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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1-30) 04/09/2017

제가 올해 읽은 사순절 묵상집 중에 감옥에서 감옥수를 섬기는 수녀가 집필한 묵상집이 있습니다. 새로운 각도에서 삶을 보고 있기에 남달리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수녀가 한 남자 감옥수와 대화를 한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Miguel 이라는 히스패닉 남자 감옥수가 수녀에게 금주말에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면서 여동생과 남편 될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자기 가족을 위해 기도 부탁을 드렸습니다. 수녀는 그 날 퇴근길에 집에 가면서 헤어지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Have fun at the wedding.”
Miguel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을 수녀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결혼식에 갈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감옥수들은 장례식이나 결혼식이나 생일잔치나 그 어떤 가족 행사에 갈수가 없습니다.
순간 수녀는 자기가 실수를 한줄을 알고 곧바로 사과를 표했습니다. Miguel씨는 당연히 사과를 흔쾌히 받아 주었습니다.

사실 Miguel씨는 수녀의 사과를 받아주긴 했어도 한쪽 마음으로는 섭섭했을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한다고 늘 말을 하면서 자기의 처지를 순간 잊고 있었던 것에 작게나마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Miguel씨는 도리어 또 다른 외로움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곧 자기는 두 가지 감옥 가운데 살고 있음을 느꼈을줄 압니다. 하나는 보이는 감옥 또 하나는 보이지 않는 감옥. 곧 보이는 감옥 가운데 살고 있어서 외롭습니다. 여동생의 결혼식에도 갈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감옥 가운데도 살고 있었는데 이는 자기만이 아는 감옥입니다. 그토록 가까이 지냈던 수녀도 알수 없는 감옥입니다. 더 깊은 외로움의 감옥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보이는 감옥과 보이지 않는 감옥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보이는 감옥에 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감옥 곧 외로움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을까요?

평생 보이는 감옥은 경험하지 못하셨지만 그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감옥을 경험하셨던 분으로 기독교 시인 김현승 시인이 있으십니다. 그 분이 ‘인간은 고독하다’라는 시를 통해서 외로움의 감옥에 갇혀 있는 우리들의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고독하다.’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책을 덥게 한
최후의 지혜여,
인간은 고독하다!

우리들의 꿈과 사랑과
모든 광채 있는 것들의 열량을 흡수하여 버리는
최후의 언어여,
인간은 고독하다!

(중략)

고국에서나
이역에서도
그 하늘을 내 검은 머리 위에

고요한 꿈의 이바지같이
내게 딸린 나의 풍물과 같이
이고 가네
이고 넘었네.

첫 네 연에서는 ‘인간은 고독하다’를 외칩니다. 마지막 두 연 내용이 더 가슴에 와 닿는데 고국에 살아도 그렇고 타국에 와 살아도 그렇고 고독을 머리에 이고 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국에서나 타국에서나 항상 고독이란 감옥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아픔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감옥 곧 보이는 감옥은 형량만 다 채우면 빠져 나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감옥은 어떻게 빠져 나올수 있을까요? 김현승 시인의 고백처럼 정말 빠져 나올수 없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를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기도 합니다.
“다 이루었다.”
김현승 시인은 온 인류를 대표해서 시인의 통찰력을 가지고 외칩니다.
“인간은 고독하다.”
반면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외칩니다.
“다 이루었다.”

자 그러면 주님께서는 왜 이런 고백을 하실수 있으신 분인지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25절 말씀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네 명의 여자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얼마나 고독하셨겠습니까? 당신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혼자만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심히 고독하게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입니다.
한편 그 자리에 제자 요한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고독한 가운데 주님은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간단한 몇 마디 안에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그 후로 요한은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모시게 됩니다. 네 어머니라고 하시니 모셔야겠죠. 당신은 고독하게 죽어가지만 당신의 어머니를 고독하게 살게 놔두실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 후 고독한 주님께서는 또 입을 여셨습니다. 이도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목마르다.”
이 말씀 안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주님의 입에 대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이 정말로 목말라 이 고백을 하신줄 알았지만 실은 주님만이 아시는 이유가 있으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후에 깨닫게 됩니다. 후에 깨달은 것을 28절 말씀을 통해 요한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주님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편 69:21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초가 신포도주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잘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루시게 해야 하심도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사실 십자가에서 한 마디를 해도 이는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시게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고독하게 외치신 것입니다.
“내가 목마르다.”
그런데 주님의 이 고백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고 싶습니다. 주님은 몸에 물이 빠져서 당연히 목이 마르셨을줄 압니다. 그러나 더 큰 목마름이 있으셨을줄 압니다. 아무도 당신의 아픔을 알지 못하고 있는 고독 가운데 주님은 깊은 영혼의 목마름의 시간을 겪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고독한 자들의 목마름까지 주님은 너무도 잘 아셨을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온 인류의 목마름의 아픔을 대신 감당하시면서 너무도 힘드시지만 외치셔야 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이 고백을 통하여 성경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고독의 감옥에서 목말라 하는 모든 인류의 고백을 대신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것입니다.
이것까지 다 이루신 주님은 끝으로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결국 주님은 감옥수로서 당신이 감당하셔야 할 모든 일을 외로움 가운데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로 인해 모든 사람들을 죄의 감옥에서, 각자의 삶의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다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만입니다.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

