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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냐, 왕 같은 제사장이냐?

날짜 : 2009.01.25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왕이냐, 왕 같은 제사장이냐?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2장 9-10절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90125.wmv

에디스 쉐이퍼 여사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뒷문으로 한 거지가 찾아왔습니다. “아주머니 커피 한 잔만 주시겠어요? 그리고 빵도 조금 주시면 좋겠구요.” 에디쓰여사는 그에게 들어와 앉으라고 한 후 왕에게나 어울릴 만한 음식을 준비합니다. 따끈한 국에 두툼한 샌드위치를 잘라서 접시에 모양있게 차려놓고 장식까지 곁들였습니다. 아이들은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고 마침 저녁 시간이라 촛불도 켜서 꽂아 주었습니다. 놀란 거지는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게 모두 저를 위한 것입니까?” “그럼요. 커피도 곧 드릴 거에요. 그리고 이 요한복음도 당신 것이니 가져가세요. 아주 중요한 것이랍니다.” 왕과 같은 대접을 받은 거지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에디쓰여사도 천국을 맛보았습니다. 천국을 맛본 나머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첫 번째로는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이 거지가 계속 오면 어떡하지?”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계산이 빨라질데로 빨라진 우리들의 머리는 이 생각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머리에 스쳐지나가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생각도 스쳐지나갈줄 압니다. “과연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람이기에 거지를 왕처럼 대접하나?” 저는 이 에디쓰여사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거지를 왕처럼 대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왕처럼 대접하게 될것이다. 거지를 거지처럼 대접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거지처럼 대접할 것이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거지를 왕처럼 대접하는 사람, 아니면 거지를 거지처럼 대접하는 사람.
오늘 교육주일로 지킵니다. 저희 교회에서 이처럼 한 주일을 책정해서 교육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저희 자녀들이 좀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이 되게하기 위함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저희 자녀들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닮은 자녀들이 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의 사람들이 된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왕처럼 모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지까지 왕처럼 모시는 자녀들이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들이 될수 있을지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베드로가 여러나라에 흩어져 사는 크리스챤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1장 1절에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보내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하노니….”
초대교회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읽고 나그네되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독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아니 어느 말에 가장 놀랐을까요? 다시 한번 나열해 드립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네 가지가 모두 큰 의미를 갖고 있겠습니다만, 특히 ‘왕 같은 제사장’이란 말에 깜짝 놀랐을줄 압니다. 사실 이 당시 크리스챤들은 많은 사람들의 신분이 아주 낮았습니다. 약 삼분의 이가 노예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예의 신분을 갖고 나그네가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사도베드로가 지금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요즘에도 크리스챤들이 아주 낮은 신분을 갖고 생활하는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생할하셨던 교우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도에는 종교에 따라 신분이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흰두교가 가장 번창한 곳이 인도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마도 흰두교도인들이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는 불교도인들일줄 압니다. 제가 확실하게 들은 말씀은 변소청소하는 사람들은 가장 낮은 일을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변소청소를 할까요? 놀라지 마십시요. 크리스챤들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이 되고 나면 변소청소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도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가 변소청소를 하는 인도의 크리스챤들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있다고요?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생각해 보십시다. 인도의 크리스챤들은 요즘도 눈만 뜨면 부자집에 가서 변소청소를 하여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래도 정원을 가꾸면서 마당을 씁니다. 그러나 크리스챤들은 변소 청소를 하여야 합니다. 크리스챤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언제나 매일 같이 남의 변소로 발걸음을 향하여야 합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물론 또다시 변소를 청소하는 아침입니다. 아침에 성경을 펴들고 읽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을 읽을 차례입니다. 베드로가 말씀합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이 말씀을 듣고 상당히 흥분했을 것입니다. “아,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구나.” 아침마다 변소청소하러 가기 전에 각자 생각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지.” 혼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변소 청소를 하는 형제 자매에게도 말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예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 힘이 납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지냈습니다. 한편 궁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왕이면 왕이지 왕 같은 제사장은 뭐지?” 사실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그 누구도 쓴 적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사용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들은 세월이 갈수록 궁금한 생각이 듭니다. “왕 같은 제사장?”
지난 주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주간이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였습니다. 물론 많은 숫자가 흑인들이었습니다. 흑인들이 그렇게 많이 참석한 이유가 있습니다. 흑인인 우리도 대통령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기 위해서 였을줄 압니다. 대통령과 왕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또한 많은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맞추어 말을 만든다면 “우리도 왕이 될수 있다” 를 흑인을 포함한 소수인종 모두가 축하한 역사적인 날일줄 압니다.
