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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난 지팡이

날짜 : 2009.06.28
예배명 : 주일예배(성례식)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싹난 지팡이
성경본문 : 민수기 17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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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NKPC총회를 다녀왔는데 몇 년 전 저희교회 수양회 강사로 오셨던 이연길 목사님께서 강사로 오셨습니다. 설교 시간에 잊지 못할 자신의 경험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친구 한 사람이 목사님 때문에 예수를 안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해도 당연시 취급받아야 하는 직업이 목사인데, 도리어 예수를 안 믿게 되었다니 좀 심각한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목사가 된 후 오랜만에 친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즐거운 시간을 지내고는 헤어지는데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이제 난 예수를 안 믿기로 했다.”
이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잘 만나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이제 헤어지려고 하는데 이게 웬 아닌 밤에 홍두깨입니까? 이 목사님은 아무 잘 못한 것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황한 채 묻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나 때문에 예수를 안 믿는다고 말하니?”
“처음에 만나자마자 내가 ‘어떻게 지내니’ 물었지. 그 때 너는 ‘그저 그래’ 대답했어. 나도 그저 그렇게 살고 있는데 목사인 너도 그저 그렇게 산다면 내가 예수 믿을 필요가 무엇 있겠니?”
그리고는 평생 안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늘 이 목사님께 지금까지 평생 쫓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한 것은 한 달 전에 친구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전화를 걸어서 자기의 그 때의 말을 수정할 것이라는 고백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어, 안 믿는 자들이 볼 때 믿는 자들의 삶이 ‘그저 그러면’ 구태여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지.”
물론 우리가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많은 경우 한국인의 겸손의 덕 때문에 “그저 그래” 대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겸손의 덕으로 “그저 그래” 대답해도 정말 최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는 누구나 감지합니다. “아, 이 친구 말은 이래도 정말로 멋지게 사는구나?” 이 목사님의 친구는 처음에 “그저 그래” 인사뿐 아니라, 계속함께 있었던 동안 그저 그런 이 목사님의 삶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너 때문에 예수 안 믿어” 외 마디를 남기고 떠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줍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과연 예수 믿는 삶은 그저 그런 삶 대신에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네 분의 교우님들이 세례교인이 되었고 아홉 명의 어린이들이 유아세례 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그저 그런’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하려고 세례를 베풀었나요? 우리는 또한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습니다. ‘그저 그런’ 삶 끝까지 잘 견디자는 결단의 표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셨나요?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세례 받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삶,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들이 누리는 삶은 어떤 삶인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팡이에 싹이 나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 재미있으신 분이십니다.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이해하려면 16장의 내용을 참고하여야 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만 말씀드리면, 홍해를 건너고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한 그렇게 큰일을 행했던 모세에게 이스라엘인들은 반기를 들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고라를 비롯한 몇 명이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세상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모세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오랜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것이 질투가 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에 동조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얼마나 쉽게 무지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드는 자들을 가만히 놓아두실 리가 없습니다. 지진을 일으킵니다. 반기를 든 자들을 땅이 삼키게 하고 한편 염병을 일으켜 병들어 죽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희생이 되었습니다. 잠잠해진 후 하나님은 당신이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다시금 알려주길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로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모세와 아론을 거역했던 자들 앞에서 모세와 아론을 다시 택하시는 장면이 소개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의 족장들의 지팡이를 취하라 하였습니다. 지파가 열둘이니 열두 지팡이가 모아졌습니다. 지팡이마다 족장들의 이름을 적으라 하였습니다. 레위지파를 대표하여 아론의 지팡이가 참여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회막은 성막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증거궤는 법궤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곧 성막 안에 법궤 앞에 열두 지팡이를 두었습니다. 이당시 성막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법궤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곧 지팡이를 하나님 앞에 두었습니다. 7절 말씀이 이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법궤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 8절 말씀입니다.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였더라.”
싹만 난 것이 아닙니다. 하룻밤 사이에 움이 돋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본 이들은 할 말을 잃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금 밝혀졌습니다.
반면 아론은 이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저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교우 여러분, 아론은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자기의 지팡이가 지금 싹이 나서 법궤 안에 모셔져 있는데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누군가가 와서 아론에게 묻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이 때 “그저 그래” 대답했겠습니까? 물론 겸손의 덕을 발휘해서 “그저 그래” 말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흥분과 기쁨을 감추질 못했을 것입니다. 금방 친구가 알아챘을 것입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있구나?”
반면 11지파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자신의 손에 다시 자신의 지팡이가 들려져 있습니다. 싹이 나지 않은 채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일까요? 평생 “내 인생은 끝까지 그저 그런 인생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이들에게는 희망이 없을까요? 어떤 사람은 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도 어떻게 하면 싹난 지팡이의 삶을 살까?” 10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게 하신 이유는 이것을 하나의 표징이 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표징으로 받아드리는 자들은 어떻게 된다고요? 그들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합니다. 조금 의역하면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좀 더 살을 붙이면 그들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곧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증거궤 앞에 모셔 있음을 자기의 삶의 표징으로 받아 드리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들의 지팡이도 싹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도 더 이상 ‘그저 그래’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로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신 이유는 첫 번째로는 아론이 택함 받은 자임을 선포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하나님의 표징으로 받아 드리는 자들을 택함 받은 자들의 반열에 속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싹난 지팡이의 삶은 아론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 세상에 열려 있는 축복입니다. 곧 11지파 사람들도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표징으로 받아 드릴 때 자신의 삶도 싹난 지팡이가 되어 간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 축복은 온 세상에 열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표징으로 받아 드리는 자들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의 능력이 임합니다. 이들의 삶은 현대판 싹난 지팡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에는 “그저 그래”라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에 이제 싹난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그저 그래”의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저희 교우님 가정이 경영하는 꽃집에 방문했을 때 많은 대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들이 물동이에 담겨져 있고 잘린 부위에서 뿌리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사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대나무는 짤라서 물에만 넣어두면 쉽게 뿌리가 자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아주 신기한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짤라서 물에만 넣으면 뿌리가 생기고 이를 땅이나 화분에 심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저는 이후로 대나무만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이 있습니다. 지팡이에서 싹이 텄습니다. 뿌리도 없이…, 그 뿐 아닙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처럼 신기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지팡이가 바로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입니다. 아니 바로 예수 믿는 자들입니다. 아니 우리들입니다. 오늘 성만찬에 참여한 우리들입니다. 오늘 유아세례를 받은 아홉 명의 자녀들입니다. 네 분의 성인세례를 받은 교우분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신기한 싹난 지팡이들입니다.
우리는 죽은 것 같지만 살아있습니다. 꽃향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싹난 지팡이임을 알고 최고의 삶을 사신 분이 있습니다. 요즘 전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대표적인 인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입니다. 그는 박해를 받던 시절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며 27년을 지냅니다.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소심함은 세상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모두가 빛나도록 창조됐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자신만의 빛을 발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 또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할 수 있습니다. 공포에서 해방될 때 우리의 존재는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킵니다.”

