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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충성된 종

날짜 : 2011.02.06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착하고 충성된 종
성경본문 : 마태복음 25장 14-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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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열살 난 아들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아주 흥미있는 강연 테이프를 듣고 있었습니다. 연사가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무슨 일을 해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먼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무슨 일을 해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들이 말합니다.
“그거야 뻔하지. 로또를 사야지.”

이런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그 누구도 확실한 보장 가운데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일줄 압니다. 곧 어떤 일에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정말 이 세상에서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일은 없을까요? 성공이 100% 보장된 일은 없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오랜 후 주인이 돌아와 결산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일해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들에게 주인은 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와서 말합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에 주인이 말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주인은 아주 모독을 당한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종은 자신을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고 상당히 불쾌해 합니다. 이 종은 자기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곧 아무 일 하지도 않고 돈을 버는 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곧 고리대금업자 보다 더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리대금업자는 돈 놀이라도 하죠? 그러나 이 주인은 심지 않은데서 거두는 자로 여긴 것입니다. 주인은 멀리 가서 놀다가 온 한량 취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은 아주 분노했습니다. 자기를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나쁜 사람으로 알았으면 차라리 고리대금업자에게 맡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그리고는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28절 말씀입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좀 이해가 안되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똑같이 수고하여서 4달란트를 만들었는데 기왕이면 두 달란트로 4달란트 만든 종에게 주시지 않으시고 왜 똑 같이 일해서 열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줍니까? 정 안되면 반 달란트씩 나누어 주던가. 어떻게 보면 고리대금업자 보다 더 개념이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비유가 주는 첫 번째 교훈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은 좀 헷갈리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든 일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주는 비유입니다. 실패는 곧 일하지 않는 것 자체라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해서 성공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일한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두 가지 면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세상의 일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곧 사회 생활하다가 제 아무리 실패를 하여도 모든 실패는 성공을 위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다 성공을 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의 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주님의 일을 할 때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대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장하십니다. 그러니 모든 일에는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일이건 세상 일이건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패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비유가 주는 첫 번째 교훈입니다.
교우 여러분, 일은 곧 성공입니다. 일하지 않는 것이 곧 실패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일을 해야겠죠.

그런데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 아직 캥기는 점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가 말씀 드린대로 한 달란트를 왜 10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기왕이면 똑 같이 열심히 일한 4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서 5달란트를 갖게 해주셔야지….
이런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니 또 다른 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모두 다 다섯 달란트면 다섯 달란트 한 달라트면 한 달라트를 주면 되지 ‘왜 한 종에게는 다섯 또 다른 종에게는 둘, 마지막으로는 하나를 주었나’ 이해가 안 갑니다. 이렇게 차별을 두셨기 때문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일을 안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곧 모든 것의 시작은 차별인 것입니다. 결국 주인의 잘못입니다. 시작부터 잘못 되었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잘못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제일 적게 받은 기분입니다. 남들보다 적게 받았습니다. 남들 떡이 커 보인다 하지만 이거는 커 보이는 게 아닙니다. 정말 내가 받은 것이 제일 적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한 달란트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망의 멧세지를 주시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그럴리는 없습니다.
신학자들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이 조금씩은 다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우리는 여러 가지 각도로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제가 프린스톤 신학교를 다닐 때 비유에 대한 클래스를 들었는데 그 교수님이 이 비유를 남달리 해석하는 것을 인상 깊게 들었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로 이루어진 크리스챤 공동체에게 보내는 복음서라고 전제를 하면서 이 비유를 해석하셨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택함 받은 백성인데 도리어 큰 나라 그늘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늘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는 도리어 적은 재능을 주었다고 불평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리어 이방인들에게 많은 재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에게 하나를 주셨다면 이방인들에게는 다섯과 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 크리스챤들은 하나님은 자기들보다 이방 크리스챤들을 더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불평으로 인해서 아무 것도 하질 못합니다. 주어진 재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늘 실패의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소유한 한 달란트마저 땅에 묻어 둡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해결방안이 있습니다. 우리 잠시 불평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제 삼자의 입장에서 살펴 보아야겠습니다. 먼저 이 세 사람이 받은 재능이 어떤 것인지 한편살펴 보아야겠습니다. 한 달란트라는 재산이 얼마인지 살펴 보면 우리가 받은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줄 압니다.
한 달란트는 16년간의 품삯입니다. 일 년간 연봉이 5만불이라고 하십시다. 그러면 5 곱하기 16은 80, 곧 80만불을 받은 것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160만불을 받은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400만불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물론 1세 한국 분들은 드물지만 160만불 연봉 400만불 연봉 받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은 두 말할 것 없고요. 우리들의 연봉이 80만불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생각만해도 기분이 흐뭇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적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좀 문제가 많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재능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담의 죄로 인해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적게 받은 자도 넉넉한 재능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신 것만 생각하고 그 받은 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80만불을 소유한 채 160만불 400만불의 재능을 소유한 자들을 향해 질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어진 재능마저 땅에 파묻지 않았습니까?

탈벤 샤하르라는 하바드 대학 교수가 있습니다. 이 분이 콘설팅하는 회사 사장이 어느 날 리더십 세미나를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서 친구와 함께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곧 자기 친구에게 세미나를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의 강의에 많은 참가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친구에게 질투를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고, 그런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습니다. 화가 난 나머지 사흘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합니다.
‘어떻게 친구를 질투할 수 있지?’
고민 끝에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기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은 그날, 뜻밖의 답변을 듣습니다.
친구 역시 자기 강의를 보면서 질투를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그들은 계속 서로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예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질투 때문이지 않을까요? 나보다 저 사람에게 더 많이 주셨으니 저 사람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비교하지 않고, 주신 재능으로 감사한다면 우리는 놀라운 축복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남의 떡을 보면 당연히 더 커 보입니다. 나의 것만 보십시다. 최소한 80만불의 가치를 발견하십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십니다.

이제 나의 것으로 헌신하려는 마음을 먹으니 나머지 궁금증까지도 풀리는 것 같습니다. 왜 주인은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를 소유한 종에게 주는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주인이 당신 마음대로 누구에게 무엇을 주어도 상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자기 손에 주어진 것만 감사하고 그것을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것은 누구에게 주시나 생각한다면 이미 우리는 하나님 감시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시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감시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과 재능으로 열심히 일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우리는 언제나 성공하고야 맙니다. 열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를 더 받듯이 우리들의 재능은 눈덩이처럼 커져 갈 것입니다. 성공가도를 달릴 것입니다. 청지기의 삶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오늘 제직임직예배로 드립니다. 사랑하는 제직 여러분, 여러분은 못해도 80만불의 재능을 받았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160만불 400만불의 재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들과 비교할 여유가 없습니다. 80만불의 재능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말씀을 거둡니다. 그러면 오늘부터 당장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해 하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는 일을 한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5장은 어떻게 보면 ‘최후의 심판’ 장이라고 할만큼 심판에 대한 비유 세 가지가 나옵니다. 바로 전에는 기름을 준비한 열처녀 비유가 나오고 바로 다음에는 모든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가르는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곧 양들이 바로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3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기본적 재능에 대해서 은연 중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와 나그네와 환자들과 죄수들을 영접하는 삶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이 재능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80만불짜리 재능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80만불짜리 재능을 잘 관리해도 우리는 엄청난 칭찬을 받습니다.
교우 여러분,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는 일은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항상 성공합니다.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까지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상을 주십니다.
2011년도 우리 함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십시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십시다. 주어진 재능을 십분 발휘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은 사용할수록 커가는 신기한 재능입니다. 다섯이 열이 되고 또 열 하나가 되는 재능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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