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주의 은택으로

날짜 : 2010.05.30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주의 은택으로
성경본문 : 시편 65편 1-13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00530.wmv

어떤 사람이 시골 상점에 들어서다가 문에 붙어 있는 표시를 보았습니다.
‘위험! 개조심!’ 상점 안에는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 늙은 사냥개가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조심해야 하는 개가 저건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물론입니다.” 상점주인이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내가 보기엔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데요. 저 경고문은 왜 붙였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점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저 경고문을 붙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꾸 개에 걸려 넘어지거든요.”

얼마전 어느 미래학자가 쓴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이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미래에게 물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는 경고의 뜻으로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5월이 지나갑니다. 세월은 날라간다는 것을 갈수록 실감합니다. 얼마 전까지 추운 겨울이 언제 끝나나 조바심을 안고 지난 것 같은데 벌써 봄기운도 지나고 나무들은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다 해 놓은 것 같습니다.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여름은 오지 않아서 그런지 2010년은 아직도 새해인 느낌입니다.
하여튼 지난 5개월간 은혜 가운데 모두 잘 지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받은 은혜도 많겠지만 각자만 아는 고통의 시간도 없지는 않았을줄 압니다. 이제 본격적인 2010년도의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이 남은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오늘 함께 생각하고 싶습니다. 남은 한 해가 우리에게 걸려 넘어지는 사냥개와 같을까요? 아니면….
사냥개 이야기로 시작하였으니 이번에는 어느 고양이와 강아지의 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의 미래의 모습은 이 둘 중에 하나일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고양이의 일기입니다.
“오늘은 포로생활을 시작한지 983일째 날이다. 나를 잡아 온 자는 나에게 매일 이상한 물건을 가져다준다. 내가 오늘도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은 언젠가 도망치는 날을 꿈꾸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어느 집에서 살게 된지 3년쯤 된 것 같습니다. 고양이는 3년간의 생활을 포로생활로 생각하며 스스로 자학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이 이러면 안되겠죠.
그러면 강아지의 일기를 소개해 드릴까요?
“8:00am- Dog food! My favorite thing!
9:30am- A car ride! My favorite thing!
9:40am- 공원에서의 산책! My favorite thing!
10:30am- 주인이 나를 쓰다듬어 주다! My favorite thing!
12:00pm- Lunch! My favorite thing!
1:00pm- 뒷뜰에서 놀다! My favorite thing!
3:00pm- 꼬리흔드는 놀이를 하였다! My favorite thing!
5:00pm- 뼉다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My favorite thing!
7:00pm- 공놀이를 하다! My favorite thing!
8:00pm- 사람들과 TV를 함께 보다! My favorite thing!
11:00pm- 침대로 꼴인! My favorite thing!”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고양이를 닮으셨습니까, 강아지를 닮으셨습니까? 고양이는 자신의 삶을 포로의 삶으로 간주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강아지는 하루 가운데 11번씩이나 외칩니다. My favorite thing(내가 좋아하는 것)!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아니 남은 한 해가 어떠한 한 해가 되길 원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남은 한 해의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할지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은 두 가지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찬송이고 또 하나는 서원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서원은 각자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심이 바로 믿는 자들의 서원일줄 압니다. 곧 찬송과 결단을 갖고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교회에 나오실 때 최소한 이 두 가지 마음을 안고 나오셨을줄 압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 나오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보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세번째 모습은 기도를 안고 나오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올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옵니다. 곧 1, 2 절을 보면 성전에 나오는 자의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모습입니다. 찬송과 결단과 기도입니다. 찬송과 결단과 기도 이 세 가지가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찬송과 결단과 기도의 모습은 고양이에 더 가까울까요, 강아지의 모습에 더 가까울까요? 3절 말씀입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죄악이 나를 이겼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죄악에 포로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양이의 일기를 소개해 드릴까요?
“오늘은 포로생활을 시작한지 983일째 날이다. 나를 잡아 온 자는 나에게 매일 이상한 물건을 가져다준다. 내가 오늘도 살아가는 유일한 비결은 언젠가 도망치는 날을 꿈꾸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믿는 자들의 본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우리 모두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언젠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막연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이제는 찬송과 결단과 기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남은 한 해를 사는 첫번째 모습은 자신이 고양이였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때 죄악의 포로 생활을 하였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난 5개월간에도 어떤 면에서는 죄악의 포로생활을 하였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인지라 죄에서 완전한 해방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양이처럼 죄에 포로가 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먼저 인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자들은 미래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미래에 걸려 넘어지기 아주 쉽습니다. 우리가 5개월간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 덕분에 우리는 마치 아무런 죄를 짓지 않은 마냥 당당히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5개월 동안에 지은 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데 그것이 올해 우리가 지을 모든 죄인가요? 앞으로 7개월 동안은 더 이상 죄를 짓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이러한 고민을 이미 시편기자는 다 마스터한 것 같습니다. 3절 말씀 다시 한번 봉독해 드립니다.
“죄악이 나를 이겼사오니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아주 짧은 표현이지만 상상할수 없는 내용이 담긴 귀절입니다. 저는 이 귀절이 오늘 본문 귀절중에 제일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단 한 귀절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이 표현 안에는 과거의 죄악이 사함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생겨날 어떤 허물도 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놀라운 확신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실 두 가지 죄가 이 표현 안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첫 번 째로는 과거의 죄입니다. 과거의 죄는 이미 사함을 받았습니다. 두 번 째는 앞으로 지을 죄입니다. 두번째 죄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시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을 죄도 이미 사함을 받은 확신에 차있습니다. 그는 자신도 계속 죄의 굴레에 빠져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가 자신을 끝까지 쫓아오지만 죄사함의 물결은 더 큰 은혜의 홍수가 되어서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확신이 바로 2010년 남은 한해 우리에게 필요한 확신인줄 압니다.

