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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

날짜 : 2011.06.1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첫 열매
성경본문 : 야고보서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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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야고보서 1: 12-18
제목: 첫 열매

얼마전 설교 시간에 저희 집 처마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는 말씀을 드린적이 있습니다. 새 둥지를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4월 마지막 주일이 부활주일이었는데 그 무렵부터 둥지를 만들고 어미새가 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는 매일 새둥지를 살피는 것이 저희 일과 속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일기로 적어 놓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다음과 같이 진행이 되어 갔습니다. 약 10일이 지나니 갑자기 새끼들이 삐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미새 애비새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먹이를 날라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새끼들은 어미새가 날라 오면 눈을 감은채 무조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약 10일 또 지나니 이젠 제법 자라서 어미새가 함께 둥지에 앉을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밤에는 어미새가 새끼들을 안고 잠을 자곤하였는데, 이제는 어미새는 밥만 가져다 주는듯 보였습니다.
그후 또 10일쯤 지났습니다. 더 이상 세마리의 새끼들이 함께 둥지에 앉아 있기에는 너무 비좁아 보였습니다. 새끼들은 둥지에 불쑥 일어나서 밖의 세상을 의젓하게 내려다 보곤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입니다. 곧 둥지를 틀기 시작한지 약 40일, 새끼를 품은지 약 30일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더 이상 새끼새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라간 것입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어떻게 보면 알이 성숙한 새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젖어 보았습니다. 한 달만에 알이 새가 되어 날아 가는데 같은 한달이라는 시간 안에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도 놀라운 일을 일으키시고도 남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아울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지금쯤 저희 집에서 태어난 새들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을 것입니다. 반면 2000년전 오늘 곧 주님께서 부활하신지 50일째가 되는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서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곧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약50일 만에 주님은 성령하나님이 되셔서 다시금 인간 세상을 찾아 오신 날입니다. 50일 동안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고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을 하시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50일이 필요했을까요? 50일간 제자들이 준비하여야 할 일들이 있었나요?
그 해답을 구약에서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구약에 큰 세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과 장막절과 칠칠절 곧오순절이 있습니다. 칠칠절이 왜 오순절이냐 하면, 7×7을 하면 49입니다. 하루 더해서 50하면 오순절이 됩니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그 후 50일 후 곧 오순절에 성령이 되셔서 다시 찾아 오신 것입니다.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이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50일만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오순절일까요? 이날이 무슨 날이기에 이날 내려 오셨을까요? 민수기 28:26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것이며.”
칠칠절 곧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 곧 첫 열매를 드리는 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알수 있는 것은 성령이 칠칠절에 강림하신 이유는 성령이 바로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첫 열매임을 나타내시기 위해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면은 신학적으로 좀더 광범위하게 발전되는데 성령을 받은 모든 자들이 또한 첫 열매가 됩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이 바로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가 첫 열매가 되어집니다.

그런데 첫 열매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면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가정에서 밭을 가꾸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중에 첫 열매를 고르라면 어떤 것을 고르겠습니까?
실질적으로 어느 열매가 제일 먼저 열렸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곧 첫 열매는 the first라는 의미 보다는 the best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주일 예배로 드리는데 이 열매를 드리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을줄 압니다. 하나는 성령께서 인간 세상에 강림하심을 축하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함께 이를 축하하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모두 첫 열매가 된 사실을 축하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를 믿은 우리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첫열매가 되었습니다. The best가 되었습니다.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보람을 느끼십니다. 우리로 인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보람을 느끼십니다.
그러므로 세번째로 성령강림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The best 인 우리들이 새로운결단을 하는 주일입니다. 우리가 the best가 되기로 새로운 결단할 때 우리는 더욱 성령 충만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제일 마지막절 18절 말씀에 이 모든 것을 요약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교우 여러분, 우리가 the best가 되어야 합니다. 또 될수 있습니다. 우리를 the best가 되게 하시려고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the best가 될까요? 성령이 임하셨으니 저절로 best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the best가 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The best가 되어 가는 길에는 언제나 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이 있는 이유는 the best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시험은 우리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합니다. 그런데 좀 하나님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지 않고 우리를 the best로 만드실수 없으신가?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하여튼 이러한 질문을 안고 시험으로 인해 끙끙거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았는지 야고보는 말씀하십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시험의 근원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을 변호하고 있는 듯 합니다. 14, 15절 말씀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을 가만히 놓아두면 죄가 되고 끝내는 사망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이 사망에 이르는 것을 좋아하실리 없으십니다. the best의 삶을 살아야 할 자녀들이 사망의 삶을 사는 것 너무도 싫어 하십니다. 결국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니 시험의 근원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두번째로는 우리로 하여금 도리어 the best가 되게 합니다.
이것을 일석이조라고 하죠. 시험을 통해서 두 가지 효과가 언제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이 해결됩니다. 또 하나는 the best가 됩니다.

