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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어머니

날짜 : 2014.05.11
예배명 : 어머니 주일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솔로몬의 어머니
성경본문 : 열왕기상 1장 11-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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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문학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부족의 족장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아들의 결혼 상대자가 결정이 안 되었습니다. 족장은 아들을 불러서 며느리가 되는 여인의 한 가지 조건을 내 놓습니다. 훌륭한 가정에서 아무런 흠이 없게 자란 여인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은 부족의 대표를 불러서 아버지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대표들은 중동지방 어느 나라에 예의 범절을 잘 가르치기로 이름난 세 왕자의 가정이 있다고 보고합니다.
아들은 그 나라로 먼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세 왕자를 만납니다. 세 왕자에게 자기가 멀리 여행을 온 이유를 말합니다.
“당신들은 예의범절이 뛰어난 사람들이란 말을 들었소. 나는 당신들의 딸 중에서 반려자를 찾고 싶소.”
세 왕자는 금방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세 왕자는 협의를 합니다.
“가장 맞는 딸을 저 분의 반려자로 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명예도 손상이 됩니다.”
세 왕자는 각자 집으로 가 부인과 의논합니다. 첫번째 왕자가 부인에게 가서 되어진 이야기를 합니다. 왕자의 부인은 말합니다.
“우리의 딸은 전혀 흠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단 한번 우리 딸의 안 좋은 모습을 보긴 했습니다. 아직 냄비가 화덕 위에 있는데 내려 놓지 않고 그냥 먹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를 들은 후 왕자는 친구들에게 와서 말합니다.
“우리 딸은 이 족장에게 시집 보내기에는 안타깝게도 부적절합니다.”
두번째 왕자도 자기의 부인에게 가서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부인이 대답합니다.
“우리 딸은 정말로 정숙한 여인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유아기 시절 제가 아플 때 어쩔수 없이 하녀에게 맡겨서 하녀의 젖을 먹인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하녀의 젖이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겠습니다.” 왕자는 말합니다.
“우리 딸은 이 족장의 부인이 되기에는 부적절하오.”
세번째 왕자도 자기의 부인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부인은 말합니다.
“우리 딸은 완전합니다. 나는 단 한번도 흩으러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족장은 부인이 될 여인을 보석으로 만든 마차에 태워서 함께 귀향하였습니다.
얼마전 유대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책에서 이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이야기가 언제 쓰여진 것인지는 알수 없어도 유대인들의 피속에 흐르는 완벽을 향한 정신을 깊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 이야기는 자녀교육 뿐 아니라 완벽한 여인만이 왕비가 될수 있는 시대문화적 배경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리 없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 새로운 도전을 느낍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비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과연 완벽했을까…? 오늘 어머니 주일을 맞이해서 솔로몬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에…, 많은 분들이 잘 아실줄 압니다. 솔로몬의 어머님 밧세바는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왕비가 될 사람이 아닙니다. 혹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밧세바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다윗이 어느 날 낮잠을 잔 후 성 위에서 내려다 보니 어느 여인이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왕의 권력으로 그 여인을 성으로 데려와 관계를 갖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보냅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자기 부하 우리아 장군의 부인이었습니다
한편 다윗은 모든 것을 모른척하고 넘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여인이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다윗은 남편인 우리아 장군에게 휴가를 줍니다. 집에 와서 쉬다 가라고…. 태어날 아이의 아버지가 본인임을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아는 집 안에 들어 가지 않습니다. 자기 부하들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으니….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방에서 싸우게 합니다. 다윗의 계획대로 우리아는 전쟁터에서 죽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밧세바는 또 어떠했겠습니까? 밧세바는 아기를 배서 무척 고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에게 무어라고 말할까….’ 그런 고민 가운데 있는데 이제는 더 고통스러운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남편이 사망한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밧세바는 그래도 믿을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된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들어 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다윗 왕이 사람을 보냅니다. 왕실로 모신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밧세바에게는 그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좋아서가 아니라 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기 뱃속에 있는 아이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밧세바는 왕궁으로 들어가서 다윗의 왕비가 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십니다. 밧세바는 한 없는 슬픔에 잠겼을 것입니다.
기왕 왕비로 들어 왔으니 두번째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다시 보냅니다. 아이의 이름을 ‘여디디야’로 부르게 합니다. 뜻은 ‘여호와께 사랑을 입음’.
밧세바는 나단을 통하여 큰 위로를 받습니다. 두번째 아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아이라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단 앞에서 다윗은 솔로몬이 자기의 왕위를 이을 자임을 밝히게 된 것 같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이 왕이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왕이 될때 비로소 자신의 모든 과거의 모든 수치가 청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1절 말씀입니다.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나단은 아도니야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사실을 밧세바에게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의 배 다른 형입니다. 먼저 선수를 친 것입니다. 나단은 밧세바 편인데 밧세바에게 다윗 왕에게 들어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이 말을 듣고 밧세바는 어떠했겠습니까? 듣자마자 이럴수가 있나 하고 왕에게 뛰어 갔겠습니까? 그런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 나단의 말을 통해 밧세바가 어떠했을까 추측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14절을 보면,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리이다.”
