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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토록 빛나리라

날짜 : 2010.05.0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영원토록 빛나리라
성경본문 : 다니엘 12장 1-4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00502.wmv

다음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년후에는 60%
3년후에는 40%
5년 후에는 15%
10년 후에는 5%
30년 후에는 2%
50년 후에는 0.7%
100년 후에는 0.03%

이것은 회사가 살아남는 확률이라고 합니다. 백년 후에는 0.03%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저희들의 자녀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하길 바랍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 또 좋은 학교를 비싼 등록금을 내며 보내려 합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100년간 살아남을 확률은 0.03%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유명한 회사들이 얼마나 갔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이젠 세계적인 회사가 된 삼성이 몇 년 되었는지 궁금하시겠죠? 1938년도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약72년이 지났습니다. 대단한 회사입니다. 50년 후 0.7% 살아남는데 그것을 넘겼고 이제 100년을 향하여 줄달음질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100년은 넘어 갈 것 같은데 과연 수 백 년 이어질까요?
미국회사 이야기를 할까요? 2년 전에 금융위기로 인해서 문을 닫은 레만 브라더스 (Lehman Brothers)는 148년의 영광을 누리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한편 요즘 바늘방석에 올라와 있지만 아직도 그 위세를 당당히 떨치는 골드만 샄스 (Goldman Sachs)는 올해 130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저희 자녀들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위한 최고의 기대와 바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기대와 바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물론 겨우 100년 남짓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우리의 기대는 아닐줄 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2:1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좀 해석하기 어려워 보입니다만. 사실 마지막 때의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울 리가 없을줄 압니다. 앞으로 1, 2년 후의 일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마지막 때의 일이야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또 그렇게 어렵게만 생각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에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때의 이야기가 기록된 대표적인 책인데, 성경책은 신학자를 위한 책만은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읽어서 가슴에 들어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해석의 한 요소입니다. 쉽게 이 말씀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때에 큰 환난이 올 것이다. 그러나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받아드리면 될 줄 압니다. 몇 주 전 요한 계시록의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이것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생명책과 같은 책일줄 압니다. 자 마지막 날에 제 아무리 큰 환난이 올지라도 그 책에 기록된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그 책에 기록된 자들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회사 다녀도 무엇합니까? 언젠가 마지막 날에는 어느 회사 다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기록이 되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모두 그 책에 기록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절 말씀입니다.
“땅에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인생의 마지막은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영생이냐 영벌이야.

어느 날 두 무신론자가 한 수도자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수도자의 고행하는 것을 보고 무신론자들은 왜 그렇게 지독한 금욕생활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요.” 라고 수도자가 대답했습니다.
“불쌍한 신부님.” 그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만약 사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신부님은 감쪽같이 속은 셈이 되겠군요.”
“신사 양반들.” 연민의 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수도자가 대답했습니다.
“만약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여러분들이야말로 속은 셈이 되겠지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봅니다. 저희는 먼저 저희 자녀들에게 사후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어야겠습니다. 이것을 주일학교에만 맡기지 마시고 직접 부모님들이 감당하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일주일에 5일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토요일도 특별활동들에 시간을 보내니 학교에 보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교회에는 주일에 한번 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기껏해야 두 시간 정도입니다. 학교에서는 사후세계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요즘은 아예 공립학교에서는 주기도문도 폐쇄되어 있고 공석에서는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사후세계를 누가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영생과 영벌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바로 사후의 세계를 인식하는 삶을 살아야할줄 압니다. 입으로만 “천국이 있단다”가 아니라, 천국이 있는 것을 삶속에서 나타내며 살아야 할줄 압니다. 이 때 저희 자녀들은 배울 것입니다. 천국이 있음을…. 이들은 천국을 바라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천국을 인식하는 삶일까요? 천국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까요? 3절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지혜 있는자, 이들은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난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 이들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을 삶속에서 나타내며 사는 두 가지 모습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저희들의 자녀들이 궁창의 빛처럼 별의 빛처럼 빛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 오늘 우리가 어린이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곧 우리는 우리자녀들을 지혜로운 자로 또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로 자라게 하여야 할줄 압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지혜로운 자의 삶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조나단 해츠 (Jonathan Haidt)라는 심리학자가 ‘Elevation theory’를 발표하였습니다. 고무 내지 격려이론이라고 할까요? 이웃의 훌륭한 행동을 보면 저절로 격려가 되어서 그 일을 흉내 낸다는 이론입니다. 이 학자는 어떤 사람에게는 마더테라사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America’s Home Videos 방송을 보여주었습니다. 누가 더 고무적인 느낌을 받았겠습니까? 당연히 마더테레사의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입니다. 곧 무엇을 보느냐가 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이 제일 가깝게 대하는 다큐멘터리나 home video는 부모가 아닙니까? 부모님들의 삶이 어린이의 삶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들의 지혜로운 삶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삶이 너무도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이론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지 지혜로운 삶은 어떤 삶인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지난주 수요여성성경공부의 첫 질문이 ‘송구영신예배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안고 예배에 참석할까요?’이었습니다. 어느 교우분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 날 받은 말씀을 가지고 일 년 동안 신앙생활에 지침으로 삼으려고요.” 아주 좋은 간증을 나누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지난번 송구영신예배 때 드린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흉년이 들어있을 때였습니다. 흉년이 들었다는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한 제자가 보리떡 이십 개와 자루에 담은 채소를 엘리사에게 드렸습니다. 흉년 가운데서 엘리사 선지자가 제대로 먹지 못하신다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은 선지자는 놀랍게도 무리에게 나누어 주라고 합니다. 놀란 이유는 이 때 사람들이 100명가량 있었습니다. 1인분을 가지고 왔는데 100명에게 나눠주라니 말이 됩니까? 엘리사는 고집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들이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결국 엘리사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백 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신약에 나오죠. 그것도 두번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두 번 “먹고 남으리라”의 사건을 베푸십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송구영신예배 때 말씀드렸습니다. 흉년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여서 엘리사는 외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먹고 남으리라.”

