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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보배스러운지요

날짜 : 2010.01.24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어찌 그리 보배스러운지요
성경본문 : 시편 139장 16~18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00124.wmv

1880년도경 조지아 주 아틀란타의 약제사 펨버턴이란 사람이 새로운 음료수를 개발했습니다. 이 음료는 탄산수에 한 물질을 넣고 설탕을 추가한 단순한 제품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코카 콜라입니다. 1886년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처음 상품화가 됩니다. 그 뒤 아틀란다의 약제사 캔들러가 2,300달러에 제조권을 넘겨받아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습니다. 캔들러는 전국의 상점에 코카콜라 제품이 전시되고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이 매일 코카콜라를 마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실제 코카콜라는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이내에 전국 상점에 진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첫해 판매 수량은 고작 400병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업체로부터 판매 부진으로 반품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창고마다 반품으로 가득 찼고 생산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캔들러는 며칠 뒤 직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회사 창고로 모여달라고 했습니다.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우니 당연히 해고 통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캔들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올해 400병밖에 판매하지 못했죠. 그러나 내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우리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이며,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에서도 우리 제품이 팔려 나갈 거예요. 우리의 사업 목표는 국내 1위이며 또한 세계1위죠. 우리의 제품은 훌륭하며, 올해 우리가 잘못한 점을 반성하고 수정하여 새로운 전략으로 영업을 전개할 것이니 저를 믿고 따라 주십시오.” 결국 그를 믿고 따라준 직원들과 함께 그는 판매 전략을 바꾸어 원액만 공급하고 계약 판매하는 방식으로 생산비와 물류비 등 막대한 비용을 줄이면서 사업 기반을 다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미국 병사들에게 코카콜라를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현지 생산공장을 세워 전세계에 코카콜라가 없는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하루에 26억 병의 코카콜라가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캔들러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첫해 판매량 400병으로 인해 포기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그 당시 아주 큰 돈인 2,300달러만 날렸을 것이고 오늘날 세계 음료수의 판도는 전혀 현재와는 달랐을 것입니다.

약제사 펨버턴이라는 사람이 코카콜라를 만들었지만 실제로 온 세상에 공급한 사람은 또 다른 약제사인 캔들러입니다. 펨버턴은 2,300달러에 자신의 상품을 넘긴 것으로 만족한 반면 전 세계의 음료수의 기준을 바꾼 사람은 어떻게 보면 캔들러입니다.
이 두 사람을 이 짧은 글로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평가를 해 본다면, 펨버턴 약제사는 우연히 만든 코카콜라에 만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이것만도 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친구에게 판매권을 팔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과거에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당시 2,300달러 아주 큰 돈이죠. 그러나 그는 미래를 꿈꾸지 못했습니다. 반면 캔들러는 미래를 보았습니다. 기꺼이 큰 돈을 들여 판매권을 사들였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오늘의 코카콜라가 있게 하였습니다.

