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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눈물

날짜 : 2008.03.02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요셉의 눈물
성경본문 : 창세기 39장 19 –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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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에서 나오는 한 이야기입니다.

깊은 골짜기에 예쁜 마을이 있었습니다. 골짜기 주변에는 두 웅장한 산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어느 날 등산을 잘하는 한 젊은 청년이 마을 옆에 있는 웅장한 산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산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장관이었습니다. 순간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 마을을 내려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자기들이 살고 있는지 알게 될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을에 내려가서 산에 함께 오르자고 권했습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길 시도합니다. 그런데 산 정상을 향한 길은 너무 험난했습니다. 사람들이 올라 가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곤 했습니다. 심지어 죽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점점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마을의 경관을 말로만 전할수 밖에 없었던 청년은 안타까왔습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하여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러나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만족스러운 작품이 안 나옵니다.

고심하던 청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큰 계단들을 만들어서 산꼭대기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사람들에게 말을 했지만 모두 콧방귀도 않뀝니다. 온 마을이 힘을 합해도 자기들 세대에는 도저히 마칠수 없다고 시도조차 할 필요없는 일이라고 잡아 뗍니다. 결국 이 청년은 혼자서 돌계단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전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해도 죽을 때까지 이룰수 없는 일을 혼자서 시작한 것입니다.

첫번째 계단을 만듭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가 아닙니까? 사람 키의 반정도의 높이와 길이로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망치와 끌(chisel)을 가지고 혼자서 만듭니다.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만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일을 해야만 합니다. 자기도 생활을 하여야 하니 말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일은 더디어 집니다. 삼년이 지났을 때 겨우 세 계단을 만들었습니다. 벌써 청년은 중년에 접어 들어 갔습니다. 더 이상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네번째 계단을 마쳤을 때는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이 석공이 죽으면 그동안에 일도 모두 헛수고로 돌아 갈것이라고 생각하며 비웃습니다.

그런데 어느 미친 젊은 친구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노인 석공의 뒤를 잇는 석공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계단 만드는 일은 계속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의 조롱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아무도 협조하지 않습니다.

젊은 석공이 몇 개의 계단을 마쳤을 때 그도 중년이 넘어서 노인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또 한 미친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이 젊은이도 전에 두 석공처럼 혼자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석공과 계단을 무시한 채 살아갑니다. 아무도 도와줄 생각을 안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마을에서는 직장도 구하지 못합니다. 자기의 생계를 위하여 이웃마을에서 일을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만 계단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이 되었고 그 마을 사람들도 기계들을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말들과 소들이 끄는 농기구는 점차 사라집니다. 마차도 사라집니다. 전기가 들어 오고 전봇대가 세워지면서 가로등까지 세워집니다. 밤에는 마을은 환한 도시가 되어 갑니다.

그러나 산 정상을 향한 작업은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의 도움없이…. 놀랍게도 계속 미친 젊은이들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을에서는 여기저기 석공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한결 같은 이야기는 그들은 모두 정신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모두 그들의 인내와 결단력에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편 기계문명은 더 발달되어서 이제는 비행기의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계단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장관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석공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계단을 만듭니다. 비행기로 인해 필요 없어졌는데도 말입니다. 이제는 꽤 높이 계단이 올라갔습니다. 계단 끝은 때로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질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단은 산 뒤로 돌아 숨겨지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계단이 어디까지 올라 갔는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석공이 마을 시장 사무실을 찾아 왔습니다. 얼굴은 까맣게 그슬려 있었고 손은 단단한 굳은 살로 거칠게 보였습니다. 석공은 망치와 끌을 시장 책상에 내려 놓으면서 말합니다.

“다 마쳤습니다. 이 연장들은 첫 계단을 만들기 시작한 첫 석공의 연장입니다. 이 연장들은 계속 전해 내려 온 것이죠. 이 것을 마을에 선물로 증정합니다. 모든 일은 마쳤습니다.”

