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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죄하면 나는 우하고

날짜 : 2008.05.18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네가 죄하면 나는 우하고
성경본문 : 창세기 13장 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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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Global Ideas Bank)라는 은행에서 재미있는 책을 펴냈습니다. 책 제목은 트랜드 인 비지니스(Trend in Business). 오늘날 격변하는 세계에서 성공적인 비지니스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사실 은행이라고 말은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은행이 아니고 그야말로 아이디어 뱅크(idea bank)입니다. 많은 아이디어를 인터넷을 통해 모아서 책을 펴낸 것입니다. 몇가지만 소개해 드릴까요?
프리 코스트 호텔(Free cost hotel)이 있습니다. 돈 안 받고 호텔에 와서 묵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돈을 안 받았기에 성공한 호텔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골드 호텔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으로 인해 관광객수가 급감하면서 고객 수가 줄었습니다. 이 때 호텔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파격적인 시도를 하였습니다.
호텔은 한 달 동안 시범적으로 호텔방 중 10개를 손님들이 원하는 기간 동안 마음껏 사용하고 이용료도 알아서 지불하도록 하였습니다. ‘Pay what you like.’ 결과는 주말에도 간신히 절반만 채워지곤 했던 호텔이 손님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상품 혹은 서비스의 금액을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발상이 획기적이었고 그래서 성공한 예인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를 소개해 드립니다.
어린 아이들을 기르는 주부들이 오랫동안 가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으시면 관계는 없겠지만, 영화를 좋아하시는 주부들은 자녀를 기를 때 많은 애로를 겪으실 줄 압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영국 런던에 클래펌(Clapham)극장에서는 평일 낮 시간에 주부들을 위한 시간을 별도로 마련했습니다.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마음 편하게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해당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만 되면, 극장 통로는 아기들이 우는 소리와 엄마들이 달래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은 기저귀를 가는 장소로 바뀌었고 극장 직원은 유모차관리까지 맡으면서 업무량이 두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수고가 가져 온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전에는 관객이 거의 없던 시간대에도 수익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극장에 대한 만족도와 지지도 역시 상승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 꼭 팝콘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나 옆 사람과 대화를 즐기는 관객 역시 부담 없이 극장을 찾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예만 들어도 요즘은 아이디어 시대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세상에서 얼마든지 성공할수 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믿기에 GIB(Global ideas Bank)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수 있을까요?
오늘 졸업축하예배를 드립니다. 다시금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요즘 대학을 졸업하려면, 아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려면 공통적인 것이 있을줄 압니다. 좋은 아이디어로 논문을 쓰거나 페이퍼(paper)를 써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 이제 학위를 마쳤다고 생각하십시다. 더 이상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지 않아도 되나요? 제가 잘 아는 분이 오래전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고 특허까지 받았습니다. 특허를 받았다는 것을 알자 가까운 친척이 그 분의 특허를 가지고 회사를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더니 몇년 안에 다른 특허품이 생겨났습니다. 회사는 문을 닫고야 말았습니다. 이래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하는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은 정보시대인데 어느 분 <미국 주립대학 연합회 의장, 제임스 에플베리(James Appleberry)>이 다음과 같은 통계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인류에 의해 소유된 지식의 총계가 1900년에서 1950년에 이르는 사이에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1970년대에까지는 10년 내에 배가 되었으면, 그 때부터 5년내로 또 배가 되어 오고 있다고 합니다. 2020년에는 그것이 73일마다 배가 되어 가리라 예측했습니다. 2020년이면 12년 남았습니다. 12년 후에는 73일마다 지식이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2년 전에 어디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앞으로 그만한 시간이 지나면 73일마다 지식이 배가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번 졸업하시는 여러분들은 바야흐로 그러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우리를 잘 살게 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아이디어의 홍수 속에 우리는 도리어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처럼 아이디어로 홍수가 난 세상으로 향하는 우리 졸업생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멧세지를 주실까요?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말씀이 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교우 여러분 우리가 이 말을 한 적이 언제 입니가? 사실 우리는 이 말 보다 다른 말에 더 익숙하지 않습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
이 말은 전형적인 경쟁사회에서 탄생된 말일줄 압니다. 남들이 뛰어 갈 때 날아가려는 것이 바로 경쟁사회에서 사는 전형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어떤 분들은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그 때는 경쟁시대가 아니여서 그렇죠. 요즘 같은 경쟁시대에 그런 생각 갖고 살아 남을수 있을까요?”
그러면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면서 과연 아브라함의 고백이 요즘도 유용한 고백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아울러 이 두 가지 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늘 조카 롯과 함께 다녔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부터 롯과 같이 다녔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같이 다니는 것까지는 좋은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6절말씀입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
좁은 땅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것은 좋은데, 땅이 좁아졌습니다. 급기야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말을 합니다. 8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
그러고는 놀라운 제안을 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이 말을 듣고 롯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기름져 보이는 땅을 택합니다.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떻게 됩니까? 12, 13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기름져 보이는 땅을 택했던 롯은 결국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것입니다.
