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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문 목사, 축복 받은 자들 (베드로전서 2:4-10) 05/07/2017

요즘, 어른들과 어린이들 간에 세대차이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서로가 의사소통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세대차이’란 제목의 이런 이야기입니다.
[나쁜 짓을 한 아들이 아버지 앞에 서있습니다. “너를 잘못 키운 나의 잘못이다.” 아빠는 회초리로 자신의 종아리를 때립니다.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흑흑 거리고 웁니다). 흑흑흑.”
20년후, 그 아들이 커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똑같이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들의 앞에서 자신의 종아리를 내리쳤습니다. “아들아, 이 아빠가 너를 잘못 키워서 미안하구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들은 놀란 듯 뛰쳐나갔다. “엄마! 엄마! 큰일날어요. 아빠가 미쳤나봐요. “
더이상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들에겐 통하지 않는, 먹히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반면, 입장을 바꿔어 놓고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어른들에게 통하지 않을까요? 어쩜 어린이들 쪽이서도 더 답답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기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때문에요. 요즘 어른들과 어린이들 사이에 이 세대차이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Inside-out]이란 어린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습니다. 어린이영화인데요, 어른들도 보면 울고 나온다고 합니다. 이 영화가, 어른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유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라일리가 아빠가 직장을 멀리 샌프란시스코로 옮겨가게되어, 새로운 곳에서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를 겪게되면서, 느끼게 된 슬픔이란 감정이 생겨나자 내적혼란을 겪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어린이의 마음의 슬픔을 생생하게 그려 내보여주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어른들도 어린시절 한번은 겪어본 아픔이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Inside-out, “마음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간은 감정”을 밖으로 내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린이들의 내적인 감정을 이렇게 빤히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힘든일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들과 부모들과의 이해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특히,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이미 가정과 교회에서도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의사소통과 공감은 더 큰 과제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사역하셨던 이영지교수가 이민 가정에서 어떻게 세대차를 좁혀가고, 이해와소통을 해날갈 수 있을까 관심하며 [Cultural tug of War, 세대간 격차 줄이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미국에 사는 많은 한인 2세들을 인터뷰하셨는데, 부모들과 자녀들이 세대차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 여러 문화를 줄다리기하며 살아야하는 이곳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 청소년들의 고충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하는 모습과 함께요. 그분은 세대차를 좁혀주는 것으로, 결국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네는 의사소통”이 언어나 문화의 장벽을 초월한다”라고 말합니다. 교우여러분, 세대간에 “마음에서 마음으로 건네는 의사소통”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쩔수없이 존재하는 세대차이, 문화차이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마음과 마음올 어린이들과 더 깊이 소통하며, 그들의 아픔도 헤아리며,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라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님의 자녀로 이 땅에 필요한 자들로 세워갈 수 있을까요?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으면서 한번쯤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질문일줄 압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은 1세기 크리스챤들을 향하여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크리스챤들이 진정으로 누구인지에 관한 정체성을 잘 알려주는 말씀이죠.
베드로전서 첫장에 보면, 이 편지가 소아시아지역에 흩여저 살고 있는 예수를 믿는 자들, 그리고 그들의 공동체를 향해 쓰이진것을 알수 있습니다. 1장 1절에 보시면, “본도,갈라디아, 갑바도니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써있습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 땅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지금 터어키 지역인데, 여기 아시아란 우리들이 지금 아는 아시아가 아니라, 소아시아라고 불리우는 지역입니다

