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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줄

날짜 : 2011.05.0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사랑의 줄
성경본문 : 호세아 1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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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이병호 주교님이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여행가의 라디오 인터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 직업이 여행하는 일이니만큼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다계 프랑스인이면서도 하필 이스라엘만 가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대인이면서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이스라엘일텐데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업이 여행가인데…. 인터뷰 도중 당연히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아직도 안 갔습니까?” 그가 대답합니다.
“너무 소중해서…….”

너무 소중해서 가 볼 수가 없는 곳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 줄 압니다. 바로 그 곳은 어머니의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 주일인만큼 평소에 가 보지 못한 이곳을 함께 찾아가 볼까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되어 있는 귀절입니다. 특히 선지자 호세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이 본문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는 부모님의 사랑 특히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함께 그 소중한 어머니의 세계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하나님은 이미 두 번 해산의 고통을 치루셨던 당신의 모습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처음 이스라엘을 탄생시켰을 때 당연히 해산의 고통을 치루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이 성장하였을 때 애굽에서 종살이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고 그래도 둘 수 없으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 내십니다. 두 번째 해산의 고통을 치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모습이요 바로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또 다른 해산의 고통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은 두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후로는 선지자를 통해 계속됩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해산의 수고가 끝없는 것처럼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수고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최근 저의 집 처마에 오리올(oriole)이라는 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알을 낳았는지 노상 둥지에 앉아 있습니다. 가끔 자리를 비우지만 줄곧 둥지에 앉아 알을 품고 있습니다. 그 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동네에 제일 많이 눈에 띄는 새가 오리올입니다. 전에는 하찮게 보았는데 이제는 그 새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 새가 저렇게 날기까지 어미새가 둥지 안에 앉아 얼마나 큰 수고를 하였는가!”
새 한 마리 한 마리가 있기까지 어미새는 둥지에 앉아 말없이 수고를 하였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흔해 보이는 새들은 수많은 어미새의 고통을 세상에 자랑하면서 날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만일 오늘부터 어미새들이 둥지에 앉는 것이 싫어서 더 이상 앉지 않는다면….” 새들은 이 세상에서 종적을 감출 것입니다. 오리올이 이처럼 어미새를 자랑하면서 날고 있는데, 우리 사람은 어떤가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은 오리올보다 한 차원 더 높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깊게 담겨진 김수환 추기경께서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김 추기경은 4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님 품에 안기십니다. 곧 4남2녀를 어머니 홀로 키우신 셈입니다. 추기경은 당신이 추기경이 되기까지 가장 소중한 역할을 하신 분을 어머니로 손꼽고 계십니다. 그런데 맏형은 어머니를 많이 괴롭혔던 분인 것 같습니다.
큰 형이 20대에 집을 나가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곳에서 화상을 입어 죽게 되었습니다. 일본말도 모르던 어머니가 주소만 들고 일본까지 찾아가서 들것에 실어 한국으로 데려온 후 정성껏 치료시켜 낫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리가 나니 이번에는 만주로 가 버립니다. 소식은 끊기고 어머니는 아들을 찾으러 세 번이나 만주로 가 보았습니다. 세 번째 갔을 때 하얼빈 역에서 아들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어서 큰 소리로 불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한 번 돌아보곤 그냥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추기경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사람은 형이 아니었겠지요.” 말한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는, “아니다, 어미의 눈은 못 속인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해산의 수고는 이 땅 위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어미새의 단 한 번의 수고를 자랑하면서 날고 있지만 인간은 이 땅 위를 걷는 어머니의 끝없는 해산의 수고의 열매가 아니겠습니까?
어미새들은 새끼들이 둥지에 있을 때까지 사랑합니다. 둥지를 떠나면 남남이 됩니다. 아니 서로 경쟁자가 됩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어머니의 사랑은 어머니가 생존하시는 한 계속됩니다. 어머니의 해산의 고통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다른 형태로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셨듯이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모습에서 소중한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위해서 몇 번이나 해산의 고통을 치루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첫 번째 소중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김 추기경의 형님이 어머니의 사랑을 얼마나 기억했을까요? 아니 김 추기경의 형님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는 어머니의 사랑의 수고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요? 많은 경우 이 사랑이 너무 커서 이 사랑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새들은 단 한 번의 해산의 고통을 자랑하며 사는데 인간은 어머니의 사랑이 너무 커서 도리어 잊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김추기경의 형님처럼…. 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에브라임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큰 지파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될 적이 많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고쳐주셨는데 이스라엘이 이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였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 사랑이 너무 커서입니다. 4절 말씀에 두 번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벋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첫 번째 귀절이 새로운 각도에서 사람의 사랑을 보게 합니다. 사람의 줄이 곧 사랑의 줄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줄을 제일 연상케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다. 탯줄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와 자녀의 사이를 잇는 줄이 바로 사람의 줄입니다. 그 것이 바로 사랑의 줄이라는 것입니다. 이 줄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탯줄로 인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곳 탯줄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탯줄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탯줄에 연결되어 있었지만 아무도 그 탯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중 어머니의 탯줄을 느껴보거나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 어머니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탯줄과 같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수줍은 모습으로 우리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처럼 수줍은 모습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자녀를 가르치거나 고쳐줄 때 자신이 하신 것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대신 어머니는 자녀들이 스스로 깨닫게 될 때까지 말없이 기다리십니다.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 자신의 사랑을 숨기시고 또 숨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영의정을 지낸 홍서봉이라는 분의 어머니는 지혜로운 어머니였습니다. 남편을 여위고 직접 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가르칠 때 외간 남자를 대하듯 앉은 사이에다 병풍을 쳤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그리하는지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어미는 아버지처럼 아이를 대할 때 엄격할 수가 없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아이가 글을 잘 읽으면 나도 모르게 얼굴에 기쁜 빛을 떠 올리게 됩니다. 그래서는 자칫하면 아이에게 자만심을 길러 줄 염려가 있습니다. 내 얼굴을 못 보도록 가리는 것이랍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얼굴을 가리운 채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가르쳐주기도 하시고 고쳐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듯 당신의 얼굴을 숨기십니다. 인간들이 그 사랑을 스스로 알게 될 것을 기다리시면서…. 우리들의 어머니에게도 이 모습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처럼 소중하지 않을까요?

