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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렙돈의 신비

날짜 : 2008.06.2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두 렙돈의 신비
성경본문 : 마가복음12: 41-44

http://kcbostonmedia.cponsolny.com/Sermon_video_master/Sermon_20080622.wmv

지난 주 한국을 방문하던 어느 날 책방에 들렀습니다. 책을 몇 권 골라서 카운터에서 계산하려는데 제가 좋아하는 타이틀이 눈에 띄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웅. 샘터라는 잡지표지에 실린 글 제목이었습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니 어느덧 잊게 된 잡지인데 새삼 ‘샘터’라는 표지가 마음을 뭉클하게 하였고 무엇보다도 그 제목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영웅. 어떤 내용인가 하고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네 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모터싸이클을 타고 미국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쓴 글을 샘터잡지에 게재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뉴욕을 방문한 글을 소개한 것입니다. 우연히 필자는 자신이 늘 영웅으로 삼고 있던 한 사람을 만납니다. Jim Rogers라는 윌스트리트의 전설적인 인물을 만납니다. Jim Rogers는 투자할 때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입니다. 서른일곱 살에 은퇴하고 모터사이클로 전 세계를 일주하여 더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필자와 그의 영웅 Jim Rogers와는 함께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것이 공통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 서로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필자는 영웅을 만난다는 생각에, 만나는 장소에 일찍 나가 있었습니다. 멀리서 Jim Rogers가 보였습니다. 그는 생각보다 젊어 보였고, 세련미가 넘쳤습니다. Rogers는 필자의 모터사이클을 열심히 살피며 이것저것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시간이 되어서 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헤어지고 나니 이상하게도 허무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입니다. 그들의 숙소는 다름 아닌 뉴욕한인교회였습니다. 저희교회가 보스톤한인교회인 반면 그 교회는 뉴욕한인교회, 곧 저희교회처럼 뉴욕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방들이 있는데 그중 한 방에서 묵고 있었던 것입니다. 숙소에 돌아오니 그 곳 목사님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한 번도 한국음식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기에 좋은 한국 음식점에 가서 맛있게 밥을 먹을 기대를 품습니다. 그런데 음식은 음식점이 아닌 교회 지하실에 차려져 있었습니다. 조금은 김이 빠졌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였습니다.

식사 중에 목사님은 그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지하실에 있는 피아노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님께서 치시던 것이고, 필자와 친구들이 자는 방에는 서재필 선생님, 이승만 초대 대통령, 도산 안창호 선생님 등 많은 애국지사가 머물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젊은이들을 도전합니다. 그 방에서 문교부 장관이 네 명 나왔으니 자네들 중에서도 분명 큰 인물이 나올 거야.

사실 그 동안 허름한 교회의 외관만을 보고서 그곳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세면실은 씻는 도종에 물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낡아 있었고, 방에는 바깥바람이 그냥 들어왔습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4층 방을 주셔서 오르내리기 너무 힘들다고 투덜대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그 방을 주신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그들이 그런 큰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필자는 큰 감명을 받습니다. 지하실에서의 조촐한 저녁이었지만 필자는 또 다른 영웅을 만납니다. 결국 필자는 뉴욕의 짧은 여행 기간 중 두 명의 영웅을 만난 것입니다. 한 분은 자기처럼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인물 Jim Rogers, 또 다른 영웅은 묵묵히 낡아 가는 한인교회를 지키며 교회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큰 인물이 되라고 권면하는 목사님, 두 영웅과의 만남을 선물로 안고 필자는 뉴욕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 글의 제목을 당신은 나의 영웅 이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과연 필자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큰 인물이 될 것인가? 사실 필자는 고백하기를 목사님께서 그 방에서 문교부 장관이 네 명 나왔으니 자네들 중에서도 분명 큰 인물이 나올 거야 말씀하셨을 때 모두 겸연쩍은 듯 자신 없어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영웅을 모시는 것은 쉽지만 자신이 비슷한 인물이 되는 것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줄 압니다. 필자는 그 글 내용 중에 자신도 위대한 인물이 되겠다는 각오는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웅으로 사는 것이 어려워서 그랬을까요? 저는 끝으로 과연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이 영웅이 되어 갈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샘터’를 내려놓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영웅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참 재미있게 시작됩니다. 4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예수님은 참 주책이십니다. 이 당시에는 헌금함이 예배당 바깥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짓궂게도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셨습니다. 우연히 앉으셨는지 의도적이었는지는 안 밝혀져 있지만 상황을 살펴보면 의도적인 냄새가 물씬 납니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은 헌금함 앞에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앉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 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님은 여러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심히 여러 사람들의 헌금하는 것을 보셨던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보셨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때는 당연히 수표도 없었고 또 이때는 아직 종이가 발달하지 않은 때라 지폐도 없었을 때입니다. 모두 돈은 동전으로 사용될 때입니다. 그러니 헌금하는 내용을 쉽게 예수님은 보실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야 전능의 하나님이시니 친히 그 앞에서 뚫어지게 안 쳐다봐도 능히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분이시지만 무슨 연고인지 예수님은 헌금함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뚫어지게 바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헌금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많은 부자들이 큰 동전 뭉치를 차례로 퉁퉁 넣고 있습니다. 오늘 따라 어떤 청년이 헌금궤 앞에서 뚫어지게 보고 있습니다. 더 잘되었습니다. 부자들은 더 큰 소리가 나도록 퉁퉁 돈을 떨어뜨립니다. 그런데 한 과부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과부인지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 당시에는 남자들이 종교생활에도 가장의 역할을 할 때였습니다. 여자가 와서 헌금을 한다는 것은 십중팔구 남편이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당당해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은 동전 두 개 곧 렙돈 두 개를 헌금함에 넣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과부임은 그 누구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못 놀라셨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없는 어떠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