당시 이방인 지역이었던 이곳은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들이었습니다. 바울의 선교를 통해 이 지역에 많은 크리스챤들 교회들이 세워졌었죠. 그런데, 베드로전서에서 그곳 크리스챤들을 향해서 좀 독특한 표현으로,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어 ‘diaspora’란 개념이 담긴 말인데요, 원래 이 ‘디아스포라’란 말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지역을 넘어 흩어져 살게된 자들과 공동체를 일컬은 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러가지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본토를 떠나서 다른곳에 퍼져 살아야만했던 자들을 의미했죠)
그러나, 후에는 모든 ‘흩어져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세계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일컬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요즘처럼 global시대에는 디아스포라란-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가서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전서에 첫절에서 크리스챤들을 향해서 디아스포라란뜻의 , “흩어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그 공동체를 일컬어 이렇게 “나그네”라고 표현하시는데는 좀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나그네’는 그냥 나그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택하심을 있는 자들요, 하나님의 선택으로 인해서 ‘구별된’자로, 나그네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겐 좀 낯설지만, 초대교회에서는 교회의 특징중 하나로 ‘나그네’, ‘외인’ 등의 표현이 흔희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흩어져 살고 있지만, 모두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구별된 자로써, 특별한 소명을 가진 자들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에 따르면, 그들은, 살아있는 돌, Living stone이신 예수에게 나아온 자들이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 신령한 집(spiritual house)에서 자라나고, 하나님과 연결된 자들입니다. 그뿐 아니죠, 이들은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참, 가슴 퍽찬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이요. 그런데, 어째서 이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고 계실까요?
유대인던지, 이방인이던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믿고, 그의 말씀의 순종하는 자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고 계신데,. 9절 말씀에서는 좀더 자세히 말씀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여기선, 그냥 제사장도 아니라, “왕같은 제사장”이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왕같은 제사장” (Royal Priethood)란 용어는 사실 우리에게 얻뜻 이해하기 쉽지 않는 용어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족과 연결된 제사장을 의미했지만, 크리스챤들에게 있어서는 좀 다른 의미로 쓰였습니다. 왕이신 예수님, 그분과 연결된 자들은 왕되신 예수님과 한 가족,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와 연결된 자로써,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서, 하나님과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직분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제사장이란 직분을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하는자, ‘다리는 놓아 주는 자’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다리를 놓아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이어주는 자들, 그런자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서의 제사장으로 부름받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베드로전서에서 크리스챤들을 일컽는 이 말, “너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란 표현은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이전과는 아주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불리움을 받고 있는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1세기 크리스챤들은 자신들을 새롭게 이해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진정으로 알아가지 않았겠습니까? 더불어,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자신들이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면서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택하시고 제사장들로 세우신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9절 후반부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들을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들은 왕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셧던 것이죠.

디아스포라들의 선교적 역할에 관심하신 Luther Kim이란 분은 이 디아스포라를 “하나님의 씨앗”(The seed of God)으로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의해 선택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로 여러 필드에 펼쳐진 씨앗들이라고 보십니다. 사실, 이런 뜻에서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 하나님의 씨앗들로, 세계 방방 곳곳에 펼쳐나가 살며,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일들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1세기 소아시아의 크리스챤들처럼, 세계곳곳으로 흩어진 나그네들과 같은 자들이지만, 왕같은 제사장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은 자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오늘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과 더불어, 여러분들의 가정의 자녀들, 우리교회에서 자라는 자녀들 모두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씨앗’들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정말로 지녀야 할 자기 정체성은 오늘 이 말씀에서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하나님 앞에서 택함을 받은, 왕같은 제자장들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이세상 곳곳에 흩뿌려진 씨앗들이라고 볼때, 그들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안에서 세워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어린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축복 받은 자들입니다., .
(세상에 흩뿌려진 하나님의 씨앗,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은오늘도 그리스도의 아름다운덕을 선포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도 이 세상에 왕같은 제사장들을 필요로 하고 계시지 않을까요? )
오늘 읽는 2장 9절 말씀은 사실, 500년전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때 외쳤던 ‘만인제사장설’의 근거가 되었던 성경말씀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앗기에, 각자 부르심에 합당한 자신들의 직업을 통해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직업이 무엇이던간에, 그 일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서 사랑과 공의를 펼치며, 이들을 사랑으로 연결시켜주고 있다면 모두가 부름받은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부르셔서, 하나님게서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자들로 삼으시지 않겠습니까?이 세상에 가장 하나님의 손길과 사랑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서,죄와 얽메임에 있는 자들을 자유케하고,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마음상한 자들을 위로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들을 위해 귀하여 쓰여지는 자들을 필요로 하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 어린이들이 그런 귀한 하나님의 쓰임받는 자들이 되려면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요, 거룩한 왕같은 제사장들이 된자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그 중요한 사실을 알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 교회에서 그들이 듣게 되는 주님의 말씀, 예배 가운데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그런 사실을 깨달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 부름받은 자들, 교회 공동체서는 만나는 많은어른분들의 기도와 사랑어린 눈빛, 축복하는 말과 손길들을 통해서 그들은 마치 대가족안에서처럼, 축복받으면 자라날때 자신들이 누군인지 알아가지 않을까요? 그럴 때,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에서 어른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고, 축복을 받을때에 그들은 자신들의 참 모습인 왕같은 제사장들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깨달게 되지 않을까요?
어떤 세대차이나 문화차이도 넘어서는 강력한 파우워를 가진 그리스도의 사랑, 말씀을 배우면서요.

