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나를 축복하소서

날짜 : 2011.06.19
예배명 : 주일 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나를 축복하소서
성경본문 : 창세기 27:30-40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video_master/Sermon_20110619.wmv

Sermon 061911
제목: 나를 축복하소서
본문: 창세기 27: 30-40

조르주 심농(George Simenon)이라는 작가가 다음과 같은 글을 맏아들에게 썼습니다.
“나는 ‘아버지라는 직업’이 몹시 마음에 든단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 아버지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너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이 분의 말중에 눈에 띄는 말이 있습니다. 이 분은 ‘아버지라는 직업’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그 직업이 몹시 마음에 든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아버지라는 직업이 몹시 마음에 든단다.”
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교회에서는 아버지 주일은 지키지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 날인만큼 한번 아버지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함께 남자분들은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그리하여 훌륭한 가정을 이루는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삭은 아버지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삭이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맏아들 에서에게하나님께 가기 전 마지막으로 축복을 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자기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면 마음껏 축복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맏 아들 에서에게 하는 말을 이삭의 부인 리브가가 듣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야곱을 불러서 이삭의 축복을 가로채게 합니다. 야곱에게 염소를 가져오게 해서 그것으로 어머니 리브가가 대신 별미를 만들어줍니다. 그 별미를 가지고 에서가 오기 전에 이삭에게 들어가서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이 엄마와 짜고 에서의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본문 말씀 전 배경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 첫절인 30절 말씀을 봉독해드립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계속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서가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축복을 해달라고 합니다. 이삭은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에 이삭은 심히 떨면서 말합니다.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에 에서가 소리내어 울면서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에 이삭은 더 이상 줄 축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에서는 더 크게 울부짖습니다. 38절 말씀입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끝으로 이삭은 에서의 미래에 대해서 씁쓸한 마음으로 말해줍니다.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
이삭에게는 아버지라는 직업은 결코 즐겁고 행복한 직업은 아니었을줄 압니다. 먼저 본문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은 아버지라는 직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를 축복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한편 이삭은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너무도 소중한 축복인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모았다가 맏아들에게 왕창 그 축복을 주려고 계획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실패합니다.
실패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아내와 호흡이 안 맞았습니다. 아내 리브가는 동생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알자 리브가는 남편 이삭을 속인 것입니다. 리브가의 제안에 야곱은 덩달아 동조합니다. 곧 아버지와 맏아들 어머니와 둘째 아들이 편을 먹고 축복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사실 그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었던 것은 에서가 잘 말하고 있습니다. 36절에 다음과 같이 에서가 말합니다.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복을 빼앗았나이다.”
처음 야곱이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을 때 아버지 이삭은 가만 보고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혼내켰으면 또 이런 일을 저질렀겠습니까? 이삭은 가정을 잘 못 다스렸습니다. 그 결과 두번째로 야곱은 또 일을 벌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라는 직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을 잘 다스리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은 쉽지 집안을 잘 다스리는 아버지가 얼마나 될까요?
사실 처음 소개한 심농도 과연 가정을 잘 다스렸을까요? 그가 아버지라는 직업이 몹시 마음에 든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그는 그 누구보다도 가정을 잘 다스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의 딸이 자살을 합니다. 물론 자살한 이유가 가정을 잘못 다스린 이유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자살한 딸을 둔 사람이 ‘아버지라는 직업에 몹시 만족한다’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이삭에게 묻는다면 이삭은 어떻게 대답하였을까요? “아버지라는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이제는 여러 아버님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라는 직업에 만족하십니까?
그래도 저는 이삭은 ‘만족한다’라고 대답했을줄로 생각합니다. 심농이 딸 하나를 예기치 않게 잃었어도 아버지 직업에 몹시 만족한다고 생각했듯이 이삭도 비록 콩가루 집안의 가장일지라도 ‘만족한다’ 대답했을줄로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삭은 아버지의 축복권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축복의 대상이 뒤바뀌는 해프닝을 겪지만, 자신의 축복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소중함을 잘 알기에 마지막으로 축복을 쏟아 부으려고 에서를 불러서 별미를 해오라고 까지 말한 것입니다.
