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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 예레미야 29:1-11 (05/19/2019)

 

열정적인 전도자들이 어느 도시의 옷가게 앞에 자리를 잡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들 앞으로 허수록한 차림의 농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메노나이트 교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자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물었습니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느닷없는 질문에 농부도 당황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질문 앞에 서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쭈뼛거리던 그는 전도자에게 펜과 종이를 빌려 십 여 명의 주소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대개는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이었지만 그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윽고 농부는 전도자에게 말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그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구원 받으셨습니까?”

이에 이 농부처럼 반응할수 있겠습니까? 만일 농부처럼 주소를 적어 내려 간다면 몇 명이나 적을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적게 될까요? 모두 한인들만 적게 되지는 않을까요? 미국에 산다면 당연히 한인이 아닌 다른 인종 쉽게 미국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와 얼굴 생김새가 다른 미국인들의 주소도 적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미국인들의 주소도 적게 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4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 있습니다. 이에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자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두 그룹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아울러 바벨론에 잡혀 온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그룹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바벨론 사람들이겠죠. 그들은 종들이 아니니….

그러면 좀 더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이스라엘 민족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벨론에 잡혀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자 그러면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했다고 가정하고 계속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힘을 쌓아서 언젠간 바벨론을 무찌르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 가라고 하실까요? 5, 6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한 마디로 매일 매일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을 들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가 죄를 져서 여기 끌려 왔으니 죄값을 치뤄…. 그러면 때가 되면 다시 해방시켜줄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을 당연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번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에게 하신 명령이 바로 ‘번성하라’였습니다. 이 번성의 축복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명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오랫만에 저희 집에 오리올즈가 창문으로 내다 보면 쉽게 보이는 것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매일 새 둥지를 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알을 품고 있는 새를 보면서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새끼를 잘 키워다오. 그래서 번성해 다오.”

저희 집 나무에 둥지를 틀었으니 남달리 귀여워 보입니다. 잘 생겨 보이구요. 이 새들이 번성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닐까요? 하나님도 바벨론에 둥지를 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라는 것은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번성을 원하고 있다면 이스라엘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당연히 스스로 번성하길 노력해야 하겠죠.

그런데 번성키 위해서는 한가지 조건이 따릅니다.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머물게 하면서 번성케 하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머무는 것까진 좋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인들은 누구에게 둘러 쌓여 있죠? 바벨론 사람들입니다. 대국 바벨론에 잡혀 와 살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번성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바벨론에서 번성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언젠가 숫자적으로도 우월해져서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벨론을 이스라엘인들이 통치하게 되는 것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닌 것이 말씀 안에 암시되어져 있습니다. 다시 6절 하반절을 봉독해 드리면,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바벨론에서 열심히 살아도 겨우 현상 유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상 유지만 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번성하여 힘으로 바벨론을 점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다른 목적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평안이 바벨론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을 위해 평안을 구할수 있을 정도로만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동북대회 연장 교육에서 Calendar에 대해서 좋을 것을 배웠습니다. 로마의 Julius Ceasar 를 잘 아실줄 압니다. Julius Ceasar가 그 당시 여러 복잡한 calendar를 변혁시켜서 현재 우리가 쓰는 달력의 기초를 이루는 양력 달력 곧 Julian Calendar를 만듭니다.

자기가 태어난 달이 7월이었는데 7월이 원래 29일이었는데 2일을 더해서 31일로 만들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죽은 후 로마인들을 7월을 그의 이름을 따서 July라고 짓습니다. 우리가 July가 7월로 알고 있는데 이는 Julius Ceasar를 기념하는 달입니다.

한편 Julius Ceasra의 후계자가 Augustus입니다. 그의 생일은 8월이었습니다. 원래 8월은 Sextilis인데 Augustus는 자기가 황제로 있을 때 이름을 바꿉니다. 무엇으로 August로….

자 Julius Ceasar는 7월을 자기가 July로 바꾼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죽은 후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29일을 31일로 늘린 것입니다. 8월은 원래 31일이었습니다. 그래서 7월 8월 연거푸 31일이 된 것입니다.

한편 그의 후임자 Augustus는 자기가 살아 있을 때 8월의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곧 여름이 오는데 7월 8월 모두 로마 지도자를 높이는 달이 된 것입니다.

