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4.08.0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하나님의 뜻
성경본문 :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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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선일보에 재벌 회장들의 이야기가 실렸었습니다. 기자는 재벌들의 운명하는 장면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회장들의 죽음이 별로 부럽지 않다고 하면서 두 분을 소개합니다. 먼저 한 분의 예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분이 운명하는 마당에 자녀들이 녹음기를 들이 대고 의식이 돌아 오길 기다리곤 했다고 합니다. 이유야 잘 아실줄 압니다.
그러나 곧이어 다음과 같이 글을 잇습니다. “재벌 회장들의 죽음이 꼭 이런 것만은 아닙니다.” 하면서 K회장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K회장은 매일 한 명씩 자신과 친한 이들을 병실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K회장의 아들에 따르면 그들의 얘기는 사업 얘기가 아니었답니다. 지인과 함께 지냈던 일, 맛있는 음식, 여행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K회장이 아들을 부르더니 “3000만원만 찾아오라”고 했답니다. 병실에 계시면서 무슨 돈이 필요할까 싶었는데, “어서 찾아오라”며 다그쳤답니다. 이후 K회장은 기력이 닿는 날마다 평소에 머리손질을 했던 미용실, 단골식당 등을 찾아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와 함께 금일봉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막상 K회장이 세상을 뜬 후에 빈소에서 눈물을 많이 보인 이들은 바로 미용사, 식당 종업원 등이었다고 합니다. K회장의 아들은 “죽음 앞에 의연하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청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태 본 모습 중에 가장 존경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글을 마칩니다.
“그룹의 규모야 다르지만, 두 분 다 재벌 회장으로서 오랫동안 이 사회에 영향력을 끼친 분들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어쩜 이리 다를까요. 씁쓸하기도, 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얘기입니다.”
첫번째 회장의 이야기로 인해서는 씁쓸해지고 두번째 회장의 이야기로 인해서는 따뜻해진다고 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재벌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우리들의 삶으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이 씁쓸해 하기도 하고 따뜻해지기도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재벌이 될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런데 좀 다른 재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재벌이 아닙니다. 기쁨, 기도, 감사의 재벌이 될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속으로는 K회장을 부러워 할줄 압니다. 재벌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K 회장처럼 멋지게 삶을 마감하는 것 너무도 부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돈의 재벌을 많이 두시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극소수입니다.하나님께서 저희 교우님들 중에 몇 분이 재벌이 되기를 원하실지는 알수 없습니다. 저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다른 재벌이 되길 원하십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 바울은 계속 말씀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가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되길 원하실까요?
죄의 뜻 중에 하나가 ‘missing the target’입니다. 죄는 바로 과녁을 miss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남들과 싸우지 않고 이웃을 해하지 않고 사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죄에서 해방 된 것은 아닙니다. 주어진 삶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사도바울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시는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목적을 이루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아니 그것 자체가 목적을 이루는 시작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 죄와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되십시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목적을 어느덧 이루어 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될수 있을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재벌이 되는 방법은 무척 쉽습니다. 항상 기뻐하면 기쁨의 재벌이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 기도의 재벌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감사의 재벌이 됩니다.
돈의 재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아무리 돈을 쫓아가도 돈이 도망가면 절대로 재벌이 될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은 이미 우리 앞에 널려져 있습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리더쉽 분야의 권위자인 스티븐 코비 박사가 셋째 아이를 낳은 딸과의 대화를 소개하였습니다. 딸이 말합니다.
“아버지 너무 속상해요. 아버지도 제가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죠? 하지만 이 아이는 제 시간을 몽땅 빼앗고 있다고요.”
이 이야기를 들은 코비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시간 관리 같은 것에 신경 쓰지 말거라. 달력을 잊어버리렴. 다만 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이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도록 해라. 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는 신경 쓰지 말거라.”
코비 박사는 정말로 모든 현대인들의 약점을 찌르고 있습니다.
따님은 아마도 전문직종에 종사하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녀로 인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왔던 것 같습니다. 이에 코비 박사는 따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도록 하여라.” 곧 아이와의 시간을 기쁨으로 즐기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와의 시간을 기도하며 즐기라고 충고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자신도 모르게 삶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편 벽에 걸린 시계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매 순간을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즐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인들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노예로 사는 것이 참된 현대인의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래서 하루 하루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는 삶이 의로운 삶으로 여기는 문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큰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시간은 지키기 위하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상 시간은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기 위해 있는 것임을 잊고 있습니다.
사실 코비 박사가 한국인들에게 뭔가 배운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있는 시간에 대한 말 있지 않습니까?
Korean time.
