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4.03.23
설교자 : 이영길 목사
제목 : 가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성경본문 : 민수기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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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낚시 갔다 온 후 아버지가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은 아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완전 허탕을 쳤다.
다른 사람이 준 물고기로 찌개를 끓여 먹었고
아들 보기가 민망하여 혼이 났다.’
아들도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아버지와 낚시를 하러 갔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멋진 날이었다.’
아버지는 많은 물고기를 잡아서 아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높여 보려고 했는데 그만 망신만 당했습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이 잡은 물고기로 찌개를 끓여 먹고 돌아 왔으니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갔다 왔다는 것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가장 최고의 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되신 분들 자긍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능력 보다도 아버지의 존재가 훨씬 소중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남자들 이야기를 먼저 꺼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여성의 존재는 어떤 소중함을 지니고 있는지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사실 여성에 관한 말씀이 아니고 남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아론도 남자이고 그의 아들들도 물론 남자입니다. 사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제사장들의 임무 중 하나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본문을 여선교회 헌신예배에 사용하냐는 질문이 나오실줄 압니다만 그것은 잠시 후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본문의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제사장들의 임무 중 하나가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축복하는 법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사실 목사님들이 축도를 할 때 두 가지 말씀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신약에 있는 고린도후서 13:13절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사용하여 축도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또 하나가 있는데 미국 목사님들이 종종 사용합니다. 바로 방금 소개한 민수기에 있는 이 말씀으로 축도를 합니다. 제사장들의 임무 중 하나가 축복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축복기도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축복의 기도를 알려주신 후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27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제사장들의 축복에 의해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궁금한 것이 하나 있죠. 왜 제사장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여선교회 헌신예배 본문으로 삼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고,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이유를 먼저 말씀드릴까요?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먼저 말씀드립니다.
저희 교단 안에 있는 한인 교회들은 매년 3, 4월에 여선교회 헌신예배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과 설교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얼마 전 여선교회 임원에게서 본문 말씀과 설교 제목을 받은 것입니다. 곧 여선교회 임원진이 정한 본문과 설교 제목을 가지고 오늘 저는 강단에 선 것입니다. 이것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실 저도 이 본문 말씀을 받은 다음에 재차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 본문이 맞나…? 아무리 봐도 이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물었습니다. 왜 이 분들이 이 말씀을 여선교회 헌신예배 설교 본문으로 정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답은 쉽게 나왔습니다.
한 마디로 ‘여선교회 회원들은 바로 세상을 위한 제사장들이다.’
예, 아주 좋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어야 할줄 압니다. 물론 아무 근거 없이 여자들도 제사장임을 주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대신 여선교회 임원들을 대신해서 여성들도 제사장임을 잠시 말씀 가운데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한 군데 씩 찾아 보겠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9:5, 6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광야에서 헤메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선언을 이미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계를 위한 제사장 나라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중 남자들만 제사장 나라에 속하였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모든 백성이 제사장 나라라고 선포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한편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베드로전서 2: 5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기에서 베드로는 모든 예수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남자나 여자나 구별 없이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오신 이 후 오늘 본문 말씀은 이제는 더 이상 남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여성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여선교회 회원을 비롯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가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여선교회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여선교회 회원들이 어떻게 세상을 축복할수 있을까요? 여러 방법이 있을줄 압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여성들을 살펴 보면서 몇 가지 예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일 먼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하면 빼어 놓을수 없는 것이 가나의 혼인 잔치입니다.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예수님도 그 자리에 함께 계셨는데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합니다. 그 항아리는 포도주 항아리도 아니었습니다. 손 발을 씻는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였습니다. 그 항아리에 물을 채워 손님들에게 갖다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대로 했더니 처음 내 놓은 것보다 더 좋은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축복하였고 이에 예수님은 그 축복을 따라 이행한 것뿐입니다. 마리아는 제사장의 축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라는 제사장의 축복을 마무리 지은 것입니다.