이삭은 마음에는 늘 아픔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이 늘 다투는 것을 보면서 아퍼했을 것입니다. 아내가 자기의 마음을 안 알아주기에 또 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자기는 가장으로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자주 젖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이 뺏을수 없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축복권이었습니다. 이 축복권 하나만을 가지고도 이삭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아버지라는 직업은 몹시도 만족스럽습니다.”
Alfred Hitchcock을 잘 아실줄 압니다.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스릴만점의 영화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가 그러한 사람이 되었던 계기가 있습니다.
9살 때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서야 귀가했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정한 통행금지 시간입니다. 아버지는 한 쪽지를 아들에게 주고는 이 쪽지를 들고 근처 경찰서에 가라고 합니다.
아들은 쪽지를 들고 경찰서에 가서 전해주었습니다. 쪽지를 전해 받은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 경찰이었습니다.
경찰은 “Follow me” 말합니다. 감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감방문을 꽝하고 닫습니다. 아들은 더 이상 아버지를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원히 감방에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갖 공포 속에 잠깁니다. 오랜 시간 공포에 젖어 시간을 보낸듯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 5분후 문은 다시 열렸습니다. 이것이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5분 간의 시간이 Alfred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Alfred는 아버지를 잃은 공포에 매여 살게 됩니다. 평생 꽝하는 감옥문 소리를 들으며 살게 됩니다. 그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 공포영화의 거장이 되어갑니다.
어릴적에 겪었던 일9살에 겪었던 5분간의 삶이 아니 꽝하는 감옥문 소리가 그의 평생의 삶을 좌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는 공포영화의 거장이 되어갔습니다.
그는 공포영화계의 거장이 되었지만 평생 공포속에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는 당신이 소유한 축복권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Hitchcock의 집안도 콩가루 집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Hitchcock의 아버지와 이삭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삭은 축복권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을 한분 더 소개해 드릴까요? 영화배우 중에 유명한 Kirk Douglas가 있습니다. 얼마나 잘 생겼습니까? 그가 자서전을 썼는데 자서전 제목이 ‘넝마주이의 아들’(Ragman’s son)입니다. 아마 아버지가 넝마주이였나 봅니다.
자서전을 쓴 후 인터뷰를 했는데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삶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대답하기를, “나는 평생 넝마주이 아버지에게 한번도 축복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Douglas는넝마주이일지라도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보지 못한 고통을 안고 한평생을 산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Hitchcock의 아버지와 Douglas의 아버지 모두 축복권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스스로 만족한 아버지의 삶을 살수 없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축복권을 누리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Hitchcock과 Douglas는 세상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않은 것이 그들을 정말 잘 되게 만든 것일까요? 그러니 우리도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 되게 하려고 축복을 삼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시지 않습니까?
시카고의 Cook County Jail에 한 때 13,000명의 죄수가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18명의 아이들이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의 나이는 9-12살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상담자가 물었습니다.
“총을 사용해 본 적있니?”
18명 전원이 “Yes.”
“마약을 한 적이 있니?”
전원이 “Yes.”
“gang에 속했었니?”
전원이 “Yes.”
“아버지와 함께 살았니?”
전원이 “NO.”
아버지라는 직업에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잘 못하더라도 이 축복은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아버지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Hitchcock이나 Kirk Douglas의 아버지는 이 특권을 상실하였었기에 자녀로 하여금 많은 상처 가운데서 평생을 살게 한 것입니다. 이들은 그래도 세상적으로 성공이나 하였죠, 많은 경우 세상에서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아마 히치콕이나 더글러스의 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나는 자녀를 축복할 자격이 없지…, 나 처럼 이렇게 사는 아버지가 어디있어, 나는 축복하나마나야.”
