀드 파머와 같은 우승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컵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면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패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한 가지 더 궁금한 생각이 들줄 압니다. 우승컵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스바의 경험이 있어야 하는가? 산기도나 철야기도 등 뜨거운 경험이 있어야 하나요? 미스바의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에벤에셀의 컵을 받을 수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스바의 체험을 하지 못했던 모든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그 컵은 주어졌습니다. 그 후손 대대로 주어졌습니다. 그 특권은 단지 이스라엘 국가의 일원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미스바의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에벤에셀의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남은 것은 아픈 삶의 현장에 그 돌을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한편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세계를 이 돌을 들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돌을 사용할 때마다 기뻐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돌을 자주자주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허락하시지 않으실까요? 에벤에셀을 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놀라운 국가가 건설되었듯이 말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이자 창립58주년기념예배로 드립니다. 저희 교회 거실에는 58년간 한 우승컵이 전시되어 왔습니다. ‘에벤에셀.’
올해 초에 저희 교회 은퇴장로님이신 백린 장로님께서 저희 교회 역사를 이렇게 요약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희 교회에 삼대 역사적 사건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는 박대선 목사님을 초대목사님으로 해서 교회가 창립된 사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8년 전 일입니다. 그 후로는 1985년에 홍근수 목사님이 시무하실 때 미국 장로교에 가입한 사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로는 작년도 ECC건물이 완성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58년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한편 58년간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겠지만 이 세 가지 사건을 통하여서 오늘에 이르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우리 교회 역사관 거실에 있는 한 우승컵이 아닐까요? ‘에벤에셀.’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어우르게 하면서 오늘도 모든 이야기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이유는 이 우승컵 때문일줄 압니다. ‘에벤에셀.’
이 우승컵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에서 최고의 수치를 경험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 갈수 있는 최대의 패배의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도리어 승리의 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승리의 컵을 높이 드십시다. ‘에벤에셀’. 에벤에셀은 우리가 감사절마다 부를 수 있는 영원한 노래가사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 중 서울 신학대학교에 설교하러 갔다가 유홍준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 교수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을 씨리즈로 내서 한국의 유적을 잘 소개해주기로 소문난 학자이십니다. 유 교수님은 첫번째 답사기의 시작을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택합니다. 경주, 부여, 공주 같은 유물이 많은 곳이 아니라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곳을 택합니다.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기에는 뜻있게 살다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아픔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이 있고, 저항과 항쟁과 유배의 땅에 서려 있는 역사의 체의가 살아있으며, 이름없는 도공 이름없는 농투성이들이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꿋꿋함과 애잔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토의 흙내음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와 들판이 있기에 나는 주저 없이 ‘일번지’라는 제목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곳 초라한 곳에서 귀한 것을 보는 분이기에 그의 눈에는 전 한국 땅이 박물관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삶에 가장 초라한 곳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십시다. 우리교회의 가장 초라한 그 시간에 이 돌을 세우십시다. 지난 1년 중 제일 초라한 시간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우십시다. 우리들은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돌을 세우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주님게서도 그 돌을 보시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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