목회자들 모임에서 한인 2세 사역자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깊은 대화들을 나누다보면 늘 어린 시절 그들이 겪었던 문화차이로 인해 힘들었던 고충들을 털어놓는 것을 봅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 고민 중 하나는 어디에서도 자기가 완전히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속할 곳이 아무 곳도 없는 것 같은, “out of place”의 느낌입니다. 다른 인종들이 주류인 학교에서 소속감, 자기들의 자리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교회에서 비로서 자신들이 속한 자리, 가정과 같은 home을 느낌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감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사람들을 봅니다.

배아람(Aram Bae)란 2세 친구는 “Home Sweet Diaspora Home”이란 글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고백합니다. “High school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교회는 저에게 사춘기를 견디게 해주었어요. 리치몬드에서 고등학교에서 얼마 안되는 아시안 학생으로 minority였지만, 교회에서는 달랐어요. 학교에서 저는 ‘nobody’였지만, 교회에서 저는 ‘somebody’였어요….교회 공동체는 제가 영적으로, 감성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었고, 저의 아이덴티티를 갖게 해준 곳이었어요…어린 시절 제가 다니던 한국교회는 정말로 저에게 home, 따뜻한 가정이었지요.” 이분에겐, 교회가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고, 양육 받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기억을 안고 다시 교회로 돌아 왔을 때, 따뜻한 가정에 돌아온 느낌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다시 한번 이곳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소리를 귀 기울이며, 그들의 고충도 헤아리며, 서로가 소통하며, 공감해가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며,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요.

이렇게, 자신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축복해 주는 이들을 만날 때, 우리 교회 어린이들은, 자신들이 ‘nobody’가 아니라, ‘somebody’임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고, 왕 같은 제사장들로 쓰여질 자 들임을 알아 갈 것입니다. 자신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하나님 백성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분의 보혈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찾아가 수 있을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들이 어린이들을 만나시고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축복하신다면, 그들이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고, 여러분들의 마음과 그들의 마음이 연결되어 가지 않겠습니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이런 축복을 받고 자는 우리 어린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자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 자들로 세우시고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3세대가 함께 배우는 교회로서, 어린이들을 향해 갖고 있는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사도바울과 마틴 루터킹, 그리고 윤동주 시인과 같은 크리스챤, 민족과 세계를 품어안는 하나님의 귀한 쓰임받는 인물들로 자라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세분 모두, 고향을 떠나 디아스포라로써 다른 곳에 흩어져 살았던 가정들의 자녀였고, 신앙의 가정,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난 자들이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받는 자들이 되어간 인물들입니다. 저희 교회에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고, 교우님들의 많은 사랑과 축복을 받고 자라난다면, 자라난 아이들 안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생겨나지 않을까요?
3세대가 함께하는 쉐마의 밤을 통해서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축복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어가길 바라면서요.
그런데, 만일, 여러분들이 오늘 이런 말로 그들을 축복한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요?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사랑하는 교우여려분,
우리 모든가 이 땅에 어린이를 향해서,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많은 사람들을 이어주어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어, 회복과 치유를 가져오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바라며, 모든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하나님 백성되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모두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 이 땅에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 모두 어린이들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이런 축복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받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자들로 삼아가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이어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는 귀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실것입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우리 모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 될, 우리의 어린이들을 위해 마음과 마음으로, 말로, 사랑으로 축복하십시다.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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