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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2-27) 09/17/2017

뉴욕의 어느 택시 운전사의 이야기입니다. 밤중에 전화를 받고 승객을 태우러 갔습니다. 어두운 슬럼가에다 인적조차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면 다들 그냥 차를 돌리지만 그 운전사는 웬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어 경적을 울린 후 차에서 내려 건물로 다가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연약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한참 뒤 문이 열리고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노부인이 작은 짐 가방을 들고 나왔습니다. 고전 영화에서처럼 원피스에 베일이 드리워진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운전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찾아갈 주소를 건네며 시내를 통과해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주소지까지는 20분밖에 안 되는 거리인데 시내를 거쳐 가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운전사가 설명하자, 그녀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지금 노인 요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두 시간 동안 그들은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처녀 시절에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앞에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하고는 창문 밖으로 한참 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다음에 간 곳은 그녀가 결혼해서 갓 신혼살림을 차린 주택가였습니다. 지금은 가구 전시장으로 바뀐…. 그리고 소녀 시절 춤을 추곤 했던 무도회장 앞에서도 멈췄습니다. 그녀는 건물 앞이나 네거리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차 안에 앉아 밖을 응시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말합니다.

“이제 가야겠어요.”

작고 허름한 요양원 앞에 직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가 지갑을 꺼내 요금을 묻자 택시 운전사는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그녀를 부축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꼭 껴안으며 말합니다.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으로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들어 가기 전 마지막에 귀한 축복을 받습니다. 바로 ‘평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택시 운전수로부터….

아마도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서부터 하늘 나라 갈 때까지 택시 운전수의 얼굴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지 않았을까요? 약해질 때마다 외로울 때마다 그 얼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2, 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라고 하셨는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바로 제사장들입니다.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4절 이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의 얼굴로 부터 흘러 나오는 평강의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이런 축복을 하면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27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들이 축복을 하면 그 복이 축복을 받는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바로 평강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길을 걸어 왔고 또 어떤 길을 걸어 가게 될 것인지 너무도 잘 아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를 했던 민족입니다. 그리고 또 모세와 더불어 광야 40년의 방황의 길을 갈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후 약속의 땅에 들어 가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늘 강대국 그늘에서 약소국으로 지낼수 밖에 없을 것도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 꼭 필요한 것 한 가지가 무엇인지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평강’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세우시고 제사장을 통해서 평강의 축복을 나려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의 축복을 받을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감격을 느낍니다. 그래서 마음껏 평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이 만일 목사 안수식이면 저는 새로 안수받는 목회자에게 평강의 축복을 모든 자들에게 비는 목회자가 되라고 설교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직임직식입니다. 그러면 제가 잘못된 본문을 택한 것일까요?

올해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마틴 루터나 모든 종교개혁자들의 눈에 새롭게 부각된 말씀 중 한 말씀이 베드로전서 2: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종교개혁자들이 깨달은 것은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모두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곧 오늘 본문 말씀은 이제는 구약의 제사장들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고 오늘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은 제직임직식인 만큼 새롭게 임직 받으시는 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평강이 필요한 곳에 평강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평강이 여러분의 축복을 받는 자들에게 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론의 자손들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라는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한 가지 이들에게 원하셨던 것이 있을줄 압니다. 24절을 다시 봉독해 드리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생각해 보십시다. 이 축복을 하면서 제사장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면 정말 하나님의 평강의 축복이 임할까요?

 

오래전 성금요일 예배의 저의 오랜 친구가 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성금요일이니만큼 주님의 고난을 주제로 한 설교를 당연히 했습니다. 예배 후 친구가 저에게 와서 하는 말이,

“영길아, 네 얼굴에 미소를 띄고 설교하는 것은 좋은데, 오늘 설교 주제와는 좀 어울리지 않더라.”

반대 경우지만 맞는 말이 아닐까요? 평강을 축복하면서 얼굴이 평화롭지 않다면 정말 평강의 축복이 임하게 될까요?

 

곧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자손들에게 평강의 얼굴을 소유한 자가 되라고 은연 중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얼굴’ 하니 함석헌 씨에 ‘얼굴’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얼굴


우리가 세상에 뭐하려고 왔나?
얼굴 하나 볼라고 왔지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찌그러진 얼굴
근심 많은 얼굴
남을 괴롭히는 얼굴
별의별 얼굴이 다 있는데
참 평화로운 얼굴은 볼 수가 없구나

그 얼굴만 보면 세상을 잊고
그 얼굴만 보면 나를 잊고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고
밥을 먹었는지 아니 먹었는지 모르는 얼굴
그 얼굴만 대하면 키가 하늘에 닿는 듯하고
그 얼굴만 대하면 가슴이 큰 바다 같애
남을 위해 주고 싶은 맘 파도처럼 일어나고
가슴이 그저 시원한
그저 마주앉아 바라만 보고 싶은
참 아름다운 얼굴은 없단 말이냐?