교회에 있으면 가끔 미국 교회 장례식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제가 아는 분이면 꼭 참석을 하지만 모르는 장례예배도 바쁘지 않으면 참석합니다.
대개 10시가 예배 시작인데 9:45 이 되면 거의 모든 조객들이 도착합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예배를 기다립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늘 부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길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에 그렇게 오래 살아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구나 생각합니다. 김치를 먹어야 하고 Korean time을 지켜야 하고….
그런데 요즘 제 생각이 많이 바뀌어집니다. 다음에 미국 교회 장례예배에 참석할 때 저는 뒤에서 아마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시간의 노예들이네. 코비 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 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는 신경 쓰지 말거라.”
제 생각이 바뀌어진 큰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번 아리조나 원주민 비젼츄립을 다녀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인디언 타임.”
안 맹호 선교사님은 원주민들을 만나러 갈 때는 시계를 안 차고 가신다고 하면서 인디언 타임이 코리언 타임 보다 한 수 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원주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시작을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한참 지나서 시작을 하는데 원래 사회자 대신에 다른 사회자가 사회를 보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잠시 후 원래 사회자가 도착하니 아무도 나무래지 않을뿐더러 원래 사회자가 임시 사회자를 이어서 사회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벽에 걸린 시계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면의 시계대로 산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치유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도리어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언제나 벽에 걸린 시계에 매여 노예가 되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의 집에도 방마다 시계가 있습니다. 침실에는 아침 일찍 깨야 되는 날을 위해서 자명종까지 있으니 두 시계가 저를 독차지 하려고 다투고 있는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에 시계가 붙어 있습니다. computer, microwave, coffee maker, cable box….
집뿐입니까? 저희 교회도 보십시요. 방마다 시계가 다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시간은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만 있으니 말입니다.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우리는 기뻐할수 없습니다. 기뻐하다가도 시간을 봐야 하니, 기도하다가도 시간을 보고, 감사하다가도 시간을 봅니다. 그러니 서양인으로서 코비 박사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정말로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네 내면의 나침반을 따르고 벽에 걸린 시계는 신경 쓰지 말거라.”
아리조나로 비행기 타고 가면서 오래 전에 구입했지만 읽지 않은 책 하나를 펴 들고 읽어 보았습니다. 한 원주민이 원주민의 삶에 대해 쓴 책입니다. 그 중 한 챕터에는 활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저의 마음을 강타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활을 만들 때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적으로 balance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시작을 안 한다고 합니다.
만들 때 시기나 미움 분노등이 있으면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만드는 사람의 혼이 활로 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읽고 안 선교사님을 만났던터라 금방 인디언 타임이 이해가 되면서 도리어 치유의 느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 보기에는 코비 박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배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주민들에게 배운 것 같습니다. 내적인 balance….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잃을 때 우리는 내적인 밸런스를 잃은 것이 아닐까요?
교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다.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하시는 길의 여러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지니스 하시는 분들은 제 시간에 문을 열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고객들이 다시 오겠습니까?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도 당연히 제 시간에 출근하셔야죠? 동료들이나 상관에게 잘 보이려면…. 어느덧 우리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가지 않습니까? 내적으로 밸런스가 되지 않은채 우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 하루를 통해서 만들어진 삶의 작품은 어떻게 될까요?
물론 우리는 어쩔수 없이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노예가 되서는 안 됩니다. 노예가 되는 순간 우리가 만드는 삶의 작품은 전혀 밸런스가 깨진 엉망인 작품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작품이 전시된다면 우리 모두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시간의 노예에서 해방이 될수 있을까요? 동시에 시간을 지키면서 말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가 하는 일을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삶의 최고의 작품이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 앞을 가리는 벽이 나타납니다. 그 때 힘을 다하여 그 벽을 부숴야 할까요? 거의 모든 경우 그 벽은 부술수 없는 벽입니다. 그 때 우리는 도리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벽이 무너지던가 새로운 길이 언젠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최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매일 매일 멋진 작품을 만들기를 당연히 원하십니다.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길은 훤히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 때 우리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그러니 쫓기는 삶으로 인해서도 기뻐하십시다. 감사하십시다. 그 가운데서 하늘을 잠시 향하십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때 우리들 삶에는 어느덧 밸런스가 생깁니다. 우리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을 우리도 모르게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의 재벌이 될 때 우리는 과녁을 맞추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화살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타겟에 명중할 것입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원주민들의 잠언 중 하나입니다.
“생각은 화살과 같다: 한번 쏘아지면, 과녁을 맞추고야 만다. 생각을 잘 다스려라. 언젠가 네 자신이 쏜 화살에 희생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의 생각을 잘 다스리는 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