그렇다면 이삭의 위대함이 더욱 덧보이지 않습니까? 이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소유한 축복권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랑스럽게 축복권을 이행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실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축복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축복해주면 어떻습니까?’
Bill Glass라는 pro football선수였던 분이 감옥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많은 죄수들을 만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감옥에 어머니 날이 오면 어머니에게 보내는 카드를 제공합니다. 대개 카드들은 금방 동이 납니다. 그러나 아버지 날이 오면 카드들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감옥수들은 ‘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축복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사람으로 성숙되어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문제가 없습니다. 대개 아버지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문제가 되는 것 십분 이해가 됩니다. 스스로 축복권을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자신의 모습이자녀를 축복하기에 너무 초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Kirk Douglas 의 아버지가 넝마주이였던 것처럼.
그러고 보면 에서도 상당히 훌륭한 아들이었습니다. 에서는 집안을 콩가루로 만든 장본인인 아버지에게 축복권이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찾아가 외친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그러면 결론적으로 이렇게 정리를 할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무리 부족해도 이 특권은 자신만이 소유한 것임을 알고 자신 있게 자녀를 축복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모습이었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아닌 분들은 아버지가 많은 부족함이 있어도 그의 축복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리브가의 모습이요 에서의 모습이요 야곱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특권을 하나님이 부여해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의 외침을 들으십시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그리고 마음 껏 자녀들을 축복하십시다.
그런데 이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다. 아버지들도 자녀들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응원없이는 자신 있게 축복 못합니다. 아버지를 응원하십시다. 마음껏 축복할수 있도록 응원하십시다. 아버지란 직업이 몹시도 만족스러운 직업이 되도록 응원하십시다. 사회적으로 능력이 없을지라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모십시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복무를 할 때입니다. 군의관으로 복무를 하였는데, 하루는 자가용을 타고 한 사병의 부모님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사병이 몸이 아퍼서 의무대에 입실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가용 운전은 아버지가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뒷좌석 한국 식으로 하면 사장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운전수였습니다. 조금더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머니가 사업수완이 좋아서 어머니가 돈을 벌고 있고 운전수를 고용하면 돈이 드니 아버지가 운전수가 되어서 지내는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까지 그 가정의 모습이 아련합니다. 그런 가정의 자식이니 군대와서 아플수밖에…. 저의 눈에 비친 모습은 아버지의 축복권이 빼앗긴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가 사업수완이 없어서 어머니의 운전수 역할을 할수 밖에 없어도 가정에서 식구들이 돈을 못 버는 아버지의 축복을 사모하였다면, 그리고 아버지는 돈을 못 벌어도 당당하게 가족을 축복할수 있다면 그 가정은 얼마나 멋진 가정이 되어 갔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버지란 직업은 몹시도 만족스러운 직업이 되지 않았을까요?
말씀을 거둡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딸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우리 집은 아주 행복하다. 우리 식구는 아빠, 엄마, 진, 클라라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우리 아빠에 관한 것이다. 나는 무엇에 대해 쓸까 그리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너무나 재미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아주 훌륭한 사람일 뿐 아니라 엄청나게 재미있는 분이다. 아빠는 화를 잘 내시지만, 다른 식구들도 화 잘 내긴 마찬가지다. 우리 아빠는 내가 이제까지 알았고 또 앞으로도 알고 싶어할 사람들 중에서 최고로 멋진 사람이다.”
딸로 부터 이런 말을 들은 마크 투웨인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정말로 멋지게 아버지라는 직업을 만족해 하며 완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멋진 소설들을 쓰게 되지 않았을까요?
마크트웨인은 딸의 글을 통해서 딸의 외침을 또한 느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아버지의 직업을 가지신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축복의 특권을 늘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축복을 자녀들은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는 교우 여러분,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다.
아버님이 어떤 상황에 처해 계셔도 아버지의 축복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마음껏 축복하실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외치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아버지가 이 고백을 거부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대신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백은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외치십시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