그리하여 온 인류 역사에 왕제도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은 왕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았습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왕같은 제사장’이 무엇인지 말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2000년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사회적으로 힘이 없이 지내는 크리스챤들에게 벌써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왕’과 ‘왕 같은 제사장’을 어떻게 구별하고 있을까요? 9절 하반절의 말씀에 베드로가 생각하는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자들이 바로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을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사도베드로의 개인의 이야기를 살펴보아야 할줄 압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고 자기처럼 예수님을 믿는 모두가 다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사실 사도 베드로는 어두움의 세계에 있었던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라는 거지를 어두움의 세계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기이한 빛의 세계에 들어 가게 하셨습니다. 왕과 같이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베드로는 흠과 허물이 많은 자기를 하나님께서 왕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곧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으로 생각해 본다면, 예수 믿는다는 것은 거지였던 우리가 왕과 같이 대접을 받은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버리실 정도로 최고로 우리를 대접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최고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만일 그 집이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시키면서 대접하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큰 대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왕과 같은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가장 귀한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 우리를 대접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왕입니다. 왕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왕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베드로는 이처럼 왕이 되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왕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 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은 자신이 왕이 된 것으로 만족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남들도 왕처럼 대접하는 자들입니다.다시 한번 9절 하반절 말씀을 봉독해 드립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천국의 삶을 누리는 사도베드로는 나그네된 교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비로서 나그네들은 ‘왕 같은 제사장’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왕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 훨씬 소중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아울러 변소 청소를 해도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처럼 느껴집니다. 곧, 주님께서 사용하시는변소를 청소하는 마음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천국을 체험합니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에게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교육주일을 맞아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야할 선물들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로버트 콜스 (Dr. Robert Coles) 라는 하바드대학교 정신과 교수였던 분이 있습니다. 퓰리쳐 (Pulitzer)상을 비롯 많은 상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많은 업적을 내었는데 그가 주장하는 것은 요즘 심리학 내지 정신과학이 많이 발전하였지만 궁극적 열쇠는 윤리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이죠. 그런데 그의 주장이 중요할수 밖에 없는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학교는 지식위주의 교육이 되었고 지식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전제 하에서 학교는 운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요즘 교육은 잃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시는 교수님인줄 알고 하루는 한 하바드 학생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는 윤리 과목에서 늘 A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활은 비윤리적입니다.” 이 학생이 주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윤리 자체도 이제는 하나의 공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누구나 ‘A’를 받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활은 그렇지 못할지라도…. 요즘은 ‘A’가 중요한 것이지 윤리적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윤리가 하나의 지식이 되었습니다. 삶은 별개의 것이 된 것입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A를 맞으면 윤리적으로도 A급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이 향하고 있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입니다. 윤리라는 과목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지식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A만 맞으면 됩니다.
친구 목사님들하고 대화를 나누다가 깜짝 놀라곤 한 적이 몇번 있습니다. 몇 번 이런 말을 목사님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집은 아이를 잘 키웠어요.” 호기심을 갖고 계속 말을 듣습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자녀가 좋은 학교 다녀요.” 그 분들이 말하는 좋은 학교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Ivy league 학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교가 좋은 학교가 되어있고 또 공부 잘하는 것이 잘 키운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목사님들을 보곤 합니다. 아마도 하바드 대학생들 중에 금방 말씀드린 이런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셔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윤리마저도 공부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시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왕이 되고자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윤리도 왕이 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왕처럼 대접을 받기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정 필요한 자들은 왕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 무엇을 하던 예수님을 위하여 하는 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자녀들이 이런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바르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수 있을까요? 그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외침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위한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이러한 외침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어두운 세상에 전하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가운데서 많은 왕같은 제사장의 체험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 우리는 더욱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외치게 될 줄 압니다.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년도 저희교회 창립멤버 중에 한 분이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김영호 박사님이십니다. 두 주전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작고하신 후 곧 바로 장례 예배를 안드리고 두 달이 지난 후 추모예배만 드린다기에 좀 의아해했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많이 오실까? 생각했습니다. 추모예배에 참석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그리이스에서까지 제자들이 이 추모예배를 위하여 비행기를 타고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분이 감동어린 조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평소에 김 박사님과 가까이 지내지 못해서 그분에 대해서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했는데 추모예배를 통하여 많은 것은 알게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신 것에 대해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이 개발한 Myo technique이 있는데, 이는 치과 교정에서 획기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특허를 내서 떼부자가 되고도 남았을텐데 김 박사님은 누구나 배워서 사용하여 전 세계인들에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특허내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김박사님이 그러한 결단을 쉽게 내릴수 있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는 당신을 어둠에서 빛으로 부르신 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아름다움을 선전하는 삶을 사신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쉽게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창립멤버께서 이러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 교육관의 완공과 함께 우리교회에서 자라나는 자녀들도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이웃에게 선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같은 제사장들은 모든 사람을 왕처럼 대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주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러한 삶을 사십시다. 또한 자녀들에게 이러한 삶을 소개하여 주십니다. 자녀들에게 전하십시다.
“여러분은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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