엉뚱한 예수님 또다시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헌금궤 앞에서 남들이 헌금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엉뚱한데 이제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어떻게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을 칭찬합니까? 이 당시는 고아와 과부는 특별히 구제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면 그 다음 누가 또 돌보아야 합니까? 하여튼 그 점은 다시 살피기로 하고 이 과부가 낸 헌금이 얼마인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두 렙돈을 바쳤습니다. 렙돈은 이 당시 가장 작은 화폐 단위였다고 합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렙돈 하나로는 아무 것도 할수 없는 단위의 돈입니다. 그 돈은 미국식으로 하면 페니와 같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물론 워낙 요즘 페니가 값어치가 떨어져 있습니다만, 제일 좋은 비유는 쿼터(25센트) 같습니다. 20년 전에는 쿼터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었는데 요새는 쿼터 하나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바로 렙돈이 이런 단위의 돈이었습니다. 곧 쿼터 두 개를 헌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그것이 전 재산이었습니다.

자,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다. 어느 혼자 사는 여인이 쿼터 두 개가 전 재산인데 쿼터 두 개를 헌금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헌금하였겠습니까? 두 가지 마음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쿼터 두 개 있으나 마나이니 그냥 헌금으로나 내자. 내일일은 난 모른다. 이런 마음으로 헌금했을 수도 있습니다. 곧 기쁨으로 헌금한 것이 아니라 절망을 안고 삶을 비관하면서 헌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으로 헌금하였더라면 예수님이 과부의 헌금을 보시자마자 제자들을 불러서 크게 칭찬을 하셨을 리 없습니다.

또 다른 마음이 있으리라 봅니다. 이 사람은 쿼터의 소중함을 압니다. 곧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압니다. 물론 쿼터 하나로 아무것도 할수 없지만 그래도 쿼터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압니다. 쿼터의 소중함을 알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합니다. 예수님이 칭찬한 과부는 이러한 과부였을 것입니다. 쿼터의 소중함을 알아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돈 많은 사람들이 헌금을 많이 하였는데 그들은 큰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소중한 큰 것을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작은 것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한 그룹은 큰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그룹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과부가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소개해 드린 젊은이들은 뉴욕 목사님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습니다. 자네들 중에도 분명 큰 인물이 나올 거야. 제 보기에는 이 젊은이들은 종종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큰 인물이 된담? 오늘 본문 말씀은 이러한 도전을 받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 칭찬을 받는 자들이 진정 큰 인물들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 바로 이 세상의 영웅임을 밝히고 계신 것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인 과부였습니다. 만일 큰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 영웅이 된다면 이 세상에서 영웅이 될 만한 사람은 뻔합니다. 큰 것을 소유한 사람들뿐입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만이 영웅적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세상 그 누구도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작은 것은 다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라이언 헐잭이라는 여섯 살 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아프리카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해서 질병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라이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데, 세상에 어떻게 물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단돈 70달러만 있으면 물이 절실한 곳에 우물을 파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집에 돌아온 라이언은 부모님께 곧장 달려가 말합니다. 엄마, 아빠, 70달러만 주세요. 물론 대답은 안 돼 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모님은 대신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라이언은 4개월 동안 집과 동네에서 심부름을 한 끝에 마침내 70달러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WaterCan이라는 개발도상국에 물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덧붙여 우물 공사 현장에서 일할 사람들을 위한 점심값으로 5달러를 더 냈습니다.

워터캔 사람들은 라이언의 결심과 열정에 무척 감동했습니다. 사실 우물을 착공하는 데는 2천 달러가 들었습니다. 라이언이 실망할까 걱정하면서 그 말을 전했지만 라이언은 오히려 밝게 말합니다. 괜찮아요. 제가 일을 더 하면 되지요, 뭐. 라이언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동네에 퍼졌고, 사람들은 조금씩 이 아이에게 돈을 보탰습니다. 금새 2천 달러가 모였습니다.