로마의 힘이 지금까지도 우리 삶 속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로마의 영향권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 생일이 3월인데, 7월과 8월에 생일이 있으신 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로마의 그늘에서 벗어날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로마와 맞먹는 힘을 갖고 있었던 나라가 바로 바벨론입니다. 물론 현재는 미국이구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거대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번성은 하지만 줄어들지 않을 정도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바벨론에 평안을 선포하라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두번째 놀랐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지은 죄에 대한 댓가로 바벨론에 끌려 온줄 알았는데 잘못하여 포로가 되어 잡혀 온 자기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에 놀랍니다.

사실 바벨론의 눈에는 이스라엘은 보잘것 없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고 바벨론을 축복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곧 이스라엘 민족에게 번성을 하되 바벨론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 존재가 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포로로 잡아온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평안을 비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곧 그들 눈에 번성한 민족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주는 민족으로도 남으라는 것입니다. 아니 번성하지만 아울러 평안을 주는 민족으로 남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미국에 사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사실 우리는 모두 포로가 되어서 미국에 특히 보스톤에 와서 살게 된 것은 아닙니다. 거의 우리들 스스로 결정하여서 이 곳에 와서 살고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데 다른 곳에는 길이 안 열려서 보스톤으로 오신 분도 계실줄 압니다. 더우기 한국으로 돌아 가고 싶은데 갈수 없는 상황에 있으신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살고 공부하게 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분을 번성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피어야 할 꽃을 피우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런데 번성만을 위해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의 평안을 위하여 우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번성과 평안을 빔!

 

 곧 누가 와서 “구원 받으셨습니까?” 물을 때, 미국인들의 주소를 써 주면서 이들에게 가서 물어 보라고 할 정도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 미국인들이 calendar의 이름을 바꾸는 로마 황제와 같은 독재자들의 나라와 같은 힘을 갖고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대로 매일 매일 매사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살면서 번성을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고 결혼도하고 사위와 며느리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달력의 이름을 권력자들이 자기 이름으로 바꾸고 자기가 태어난 달에 이틀을 더하곤 해도 상관 없습니다. 매일을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좁은 땅에서…. 이것이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평안을 비는 것입니다. 좁은 땅에서 번성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서 이웃을 위해 평안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달력을 마구 바꾸는 자들일지라도…. 이웃을 위해 평안을 간구하다 보면 번성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또한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바벨론을 위해서 평안을 간구하는 모습 안에 위대한 성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이 모습을 보고 우리들의 자녀들도 이런 성자가 되지 않을까요? 이것이 우리들의 미래와 희망이 아닐까요?

 

평안을 비는 자들의 특징을 마종기 시인이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겨울 기도>라는 시를 통해 표현합니다.

 

하나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교우 여러분,

결코 가난하게 살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참 번성한 자의 모습을 시인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소유하지 않고는 세상적으로 아무리 잘 되어도 평안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살 때 큰 집에 살던 작은 집에 살던 평안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의 소유자만이 이웃을 마음껏 축복합니다. 이웃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평안을 느낍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와서 워싱톤 D.C.에 사시는 누이댁에 머물렀는데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매년 성탄절때는 우편배달부와 쓰레기 수거차 운전수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후 저희도 늘 드리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한 가지를 더하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 신문이 있는데 돈을 내고 구독하는 것입니다. 사실 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타운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구독하고 있습니다. 집 앞에 놓인 신문을 픽엎할 때마다….

교우 여러분,

번성하십시다. 우체부와 쓰레기 수거자들들에게 선물을 드리고 타운 신문을 구독할 정도로…. 그리고 타운을 위해 평안을 구하십시다.

 

이 때 미래와 희망이 보장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론은 사라졌지만 바벨론 포로들의 나라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외수 시인이 바벨론을 축복하는 자들의 모습을 다음의 시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파리가 먼지에게 물었다.
넌 날개도 없는데 어쩜 힘 하나 안들이고
이토록 우아하게 날 수가 있니.

먼지가 대답했다.
다 버리고 점 하나로 남으면 돼.

 

파리는 바벨론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먼지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아니 평안을 비는 사람들입니다. 평안을 빈다는 것은 욕심을 다 버리고 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평안을 빌 때 이웃에게는 점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 때 파리는 도리어 감격합니다. 평안을 느낍니다.

 

교우 여러분,

이 땅에서 번성하십시다.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아니 이 땅 주민들에게는 평안을 안겨주는 점이 되십시다.

우리 주님도 온 세상의 평안을 안겨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점이 되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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