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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남으리라

날짜 : 2011.08.21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먹고 남으리라
성경본문 : 열왕기하 4장 38-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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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존(John)이라는 학생이 Univ. of Colorado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언제나 행복한 모습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가정교사를 하고 있던 선생님이 하도 궁금해서 왜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틴에이져(Teenager)때 사고로 시각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분노가 넘쳐 흘러서 분노를 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퍼 부우면서 생활을 합니다. 삶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존은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모든 일을 주변 사람이 자기를 위해 해주길 바랬습니다. 식사 때만 방을 나갔다고 합니다. 가정교사는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자기 보기에는 전혀 분노의 찬 모습을 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양순한 학생이었습니다.
존이 자기가 왜 지금의 자기가 되었는지를 말합니다. 겨울이 가까이 오는 어느 날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storm window를 다 달아 놓아. 내가 집에 돌아 올 때까지 다 끝내놓아.”
이렇게 말하고는 방문을 꽉 닿고 나가 버렸습니다. 앞을 못 보는 존은 너무나 당황합니다. 황당한 나머지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 창고로 갑니다. 겨우 겨우 창문을 가지고 옵니다. 사다리를 꺼내옵니다. 연장을 가지고 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천천히 더듬으면서 합니다. 계속 중얼거립니다.
“내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야 나에게 이 일을 시킨 것을 후회하실 거야.”
그러나 그는 천천히 천천히 일을 꾸려나갔습니다. 드디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일을 잘 마쳤습니다. 존은 그 때 깨닫게 됩니다. 자기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로 결국 대학교까지 진학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이야기합니다. “저는 후에 알게 되었어요. 내가 사다리에 올라가서 storm window를 다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언제나 2미터 안에 계셨다는 것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어려운 일을 시켰지만 그러나 항상 그 곁에 계셨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2미터 밖으로 나가시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아버지는 어떠실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하나님은 2미터 보다 더 가까이 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2미터보다 더 가까이 계심을 믿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엘리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사가 길갈이라는 지방에 왔는데 그 땅에 흉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길갈에 무슨 목적으로 갔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보니 흉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즘처럼 정보시대가 아니더라도 입 소문을 통하여 길갈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은 접했을 것입니다. 곧 그 곳에 흉년이 든 것을 알고 갔을 것입니다.
38절 말씀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 기록된 것을 보아서 흉년 때문에 고생하는 제자들을 만나러 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엘리사 앞에 앉았습니다. 엘리사는 제자들의 배에서 꼬록 꼬록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38절 후반 말씀을 보니,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말합니다. 39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 들포도덩굴을 만나 그것에서 들호박을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그들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
이 사환은 이 채소가 어떤 채소인지 모르지만 채소처럼 생겼으니 가지고 와서 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국에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독이 있는 채소였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가루를 솥에 넣으라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런데 독이 없어졌습니다. 흉년으로 인해 늘 음식이 부족했었는데 모든 제자들이 실컷 먹었습니다. 제자들은 다시한번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을 두 가지 각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이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였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우리도 모두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엘리사와 같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엘리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야 할줄 압니다. 엘리사가 누린 그 삶을 왜 우리는 누리지 못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줄 압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시고 두번째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42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이번에는 멀리서 길갈로 한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은 엘리사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길갈로 엘리사가 간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울러 길갈은 흉년이 오래 들었던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가 존경하는 엘리사 선생님이 길갈에서 고생하려니 생각하고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엘리사에게 드렸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말합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이에 사환이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이것을 백 명에게 주겠나이까?”
제자들이 백 명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 명에게 보리떡 12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지고 요즘식으로 하면 All you can eat을 하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All you can eat의 시작이 엘리사였던 것 같습니다. All you can eat 의 창시자 엘리사가 또 말합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알고보니 all you can eat의 창시자는 엘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먹고 남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사환이 어떻게 하죠? 44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먹고 남았더라.”

이제 엘리사의 비밀을 알겠습니다. 엘리사가 왜 하필 흉년이 든 길갈로 갔는지, 왜 들에서 캔 채소를 가지고 솥에 끓이라고 하였는지,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가지고 백 명이나 되는 제자들에게 나누라고 하였는지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거리가 2미터가 아니라 0센티미터, 바로 하나님께 딱 붙어 지내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좀 희망이 생깁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딱 붙어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딱 붙어 있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아닙니까? 그것을 누리면 됩니다. 수수께끼가 많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딱 붙어 있는 걸까요?

