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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명기 25:17-19 (02/03/2019)

 

오늘 Super Bowl이 아틀란타에서 열립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실줄 압니다. Fran Tarkenton이라는 유명한 football quarterback이 있습니다. 오래 전 Minnesota Vikings에서 뛰었던 선수입니다. 아깝게도 Super Bowl에서 우승은 못 했어도 여러번 올라 갔었고 여러 가지 좋은 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는 키도 작은 편이고 어깨도 약해서 멀리 던지지는 못했던 선수입니다. 그런 약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훌륭한 선수가 될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자신이 콘트롤할수 없는 것은 포기했고 자신이 콘트롤할수 있는 것을 보완하였다고 합니다. 곧 자기가 할수 있는 것은 빠른 발을 사용해서 수비 선수들을 요리조리 피하다가 던지는 것임을 깨닫고 거기에 전력을 다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선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자서전을 얼마전 읽어 보았는데 이 말이 늘 제 뇌리에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남의 DNA를 부러워 하지 않는다. 내가 콘트롤할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신앙 생활도 매한 가지 아닐까요? 내가 할수 없는 아니 내가 콘트롤할수 없는 것에 늘 매여서 울고불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닐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만 콘트롤할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콘트롤할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콘트롤할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가 콘트롤 할수 있는 것을 잘 할 때 최고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제직임직 예배로 드리는데 우리가 콘트롤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가 콘트롤할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기억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할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입니다.

 

신앙 생활의 시작은 기억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유월절이 제정됩니다. 신약에 와서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성만찬이 제정됩니다. 모두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억을 강조하시는 이유를 우리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억하느냐가 바로 미래의 삶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는 지나간 것이기에 과거는 잊어 버리고 미래를 향해 늘 달려가길 원합니다. 그러나 실상 과거를 잘 기억하는 자들이 멋진 미래를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멋진 미래의 세계를 이스라엘에게 주시기 위해서 유월절 사건을 허락하시고 기억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 사건만 기억해도 족한데 왜 아말렉 사건을 또 기억하시라고 하실까요? 18절 말씀입니다.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년주일 예배 설교 말씀을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아말렉이 행한 일은 바로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한 일입니다.

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입니다. 반면 아말렉 사건은 이스라엘을 온 세상을 위한 제사장 나라임을 자각케 한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건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면 지금 함께 아말렉 사건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볼까요.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 세운 나라입니다. 곧 야곱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과는 형제 지간입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멸하려고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 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모아 싸움에 나가라고 하고 본인은 높은 산에 오릅니다. 손을 드니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니 집니다. 어쩔수 없이 아론과 훌이 옆에서 손을 붙듭니다. 결국 싸움에서 이깁니다.

이 때 모세가 제단을 쌓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하나님께서 인치셨기에 당연히 제단을 쌓아야죠. 그리고 그 제단 이름은 ‘여호와 닛시,’ ‘여호와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승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곧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위해서 대대로 싸우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일주일에 한번씩 기억하며 생활한다면 이스라엘인들은 얼마나 놀라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십계명을 비롯한 신명기의 모든 규례도 쉽게 지켜 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최고의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감당하는 민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이웃을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곧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그리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조금 혼동이 되실줄 압니다. 첫 절에서는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하셨고, 이제는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완하는 것입니다. 아말렉 사건은 기억해야 하지만 아말렉을 생각나게 하는 자취는 지워버리라는 것입니다. 머리 속으로는 그 사건을 기억은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를 어긴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사울왕입니다. 사무엘상 15장 말씀에 보면 사울이 왕이 된 후에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가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합니다. 사람뿐이 아니라 그들의 모든 소유까지….이에 사울왕이 백성을 데리고 가서 진멸합니다. 그런데 소와 양과 기름진 것은 남깁니다.

이를 책망하니 이유는 하나님께 드릴 제사 제물로 남겼다고 변명합니다. 이에 유명한 말씀을 합니다. 사무엘상 15:22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사울은 아멜렉 사건을 제대로 기억한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기억했으면 이처럼 소와 양과 기름진 것을 남겨 둘리가 없습니다. 아말렉 사건을 기억하는데 오는 놀라운 축복은 소와 양과 기름진 것으로 바꿀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꿨습니다. 아말렉의 자취를 남긴 것입니다. 그는 아말렉을 지워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울은 아말렉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죠. 제가 한 가지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전수받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이 당시는 지금처럼 성경이 책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늘 들어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로부터 전해 들었어야 할까요? 부모님이 아닐까요?

 

사울이 결국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는 바로 아말렉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였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으로부터 듣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사실 신명기를 통해서 ‘기억하라’ 명령하신 것은 자신만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기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가 기억하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스 기니스라는 신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세대의 계승은 전체 인류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중요하다. 다음 세대로 최고의 유산과 지혜를 전하지 못하는 가정이나 국가 교회에 화가 있을 것이다!”

 

사울의 가정은 이 귀한 유산을 이어가지 못해 불운의 왕으로 끝나 버린 것입니다. 이 귀한 유산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닛시’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반면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함께 손을 들고 있는 이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다면 곧 세 사람이 함께 손을 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대신 전쟁을 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함께 손을 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깨닫는 자들이 되어 갔을 것입니다.

아울러 한 사람이 힘 들면 옆에서 대신 손을 들어주는 자들이 되어 갔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그러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함께 힘을 합할 때 제사장 나라가 되고 그 때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을 믿고 행하는 자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제직 임직예배로 드립니다. 이웃을 위한 제사장의 직분을 부여받는 축복된 시간입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하시기 위해서 아말렉의 이야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함께 손을 들고 있는 이야기를 자주 생각해시기 바랍니다. 함께 손을 들어줄 때 놀라운 일이 펼쳐집니다. ‘여호와 닛시’의 깃발이 꽂히게 됩니다.

 

리치몬드 한 빈민가에 소재한 고등학교 농구부 이야기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새로운 코치를 영입했습니다. 새 코치는 선수들의 불량한 태도에 놀라면서 엄격한 기준을 세웠습니다. 공손한 태도, 단정한 옷차림, 좋은 학과 성적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티모라는 선수는 반발해서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농구부에 복귀하고 싶었습니다. 코치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조건으로 내세웁니다. 일주일 안에 팔굽혀 펴기 2,500 회와 반복 훈련 1,000 회를 하라고 합니다. 당연히 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 때 티모와 성격 차이로 늘 다투었던 제이슨이 나서면서 말합니다.

“코치님은 우리가 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한 사람이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실패한 것이고, 한 사람이 승리하면 우리 모두가 승리한 것이라고요. 그러니 제가 대신 팔 굽혀 펴기를 하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선수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티모의 목표량을 채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하나의 팀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아말렉 이야기를 실천한 학생들이 아닐까요? 농구부 학생들도 이런 실천을 하는데 하물며 아말렉의 이야기를 아는 우리는 당연히 함께 손을 들어 한 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함께 손에 손을 들어 주십시다. 아울러 우리들 자녀들에게 귀한 유산을 전수시키십시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전수시킬 것은 두 가지가 아닐까요? 하나는 모세와 아론과 훌의 이야기, 또 하나는 우리들의 이야기…. 곧 우리가 함께 손을 잡고 제사장의 삶을 살 때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 여호와 닛시의 이야기….

 

교우 여러분,

모세와 아론과 훌의 승리의 이야기를 전수시키십시다. 우리들의 승리의 이야기를 전수시키십시다.

우리와 우리들의 자녀가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승리의 깃발이 항상 펼적이며 휘날릴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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