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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날이 이르매…” 사도행전 2:1-13 (06/09/2019)

이해인 시인이 생일을 맞아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습니다. 시인은 70대인대 80대 수녀에게서 꽃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냥 꽃이 아니고 언니 수녀가 이해인 수녀의 꽃밭에 두 송이의 꽃을 심어주었습니다. 생일 선물로…. 그 선물을 받고 이해인 수녀는 ‘꽃밭 편지’로 보답을 합니다.

 

‘꽃밭 편지’

이해인

 

수녀님 생일 선물로
내가 꽃을 심은 거
보았어요?

‘꽃구름’이란 팻말이 붙은
나의 조그만 꽃밭에
80대의 노수녀님이 심어준
빨간 튤립 두 송이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아침

처음 받아보는
꽃밭 편지로
나에겐 오늘
세상이 다 꽃밭이네

 

이 시를 접한 후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녀님은 생일을 아주 뜻 깊게 맞이하는구나, 그런데 꽃 말고 다른 생일선물도 받아 보셨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찾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음의 시가 다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생일을 만들어요, 우리’

 

이해인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 날

첫 꿈을 이룬 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희망의 꽃삽을 든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간 날

절망에서 희망으로 거듭난 날

오해를 이해로 바꾼 날

미움을 용서로 바꾼 날

눈물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을 시작한 날은

언제나 생일이지요
아직 빛이 있는 동안에

우리 더 많은 생일을 만들어요

축하할 일을 많이 만들어요
기쁘게 더 기쁘게

가까이 더 가까이

서로를 바라보고 섬세하게 읽어주는

책이 되어요
마침내는 사랑 안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요

늘 새로운 시작이 되고

희망이 되어요, 서로에게ㅡ

 

첫번째 시는 진짜 생일에 꽃 선물을 받고는 온통 세상이 꽃밭이 된 것을 느끼며 고마움이 가득찬 마음으로 시를 쓰신 것 같습니다. 두번째 시는 매일 매일을 생일이 되게 하자는 마음으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사랑 안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선물이 되자는 마음으로…, 곧 그렇게 해서 매일 매일을 생일이 되게 하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말 수녀님은 생일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령 강림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왜 목사님은 생일 이야기로 설교를 시작하시나 궁금해 하실줄 압니다. 예수님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그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 첫절에 있습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이 오순절 날에 ‘그들이’ 한 곳에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물론 생일 잔치를 위해서 모였을까요? 잠시후 그것에 대한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여튼 여기에 나오는 ‘그들은’ 바로 1장 15절에 나오는 120명을 가리킬줄 압니다.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오순절 바로 얼마 전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서 기도회를 가졌었습니다. 이들이 오순절 날을 맞이하여 다시 모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기도회를 가졌었는데 이 날도 기도회를 갖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순절날에 모인 이유는 기도회를 갖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세오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크게 세 가지 축제가 있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이 세 절기에는 모든 남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고, 오순절은 유월절후 50일이 지나서 첫 열매를 드리는 날입니다. 일년간 추수한 것에 제일 좋은 열매를 골라서 드리는 날입니다. 장막절은 광야 40년을 기억해서 장막치고 1주일을 지내는 축제 절기입니다.

 

이 세 절기를 경건한 유대인들은 항상 지켜 오고 있었습니다. 5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특이한 점은 이 당시에 벌써 많은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가 되어서 세계 각처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세계 각처에서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첫 열매의 또 다른 의미는 the best fruit 곧 가장 좋은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오순절에 가장 좋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첫 열매를 드리는 이 날에 그들이 모였으니 손에는 첫 열매 곧 가장 소중한 선물을 들고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2-4절 말씀을 보면,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온 집에 가득찹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합니다.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소위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각자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던 것들이 무색해집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인데 도리어 성령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곧 성령은 하나님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되어서 모인 사람들께 임하신 것입니다. 곧 유대인들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들의 손에 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선물을 받습니다. 일생에 가장 놀라운 생일 선물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습니다.

한편 이들은 첫 열매이신 성령을 받으니 바로 이들도 하나님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제가 오순절을 인류의 생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는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오순절날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불어 넣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오순절이 생일이 아니겠습니까? 인류의 생일이자 크리스챤들의 생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1500년전에 오순절을 지킬 것을 명하시고, 1500년이 지난 후 성령을 오순절에 보내신 것입니다. 오순절이 제정된 후 1500년을 성령은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수많은 오순절을 지켰는데 왜 이 날 곧 이 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는가…? 저는 그 해답을 9-11절에서 찾고 싶습니다. 계속 9-11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 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민족 유대인들이 온 세계에 흩어질 때까지 기다리시지 않았나 감히 생각합니다. 이것이 약 1500년이 걸렸습니다. 유대인들이 온 세계에 이민자로서 흩어진지 1500년이 되었을 때 1500회 생일 때 놀라운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자 성령을 체험한 이들이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령을 받았다고 계속 예루살렘에 머물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잠시 예루살렘에 방문 온 자들입니다. 다시 자기가 사는 집으로, 자기가 이민 생활하는 바로 그 삶의 터전으로 돌아 갔을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세계 선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세계 선교를 위해 1500년을 기다리신 것이 아닐까요?

이 때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를 지으시고 보활하신후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되셔서 다시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부가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 방언을 하는 자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효과가 바로 부가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것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이기주 작가가 대학생 시절 농촌 봉사 활동을 갔다가 작은 사찰에 들어가서 기품 당당히 서 있는 석탑을 보고 있었습니다. 석탑을 보며 서 있는 작가에게 아마도 주지 스님인줄 압니다. 다음과 같이 말을 겁니다.