오늘 콜롬비아 단기선교단 보고가 있었는데, 지난번 파송예배시 콜롬비아 선교사인 부룬코(Bruchko)선교사님에 대해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 분이 모틸론(Motilone)인종을 선교하였는데 선교과제중 하나가 성경번역이었습니다.
성경번역중 제일 중요한 단어가 ‘믿는다’라는 단어일줄 압니다. 모틸론 인종에는 ‘믿는다’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생각해 낸 것이 있습니다. 모틸론 종족은 해목(hammock: 나무와 나무 사이에 달아 놓는 그물, 천 등으로 된 침대)을 좋아하는 종족입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해목을 걸어 놓고 잠을 잡니다. 해목을 나무에 ‘매어 놓는다’(tie into)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믿는다’는 단어를 번역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매어 놓았다’라는 뜻은 ‘내가 너를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브루코 선교사님은 믿는다는 것은 해목에 매어 놓고 마음 놓고 잠을 자는 것이라고 풀이한 것입니다. 아주 정곡을 찌르는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매어 놓고 그 위에 털썩 눕는 것이 바로 믿음일줄 압니다. 해목에 누워보신 분들 계실 줄 압니다.
오래 전에 어느 집에 가 보았는데 뒷마당에 나가 보니 해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통 것보다 폭이 얇은 해목이었습니다. 그 해목에 누우려다가 몇 번 시도하였지만 실패했습니다. 씁쓸히 돌아서 왔습니다.
저는 제가 왜 해목에 눕는 것을 실패했는지 너무도 잘 압니다. 해목을 믿고 푹석 누어야 하는데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제 발을 의지합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발을 떼려고 합니다. 생전 해목에 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알면서도 안 되데요….항상 발이 땅에 닿아 있어야지 마음이 놓이는 사람은 해목에서 몸이 쉴 수가 없습니다. 애꿎은 몸이 고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을 때 영혼이 쉼을 얻지 못합니다. 언제나 피곤하게 살아갑니다.
교우 여러분, 처음 말씀드린 존의 아버지는 존이 믿지도 않았는데 늘 2미터 안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믿는다는데…. 우리가 덥썩 누우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발을 움켜쥐고 결코 떨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2미터밖에 계신 것을 믿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해목 삼아 털썩 누어 버리는 것이 바로 믿는 자의 삶인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우리들이 해야할 일일줄 압니다. 하나님을 나무로 삼고 하나님을 해목으로 삼고 털썩 눕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덥석 믿고 눕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덥석 믿고 누우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좋아하시죠. 기뻐하시죠.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all you can eat 잔치에 언제든지 참여합니다. “먹고 남으리라”의 잔치에 언제든지 참여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가뭄이 들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엘리사의 외침을 외치시가 바랍니다. “먹고 남으리라.”

한편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이 외침은 엘리사 자신만을 위한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흉년을 맞이한 이웃과 제자들을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물론 자신도 포함됩니다.
엘리사의 이야기를 보면 왜 엘리사가 넘치는 all you can eat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가 베푼 잔치는 자기를 위한 잔치가 아니였습니다. 남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엘리사는 흉년 가운데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흉년가운데 있는데 어느 사람이 보리떡 12개와 채소 한 자루를 자기를 위해 가져 왔을 때 그것을 제자들을 위해 베풉니다. 순간 all you can eat이 되었습니다.
곧 엘리사가 이처럼 all you can eat 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덥석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흉년 가운데서도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을 덥석 믿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해목에 덥썩 주저 앉곤 하였습니다. 아울러 늘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를 덥썩 안고 다니시는 하나님은 엘리사가 가는 곳마다 all you can eat 잔치를 마음껏 베푸셨던 것입니다.