한편 성경 안에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신 말씀이 세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오늘 나누고 있는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나머지 두 번은…? 먼저 창세기 2:1절 말씀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Thus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세상을 6일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It is finished.”

그러면 마지막 세번째는 언제 말씀하셨겠습니까? 요한 계시록 21:6절 말씀입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영어 성경으로는 “It is done.”으로 되어 있지만 의미는 거의 같습니다.

곧 창조와 완성의 “다 이루었다” 사이에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이 창세기의 말씀과 계시록의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들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창조 역사의 위대함을 보게 되고 세상의 위대한 완성을 누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고독의 작은 감옥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속에 주인공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상의 주님의 외침은 우리를 향한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 선물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선물을 받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크신 역사에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이 음성을 듣는 자들은 고독의 감옥에서 벗어나 세상 역사의 시작과 마지막을 아우르는 역사적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이 바로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입니다. 21살에 중국 선교에 헌신하여 중국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고 중국 땅에 묻히게 됩니다. 그가 설립한 중국 내륙 선교회가 이제는 OMF(Overseas Missionaries Fellowship)가 되어서 세계적인 선교 기구가 되었습니다.
테일러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들은 이미 테일러를 중국 선교를 위해 헌신케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세상적으로 잠시 빠져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 서재에 들어 갔는데 그의 눈에 띄는 전도지 책자가 있었습니다. 타이틀이 “It is finished”이었습니다. 그는 혼자 묻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졌다는거야?” 그 질문으로 인한 고뇌 가운데서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것이 그를 위대한 선교사의 길을 가게 한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고독의 감옥에서 벗어나 평생 주님께서 이루신 일에 헌신한 것입니다. 그의 평생 가슴을 울린 주님의 음성입니다.
“It is finished.”

교우 여러분,
십자가 상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다 이루었다.”
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에게는 놀라운 메아리가 울리게 됩니다. 두 가지 음성 메아리가 멀리서 들려 옵니다.
창조 후 하신 말씀이 들려 옵니다.
“다 이루었다.”
잠시 후 세상 완성 후 하신 말씀이 들려 옵니다.
“다 이루었다.”

교우 여러분,
죄의 감옥에서 뛰쳐 나와 주님께서 이루신 일에 함께 동참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설교 서두에 감옥수들을 섬기는 분이 지은 묵상집에 나온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느 묵상집보다 저희 교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묵상집에서 큰 은혜를 받곤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전 주 주보에 그 다음주 설교 본문과 제목을 실습니다. 어떤 교우님들은 주일 전에 그 본문을 읽고 주일 설교를 들으면 훨씬 은혜가 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주보에 오늘 설교의 본문과 제목을 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월요일 묵상집에 기록된 내용이 바로 오늘 설교 말씀과 같은 주제의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중고등부 학생의 글이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은혜로왔습니다. 영어로 적혀져 있지만 아주 쉽게 아름답게 쓴 글이었습니다.
제목이 ‘Thank you’인데, 제일 먼저 여러 가지를 감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행하시지 않은 모든 것으로 인해도 감사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더 더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행하시지 않기로 선택하신 것으로 인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중고등부 학생이 이렇게 주님께서 행하시지 않을 것 아니 안 하시기로 선택하신 것까지도 감사를 할수 있을까 신기해 하면서 글을 읽어 내려 갔는데 바로 중간에 이 대목이 나온 것입니다.

“You did not say, “It will be done.”
You said, “It is done.”
You made it, so that when we entered the world,
We were already forgiven.”

이미 “It is done”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들어 올 때 이미 우리를 위한 용서가 완성이 되어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학생이 이런 놀라운 감사를 할수 있는 이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교우 여러분,
고난 주일을 맞이 하여 십자가 위에서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 가십시다.
종종 고독의 감옥에 갇혀질 때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보십시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주님은 “다 이룰 것이다”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는 죄의 감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넓고 넓은 하나님 나라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평선 넘어 갈보리 언덕에서 들려 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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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itle Writer 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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