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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축복하자

날짜 : 2010.01.06
예배명 : 신년예배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새해를 축복하자
성경본문 : 신명기 11:26-32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100103.wmv

런던에 작가가 되길 원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조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규교육이라고는 총 4년밖에 받지 못한 그는, 부친이 빚 때문에 교도소에 들어가 있어서 하루 세 끼를 때우기 어려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겨우 직업을 하나 얻었습니다. 쥐 굴같이 음침한 창고 속에서 구두약통에 상표를 붙이는 일이었습니다. 밤이면 초라한 지붕 밑의 다락방에서 두 소년과 함께 새우잠을 잤습니다. 그 두 소년은 빈민가의 부랑아였습니다.
그는 작품을 쓰긴 썼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누가 보면 비웃을까 봐 사람들이 모두 잠든 다음에 자리에서 빠져 나와 그의 처녀작을 우송했습니다. 계속해서 작품을 보내봤지만, 전부 반송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그에게도 기념할 만한 날이 다가 왔습니다. 작품하나가 햇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고료는 한 푼도 못 받았으나 그는 편집자에게 칭찬의 말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하여 흐르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자기 작품이 활자화되어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이 그의 생애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소년은 다름 아닌 유명한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입니다. 만약 편집자의 칭찬의 말이 없었다면 그는 일생을 그 어둠침침한 창고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소개해 드립니다.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장 교수님 집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김씨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열서너 살 정도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재형이인 그 아이는 정박아여서 대여섯 살 정도 어린애의 지능밖에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동네 꼬마들의 놀림감이 되거나, 어른들도 돌아서면 손가락질하고 재미거리로 말하기 일쑤였습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형 엄마는 어디를 가나 ‘우리 재형이가’로 말만을 열고 재형이가 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대견해 합니다. 그녀는 언젠가는 재형이가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머리가 깨어 일반 고등학교에도 가고 대학교에도 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전혀 믿어 의심치 않는 듯 하였습니다. 교육 보험도 들고 영어 카세트나 문학 전집 같은 것도 들여 놓곤 합니다.
어느 날 장 교수님이 음료수를 사기 위해 ‘재형슈퍼’앞에 차를 세우는 중이었습니다. 중년 남자 셋이 가게 밖의 간이용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형이를 앞에 세워 놓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얘, 10에다 5를 더하면 얼만 줄 아니?”
재형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몰라? 그럼 3더하기 2가 몇인지 말해 봐.”
여전히 재형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힘주어 양옆으로 붙인 팔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습니다.
“넌 도대체 어디다 쓰냐?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니?”
갑자기 재형이가 눈에 생기를 띠며 힘주어 말합니다.
“노래요.”
“와, 노래할 줄 안다고? 그럼 한 번 해 봐.”
조롱 섞인 미소를 교환하며 남자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재형이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목에 푸른 힘줄이 돋도록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악을 쓰는 듯한 노랫소리에 재형 엄마가 가게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빨리 들어와서 밥 먹어!”
아들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 들어가는 재형 엄마의 등에 대고 그 중 한 남자가 말합니다.
“아줌마, 걔 바보지요?”
재형 엄마의 등이 잠깐 얼어붙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서더니 아무 대답도 없이 있다가 다시 서서히 움직여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장 교수님은 음료수를 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콜라 주세요”하고 말하는 것은 마치 ‘거봐요, 아줌마, 대학은 무슨 대학?’ 이라는 뜻으로 들려 다시 한번 뒤통수를 치는 일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찰스 디킨스는 편집자의 한 마디의 칭찬에 어둠침침한 창고에서 나와 세계를 밝게 하는 문학인이 되어 갔습니다. 반면 가게 앞에서 술을 마시는 세 남자는 한 마디의 말로 재형이와 엄마의 마음의 성역을 침범하는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들의 입술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떤 입술의 소유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오늘 2010년도 신년 예배를 드립니다. 불과 몇 주일 전에2009년도 신년 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최고의 해로 맞이하자는 멧세지를 전한 것 같은데 벌써 한 해가 가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 하였습니다. 몇 몇 저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짖궂은 교우님들은 새해가 가까워 오니깐 ‘2009년도가 ‘최고의 해’면 2010년도는 무슨 해입니까?’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최근에 한국 기독교서적 중에서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얼마 후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더 내려놓음.’ 그 분이 저를 대신해서 답변을 하고 계시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더 최고의 해’는 어떤 해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저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들여 보내면서 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가 바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신 마지막으로 간곡히 명령 내지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면 더 이상 말할 수가 없기에 마지막 명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할 가장 첫 번째 일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할 가장 첫 번째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런데 모세는 그 말씀을 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서두를 엽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이 말씀에 놀라운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복과 저주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지 복과 저주가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복과 저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2010년도라는 새해가 우리 앞에 있는데 2010년이라는 새해 안에 복과 저주가 살아서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과 저주는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발로 손으로 차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차지할 수 있을까요? 27, 28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한 마디로 명령을 들으면 복을 차지할 것이고 안 들으면 저주를 차지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다 명령을 순종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 머리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십계명부터 지킬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아마 이미 어떤 사람은 혼자서 십계명을 중얼 중얼 외워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십계명을 외우는 중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모세는 계속 말씀합니다. 29절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십계명을 중얼 중얼 외우고 있다가 이스라엘 민족은 깜짝 놀랍니다. 자기들이 가나안 땅에서 해야할 첫 번째 일은 십계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가나안 땅에 지리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산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산입니다.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그리심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 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대로 사는 것이 이들이 가나안 땅에서 들어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일은 축복과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때 축복을 택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아리송하죠? 축복만 선포하면 되지 왜 저주까지 선포하게 하시나요? 복잡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여호수아서 8장30절 이하에 보면,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중 33절 하반절을 봉독해 드리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마지막 부분에 보니깐,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대로 함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주의 선포도 축복의 선포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알고 있었습니다. 에발산의 저주의 선포도 궁극적으로는 축복의 선포였습니다. 곧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축복을 선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궁극적으로 축복의 선포가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축복과 저주를 선포함으로 축복의 선포를 한 것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민족은 축복을 선택하는 민족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새해 들어서 많은 분들이 새해의 결심(New Year’s Resolution)을 하셨을 줄 압니다. 그 동안 많이 실패하신 분들은 올 해는 그래도 가능한 것만 골라서 결심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쉬운 것일지라도 잠시 보류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입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입으로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3일이 되었는데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이번 일주일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시면서 한번 축복의 함성을 지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성을 지르시기 바랍니다. 올해 정말로 또 다른 최고의 해를 맞이하시게 될줄 압니다.
그래도 어떤 분들은 석연치 않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과연 입으로만 될까? 주둥아리는 주둥아리지 별거 있겠나, 뭔가 몸으로 행해야지?”