교우여러분, 우리의 5개월 간의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을 죄를 위해서도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세계가 존속하는 것은 어딘가에 36인의 의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이 노여움을 참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 덕분에 오늘도 세상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도 어떤 사람이 36명의 의인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본인조차 모릅니다. 알면 교만해지기 때문이랍니다. 유대인의 전설이지만 한번쯤 주의 깊게 생각할만한 전설 같습니다. 이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의인이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픈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이 유대인의 전설을 읽고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36인에 들어가는 자들은 자신의 죄를 고백을 하는 자들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울러 죄사함의 은총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아는 자들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먼저 이 고백의 주인공이 되십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과거의 죄는 물론이거니와 미래의 죄까지도 흔쾌히 사해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시편 기자는 ‘나의 허물’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곧 시인은 공동체 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뿐 아니라 공동체의 죄 이웃의 죄를 함께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의 고백의 주인공들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움직이는 36명의 특징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의 죄 뿐아니라 이웃의 죄를 위하여 애통하는 사람들일줄 압니다. 이웃의 죄를 비판하는 자가 아니라 애통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냥 애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사함의 홍수가 가까이 있을줄 알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홍수는 인류 공동체를 향하여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웃을 향한 비판이 죄사함의 은총을 불러오지 않습니다. 애통이 불러 옵니다. 애통의 사람들이 되어 가십시다.