“이 곳에 있는 석물(탑)은 수백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야. 참, 이런 탑을 만들 땐 묘한 틈을 줘야해.”

“네? 틈이라고 하셨나요?”

“그래,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푹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이유를 주지스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틈이 없는 탑은 무너집니다.

하나님도 주지스님의 지혜를 당연히 갖고 계시지 않으셨을까요? 인간 역사라는 탑을 세워 가실 때 틈이 필요하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로 보내시고는 1500년째 생일을 맞이하여 온갖 다른 나라 언어를 쓰는 자들이 모였을 때 곧 인종과 인종의 틈이 있는 현장에 놀라운 선물을 주신 것이 아닐까요?

한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단단한 틈이 없는 공동체에 성령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고 제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곧 언어의 틈이 있는 공동체에 성령을 허락하셨고 그래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펼쳐가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언어의 틈이 있는 공동체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언어의 틈이 있는 공동체에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펼쳐질 것을 아셨습니다. 왜냐하면 틈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성령께서 메꾸셔야 하니 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곧 틈 사이에서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에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언어의 틈이 있는 공동체는 달리 말하면 문화의 틈이 있는 공동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서로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였을 때 성령은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문화의 틈이 있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 그곳은 매일이 생일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 선교에 빼 놓을수 없는 분으로 성공회 Schereschewsky감독이 있습니다. 이 분은 유대인으로서 네 번째로 성공회 감독이 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뉴욕에서 크리스챤 유대인들 모임에 초대 받은 후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유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분이었습니다.

그는 중국 선교에 관심을 갖는데 신학교 한 친구는 절대로 중국 선교사가 될수 없다고 까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개의치 않고 노력해서 중국의 성공회 감독이 됩니다. 중국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고 대학을 설립니다. 특히 성경을 번역해야 함을 깨닫고 성경 번역사역에 최선을 다합니다. 사실 이 분은 13개의 언어를 말하고 20개의 언어를 읽을수 있었던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급 Mandarin으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그러나 고급 만더린을 읽을수 있는 사람이 얼마 안 되는 것을 알고 후에는 고급 만더린보다는 일반인을 위한 말로 번역을 시작합니다. 소위 “Bible for the poor”.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자마자 stroke(뇌졸증)이 와서 중국을 떠나게 됩니다. 글씨를 쓰지 못하고 안경도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7년후에 전에 작정했던 중국어 번역을 다시 하기로 결심합니다. 한 손가락으로 번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one finger Bible”이 탄생케 됩니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법을 개발합니다. 손가락이 더 이상 기능을 못하면 손에 막대기를 붙여서 하나씩 타자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6년이 걸렸습니다. 이 성경은 중국의 2/3의 사람들이 볼수 있는 말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만더린 성경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일본까지 건너가서 전 세계 인구의 ¼이 볼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이 분이 언어의 천재라고 해도 그 번역이 완벽했겠습니까? 더군다나 불구의 몸으로…. 많은 틈이 있는 번역성경이었을줄 압니다.

그는 문화적 많은 틈 가운데 살았던 분입니다. 유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중국으로…. 그러나 그는 틈의 소중함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틈이 많은 중국어 성경을 편찬합니다. 나머지는 성령께 맡깁니다. 성령은 틈을 좋아 하시는 분이시니….

 

사실 우리는 미국에 와 살면서 마음 속에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perfect bilingual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어도 영어도 유창하게 잘 하고 싶어합니다. 미국에 산지 오래 되었지만 스스로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면 감히 미국 사람들과 접하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미국에 온지 몇 년 되었냐고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집니다. 그래서 더욱 미국인들을 만나는 것을 회피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감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gap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gap, 문화의 gap…. 이 gap이 크면 클수록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텐데 말입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완벽하다면 성령은 비집고 들어 올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틈이 많을수록 성령은 놀랍게 우리 안에 들어 오셔서 당신의 사역을 펼치십니다. 매일 매일을 생일로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좋아하십니다. 틈이 많은 공동체를 능력의 도구로 세우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틈이 많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실 우리는 친한 사람, 비슷한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합니다. 틈이 없거나 작기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성령의 역사가 약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십시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실 것입니다. 성령의 사랑 가운데 거하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지난번 제직 수련회에서는 거의 2세인 김은주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제직수련회 강의를 들으며 저는 새로운 인싸이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의 멧세지 중 하나가 하나님은 broken English곧 Konglish를 좋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Konglish를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이해하시고 우리의 Konglish를 통해 영광받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Konglish joke 몇 개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만 다시 나누면,

‘How much did the blanket cost?’ ‘이불’.

 

이 이야기를 제직 수련회 후 교역자 회의에서 다시 나눴습니다. 구약을 전공하시는 목사님이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 생활을 하면서 broken Hebrew를 사용했는데 대표적인 말이 독일 문화권에서 생겨 난 Yiddish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도 Yiddish문학은 활발한 줄로 압니다. 곧 Yiddish는 유대인들의 Konglish라고 할까요? 그것을 들으면서 Konglish가 얼마나 훌륭한 언어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 Konglish를 잘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정말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문화적 틈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녀들과의 문화적 틈입니다. 또 하나는 미국인들과의 문화적 틈입니다. 이 틈 사이에 성령님은 즐겨 찾아 오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마다….

Perfect bilingual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자녀들과 미국인들과의 틈 사이에서 Perfect Konglish를 만들어 가십시다. Konglish로 찬양하고 기도드리십시다.

‘Konglish is beautiful.’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어 올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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