저도 이런 얼굴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 새로 임직받으시는 분들에게만 요구하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자기가 할수 있는 것만 설교한다면 설교 몇 번만 하면 동이 나지 않을까요?

 

함석헌 씨의 시는 저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고 이미 임직 받으신 분들 그리고 오늘 받으신 분들을 포함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 이런 얼굴을 소유한 자가 되어 가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보스톤에 살고 있는데 보스톤에 수 많은 사람들은 우리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축복을 받을까요?

 

한자로 ‘빠르다’의 뜻을 가진 ‘급’을 풀이해 보면 놀라운 지혜를 느낍니다.

급(急)은 제일 위에 칼 도(刀) 그 아래가 ‘돼지머리’를 뜻한다고 합니다. 제일 아래는 잘 아시는 마음 (心)이 합쳐서 되어졌습니다.

(急: 칼 刀/돼지머리/마음 心)

여러가지로 해석할수는 있지만 한 마디로 바쁘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바쁜 것은 돼지머리에 칼질하는 것인데, 돼지머리에 칼질해 봤자 피만 튕기지 죽지도 않습니다. 결국 칼질하는 사람에게 피가 튕기고 잘못하다가는 자기 칼에 찔릴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급(急)자가 주는 교훈입니다.

곧 급하면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대신 마음 심(心)자가 알려주는 것은 마음만 찔린다는 것입니다. 급하면 몸은 빨리 움직이지만 아무 소득은 없고 더군다나 그 때마다 마음이 찔림을 받습니다.

 

오래 전에 월드컵이 미국에서 열릴 때 보스톤에서는 볼리비아와 한국 경기가 치뤄졌습니다. 물론 저는 그 때 보스톤에 있지 않았지만 그 때 보스톤에 살면서 경기를 구경 갔던 분으로부터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볼리비아를 응원하러 많은 히스패닉들이 온 것 같습니다. 아울러 한국인들도 당연히 많이 왔겠구요. 서로를 보면서 인사말을 하는데 히스패닉들이 한국인들을 향해 이렇게 인사했다고 합니다.

“빨리 빨리.”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주인에게 제일 먼저 배운 말은, “빨리 빨리.”

그런데 ‘빨리 빨리’ 할 때마다 어떻게 된다구요? 마음이 찔리는 것입니다. “빨리 빨리” 말하는 사람의 마음도 찔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도 찔리고…, 그렇다고 일은 되는 것은 없고….

 

그러면 ‘빨리 빨리’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만 해당되나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면 거의 매주일 시험을 봅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그 보다 더 자주 due date가 쫓아 옵니다.

지난 주간만 해도 제가 설교 내지 성경공부 준비를 한 것이 네 번 있었습니다. 월요일에는 가급적 안식을 취하지만 머리로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언제까지 해 놓고 그 다음 것은 언제까지 어쩔수 없이 하루에 두 개를 해야 하기도 합니다.

저만 그러겠습니까? 직장이나 학교 생활하는 모두가 due date에 쫓깁니다. 늘 누군가가 와서 속삭입니다.

“빨리 빨리.” 그럴 때마다 우리들의 마음은 찔리는 것입니다. 보스톤에 사는 우리는 사업을 하던 학교에 관계된 일을 하던 우리는 모두 급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평강.’

 

처음 요양원에 들어가시는 할머니는 택시 운전사의 얼굴을 통해 평강의 얼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으로 요양원으로 들어 갔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그리워 하는 얼굴은 평강의 얼굴입니다. 평강의 얼굴을 소유한 자들이 되십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평강의 얼굴을 소유할까요? 오늘 말씀에 은연 중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쁠수록, “빨리 빨리”의 소리가 들려 올수록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stop하고 주님의 얼굴을 바라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느새 온 세상에 평강의 축복을 나누게 될줄 압니다. 세상은 우리들의 일과 성과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얼굴을 원합니다.

 

교우 여러분, 제직 여러분,

온 세상을 향하여 축복하십시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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