6개월 후 곧 1999년 1월에 북부 우간다의 앙골로 초등학교 옆에 ‘라이언 우물’을 팠습니다. 직접 우물을 보고 난 후 라이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라이언은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습니다. 2001년에는 라이언 우물 재단이 설립됩니다. 이 때 라이언의 나이는 10살, 그 후로 15살이 되기까지 150만 달러 이상을 보급하여 식수 및 위생 프로젝트 260개를 완성했고 12개국의 43만 5천여 명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사업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한 캐나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다니면서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디에 살 건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현재 17살 난 라이언에게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냐고 사람들이 감탄의 말을 하면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합니다. 전 평범한 아이일 뿐이에요. 사실 그는 특별한 평범한 아이입니다. 평범한 그를 이와 같은 영웅적 삶을 살게 한 것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평범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현대의 영웅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들을 통하여 이 세상을 당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꾸어 나가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작은 것만 있으면 족합니다. 그냥 작은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의 손에 있는 작은 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것으로 얼마든지 큰일을 해 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큰 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의 손에 있는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사실은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기록된 마가복음에는 오병이어 사건 말고 또 다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잘 아시는 오병이어로 장정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은 6:30절부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사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베풉니다. 8장 1절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4천명 밖에 못 먹였으니 아마도 이번에는 5병2어로 먹인 것이 아니라 3병2어 정도로 먹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물고기 몇 마리와 떡 몇 조각으로 먹이셨을까요? 이번에는 7병2어였습니다. 떡이 두개 많았습니다. 떡이 두개 많았지만 4천명밖에 못 먹였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는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칠병이어의 사건에는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우리들 상식으로 생각하면 더 남아야 하는데 덜 남은 것입니다.

이것이 알려 주는 놀라운 교훈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의 작은 것을 가지시고 주님은 마음껏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계산을 뛰어 넘어 계십니다. 우리가 큰 것을 바친다고 더 크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렙돈 두 개를 가지고도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 안에서는 크고 작은 것이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바치는 자들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큰일을 하시는 주님을 믿는 자들은 아무리 작은 것도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그들의 것을 가지고 주님은 새로운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을 들어 우리 주변을 바라보면 온 세상은 작은 것들로 가득 차있음을 보게 됩니다.

마이클 노튼이라는 분이 ‘세상을 바꾸려 태어난 나’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사실 원래 영어 제목은 그것이 아닙니다. ‘The Everyday Activist’입니다. 한글 번역자가 제목을 더 그럴싸하게 붙였습니다. 라이언의 이야기도 이 책에 소개되어진 이야기입니다. 그 책의 전체 주제는 작은 일이 어느덧 큰일을 이뤄낸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몇 개 소개해 줍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하루에 한번 열대 우림 사이트를 클릭하라 인터넷 사이트 중에 열대우림 싸이트(www.therainforestsite.com)가 있다고 합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click here to give-it’s FREE’라는 버튼이 있는데 이 버튼을 클릭하면 열대 우림지 1평방미터에 나무가 심겨진다는 것입니다. 믿겨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클릭 한 번에 나무가 심겨지겠습니까? 사실 스폰서들이 있는데 한번 클릭할 때마다 스폰서들은 1평방미터에 나무를 심는 돈을 댄다는 것입니다. 이 스폰서들은 자기 혼자서 얼마든지 나무 심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역자들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동역자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 번 그 사이트에 들어 와서 클릭 한번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그들은 기쁘게 1평방미터에 나무를 하나 심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에 한 번씩 일 년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365개의 나무가 심겨집니다. 이것은 쿼터보다도 더 작은 노력으로 놀라운 일을 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사람들도 이웃의 작은 노력을 가지고 이처럼 놀라운 일을 펼치는 계획을 세우는데 하나님은 어떠하겠습니까?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작은 시간과 물질의 소중함을 깨달으십시다. 그리고 우리의 것들을 소중하게 사용하십시다. 예수님의 손에 우리의 작은 것들을 맡기십시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작은 것을 가지시고 위대한 일들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손길을 St. Therese of Lisieux의 삶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일명 ‘작은 꽃’이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그녀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언제나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온전한 자가 되기에는 너무나 올라가야 할 길이 멀었습니다. 결국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부자들은 층계를 사용하지 않고 lift 곧 엘리베이터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들의 삶을 흉내 내 보았습니다. 나의 lift를 발견하였습니다. 나의 lift는 예수님의 손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은 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들어 올리게 합니다. 그의 사랑과 자비를 신뢰할 때 나는 그의 팔에 안겨 들려올라 가게 됩니다.

우리들의 작은 것들이 주님의 손에 맡겨질 때 주님은 놀랍게 그것을 들어 올리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들의 작은 것으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눈을 들어 살펴보면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수많은 작은 렙톤들이 세상에 널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은 너무도 소중한 것들입니다. 교우여러분, 그것을 매일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다. 주님은 그것들을 들어 올려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작은 렙돈을 매일 드리십시다.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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