반면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14절 말씀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이제 아브라함은 말씀대로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니 얼마나 넓겠습니까? 저멀리 지평선들을 바라보며 있는데 계속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지금 땅이 부족해서 롯과 헤어졌는데 하나님께서 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기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영원한 집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을 때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땅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상상할수 없는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자손의 숫자도 땅의 티끌처럼 많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전보다는 그렇게 놀라지 않습니다. 전에 한번 들었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말씀이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12:1,2절 봉독해드리면,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이처럼 하나님은 오래전에 나타나셔서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첫 번째 약속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재차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복 교육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 들을 때보다는 덜 놀라겠지만 그래도 이런 약속 들으면 들을수록 좋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새로운 약속과 옛 약속을 골똘이 생각하며 흥분되어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또 다시 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반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문장을 분석해 보면 ‘땅의 축복, 자손의 축복, 땅의 축복’순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자손의 축복은 이미 오래 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의 축복은 땅의 축복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처럼 두 번째 축복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 이 축복을 나타내셨을까요? 아브라함의 고백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사실 아브라함은 땅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땅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이 때 하나님은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의 고백은 어떻게 보면 포기의 고백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아브라함은 땅을 도리어 포기하는 놀라운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 때 도리어 하나님은 땅을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태어날 수많은 자손들을 위하여 땅의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말씀을 준비하면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러한 말씀을 그토록 하시고 싶으시지 않으실까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이 말씀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특히 이번에 졸업하시는 교우님들에게 오늘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그런데 이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사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와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세상은 더 이상 새롭게 창조되지 않으니 그 일정한 공간에서 경쟁하여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반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는 고백을 하는 자들은 지금도 세상은 얼마든지 새롭게 공간이 창조될수 있음을 믿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것을 양보할 줄 압니다. 포기 할줄 압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을 할 때 진실로 세상은 새롭게 창조됩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고백으로 인해서 창조된 그 세계에서 살아 갑니다.

그래도 어떤 분들은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그것은 주전 2000년 전에 이야기구요. 요즘은 다르죠. 땅이 얼마나 귀합니까? 땅이 자꾸 창조만 된다면 이렇게 땅값이 오를리가 있습니까?” 그러니 어떻게 “네가 죄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고백합니까? 사실 요즘 땅 값이 자꾸 오르니 아주 재미있는 사업체가 생겨났습니다. 이것도 글로벌 아이디어스 뱅크(Global Ideas Bank)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루나리퍼블릭 닷 컴(Lunarrepublic.com)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달 공화국회사입니다. 더 이상 지구의 땅으로는 부족하게 되자 달을 제2의 지구로 생각하고 달의 땅을 사고 팔고 하는 회사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국가에서 이러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황된 것 같은데 실제로 있는 일입니다. 궁금하시면 웹사이드로 들어 가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끼리 달 지도를 만들어서 어디서 어디까지는 누구가 소유주고…, 이처럼 다 등기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달을 정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달을 정복하고 나면 그 동안 돈을 내고 산 사람들이 달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지금도 달에 속한 땅을 사고 팔고 합니다. 그러다가 사기를 치면 감옥에 가는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달만 파괴만 안 시킨다면 됩니다. 그 달이 어딜 가겠습니까? 그런데 이 들이야 말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인 것 같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들은 이처럼 세상을 점령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그저 아브라함의 고백만하면 되나요?
사실 우리도 경쟁사회에서 살고 있는 만큼 경쟁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사회에서 하루도 살수 없습니다. 우리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려고 노력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한다는 것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되기 위함이 아닙니까?
제가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큰 병원과 대학을 운영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새롭게 연구소를 만드느라 바쁘게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이젠 그만 쉬어” 말했더니, “이미 늦었어 여기서 멈추면 다 끝나는거야”
그러면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도 되고 한편으로는 좌하면 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맞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어떤 삶이냐구요?
먼저 열심히 경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고백을 하는 자들은 경쟁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을 위하여 기도하는 삶이 바로 오늘의 아브라함의 고백을 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도 롯과 경쟁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롯에게 양보할수 있었던 이유는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쟁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 놀라운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웃과 경쟁하다가 잠시 멈추어 서서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는 삶 이것이 바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하는 삶입니다. 달 공화국 회사를 만들어 돈을 버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위에서 자기만 알고 자기를 위해서 돈을 긁어 모으고 땅을 사데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진정 아브라함의 고백을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을때가 많을줄 압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이 고백을 하신 분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궁극적으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말씀하신 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고백을 하셨기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새로운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들어가 살아도 남고도 남는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교우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먼저 이러한 고백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하여 기도하다 지칠 때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고백을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이 고백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창조하신 땅의 축복을 맛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필요한 새로운 땅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자기의 특유한 삶의 공간을 누리면서 많은 이웃들에게 삶의 풍요함을 선사했던 아니 새로운 땅을 창조했던 엠마 봄벡(Erma Bombeck)이라는 유머리스트이자 작가가 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말을 한 사람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나를 날씬하게 해 주실 수 없다면 나의 친구들이 뚱뚱하게 보이도륵 해 주세요.”
얼마나 재치가 있는 표현입니까? 남을 뚱뚱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떡해서 이런 멋진 유머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한편 1991년 그녀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아울러 1년 뒤에는 두 개의 신장 기능이 모두 정지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루에 네번씩 혈액투석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특혜를 거부하고 신장 이식자를 위한 대기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녀는 유명해졌기 때문에 먼저 신장이식을 받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특권을 양보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리라.” 이 분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랐지만 후에는 그토록 많은 분들에게 좋은 삶의 축복을 나누는 자가 된 이유는 바로 이 모습 때문일줄 압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을 때 한 칼럼에서 그녀는 반복되는 꿈에 대해서 다음 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너의 주머니를 비워라. 네 인생에서 너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 있느냐?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너에게 준 것들 중에 네가 여전히 사용하지 않고 남겨둔 달란트가 있느냐? 네가 말하지 못한 칭찬이나 사랑의 조각들이 있느냐?’
나는 하나님께 말했다.
‘나는 대답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이 주신 모든 것을 다 써버렸습니다. 나는 태어난 날과 같이 벌거숭이입니다.’”
그후 얼마 안 가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분은 아브라함과 같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고백하며 산 사람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땅 위에서 최고의 삶을 누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세계를 창조한 사람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세상은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새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자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 일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번 졸업하시는 분들을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함께 주님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의 고백을 하십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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