이 말을 하고 석공은 마을을 떠납니다.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그 누구도 이 일이 마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과연 이 일이 마춰어졌는지 알기 위해서 두 사람을 보냅니다. 두 사람은 사진기를 갖고 계단을 오릅니다. 그런데 계단이 사람 키의 절반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다리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이틀이 지나서 드디어 두 사람은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산 정상에서 마을 사진을 찍었습니다. 첫번째 석공의 꿈이 이루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틀 후 그들은 마을에 내려와서 보고합니다. 정말로 계단은 산 꼭대기까지 오른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찍은 사진이 전시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기 위해 모여왔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사진은 계단이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사진이었습니다. 이 사진이 이 마을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들 눈에 띄는 또 하나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계단마다 다음의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Keep going” (계속하라.) 석공들은 마을 사람들이 외면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여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 다녀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계속하게 하였던 것은 바로 전 석공이 파 놓은 이 말이었습니다. “Keep going.” 석공들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사순절 네번째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벌써 네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삼주만 지나면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어떻게 보면 벌써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직도 네번째 주일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사순절을 아무 의미 없이 보내는 분들에게는 벌써 네번째 주일이란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러나 사순절기간 기도와 금식과 구제에 힘쓰면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에 애쓰시는 분들은 아직도 네째주일 밖에 되지 않았나 생각하실줄 압니다. 특히 가장 좋아 하던 것들을 하나님께 드린 삶을 사신 분들은 더 시간이 안 가고 있을줄 압니다.

혹시 이런 생각은 안해 보셨습니까? 사순절이 20일이면 어떨까? 그렇다면 사순절이 지난 목요일 곧 28일로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40일입니다. 아직도 거의 반 가량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사순절은 예수님의 40일 광야의 시험받으심을 생각하여서 믿음의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지켜내려 오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식하신지 20일이 지났을 때 어떠하셨을까? 예수님도 20일만 금식하시길 원하셨을지 모릅니다. 인간적으로는 아마 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매일 아침 일어나실 때마다 생각하신 것이 있지 않으실까요? “Keep going.” 그러므로 사순절의 멧세지는 바로 이것일줄 압니다. “Keep going.”

교우 여러분 그동안 20여일간 잘 지키셨습니다. 우리 마지막까지 잘 지키십시다. Let’s keep going.

그러면 어떤 분들은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일년의 40일만 잘 지키면 무엇합니까? 40일이 지난 뒤 똑같아 질텐데.”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정말 40일만 잘 지낸 후 일년 316일을 엉망으로 지낸다면 40일도 잘 지낼 의미가 없는 줄 압니다. 사실 언젠가 말씀드린 줄로 압니다만 사순절을 일년의 40일로 지키는 또 다른 이유는 40일은 일년의 십분의 일 곧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십일조를 잘 지내면 일년을 잘 지낼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사실 믿음의 선배들이 사순절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사순절은 사순절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순절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들의 전 삶을 위한 것입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40일이 우리들의 삶의 한 축소판이라는 것입니다. 이 40일을 잘 지킬 때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십일 동안 우리에게 필요한 사순절의 멧세지가 무어라구요? “Keep going.”

사순절의 멧세지가 “Keep going”이라면 저는 확신있게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멧세지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Keep going.”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인생의 삶에서 Keep going할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가 남은 사순절을 Keep going하며 지낼수 있을까요?

이번 사순절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아브라함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고 그 다음으로는 ‘이삭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요셉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지난 주 주보에 오늘 설교제목이 ‘요셉의 눈물’로 나간 것을 보고 어느 교우님로부터 사무실로 연락이 왔습니다. “야곱의 눈물이 빠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고 야곱의 아들이 요셉인데 왜 하나를 빠뜨리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야곱이 누구보다도 많이 눈물을 흘린 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예배하는 나그네”라는 제목으로 세 차례 야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기에 이번에는 야곱을 건너 뛰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비에 그 아들,’ 아니면 ‘그 아들에 그 아비’ 요셉의 눈물 안에서 야곱의 눈물을 느끼실줄 압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요셉이 감옥에 갇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든 간에 감옥의 삶을 감옥 생활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눈물, 눈물일 것입니다. 물론 본문 말씀에는 눈물이란 단어는 안 나오지만 요셉이 눈물을 많이 흘린 것은 당연한 사실일줄 압니다.