사실 저도 삶에 어려움이 오면 자주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의 영성가 Meister Eckhart가 한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일어난다.”
내가 아는 모든 일들은, 좋은 일 궂은 일들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특히 어려운 일을 맞이할 때 자주 이 생각을 하면서 힘을 얻곤 합니다. 나를 the best가 되게 하시려고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욕심에서 정결케 됨과 아울러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제가 그토록 좋아하는 이말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세상의 모든 일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일어난다.” 라는 말을 다가오는 시험에 대비하는 말로 어떻게 보면 닥아오는 시험과 싸우는 무기로 갖고 있었습니다. 곧 ‘세상의 모든 일’하면 자동반사적으로 궂은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 지금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무얼 속지 말라는 걸까요? ‘세상의 널려져 있는 일은 궂은 일뿐이다’라는 생각에 속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세상에 널려져 있는 것은 문제뿐이다’ 라는 생각에 속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모두 큰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까? 어떤 친구는 가방에 이런 글씨를 써 놓았습니다. ‘고생보따리.’
우리도 요즘 그런 생각에 젖어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교우 여러분,
매일 같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소나기 같이 퍼부어 내려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이 the best가 되어 갑니다.
2000년전 마가의 다락방에 퍼부우셨던 성령의 소나기는 그 날의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매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이 진정한 오순절 사건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the best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이라서 오늘만 성령의 소나기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임합니다. 이것을 믿고 행하는 자들이 the best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일 성령의 소나기가 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삶을 살겠습니까?
성령의 소나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의 소나기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소나기를 자기의 것으로 삼겠다고 결단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들이 the best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성령의 소나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18절 말씀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는 것은 말씀대로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소나기를 자기의 것으로 삼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동안의 신앙의 위인들의 삶을 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모두 그 마음을 하늘로 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축복의 소나기를 자기 것으로 삼는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삽니다. 물론 그들도 시험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시험과 하늘로 향하는 삶이 잘 조화되어서 그들은 the best가 되어 가곤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New England가 낳은 최고의 부흥사이며 학자인 Jonathan Edward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the best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the best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게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는 숨은 욕심을 찾아내는 시험이요 하나는 하늘을 향한 결단의 마음입니다.
에드워즈 목사님도 많은 시험거리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그가 New Hampton에서 목회할 때 생긴 웃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이 당시 많은 자녀를 낳을 때가 아닙니까? 에드워즈 목사님 가정에도 많은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이 때는 어떤 생각들이 지배적이었나 하면, 부부관계를 한 요일에 자녀가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즈 목사님 가정에 한두 자녀 이상이 주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교우님들은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에드워즈 목사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수 밖에, 그러나 그러한 시험이 에드워즈 목사님을 the best로 만들어 간 것이 아닐까요?
이 어려운 일들이 그로 하여금 the best가 되게 하기 위하여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이 그를 얼마나 the best가 되게하였겠습니까? 사실 이보다 더 그를 진정한 the best가 되게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축복의 소나기를 사모하며 살았던 분입니다. 소나기를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그는 큰 결심을 합니다. 사실 그는 70개의 결심문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18세에 회심을 한 후 2년 안에 70개의 결심문을 만들어 나갑니다. 처음 34개는 회심후 금방 만들었고 나머지 36개는 그후 1년안에 만들어집니다. 중요한 사실은 20세가 되었을 때 70개의 결심문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이 결심문을 일주일에 한번씩 읽으면서 자기의 삶을 돌아보곤 하였다고 합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드릴까요?
결심문 4: 하나님의 영광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면 영혼에 관계된 것이든지 육체에 관계된 것이든지 또는 적든지 많든지간에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말자. 만일 내가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
결심문5: 한 순간의 시간도 절대로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을 가능한 한 최대로 유익하게 사용하자.
결심문 8: 다른 사람의 실패를 나 자신의 잘못을 살피는 계기로 삼고, 나의 죄와 비참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기회로만 삼자.
결심문 10: 고통스러울 때는 순교의 고통과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자.
결심문 69: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볼 때, 나도 저렇게 했으면 하는 것들을 항상 행하도록 하자.
결심문 70: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자.