요즘 세계는 경제적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위기를 허락하셨겠습니까? 믿음과 사랑이 있는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All you can eat의 축제를 벌리시길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엘리사와 같은 사람을 그리워해서가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불안한 경제로 인해서 긴장 가운데 사는 자들에게 넉넉한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먹고 남으리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먹고 남으리라” 외치는 우리들의 음성을 하나님은 들으시고 먹고 남는 축복을 우리를 위해 이웃을 위해 넘치도록 베푸실 것입니다. TV만 키면 부정적인 뉴스가 나오지만 그런 뉴스를 들을 때면 언제나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전 세계를 위하여 “먹고 남으리라.”
우리가 이 고백을 할 때 가장 기뻐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먹고 남는 축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포도즙조차 십자가 위에서 거부하셨습니다. 온 인류가 영육간에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려고 당신은 목 마르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은 우리들의 입을 통해 온 세상에 ‘먹고 남으리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이 와서 어떤 근거로 이 노래를 부르느냐고 하면 그 때 십자가의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먹고 남으리라”의 노래를 부르며 십자가의 주님을 전하신 분이 있습니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님을 잘 아실줄 압니다. 저는 DVD 대신에 톤즈에 직접 가서 체험한 것을 글로 쓴 이재현씨의 책으로 이 태석 신부님을 만나 보았습니다.
모르시는 분을 위해 소개해 드리면 위험한 수단에서 피난민들을 의사로서 돌보다가 후에 본인도 암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신 분입니다. 이재현씨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은 오병이어의 놀라운 역사 그 자체였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그 책에서 이태석 신부님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한 분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이로비에 있는 이재현 씨에게 톤즈를 방문해 보라고 말하는데 이재현 씨가 염려를 하니 이렇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하서방님 빽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출발하세요.”
이태석 신부님은 본인 자신이 그 어려운 곳에서 하나님 빽 믿고 사랑으로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아울러 사랑으로 가난한 이들을 끝없이 섬겼습니다. 찾아오는 환자들을 성심껏 보살피셨습니다. 한편 이 신부님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으셔서 피아노와 기타, 피리까지 부셨다고 합니다. 환자 치료뿐 아니라 음악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먹고 남으리라’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그곳 어린이들 쓴 글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 아이들이 쓴 글 몇개만 소개해드립니다.
“하여튼 저는 지금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라가 20년에 걸친 전쟁으로 황폐화되었지만 우린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평화가 올 것을 확신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저는 전쟁터에서 태어났고 전쟁터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화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제 목표는 음악가가 되는 것입니다. 수단은 제 나라입니다. 저는 이 땅에서 태어났으므로 이 땅에 묻힐 것입니다.”
두번째 아이의 글입니다.
“저는 사제가 되고 싶습니다. 의사도 되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를 꼭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하느님께 빌 것입니다. 또 저는 음악가가 되고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사제와 의사와 음악가 이것이 바로 이태석 신부님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아이도 같은 꿈을 갖고 있는 글을 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먹고 남으리라’의 축복이 아닐까요?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평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흉년을 맞이한 이들을 향해서 외치시는 그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을 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며 외친 것입니다. “먹고 남으리라.”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 매어 있는 분들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외칩니다. “먹고 남으리라.” 십자가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먹고 남으리라”의 놀라운 일은 곳곳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콜롬비아 단기선교단이 다녀온 바로 그 곳에서도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나올 한울타리를 통해서 그 이야기를 접하실 수 있으실 텐데 먼저 소개해 드립니다.
이번에 선교팀이 만난 그곳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간증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학교의 역사는 간증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일례로 학교 놀이터를 위한 땅이 필요했고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먼저 자발적으로 기도와 헌금을 하기 시작했고, 1년 동안 $15 정도를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액수로는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그 귀한 이야기가 방문했던 네덜란드 기자에 의해 유럽에서 방송이 되었고 도네이션을 받아 정말 땅을 사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웨덴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건물 지붕을 지어주고, 또 다른 나라 봉사자들이 와서 다른 건물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교장선생님은 “먹고 남으리라”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음성을 아이들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1년 동안 $15을 모았습니다. 놀이터뿐 아니라 건물까지 짓게 되었습니다. “먹고 남으리라.”

교우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이웃을 사랑하십시다. 우리가 있는 처소에서 “먹고 남으리라”를 외치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그들 앞에 주었더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먹고 남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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