토탈 섬 (Total sum) 법칙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의 몫을 백 명이 나누려면 백분의 일로 나누게 되 있습니다. 아무리 나누어도 총 합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모든 것을 더 하면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total sum 법칙입니다. 엘리사의 제자는 이 법칙을 너무도 잘 알아서 엘리사의 말에 놀란 것입니다. “먹고 남으리라.” 한 사람의 몫을 백 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Total sum 법칙을 배우지 않습니까? ‘한 사람만 일등을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일주일 내내 학교에서 배우는 원리입니다.
2년 전부터 경제위기가 왔는데 왜 이처럼 풀리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너무 잘 배운 것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자기 것 챙기기에 바쁜 삶을 살게 되다 보니 경제는 더욱 악순환이 되어 갔습니다. 어제 물난리가 났는데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양치를 하려고 하는데 물이 안나와서 준석이 보고 물 좀 사오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 후에 빈손으로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1시간 만에 다 품절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요? Total sum! 그러나 진정 이러할 때 우리 자녀들이 배워야 할 지혜가 무엇일까요? 엘리사의 지혜가 아닐까요? “먹고 남으리라.” “마시고 남으리라” 이 지혜를 누가 가르칠 수 있을까요?
교우 여러분, 물 한 그릇을 떠 놓고도 “먹고 남으리라” 고백할 때 우리 자녀들은 놀라운 지혜의 자녀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것을 고백할 때 우리 자녀들은 모두가 일등이 될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는 무한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지막 날에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 자체가 무한하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어른들이 먼저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이 고백을 하여야 할줄 압니다. “마시고 남으리라.”

두 번 째로 우리들의 자녀들이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야 할줄 압니다. 그 때 우리 자녀들은 별처럼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은 전도를 많이 한다는 뜻일줄 압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들이 별처럼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먼저 우리들의 자녀들이 전도를 많이 하는 자가 되게 하여야겠습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전도를 많이 하는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 째로는 우리가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님들이 전도를 많이 하면 자녀도 배우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좋은 전도 방법은 불신자를 집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먹고 남으리라’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초대를 통해서 안 믿는 자들의 마음 문은 열리게 됩니다. 잘 무르익은 후에 자녀들이 보는 가운데 교회로 모시고 오면 그것을 자녀들이 보고 영원토록 빛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특히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한 모습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닙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복음을 전했을까요? 초대교회당시 제일 큰 미덕이 이웃초대였다고 합니다. hospitality (환대)였습니다. 이들은 안 믿는 자들을 초대함을 통해서 폭발적인 전도를 실천했습니다.

