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안내
주보
주보 모음
설교 영상
설교 원고
찬양
실시간 예배
2015년 이전 설교

“은밀한 중에 보시는 이” (마태복음 6:1-4) 03/26/2017

 

오늘 사순절 예배를 드리는데 먼저 사순절에 걸맞아 보이지 않는 노래 가사를 소개해 드립니다. 가수 이연실이 부른 목로주점의 2절 가사입니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가사를 보면 월급을 타서는 로프를 사고 적금을 타서는 낙타를 사자고 친구에게 말합니다. 곧 월급은 매달 받는 것이니 한 달에 한번은 등산을 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눈에 띄는 가사는 연말에 적금을 타서 낙타를 사자고 합니다. 낙타를 사자고 하는 이유가 뭐죠? 사막에 가자는 것입니다. 곧 일년에 한번은 사막에 가자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 그동안 이연실 가수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는데 이번에 이 가사를 접하면서 아주 반해 버렸습니다. 보통 유명한 시는 문학 비평가들이 풀이를 거의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가요 가사는 해석이 되곤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해석을 해 보았습니다.

한달에 한번은 산에 오르고 일년에 한번은 사막에 가자는 것입니다. 사실 사막은 광야입니다. 광야에 가서 일년에 한번씩은 삶을 배우고 자신을 살피고 낙타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인생을 발견하자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얼마전 제가 읽은 이진희 목사님의 책 ‘광야를 읽다’에서 이 가사를 접해 보았습니다. 그리곤 저 나름대로 풀어 본 것입니다. 물론 이진희 목사님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 가사를 소개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편 이 목사님은 카톨릭 신학자 까를로 까레또의 말을 인용함으로 그의 생각을 피력합니다.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

 

오늘 사순절 넷째 주일 예배로 드립니다. 사순절은 한 마디로 광야로 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드는 절기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1년에 40일은 생활속에 광야를 만들기로 하여서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세워 놓았습니다. 참회의 기도, 절제 그리고 구제입니다.

사순절이 절반 이상 지난 오늘 이런 설교를 드려서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나 생각되지만 앞으로 남은 3주간 이 세 가지를 행함으로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구제를 통한 광야의 삶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예수님 당시는 구제가 사람들에게 자기의 의를 보이는 하나의 방편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절에서 더 실감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 당시 외식하는 사람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자신들의 구제의 삶을 자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구제가 자랑거리가 될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계속 나오는 말씀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구제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곧 이웃을 구제하는 것이 하나의 의로운 삶의 기준이 되어 있었던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회당과 거리에서 구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의 의를 보이려고….

이로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이 당시 사람들은 한 마디로 주머니가 얇아지는 것보다 명예를 더 좋아 했던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주머니는 얇아지더라도 이웃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과 존경이 더 소중했던 것 같습니다. 곧 돈으로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산 것입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죠?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상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칭찬과 존귀함을 포기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칭찬과 상 보다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칭찬과 존경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요즘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을까요? 예수님 당시처럼 돈을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으로 맞바꾸는 시대인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웃에게 칭찬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 주머니가 얇아지는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칭찬과 존경 보다는 주머니가 두툼해 지는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만일 후자라면 예수님께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씀하신다면 좀 다르게 말씀하시지 않으실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요즘은 이웃의 칭찬과 존경 보다는 각자의 주머니를 더 소중히 여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의 자료가 우리가 인류 역사상 제일 주머니가 두툼해져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고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놀라지 마십시요. 의학의 발달로 백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하실줄 압니다. ‘백세 시대와 주머니가 무슨 관계가 있나…?’

‘은퇴’(retirement)라는 제도가 언제 생겨났겠습니까? 처음 이 제도가 생긴 나라는 독일인데 1889년에 생겨났습니다. 그 후로 서구 세계에 은퇴 제도가 도입됩니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연금제도가 있지 않았는데 없어도 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은퇴를 하곤 하였다는 것입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70대까지 70세가 아니라 70대까지 일을 하였고 은퇴를 하면 곧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만일 건강이 안 좋아서 일을 그만 두게 되면 가족이 그 분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20세기 말부터는 은퇴후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15년 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은퇴 후 15년을 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곧 약 100년 사이에 은퇴후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3년후에서 15년후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21세기 초가 되었으니 이제는 은퇴 후 거의 20년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상황을 어느 부인이 다음과 같은 짧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twice as much husband and half as much money.”

(남편에 대한 부담은 2배가 되었지만 돈은 반으로 줄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웃의 존경과 칭찬 보다는 각자의 코가 석자인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존경과 칭찬도 좋지만 더 시급한 것은 retirement plan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100년 전만에도 있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요즘 미국도 social security가 바닥이 난다는 사실을 다 잘 알고 있어서 이제는 청년시절 첫 봉급을 받을 때 부터 따로 retirement plan을 들어야 하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 안 드려도 많은 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줄 압니다.

그러면 이런 백세 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내가 너희 사정 안다. 구제 안 해도 된다.”?

저는 그 때 하셨던 곧 본문에 적혀 있는 말씀 그대로 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이 때 주님은 어떤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상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재미있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오른 손은 구제하는 손입니다. 왼손은 retirement plan에 돈을 넣는 손입니다.