요즘 우리는 최고로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자본주의에 사는 우리들 말입니다. 제가 필라델피아에서 부 교역자로 섬길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회를 가다가 프리징 레인( freezing rain)으로 인해서 미끄러져 길가에 파킹해 놓은 차를 박았습니다. 다행히테일라이트( tail light)만 부서뜨렸습니다. 그런데 그 차를 보니 제가 손상을 낸데 말고도 이미 많이 수리를 해야 하는 차였습니다. 그 냥 보냈다가는 다른 것도 제가 다 수리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꺼내서 제가 손상시킨 것은 테일라이트뿐이라는 것을 쓰고 싸인을 받고 헤어졌습니다. 물론 그 후로 테일라이트 마저 고쳐 달라는 청구서조차 받지도 않았습니다. 왜, 뭐 하나만 생겨도 종이를 꺼내 싸인을 받아야 합니까? 말의 권위를 잃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은 하면 없어진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의 위엄을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남에게 상처주는 것 외에 아무 쓸모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종이에 적기 바쁩니다. 결국 거짓말과 남을 상처주는 입에서 나오는 축복은 아무 힘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까요? “네가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네가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 이 말씀과 관련되서 유대문학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All dreams follow the mouth.”(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꿈이 탄생된다.) 그동안 우리들의 입이 거짓말도 많이 하고 이웃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입의 권위를 인정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위대한 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이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을 레비(Levi)라는 랍비가 다음과 같이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여섯가지의 중요한 기관이 있는데 그 중 세개는 인간이 콘트롤하고 나머지 세 개는 콘트롤 못한다고 합니다. 콘트롤 못하는 세 개를 먼저 말씀드리면, 눈과 코와 귀라고 합니다. 눈을 뜨고 있을 때 보여지는 것은 어쩔수 없다는 것입니다. TV를 켜고 뉴스를 보고 있을 때 보여지는 모든 장면을 그대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코는 자기가 있는 곳에서 냄새가 나면 맡을수 밖에 없습니다. 이 냄새는 맡고 저 냄새는 안 맡는다 선택 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스컹크가 일을 벌여 놓은 곳을 지나가면 희생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귀도 매한가지 입니다. 소리가 들리면 들어야 합니다.
반면 콘트롤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손과 발과 입입니다. 어떤 곳에 있던 손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습니다. 발, 자기 발로 원하는 곳을 다닐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입니다. 입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손과 발은 입에서 나온 말에 따라서 영향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새해가 더 최고의 해가 되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입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손과 발이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에 따라 이웃들이 복을 받거나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따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거나 조롱을 받으십니다. 우리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따라 ‘나’라는 인격이 형성되어 갑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성숙되어 갑니다. 이것을 잘 알기에 모세는 명령한 것입니다.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영국의 어느 영성가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Go after experience rather than knowledge (지식보다는 경험을 좇으라).” 오늘 우리는 경험보다는 지식을 좇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 축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참된 축복은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을 좇습니다. 이번 한 해 경험을 좇으십시다. 우리가 함께 좇아야 할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년전인가요? ‘르호봇의 노래를 부르자’라는 설교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저의 노래 중에 하나가 “르호봇(넓다)”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26장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을 피해 그랄 골짜기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빼았았습니다. ‘에섹(다툼)”이라고 부르고 피해 갑니다. 두 번째 우물을 팠는데 또 빼았깁니다. “싯나(대적함)”이라고 부르고 또 피해 갑니다. 세 번째 우물을 팠는데 더 이상 빼았지 않습니다. 이에 이삭은 노래합니다. “르호봇(넓다).” 골짜기가 넓어봤자 얼마나 넓겠습니까? 그런 골짜기에서 이삭은 “르호봇(넓다)” 노래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좁은 골짜기에서 “나의 삶은 최고다” 노래한 셈입니다. 좁은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삶을 최고라고 노래한 이삭에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리가 없습니다. 나타나셔서 축복하셨습니다. 창26:24절 말씀입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교우 여러분, 이삭의 경험을 함께 좇으십시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올 해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우리, 이삭을 좇아 르호봇의 노래를 부르는 축복의 한 해가 되십시다. 우리의 손과 발도 르호봇의 노래에 맞추어 움직일 것입니다. 최고의 한 해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르호봇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외치셨습니다. “르호봇.”