아마 다윗왕이 쉽게 밧세바의 말을 받지 않을지도 모를 것을 나단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밧세바가 말을 먼저 시작하면 자기가 뒤 따라 들어가서 밧세바의 말이 사실임을 증언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단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나단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밧세바는 왕비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밧세바는 정상적으로 왕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밧세바는 비극적으로 왕비가 된 것입니다.
처음 소개한 이야기에 의하면 한 족장의 부인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로 완벽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밧세바는 어떻게 왕비가 되었습니까? 성폭행을 당한 결과, 아니 성폭행뿐 아닙니다, 남편을 잃게 되었기에 왕비가 되었습니다.
곧 밧세바는 많은 자책감과 죄의식으로 끝없이 괴롭힘을 당했을 것입니다. 밧세바의 고백이 이를 증명합니다. 21절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
다윗이 세상을 떠나면 그리고 솔로몬이 왕이 안 된채 떠나면 백성들에게 큰 수치를 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까지 항상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단이 나타나서 정상적으로 태어난 왕자 솔로몬의 배 다른 형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도 밧세바는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늘 자기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나단 때문에 받은 약속이었습니다.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신 하나님 때문에 다윗이 밧세바에게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늘 밧세바는 힘을 얻곤 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밧세바는 또 다시 그 약속을 의지하고 다윗왕에게 들어갑니다. 17절 말씀입니다.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아를 가리켜 여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밧세바는 전혀 자기가 전에 당한 상처를 보상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왕이 맺은 약속을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 다음 귀절들을 보면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 밧세바가 말을 할 때 나단이 들어 옵니다. 그동안의 일들을 나단이 말합니다. 나단이 말하는 동안 밧세바는 잠깐 물러난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솔로몬을 약속대로 왕위에 오르게 할 것을 재차 약속합니다. 철없이 자란 솔로몬은 왕이 됩니다. 밧세바는 그동안 받은 모든 모욕과 수치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왕관을 쓴 솔로몬을 바라 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본 교회에 와서 오늘로서 19번째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한두번 빼 놓고 항상 어머니 주일 설교를 제가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19년째인 올 해 처음으로 밧세바의 모습이 저에게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난 사순절에 이스라엘의 왕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기에 밧세바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그 어느 어머니보다 저는 밧세바에게서 참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밧세바는 깊은 자책감과 수치 그리고 무능함에 찌들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그를 버티게 했던 것이 있었는데 자녀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확신이자 다윗왕에게서 받은 확신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불행한 삶 가운데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처음 말씀드린 유대문학뿐 아니라 온 세계는 완전한 어머니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머니들은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들에게 힘이 되는 것은 자녀들입니다. 자녀들을 향한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향한 희망 때문에 어머니의 모든 수치를 이기고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는 멋진 삶을 살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이런 어머니들로 인해 이 세상은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들 때문에 올해도 개나리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어머니가 하나님 품에 안기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어머니도 밧세바의 아픔을 안고 사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희 어머니는 밧세바와 같은 이상한 일들은 당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저희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늘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신 분이셨습니다. 저희 어머니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자주 자주 저희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곤 하셨습니다.
“내 속은 꼬부라졌어.”
어머니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아니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신지 말씀하시곤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철이 없었던 저는 정말로 어머니 마음이 꼬부라진 줄로 생각하면서 지내 왔습니다. 이제 저도 철이 들고 나니 60이 넘고 나니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는 수치 가운데 괴로워하곤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밧세바처럼 자녀들을 위하여는 큰 확신 가운데 사셨습니다.
마당에서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모습은 아직도 저의 눈에 선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자녀들을 위한 겟세마네에 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어머니는 없습니다. 도리어 모든 어머니는 당신들만이 아는 자책감과 수치로 종종 괴로워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녀들을 향한 희망이 넘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위대한 모습이 아닐까요?
모든 어머니들은 매일 자녀들을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십니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공경을 받기에 너무나 합당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이러한 어머니들을 공경함으로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열어가십시다.
말씀을 거둡니다.
이해인 시인의 ‘우는 연습’이라는 시입니다.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심통이 잔뜩 나서
찡그린 얼굴로
거울 앞에 섰습니다
엄마가 도착하면
`이렇게 울어 볼까?`
`저렇게 울어 볼까?`
우는 연습 한참 하다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든 아이
꿈에서도
우는 연습
계속하는지
얼굴엔 눈물도 없는데
흐느낍니다
어머니들은 많이 우셨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의 우는 모습을 언제나 받아주십니다. 우는 자녀들의 모습을 껴 안아주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속삭여 주십니다.
이러한 어머니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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