저는 오늘의 코카콜라가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며 과연 저희들의 자녀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함께 나누기 위함입니다. 한 사람은 과거에 만족하는 사람, 한 사람은 어려움 가운데도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
교우 여러분, 저희 자녀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물론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미래를 향하여 용감하게 나아갈수밖에 없는 다윗의 모습을 느낄수 있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이미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다 마련해 놓았다고 고백합니다. 이미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책에 다 기록이 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을 다 계획해 놓으신 후 자기를 어머니 모태에 만드셨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었으니 미래를 향하여 돌진하지 않았겠습니까?
‘다윗의 삶’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죠? 골리앗을 향하여 물맷돌을 가지고 돌진할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던지는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맞던 안 맞던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고 하나님 스스로가 자신을 위하여 물맷돌을 던지신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실상 골리앗의 이마에 물맷돌을 맞추게 한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더 다윗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한 계획을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더 많은 믿음의 물맷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고백합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최고의 생각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모래보다 더 자기를 위하여 많은 생각을 안고 계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침에 벌떡 일어날수 밖에…. “오늘은 어떤 놀라운 일을 펼치실까” 기대하면서 일어납니다. 반면 다윗과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일어날까요? “오늘은 어떤 어려운 일이 펼쳐질까….”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까요? 다윗이 코카 콜라를 발명하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발명한 것에 만족하고 말았을까요?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근들어 유전학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유전학자들이 재미있는 사실을 발표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수 많은 유전자가 있는데 이스라엘 학자들이 thrill-seeking gene(모험 유전자)를 발견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유전자는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유전자를 Lewis and Clark 유전자라고 부릅니다. 처음으로 미대륙을 동서로 여행한 두 사람 아닙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이 유전자가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수 있는 이유도 그에게는 이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소리칠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모험의 유전자가 없었나요? 모두 있었습니다. 단지 다윗만이 그 유전자의 명령을 따를수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윗은 아침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소년이었습니다.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오늘은 어떤 놀라운 일이 펼쳐질까.” 다윗의 이 고백은 자신 안에 있는 유전자를 깨웠습니다. 놀라운 일을 매일 체험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육주일로 지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하면서 최고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다윗의 고백을 하면서 최고의 삶을 살수 있을까요? 교육관만 잘 지어 놓으면 될까요? 교육관에 최고의 디지털로 된 시설을 갖추면 될까요? 사실 교육관은 최고의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교육이 필요 없을까요?

지난 크리스마스 때 어느 어린이로부터 받은 카드를 소개해 드립니다. 어릴 때 화상을 입고 보스톤 어느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종종 저희 교회를 방문하는 어린이입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저 수진이에요. 잘 지내세요? 저는 이제 곧 중학생이 됩니다. 요즘 한국은 김연아 선수 때문에 난리에요. 김연아 선수는 휴대폰, 에어콘, 우유등 여러가지 CF때문에 TV트는 순간 볼수 있어요. 이번 대한 결핵협회 크리스마스 씰을 샀는데, 김연아 선수 사진이 있어요. 우리나라를 세계로 알린 김연아 선수가 자랑스러워요. 목사님 요즘 신종플루가 유행하고 있어요. 손을 자주 씻으시고 건강하게 지네세요. 내년에는 보스톤한인교회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교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스마일 표시) 내년에 보스턴에 갈 생각이에요. 그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Merry Christmas.”