그러면 이러한 공동체적 고백은 어떤 삶으로 우리의 삶을 이어지게 할까요? 4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공동체적 고백의 주인공들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주님 안에서의 만족입니다. 죄사함의 축복을 맛본 자들의 삶은 바로 행복입니다. 처음 말씀드린 강아지의 행복이라고 할까요? 아마 4절에는 강아지의 아침 7시의 행복이 기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5절 말씀부터 한 시간 마다의 행복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살펴 볼까요? 5절 말씀입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기도 아니 공동체의 기도가 응답되는 행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기도가 응답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시 한 시간이 지나갑니다. 기자는 또 다른 체험을 합니다. 6, 7절 말씀입니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기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는 자기가 사는 이곳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아주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산에서는 화산의 위험 바다에서는 풍랑의 위험 사람들 사이에서는 싸움의 위험이 가득찬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자기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아주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엇인가 놀라운 것을 체험하였기에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끝의 사람들과 택함 받은 자들의 삶을 지금 구분하고 있습니다. 땅끝에 사는 자들은 아침되는 것과 저녁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만 하나님의 택한 공동체에 속한 자들은 아침이 되도 좋고 저녁이 되도 즐겁습니다. 아마 이분은 농부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밤 동안 얼마나 곡식들이 잘 자랐나 기대하면 즐거워 합니다. 저녁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과 함께 지낼 마음으로 즐겁게 귀가합니다. 시간 시간이 행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농부인지라 하나님께서 곡식들을 신비한 방법으로 기르고 계신 것을 늘 보아왔습니다. 농토에 나갈 때 마다 이 고백을 합니다. 물론 때로는 가뭄도 들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이 고백을 하곤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잠시 농부의 모습에서 여러분의 삶의 모습으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농부는 모든 일에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체든지 회사 일이든지 학교 일이든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것을 바로 하나님께서 해 주시고 계심을 생각하시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일이 잘 안 될 때에도 이 농부와 같은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대로 항상 풍년이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농부는 항상 풍년인냥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계속 11, 12절 말씀입니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일년내내 주님의 축복이 하루도 빠짐없이 내리고 있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천지가 함께 기뻐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농부는 또 다른 풍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풍년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사실 풍년을 주시고 안 주시고는 하나님 몫입니다. 그러나 풍년의 노래를 부르고 안 부르고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에 대해서 우리는 풍년의 노래를 부를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직업을 생각하면서 풍년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오늘의 시인은 매일 풍년의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매일 부르다 보니 이 노래가 그냥 뇌리에 박혀서 자동적으로 이 노래가 흘러 나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실 항상 풍년인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풍년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흉년을 풍년으로 바꾸는 자들이 되어 갑니다. 세상적으로 보기에 항상 풍년처럼 보였던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일줄 압니다. 그도 항상 풍년을 맞이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는 흉년가운데서도 풍년을 내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회사원들에게 하는 두 가지 조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나쁜 소식에 귀를 기우리라.’ 나쁜 소식을 잘 활용하여 혁신적인 새로운 특성의 제품으로 개선하자는 뜻에서 이러한 조언을 늘 한다고 합니다. 두 번 째 충고는 “변화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를 늘 말한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충고를 할 수 있게된 이유는 풍년의 노래를 부르는자에게는 이래도 풍년, 저래도 풍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흉년 가운데서 풍년을 노래하는 자인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늘 풍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오늘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의 시편기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고양이의 모습을 잘 압니다. 자신의 죄 공동체의 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자신 안에 있는 강아지의 모습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즐기면서 노래하는 자입니다.

벌써 5월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신록은 사라지고 나무잎들은 무성해지기 시작합니다. 밭을 가꾸시는 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채소를 보는 즐거움으로 하루 하루 지내실줄 압니다. 그런데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채소가 무럭 무럭 자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봄과 함께 온 따뜻한 날씨 때문일까요? 아니면 정성껏 가꾸는 여러분들의 손길 때문일까요? 물론 그 것도 중요하겠죠. 저는 확신합니다. 시인의 노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선가 아무도 안 듣는 곳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는 시인의 노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인은 가뭄이 와도 병충해가 생겨도 늘 노래를 부르는 시인입니다. 이 분은 언제나 풍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36명의 시인들이 부르는 노래로 인하여 오늘도 세상에는 죄사함이 가득차고 먹고 남는 풍년의 축복이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시인은 우리로 하여금 36명의 시인 가운데 초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는자 공동체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아울러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풍년의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함께 죄의 고백을 하십시다. 함께 죄사함의 확신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함께 만물을 축복하십시다. 함께 풍년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미래가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도로시 페터슨 (Dorothy Patterson)이라는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나의 자녀들은 내가 한 수많은 지혜로운 말들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자녀들은 기가 막힌 충고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뇌리에는 나의 모습이 남을 것이다. 내가 그들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의 모습만 남을 것이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노래를 부르는 우리들의 모습만을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요?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죄사함의 확신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하나님의 넘치는 선물을 생각하면서 풍년의 노래를 부르십시다. 36명의 시인이 되어 갈 것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This entry was posted in 2015년 이전 설교.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291 아이의 손에 이끌리어 admin 2015.05.03
290 안식의 기쁨 admin 2015.04.26
289 나를 만져보라 admin 2015.04.12
288 갈릴리로 가라 admin 2015.04.05
287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주옵소서 admin 2015.03.29
286 그를 기억하리라 admin 2015.03.15
285 나는 내 양을 알고 admin 2015.03.08
284 나의 친구라 admin 2015.03.01
283 은혜를 입은 자 admin 2015.02.08
282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노라 admin 2015.02.01
< Prev 1 2 3 4 5 6 7 8 9 10 30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