사실 전도 말고도 자녀들에게 영원토록 빛나는 삶을 살게 하는 또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근본적인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벌써 5월 첫 째 주일입니다. 지난 4개월간 저의 마음에 지침이 되어 온 두 가지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금방 소개해 드린, “먹고 남으리라.” 또 하나는 지난 사순절 기간에 접한 말씀 중 가장 깊게 남아 있는 말씀입니다. “Father, forgive them.”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교우 여러분, 요즘 경제가 어렵다 하며 돈이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돈은 세상에서 없어진 것 같지만, 죄는 없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온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가장 잘 쫓아다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gossip (소문)입니다. 남의 죄를 옮기는 것이 gossip이고 gossip자체가 죄가 됩니다. 물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서 남의 죄를 옮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좋은 약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백과 함께 남의 죄를 말해야 합니다. “Father, forgive them.”
우리가 이웃의 죄를 얼마나 자주 접합니까? 사실 그 때마다 우리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주여 용서하소서.” 이 고백 없이 이웃의 죄를 말하는 것이 죄입니다. 한편 우리가 이 고백을 하고 또 하고 또 할 때 우리들의 자녀들은 우리들에게 배우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이 고백의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이 고백으로 인하여 영원토록 빛나는 사람이 되신 분이 있지 않습니까? 스데반 집사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예수 믿는 자들을 죽였습니다. 그 중에 스데반이 있지 않습니까? 스데반이 죽으면서 고백합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결국 이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사울이 바울이 됩니다. 사울이 회개를 하게 됩니다. 결국 스데반의 이 고백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자녀들도 이 고백의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이 고백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이 고백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은 영원토록 빛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알렉스 노블 (Alex Noble)이라는 작가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어제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았다. 한 사람 두 사람 적어 내려갔다. 그 사람들의 이름이 내 머리에 떠 오를 때 나는 용서의 선물을 주었다. 현재 이 시간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 작업은 어느덧 축제의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우정이 더 광채가 나기 시작하였고, 슬픔은 사라졌고, 싸움은 그쳤고 논쟁은 취소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원수의 모습 안에 친구를 보게 된 것이었다. 용서의 시간은 나로 하여금 짐승에서 천사로 변화시켰다.”
이웃을 용서하는 자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별처럼 빛나게 된다는 고백인줄 압니다.

오늘 우리들의 자녀들이 요즘 가장 필요로 하는 말 두 가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지혜롭게 하는 말은 “먹고 남으리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말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우리 자녀들이 이 두 가지의 말씀을 늘 되뇌이는 자들이 된다면 최고의 삶을 살게 될 줄로 압니다. 우리 자녀들이 이 두 고백을 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이 두 고백을 밥먹듯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할줄 압니다. “먹고 남으리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 두 고백이 만났을 때 최고의 삶이 탄생됩니다. “먹고 남으리라”는 놀라운 상상력을 불러 옵니다. 이 고백은 미래를 보게 합니다.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불러 옵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서 해방케 합니다.
저는 스데반이 죽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해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죽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사울을 보았습니다. 순간 그에게는 멋진 상상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언젠가 사울이 도리어 예수의 복음을 위해 세계적인 선교사가 되는 것을 상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한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의 고백에는 “먹고 남으리라”의 고백이 담겨져 있었을 줄 압니다. 곧 그는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최고의 것을 꿈꾼 것입니다.
이 고백을 들은 사울은 옳은 데로 돌아오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도 수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처럼 영원히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우리 자녀들에게 이 두 가지를 선물로 주십시다. “먹고 남으리라.”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우리들의 자녀들은 영원토록 빛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천국에 가면 이상하게도 손가락질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어느 사람이 천국에 가서 깜짝 놀랍니다. 이 땅에서도 손가락질을 많이 당해서 늘 괴로웠는데 천국에서도 계속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나 겁이 벌컥 났습니다. 땅에서 gossip할 때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이런Gossip을 많이 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천국에서의 손가락질은 다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국에서는 “저 사람 때문에” 까지는 같은데, 그 다음은 “구원받았소”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천국에서 누구를 향하여 손가락질 하고 있을까요? 스데반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천국에서 손가락질을 많이 받는 자가 되십시다. 우리 자녀들도 손가락질을 많이 받는 자가 되게 하십시다. “저 사람 때문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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