어느 사도행전 주석가는 사도행전에 사랑이란 단어가 하나도 안 나오는 이유를 그 당시는 사랑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처럼 요셉의 삶에도 눈물이 당연한 것이기에 아마 눈물을 흘리는 요셉에 대해서는 많이 기록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여튼 요셉의 삶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눈물 없이 살수 없었던 삶이었음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비친 요셉의 삶을 잠깐 살펴 본다면, 요셉은 어릴 때 꿈을 많이 꾸었는데 해와 달과 11별들이 자기별에게 절하는 꿈을 꿉니다. 추숫단 꿈을 꾸는데 엄마 아빠 그리고 11형제들의 추수단이 자기의 추숫단에 절하는 것을 꿉니다. 결국 아버지에게 야단맞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괜한 꿈을 꾸었기에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먼 지방에서 일하는 형들을 방문하라고 합니다. 그 때 요셉에 대한 시기가 가득찼던 형들이 요셉을 잡아서 팔아버립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갑니다. 결국 보디발의 집의 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어린 요셉 얼마나 많이 울었겠습니까? 그러나 눈물을 닦으며 열심히 일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합니다. 물론 요셉은 그 유혹을 담대하게 물리칩니다. 그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첫 절입니다.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

보디발의 아내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자기의 남편에게 요셉이 자기를 해칠려고 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가만히 있을 남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셉을 감옥에 가둡니다. 늘 어릴 때부터 형들에게 왕따를 당하던 요셉이 그것도 부족해서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종이 되었는데 그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 와서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간수가 요셉을 잘 보았습니다. 어떻게 잘 보게 되었는지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간수는 감옥일을 요셉에게 맡깁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또한 매일매일 체험합니다. 모든 되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잘 됩니다. 작은 일이지만 기적의 손길을 늘 느낍니다. 맡긴 일이 잘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구나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일이 잘 되어 봤자 뭐 신통한 것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되어도 감옥은 감옥입니다. 단지 간수의 눈에 잘 든 것뿐입니다. 그래도 간수의 눈에 잘 못 뵌 것보다는 훨씬 좋았겠죠.

그러나 요셉에게 중요한 것은 간수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하찮은 감옥에서도 자기와 같이 계신 것을 체험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곧 요셉에게는 두가지 눈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왕따당한 고통의 눈물 또 하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눈물. 이 두가지 눈물이 다투어서 요셉의 눈을 바쁘게 적시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는 두 눈물의 싸움이외에 또 다른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꿈이냐 감옥이냐.’ 다르게 표현하면 ‘꿈이 이기느냐 감옥이 이기느냐’ 입니다. 감옥에서 꿈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아 아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감옥의 삶을 한번 상상의 날개를 펴서 찾아가 볼까요? 요셉은 홀로 있을 때에는 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한참 눈물을 흘리고 있노라면 어느덧 공상에 사로잡히곤 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주신 꿈을 생각하곤 했을 것입니다. 해와 달과 11별들이 자기별에게 절하는 꿈을 생각합니다. 부모님 추숫단과 형들의 추숫단이 자기의 추숫단에 절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이 꿈은 과연 어떻게 이루워질까 혼자서 공상에 잠깁니다.

순간 간수가 “요셉”하고 부릅니다. 요셉은 정신을 차리고 간수에게 뛰어 갑니다. 그리고 일을 멋지게 처리하고 옵니다. 간수는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찹니다. 요셉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합니다. 그래도 간수는 간수입니다.