교우 여러분, 새해를 축복하십시다. 새해를 축복하는 한 가지 말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을 매일 아침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따라 꿈이 생겨날 것입니다. 손과 발이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말씀을 쉽게 지키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축복을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몇 가지 축복의 말들을 생각해 볼까요? 제가 몇 가지를 열거해 보겠습니다. “나는 올 해도 최고의 해를 살아간다.” “나의 가정은 최고의 축복 받은 가정이다.” “우리 부모님은 최고의 부모님이다.” “나의 이웃은 최고의 이웃이다.” “나의 직장(학교)은 최고의 직장(학교)이다.” “우리 교회는 최고의 교회다. 최고의 교인, 최고의 제직들이다.” “우리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다.”

말씀을 거둡니다.
그리스 신화에 마이다스(Midas)왕이 나옵니다. 디오니수스의 스승을 잘 돌보았기에 디오니수스가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마이다스가 소원을 말합니다. “나의 손이 닿는 것마다 금이 되게 하소서.”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금으로 변합니다. 그 이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마이다스의 축복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손에 그 축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입에 있습니다. 축복의 말을 하는 우리들의 입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마다 마이다스 타치가 임합니다.
교우 여러분, 새해를 축복하십시다. 축복과 저주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 그 권능이 주어졌습니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해는 우리의 축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해를 축복하십시다. 새해에 우리가 만날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십시다. 새해에 우리들의 발이 닿을 곳들을 축복하십니다. 우리들의 손이 닿을 곳들을 축복하십시다. 아울러 우리를 도우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다. 최고의 축복을 하는 자들에게 최고의 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0이라는 축복의 땅에 금방 들어선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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