이러한 70가지 결심문을 20세에 만들고 이것을 일주일에 한번씩 읽으면서 살았으니 그가 그토록 the best의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에즈워즈 목사님의 삶을 이렇게 결론지어 보았습니다. 그는 늘 70가지의 결심문을 통해 성령의 소나기를 자기의 것으로 삼는 삶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도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욕심이 남아 있습니다. 그로인해 종종 시험을 받습니다. 시험을 받은 때면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땅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땅아래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의 선물들을 발견합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볼수 없는 축복을 그제야 발견합니다. 미처 누리지 못했던 하늘의 선물들이 땅아래 즐비하게 널려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상시 하늘을 바라보며 시험에 올 때에는 땅 아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온전한 선물을 받는 삶을 산 것입니다. The best의 삶을 산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강림의 축복은 가만히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아닙니다. 결단 가운데서 최고의 것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시험 가운데서도 최고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곧 우리는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성경을 얼마나 보고 기도를 얼마나 하고 이웃을 어떻게 돕고 교회를 어떻게 섬기고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결심이 필요합니다. 주일성수를 어떻게 하고 헌금은 어떻게 하는 것에 대해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따라 살 때 성령의 소나기를 맞게 될것입니다.
할수 있는 작은 것부터 결심하고 하나 하나 실천해 나가십시다. 성령의 소나기를 맞기 시작하십시다. 성령의 소나기를 맞고 있는 자들은 어디를 가던 세상을 멋지게 밝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 the best의 삶을 살았던 분 중에 한 사람이 George Washington 대통령입니다. 그 분에 대해서 어느 시인이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 누구와 비교할수 없는 인간 Washington을 보라-
그의 영광은 태양을 가리웠고;
그의 빛은 너무나 거세,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대낯이 되었다, 밤의 어두움을 더 이상 느낄수 없었노라.”
“Behold the matchless Washington-
His glory has eclips’d the sun;
The luster of his rays so bright
‘Tis always day, there’s no more night.”

George washington은 태양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밝은 빛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워싱톤이 있는 곳에는 태양빛이 필요 없었던 것입니다. 이 분이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가만히 있는 그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에드워즈 목사님이 70개의 결심문이 있었는데, 워싱톤은 110개의 규칙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규칙은 16세기 수도원운동을 하는 Jesuits의 규칙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10개의 규칙으로 자기의 삶을 늘 가꾸어 간 것입니다. 이 규칙으로 인해 그는 the best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매일 성령의 축복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세계에 주님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함께 결단의 마음을 가지고 성령강림의 축복을 맞이하십시다. 첫 열매가 되십시다. the best가 되십시다.
교우 여러분,
나만이 발할수 있는 빛을 소유한 사람이 되십시다. 세상이 빛을 필요할 때마다 여러분을 찾는 사람이 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The best is yet to come.”(최고의 것이 우리를 찾아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군가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미로 시작한 말입니다. 에드워드와 워싱톤 모두 젊은 나이에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에드워즈는 20세 때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30세가 넘어도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60이 넘어도 포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The best is yet to come.”
교우 여러분,
우리도 태양보다 빛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아니 주님은 우리 모두가 태양보다 더 빛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50일만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첫 열매로 삼으셨습니다. 하늘을 바라 보십시다. 하늘에서 내려 오는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로 우리들의 삶을 가득 채우십시다.
때로 시험이 오면 미쳐 차지하지 못한 선물들이 땅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보십시다. 겸손히 머리를 숙이십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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