또 다시 혼자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눈물이 어느덧 고여 있습니다. 또다른 공상에 날개를 폅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어릴 때부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100세에 할아버지 이삭을 낳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자기는 만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의 증손자라는 사실을 혼자서 생각합니다. 또한 모리아 산에서 증조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인 이삭 할아버지를 바치는 장면이 상상의 날개를 타고 전개됩니다. 자기는 이처럼 훌륭한 증조할아버지를 갖고 있고 할아버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의 가족은 밤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을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이 것은 어느덧 요셉의 또 하나의 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눈을 뜨면 감옥이었습니다. 꿈꾸는 요셉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요셉의 꿈과 감옥은 두 눈물과 함께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싸움을 요셉은 못 해도 2년동안 계속합니다. 41장 1절을 보면,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이는 요셉이 못해도 2년간은 감옥 생활을 한 것입니다. 못해도 2년간 요셉은 ‘꿈이 이기느냐 감옥이 이기느냐’ 싸운 것입니다. 잘 아시는대로 드디어 그의 꿈이 이겼습니다. 그는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감옥생활을 2년간 했다고 가정합시다. 저는 이 2년간이 요셉의 사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이 이 인생의 사순절을 잘 보냈기 때문에 그는 인생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결국 꿈이 이루워졌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해와 달과 11형제들의 별이 자기의 별에게 절하는 꿈이 이루워진 것입니다. 2년간의 사순절의 잘 보냈기에 20년간 국무총리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셉은 감옥에서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keep going’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사순절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keep going’하였습니다. 끝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그의 인생의 사순절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할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눈물이었을줄 압니다. 사실 창세기에는 요셉이 눈물을 흘린 장면은 두 번 소개되어집니다. 국무총리가 된 후 자기 동생 베냐민을 처음 만났을 때 혼자서 웁니다. 43:30절입니다.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듯 하므로 급히 울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마지막으로 형들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힌 후에 또 웁니다. 45:2절입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마지막에 흘리는 요셉의 눈물은 그 동안 수 없이 흘린 눈물을 총정리하는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이상한 꿈을 꾸었기에 시작된 설움과 아픔이 드디어 모든 인생의 감옥에서 승리하면서 총체적인 눈물이 되어서 쏟아져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눈물들로 인해서 그는 꿈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keep going’할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꿈을 잃으셨습니까? 눈물을 흘리시기 바랍니다. 꿈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 꿈을 안고 ‘keep going’하십시다. 우리들의 눈물과 꿈은 언젠가 감옥문을 부술 것입니다. 마치 언젠가 40일이 지나가고야 말듯이 말입니다. 눈물과 꿈이 있는 사람들은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눈물과 꿈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keep going’할 것입니다.

로버트 사우스웰(Robert Southwell)은 16세기 영국문헌을 연구한 후 눈물에 대한 책을 썼는데 눈물은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당신의 눈물로 목욕을 합니다. 한편 당신의 얼굴은 눈물로 인해서 진주와 같이 빛나구요. 당신의 눈물에서는 기름이 흘러 나오죠. 그 기름은 하늘의 불에 제일 좋은 연료죠. 하늘 보좌를 밝게 합니다.”

하늘 보좌가 밝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변호사의 역할을 눈물이 눈물을 흘리는 자들을 위하여 하게 되겠습니까? 하늘의 보좌를 밝게 하는 눈물은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할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더욱 밝힐 것입니다. 아울러 감옥문은 열릴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남은 사순절기간 고난의 주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십시다. 우리들의 꿈을 회복하십시다. 그리고 함께 외치십시다. “Keep Going.”

말씀을 거둡니다.

감옥 안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끝까지 Keep going하신 분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어머님 전상서

예수를 찬미합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옆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 저녁 문안인사 못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 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있으니 마음을 평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분도(안의사의 장남)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길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시옵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이상이 드릴 말씀이며 그 밖에도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아래 여러분께 문단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가지 일은 동생들에게(정근과 공근)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아들 도마 올림”

안중근 의사는 꿈을 가지고 ‘keep going’하신 분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하늘나라에서 자신의 꿈이 이루워짐을 보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꿈도 이루워지고야 맙니다. ‘keep going’하십시다. 때로는 넘어질 때면 눈물을 흘리십시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다 넘어지신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우리들의 꿈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Keep Going.’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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