‘Retirement plan에 돈을 넣는 왼손 몰래 오른 손으로 구제를 하라.’ 이렇게 풀이해 보았습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할수만 있으면 retirement plan에 돈을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구제의 손길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왜요? 4절 말씀입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Retirement plan몰래 구제를 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또 몰래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사람만이 은밀하게 갚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이 주는 멧세지는 한 마디로 retirement plan보다 구제가 더 소중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을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둘 중 하나만을 해야 할 경우라면 구제를 택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은밀한 축복 안에는 이 땅의 축복도 그리고 하늘 나라의 축복도 모두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분을 만났는데 그 날 따라 얼굴 표정이 무척 안 좋아 보였습니다. 후에 들으니 바로 어제가 80세가 된 날이라는 것입니다. 금방 생각이 들기를 ‘80세 생일 잔치가 생각 보다 소홀해서 기분이 안 좋으시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와서 오래 전에 생명 보험을 들었는데 만기가 80세라는 것입니다. 곧 80세가 되기 전에 하늘 나라에 가면 수혜자가 그 돈을 받지만 80가 지나면 그 돈은 그대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보험회사가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곧 큰 액수가 바로 하루를 더 사셨기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위로해 드렸습니다. “그래도 수십년간 보험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갖고 살지 않으셨습니까?” 근데 별로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와 반대 되는 케이스도 있겠죠. 젊어서부터 은퇴 연금을 많이 들어 놓았는데 하나님께서 일찍 부르시는 경우도….

 

그러면 어떤 분들은 저에게 질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럼 낸들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생명보험이나 retirement plan을 들지 말고 오직 구제만 하란 말입니까?”

물론 그건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답변해 드릴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카톨릭 신학자 까를로 까레또의 말을 인용합니다.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드는 것입니다. 광야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실 ‘광야’의 히브리말은 ‘미드바르’입니다. 이 ‘미드바르’는 ‘다바르’ 곧 ‘말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곧 광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라는 것이 히브리어가 밝히고 있습니다. 광야 속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서 까레또 신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

그런데 광야에서 살려면 무엇이 필요하죠? 낙타가 필요합니다. 낙타를 사야 합니다. 1년에 한번쯤은 낙타를 타고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낙타를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낙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낙타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별명이 ‘낙타 무릎’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야고보가 있지만 그 야고보 말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또 있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를 하도 많이 해서 무릎이 낙타무릎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낙타가 된 장본인입니다.

이 낙타 무릎의 소유자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하였는데…, 야고보서는 행함과 함께 하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특히 구제를 강조합니다. 야고보서 2:15, 16절 말씀을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야고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구제를 하기 전에 낙타 무릎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낙타 무릎이 되어 갈 때 우리는 참된 구제를 하게 됩니다. 낙타 무릎이 되어 간다는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참회의 사람이 됩니다. 참회의 사람들은 곧 절제와 구제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곧 참회와 절제 그리고 구제, 이 세 가지는 서로 깊게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던 삶을 참회할 때 절제를 결단하게 됩니다. 물질적 욕심대로 살았던 삶을 참회할 때 구제의 삶을 결단하게 됩니다. 곧 낙타 무릎의 소유자들은 절제와 구제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습니다.

그 상이 얼마나 신비한지는 받아 본 사람만 압니다.

 

St. Teresa of Avila가 이런 표현을 하였습니다. 종종 은밀한 기도 중에 거의 한 시간이 지나도 “Our Father”라는 한 마디도 못 마친다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말이 너무 감격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이런 경험을 할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도 다 할수 있습니다. 일년에 한번 광야 생활로 들어 간다면…. 참회와 절제와 구제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밀한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은 3주간 말씀과 더불어 참회와 절제 그리고 구제의 삶을 통하여 주님을 깊게 만나시게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마음껏 상을 베푸실수 있는 기회를 드리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어느 신자가 수도승을 찾아 와서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항상 기도할수가 있습니까? 그러면 잠도 자지 말고 기도하란 말입니까? 저녁 식사후 수도승은 밥 한 그릇을 만들어서 문밖에 놔두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매일 저녁 밥 한 그릇을 문밖에 놔둔다네. 그러면 가난한 자가 와서 그것을 가지고 가지. 그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교우 여러분,

Retirement plan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 기도합니다. 그들의 기도를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들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This entry was posted in 설교 원고. Bookmark the permalink.
No. Title Writer Date
356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1-9 (04/28/2024) webmaster 2024.04.29
355 “나는 세상의 빛이라” 요한복음 8:12-20, 9:35-41 (04/21/2024) webmaster 2024.04.22
354 “나는 생명의 떡이라” 요한복음 6:22-35 (04/14/2024) webmaster 2024.04.15
353 “마지막 아담: 살려 주는 영” 고린도전서 15:42-46 (03/31/2024) webmaster 2024.04.01
352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32-28 (03/24/2024) webmaster 2024.03.25
351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서 4:5-11 (03/17/2024) webmaster 2024.03.18
350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서 4:1-4 (03/03/2024) webmaster 2024.03.04
349 “베 옷을 입은지라” 요나서 3:1-10 (02/18/2024) webmaster 2024.02.19
348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요나서 1:17-2:10 (02/11/2024) webmaster 2024.02.13
347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요나서 1:11-16 (02/04/2024) webmaster 2024.02.05
< Prev 1 2 3 4 5 6 7 8 9 10 36 ... Next > 


The Korean Church of Boston (PCUSA) 32 Harvard St. Brookline, MA 02445
교회 : (617) 739 - 2663, (617) 277 - 8097 / Fax : (617) 739 - 1366 / 담임 목사 : 이영길 목사 (781) 467 - 0002
  Powered by The Korean Church of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