이 어린이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카드를 보낼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답은 그리 어려운 것 같지 않습니다. 교육인 것 같습니다. 특히 가정교육인 것 같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았을 때 이처럼 세상을 훈훈하게 만드는 어린이가 되어 갔다고 생각됩니다. 수진이가 앞으로 다윗의 고백까지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정말로 훌륭한 삶을 살게 되리라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모험의 유전자를 깨워서 역사에 길이 남는 삶을 살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진이가 다윗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될수 있을까요? 가장 큰 책임은 수진이의 부모님에게 있다고 봅니다. 수진이는 부모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하는 부모님을 통해 수진이도 언젠가 그 고백을 하는 자로 성장할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이 이런 고백을 부모님에게 배웠다는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고백이 기록되어 성경말씀이 된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이 고백을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경위로든 이 고백을 하는 자들이 최고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이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줄 압니다. 부모님들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곧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님들의 고백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자녀들은 이 고백의 주인공이 되어 갑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먼저 다윗의 고백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우리들의 자녀들도 이 고백의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 자녀들이 이 고백을 할 때마다 그들 안에 있는 모험의 유전자들은 깨어 날 것입니다. 미래를 향하여 나가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요즘 자녀들을 net generation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학자는 ‘Digital Native’라는 표현을 씁니다. ‘디지탈 원주민’ 어릴 때부터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온 저희 자녀들을 일컸는 것 같습니다. 대개 1982년도 이후에 태어나면 원주민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 태어났는데 디지털 세계에 빠진 사람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궁금하실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을 ‘Digital immigrants(디지털 이민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82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으로 디지털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디지털 이민자입니다.
Digital native니 digital immigrant니 라는 말이 왜 생겨났겠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곧 저희 교회에는 세 그룹이 있습니다. Digital native, digital immigrants, 마지막으로 저와 같은 콤맹.
그러나 이 세 그룹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D4DR이라는 모험 유전자를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다를지라도 속은 같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유전자가 언제 마음껏 발휘될까요? 최고의디지털로 인해서 발휘될까요?
우리가 digital 원주민이든 디지털 이민자든 콤맹이든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윗의 고백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다윗의 고백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한국에 김용택시인이 있습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분인데 그는 2008년 8월 26일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유명한 대학교 교수로서 은퇴하신 것이 아닙니다. 전북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로서 은퇴하였습니다. 이분에 대한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사람은 김용택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순리다. 그는 1948년 임실에서 태어나 여지껏 고향을 지키고 있다. 임실을 떠난 것은 평생 단 두 번이다. 전쟁으로 피난을 갔을 때와 고교 졸업 후 방황할 때가 전부다. 그는 고향에서 어른이 됐고 교사라는 직업을 얻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자연과 아이들 옆에서 시를 배웠고 유명해졌다. 먼 훗날, 흙으로 돌아갈 곳도 고향이다. 한때는 전교생 700여명에서 이제 45명으로 줄어든 시골의 작은 학교. 김용택은 여기서 많은 제자를 만났다. 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는 뜻밖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사람이 희망입니다. 극심한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인간이 소외 받는 사회인데. 나는 그럴 수록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점수 위주 보다 삶 위주의 교육을 열어야 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나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나만 있는 거잖아요? 나만 일등하면 되니까.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교육적인 상황이 많아요. 그 속에서 창조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그런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졌다. “도대체 이해가 안되는 것이. 초등학교 1·2·3학년 아이들이 학원을 하루에 세개, 네개를 다닌다는 거예요. 여기서 음악 배우고 저기서 태권도 배우고 영어 배우고 뺑뺑 도는데. 그 아이들이 그 지식을 이해하고 감당할 능력이 있겠어요?”
김용택은 이런 말도 했다. 자연이 말하는 걸 받아적는 것, 그것이 글이다. “바람이 흔들리는 모습이라든가, 꽃이 봄부터 펴서 지금까지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연이 너무 많은 말을 해주기 때문에 받아 적기도 힘들어요. 봄이 되면 아침에 꽃이 피고 꽃잎이 날리지, 새들이 찾아와 울고 난리를 치지, 농부가 왔다 갔다 하지. 자연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해주는 거예요. 예전에는 감당을 못했어요. 그래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이젠 자연과 화해를 했어요. 그렇게 심한 갈등을 겪고 나니까 산이 산으로 가버리는 거야, 꽃은 꽃으로 가버리는 거야, 물은 물로 가버리는 거야.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는 거지. 이래서 나이를 든다는 건 아주 아름다운 거예요.”

저는 ‘시가 내게로 왔다’라는 시집을 통해서 이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실 지금도 이 분이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분이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과 더불어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생 살았다는 모습에서 저는 오늘 현대 기독교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들은 우리의 자녀들이 코카콜라와 같은 큰 회사를 이끌어 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회사는 한두개면 족합니다. 이 세상이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을 만끽할줄 알며 어린이들과 평생을 보내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모험을 할줄 아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코카 콜라의 사장이 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것도 큰 모험입니다. 그러나 더 큰 모험적 삶이 있습니다. 초라한 초가집에서도 엄청나게 보배로운 삶을 살줄 아는 자들의 삶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놀라운 기대를 안고 아침에 일어나는 자들입니다. 자연과 이웃과 최고의 만남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조선일보기자는 말하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김용택처럼 살아야 한다.”
김용택 시인이 어릴 때 일화가 있습니다. 어린이가 뜨거운 물을 땅에 부으니 엄마가 급히 집에서 나오시면서 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땅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 밑에 있는 생물들이 다 죽는단다”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시는 분이셨습니다. 남들이 세지 못하는 것을 세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로 인해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들이 세지 못하는 것을 세었습니다. 최고의 삶을 누린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연과 더불어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시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가 위대한 교육가요 시인을 만들어 가는데 하물며 다윗의 고백은 우리들의 자녀들을 어떻게 만들어 가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다윗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들이 세지 못하는 것을 세었습니다. 기적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윗의 고백을 들려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녀들 앞에서 고백하십시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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