재물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풍성은 축복에서 시작됩니다. 축복은 주어진 것을 수십배 수백배로 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이웃에게 받은 대접 중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입니다. 그 때는 남한이 북한 보다 훨씬 못 살 때였습니다. 전화 있는 집도 별로 없었을 때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고모댁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화도 없을 때이니 무작정 찾아 갔습니다. 고모는 어머니와 제가 온 것을 반기시면서 금방 장에 갔다 오시더니 저녁 장만에 들어 가셨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당신은 생활은 넉넉치 않지만 손님만 오시면 정성껏 대접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고모댁은 잘 사시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반찬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부로 맛있는 국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 국을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 국과 함께 고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고모님은 요리를 통하여 세상을 축복하는 제사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손님을 대접할 때만이 아닙니다. 요리는 기적을 창출하는 대표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리에 사랑의 마음까지 더할 때 바로 제사장의 축복이 임하는 것이 아닐까요? 제사장의 축복은 요리를 통하여 지금도 온 세상을 부요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기적은 오늘도 우리들의 삶에 매일 찾아 오는 것이 아닐까요? 여인들을 통한 가나의 기적이 있기에 이 세상은 무한한 축복의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두번째 제사장으로 저는 수로보니게 여인을 들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 땅인 두로 지방에 쉬기 위하여 가십니다. 그러나 이미 사람들이 알고 찾아 옵니다. 그 중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인 이방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냉냉하게 대답하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너는 이방인이니 국물도 없다’짜르시는 것입니다. 이에 여자가 대답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의 겸손에 주님은 넘어 간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그의 자녀를 낫게 해 주십니다. 그 여인은 자녀를 위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축복에 주님은 복을 자녀에게 내려 주신 것입니다.
겸손을 영어로 humility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흙(humus)이라고 합니다. 흙처럼 흔하고 하찮은 존재가 되는게 겸손입니다. 그런데 흙과 같은 존재가 바로 하나님에게는 제사장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을 아무 쓸모 없는 흙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그 여인 안에서 하나님의 제사장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의 자녀를 위한 소원은 바로 제사장의 축복이었고 이에 예수님은 그대로 복을 내려줄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선교회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을 위한 기도는 바로 제사장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꼭 들어주십니다. 이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입니다. 어머니는 13년동안 아들을 위해서 제사장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가정을 위한 기도뿐이겠습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제사장의 기도의 힘이 있습니다.
세번째 제사장으로 저는 우물가의 여인을 들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어느 동네에 이르십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물 가에 앉아 계시는데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결혼을 다섯번이나 했던 여인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먼저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얼떨결에 남편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쪽집게처럼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제사장의 최고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여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남편이 다섯명이 있던 그 이상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이 여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제사장을 통한 가장 큰 축복은 예수 믿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번째 제사장으로 저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들고 싶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른 후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 많은 여인들이 미리암을 따라 춤을 추며 노래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Jan Richardson이라는 여성 영성가가 ‘In the Sanctuary of women’이라는 훌륭한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911 사건 후 우리는 더 많은 예술가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예술가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삶을 내 주는 창조적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제사장들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까? 물론 축복의 행위를 통해서 아름답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도 제사장들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예술적 행위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뿐 아니라 축복을 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리암이 바로 제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론의 누이이자 모세의 누이이죠. 그는 여인으로서 춤과 노래로 곧 예술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것입니다.
곧 제사장의 네번째 모습은 바로 예술을 통하여 새로운 희망을 주는 여인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곧 희망의 축복을 이들은 온 세상에 주고 있습니다. 미리암처럼….
처음 이야기를 통해서 아버지의 아픔이 도리어 아들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방금 언급한 여인들을 보면 모두 아픔의 여인들입니다. 마리아, 수로보니게 여인, 우물가의 여인, 미리암 그러나 그들의 아픔은 바로 그들을 특유한 제사장으로 만들어 간 것을 할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선교회 여러분,
여러분 각자는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아실줄 압니다. 그런데 바로 그 연약함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쉽게 다가 갑니다. 아울러 그 연약함 때문에 여러분은 이웃의 축복이 되곤 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만이 줄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아무도 줄수 없고 여러분만이 줄수 있는 축복, 여러분이 주지 않으면 전혀 이 땅에서 사라지고마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 축복을 온 세계에 남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보스톤 한인 교회 여선교회만이 줄수 있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반듯이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사랑으로 접대하시고, 겸손히 기도하시고, 담대히 전하시고, 아름답게 창조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여러분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가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말씀을 거둡니다.
Seamus Heaney라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재미있는 글을 썼습니다.
한 나그네가 비행기 안에서 옆에 탄 여객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집은 어디입니까?”
여객은 대답합니다. “저 여인이 있는 곳입니다.” 그 여인은 물론 부인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축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인들이 있는 곳입니다.”
“보스톤 한인 교회 여선교회원들이 있는 곳입니다.”
여선교회 여러분, 여러분이 정한 설교 제목입니다.
“가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여러분이 가있는 곳이 바로 축복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