어머니의 세계는 이처럼 소중하지만 많은 경우 소홀히 여김을 당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일회적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평생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늘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대개 too late.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의 아이러니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머니 주일을 지킨다 할지라도 진정 어머니의 소중한 세계를 맛보지도 못하고 지내기 십상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곧 이 소중한 세계는 종종 소홀히 여김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기회가 있는 데로 이 소중한 세계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도 뒤 늦게 어머니의 세계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5년 전 하나님 품에 안기셨는데, 매 주기마다 저는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대신 간단한 설교를 써서 한국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다섯 차례 어머니를 추모하는 설교를 써서 보냈습니다.
매 주기가 다가오면 처음에는 걱정이 됩니다. 이번에는 어떤 설교를 써서 보내나…?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말씀 앞에 서면 잊혔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끝없이 저희를 사랑하셨던 모습, 무엇보다도 부끄러운듯 숨어서 사랑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편 후회가 됩니다. 이 소중한 어머니의 세계를 어머니 살아생전에 왜 느끼지 못하였던가?

오늘 우리는 어머니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곳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일회적 사랑이 아닙니다. 일평생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 귀한 사랑을 어머니들은 부끄러운 듯 숨어서 나타내십니다. 어머니는 일평생 병풍 뒤에 숨어 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병풍을 제치고 하루도 빠짐없이 해산의 수고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가 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뒤늦게 찾아가 뵌다면 많은 후회와 함께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중략]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담대히 병풍을 제치는 사람들은 반면 놀라운 어머니의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병풍을 제치고 어머니의 세계를 체험하신 분이 이어령 교수입니다. 그는 어머니를 책으로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나의 서재에는 수천수만 권의 책이 꽃혀 있다.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있어 진짜 책은 딱 한 권이다. 이 한 권의 책, 원형의 책,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 그것이 나의 어머니이다.
(중략)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였으며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다.”
이 교수님에게도 어머니는 너무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님은 소중하였기에 더욱 찾아 가보았습니다. 찾아 가 보면 볼수록 끝나지 멋진 서사시였던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의 모습, 홍서봉 영의정의 어머니의 모습, 이어령 교수님의 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이런 소중한 어머니를 향하여 우리는 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줄 알았습니다.”
이제 심순덕 시인과 더불어 새로운 노래를 부르십시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각자의 어머니의 소중한 세계를 찾아가 보십시다. 어머니의 최고의 서사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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