만델라 대통령이 27년간의 옥살이에 건강하게 살아 나온 것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안에 있는 지팡이였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빛이 있음을 알았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축복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알았던 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승리하였습니다. 빛을 발하였습니다. 스스로 싹난 지팡이였음을 믿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런 삶의 주인공이 아니었습니다. 최고의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삶을 만델라의 삶과 비교하는 것은 좀 부담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삶의 시작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싹난 지팡이임을 인정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식을 베풀었고 성만찬에 참여하였습니다. 우리가 바로 싹난 지팡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아름답게 피우고 살구 열매를 더욱 맺히기 위하여 우리는 세례식을 베풀었고 성만찬에 참여 하였습니다.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유아세례나 성인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모두 신앙 간증문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모두 너무 은혜로운 간증문을 써주셨습니다. 그 중 오늘 설교내용과 연관된 간증문이 있어서 소개해 드립니다. 세 번째 아드님을 세례를 받게 하시는 부모님의 글입니다.

한창 말 배우고 있는 둘째 재민이.
“우유를 이렇게 쏟아 놓으면 어떠하니!”
“괜찮아요. 엄마. (No problem. Mommy).”
“아기 때리지 말라고 했지!”
“No problem. Mommy”
아이들이 단어를 익히고 있을 땐 수십 번, 수백 번 그 말을 써보고 그래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들을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재민이가 연습하는 문장은 ‘No problem’.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할 곳에 제대로 쓰이면 좋은데, 가끔 얼토당토하지 않은 상황이 연출되곤 합니다.
한껏 문제가 일어나 있는 때에 너무 대답이 허무해져버리는 그런 상황. 아이들 대꾸나 대답이 그렇지 하면서도 너무 황당해져버리는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 셋째 재윤이를 주실 때 그랬었습니다.
“도대체 저희에게 어쩌라는 겁니까. 셋은 너무 버겁습니다.”
“No problem.”
“그것도 아들로 셋이 무엇입니까”
“No problem.”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no problem”이라는 간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싹난 지팡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예수님의 빛은 빛나고야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빛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No Problem.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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